에프라시압 이야기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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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소천하신 장인어른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누군가 데리러 왔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정신의학에서는 대개 환시나 환청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옛 이야기에도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것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중국에서는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속여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 이야기도 있는데,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터키 소설을 만나고 보니, 터키에서도 저승사자 이야기가 전해오는 모양입니다. 에게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교수의 <에프라시압 이야기>가 바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승사자를 따라 나서는 모양입니다만, <에프라시압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생긴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압툴라흐만이라고 하는 건달이 저승사자와 내기를 걸었는데, 각자 한 사람씩 데리고 와서 편먹고 으뜸패라는 시합을 하는 것입니다. 압툴라흐만은 친구를 데리고 왔고, 저승사자는 자신에 데리고 갈 젯잘 데데라는 노인을 데리고 갑니다. 승부는? 당연히 저승사자가 이겼습니다. 저승사자는 자신과 편먹고 시합을 한 젯잘 데데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저승사자는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 이외에는 그 어떤 목적, 규칙 그리고 조건이 없는 게임을 제안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로 말입니다. 이야기 한편 당 한 시간의 목숨을 더해주기로 합니다. 이야기는 저승사자가 데려가야 할 우준 이흐산(키큰 이흐산이라는 뜻이랍니다)을 붙잡을 때까지 이어가게 되는데, 문제는 우준 이흐산이 신출귀몰하게도 저승사자의 코 앞에서 사라지기 일쑤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야기는 첫 번째 주제인 공포에서 시작하여 종교, 사랑, 천국으로 바뀌어갑니다. 저승사자와 젯잘 데데가 한 꼭지씩 이야기를 내놓기로 했으니,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무려 여덟 꼭지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여덟 꼭지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패러디, 상호텍스트성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적 기법들을 통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옮긴이는 작가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존재는 마치 내기를 좋아하는 변덕스러우면서, 감정이 봉인된 채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승사자가 젯잘 데데에게 이야기하기라는 게임을 제안한 것도 젯잘 데데가 손자들을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나톨리아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밤이 아주 길고, 아주 재미있고, 약간은 ‘소름 끼치게’ 지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여주는 정령과 요정 이야기들 때문이다(51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터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우리네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렸을 적에 집에 큰 고모께서 놀러 오시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 공포에 관하여 젯잘 데데가 죽음의 사자에게 전한 이야기는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비다즈왕을 되살리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과 겹치는 이미지입니다. 터키가 그리스와 붙어 있어 옛 이야기까지도 공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마쳤을 때, 저승사자와 젯잘 데데의 생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만으로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열망하며,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어지곤 하지요. 난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는 한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오(243쪽)’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젯잘 데데를 읽으면서 저 자신은 사람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지 돌아보게 되면서 아쉬움이 남는 듯합니다.

 

천국의 이야기까지 마쳤을 때, 젯잘 데데를 뒤쫓던 손자들을 등장하게 되고, 저승사자는 젯잘 데대와 손자들에게 마지막 게임을 제안합니다. 자신을 웃게 만들면 젯잘 데데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이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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