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1
류정월 지음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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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다룬 책을 고르다 발견한 책입니다. ‘조선시대의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큼 우리의 핏속에 녹아 있는 웃음의 비밀을 붙들어 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물론 <고금소총>과 같은 선조들의 유머감각을 다룬 책이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지만,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단순하게 선조들이 즐기던 우스개를 모아놓은 수준이 아니라, 선조들의 우스개에 녹아 있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심층분석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재담, 농담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전문적으로는 소담, 소화, 패설 등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의 ‘옛날 우스개’들을 통하여 그 옛날에 우스개를 즐긴 사람들이 누구고, 웃긴 사람들은 누구이며, 옛날 우스개에 숨어 있는 웃음의 정체를 파악하여 제대로 웃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우스개에 따라서는 다분히 성적인 내용, 언젠가 EDPS라고 부르던, 이 포함되며 그와 같은 우스개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웃음이 분석적으로 이해되어 웃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 웃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아 하지 싶습니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청중들이 왜 웃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옛날 우스개를 읽다보면 배꼽을 잡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슬그머니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 역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서삼경과 같이 중국고전을 바탕으로 한 우스개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왜 웃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저자는 웃음을 분석하면서 웃음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스개가 성공적으로 소통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든 우스개는 ‘조건적’이라는 테드 코언의 명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웃음의 효과에 관한 이론도 동원하는데, ‘기분 좋은 술꾼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자주 웃고 더 오래 산다(199쪽)’라는 영국의 심리학자 조프 로우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창기에 빠진 선비에게 아내가 그 이유를 묻자 ‘부인으로 말하면 서로 공경하고 서로 별다른 뜻이 있으므로 존귀하여 함부로 욕정을 풀 수 없으나, 창기에 이르러서는 정에 맡겨 욕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탕한 재주에 있어서도 온갖 재미를 다 볼 수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내가 언제 존경해 달랬느냐고 남편을 어지러이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성과 관련된 우스개가 만연했던 것은 일상에 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이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중톈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모임에서도 EDPS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여자선배들이 주도하기도 해서 공연히 시선을 어디 두기가 민망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이런 상황을 별로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성희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어쩌면 성에 대한 제약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옛날 우스개에는 탐욕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진지한 것들도 있고, 한번 듣고는 잊어버릴 만한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우스개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삶을 풍요롭게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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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농촌총각의 투르크 원정기
안효원 지음 / 이야기쟁이낙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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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터키여행기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터키를 다녀온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터키를 다녀왔을 터이나, 제 경우는 지난해 다녀왔던 스페인여행의 연장선상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이 공존한 시기가 있었고, 그 결과로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남겼습니다.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고래로 다양한 문명이 접촉하던 지역으로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는 것 때문에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안효원님의 <감사합니다> 역시 터키여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미스 터키를 만나 프러포즈라도 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내비치는 것으로 얼버무렸지만, 터키에서 찾아간 곳들을 보면 어쩌면 초기 기독교 유적을 찾아보려는 뜻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사정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때로는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지만, 느린 여행의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이스탄블로 입국한 저자는 셀주크, 에페스, 파묵칼레, 얄바츠, 올림포스, 카파도키아, 트라브존, 앙카라, 샤프란볼루를 거쳐 다시 이스탄블로 돌아왔습니다.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어서인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묘사나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적고 있어서 소설을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대체적으로 느린 여행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자의 여행방식은 그야말로 느린 여행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여행지로 가는 차시간을 맞추기 위한 경우와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그날의 일정을 시작한다거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일출이나 일몰을 구경하는 등입니다. 짜여진 일정이 아니라서 상황에 따라서 여행일정을 쉽게 조정하는 것도 부러운 장면의 하나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리 짜놓은 전체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편이고, 일정 자체를 빠듯하게 짜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탄불에서 톱카프궁전을 보러 나갔다가 입장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인근에 있는 귤하네 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같은 것이 눈길을 끕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가 멋있고, 일렬로 선 나무들이 만든 길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길처럼 근사하다. (…)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초겨울인데 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아침의 기운을 받은 공원은 더없이 맑다. 나무들 사이로 펴지는 햇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19쪽)’라고 느낌을 적었습니다. 같은 공원에 가본다면 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까 싶습니다. 아니 눈에 들어온다고 해도 저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여행지에서 만난 유적들에 대한 글을 쓸 때, 유적의 역사를 중심으로 정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분은 자신의 느낌을 잘 요약해서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귤하네 공원에 대한 글의 끝에 붙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주소를 잘 못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스만 터키의 세밀화에 얽힌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톱카프궁전에서 인용한 <내이름은 빨강>은 적절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유심히 챙겨보는 것 중 하나가,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의 경우는 본문 내용과 잘 연결되는 사진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데, 역시 아쉬운 점은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 설명을 참조하라는 의미이겠지요...

 

슐레이마니예 자미에서 읽은 ‘기도하는 곳 또한 이렇게 크게 만든 건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모두가 잘사는 삶, 모두가 신을 경배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기도하는 곳이 존재하는 이유이다.(349쪽)’라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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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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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찾다 눈에 띈 단편집입니다. 제목에 이끌렸는데, 작가는 여기 담은 단편들에는 웃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웃음은 감염성이 있다고 하던데 읽는 이도 주인공을 따라 웃다가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까요?

 

열 개의 단편을 읽고 나서야 웃음에 관한 저자의 말을 발견했고, 과연 주인공을 따라 웃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되짚어 보았지만, 기억에 남은 웃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리뷰를 쓰려면 웃음 사냥에 다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사냥에 나서기 전에 전체적인 느낌을 먼저 정리해보면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매년 서너편의 단편을 쓴다고 했는데, 그것들이 모두 귀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지는 분명치 않고, 왜 귀신 이야기를 쓰는지를 밝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등장해서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인데 마치 살아있는 날처럼 적고 있어서 읽다보면 살았을 때 이야기인지, 아니면 죽었을 때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단편들을 이어서 써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지 앞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오래보기’라는 이벤트 참가기를 다룬 ‘공기 없는 밤’에 마지막 부분에서 알듯 모를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친구의 관을 들고 화장장까지 걷던 친구들이라면, 저렇게 소파를 들고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영희와 영희가 길을 걷다 소파를 들고 가는 청년들을 만난다면 뭐라고 물어볼까? 관절염을 앓는 영희에게 청년들은 잠시 소파에 앉도록 해주겠지.…(118쪽)”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카메오로 등장하는 기법을 영화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두 번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첫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를 보고 나니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가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런 식으로 열 편의 영화들이 겹쳐졌다.(119쪽)”

 

어떤 독자는 비극 속에서 웃음을 찾아낼 줄 하는 작가라고 리뷰에 적었습니다만, 비극과 웃음에 관하여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웃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에 웃음을 제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 작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가 한 꼭지의 웃음을 삽입한 이유일 것입니다. 단편마다 담겨 있는 웃음이 책읽는 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읽은 이들마다의 감성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열편의 단편 가운데 나름 인상에 남는 웃음 코드를 꼽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작품 ‘어쩌면’은 수학여행길에 버스사고로 죽어 귀신이 된 여학생들이 귀신의 집에 놀러간 장면입니다. “우리들은 귀신의 집에 들어갔어.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천장에서 떨어지자 거울과 압정이 소리를 질렀어. 손을 잡고 있떤 연인들이 귀신 인형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면서 깔깔거렸어. 우리는 좀 쪽 팔였어. 가짜 귀신에게 놀란 진짜 귀신이라니. 누가 알아차릴까 봐 우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어.(24쪽)” 요즈음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만, 이 단편에 등장하는 처녀귀신들을 인간도 놀라지 않는 가짜귀신을 보고 놀라는 순진파인 것 같습니다.

 

표제작품인 ‘웃는동안’에 숨겨둔 웃음코드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 엉덩이를 좌우로 비트는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해서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불러 올렸는데, 소년은 마이크에 대고 “죄송해요. 체조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조카가 태어나서 웃은 거예요(69쪽)”라고 말해 전교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조카에게 ‘이 삼촌은 이제부터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 될 거란다’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늘 웃으면서 살게 되었다는 소년이 깜찍하지 않습니까? 작가가 나머지 작품들에 숨겨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나서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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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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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덥다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을 읽다보면 더위가 저만치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도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에도 시대 일어난 강력사건을 해결한 탐정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들을 모은 일종의 선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반 활동한 오카모도 기도, 노무라 고도, 히사오 주란 등 세 명의 작가의 추리소설 작품을 각각 세편씩 수록하고 있는데, 작가들마다 주인공으로 내세운 탐정들이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노무라 고도는 오캇피키인 제니가타 헤이지가 주인공으로, 오카모토 기도는 한시치가 주인공으로, 히사오 주란은 아고주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건의 사건기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에도시대에는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마치부교를 정점으로 하는 경찰조직이 있었는데, 마치부교 아래 요리키-도신으로 이어지는 무사 관직이 있고, 그 아래로 오캇피키, 메차카시, 고요키키-데사키-시탓피키로 연결되는 평민탐정을 고용하여 사건을 맡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강력사건을 민간이 맡아 해결하는 묘한 구조였다고 하겠습니다. 의금부라는 행정조직이 전적으로 맡아하선 우리와는 다른 체제였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강력사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기술 역시 같이 발전해왔을 터입니다. 최근 들어 과학적 수사기법들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 한 방울의 피나 체액에서 얻은 정보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을 추리해들어가는 재미가 많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현대의 발전된 수사기법에 익숙해진 시각으로 보면 에도시대의 탐정들이 사건을 뒤쫓아 가는 방식이 왠지 허술해 보이거나, 저래도 되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보면 추리소설의 작법 역시 지금처럼 치밀하지 않았을 터라 다소 허술해 보이고, 사건에 대한 서술이 축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라 고도의 작품 가운데 ‘은비녀의 저주’에서처럼 당시 여성의 장신구였던 은비녀로 눈을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수법이 실재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눈을 찔러 단숨에 절명시키려면 괴력의 소유자여야 가능했을 범죄가 여성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점이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금빛 여인’이나 ‘일곱 명의 신부’ 등을 보더라도 작가가 여성이 간여하는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일곱 명의 신부’에서는 아내가 될 여성을 미끼로 해서 사건을 해결하러드는 탐정을 보면서 굳이 인륜을 거론하지 않더라고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반면 오카모트 기도의 작품들은 충분히 가능한 사건들이며, 사건을 다루는 탐정의 접근방식도 충분히 가능하지 싶습니다. 다만 ‘간페이의 죽음’에서 보는 것처럼 증거를 모아 분석해서 범인을 압축해가는 방식보다는 탐정의 직감을 바탕으로 추정한 범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범행을 실토하게 하는 어찌보면 전근대적 문제해결방식이라서 다소 허탈한 느낌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시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순진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쳐놓은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던 것 아닐까요? 조선 시대에 이미 <무원록>이라고 하는 책자에 정리된 과학적 수사기법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것과 비교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에도라고 하는 이국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읽을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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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 박상우 단막소설
박상우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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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짬뽕을 자주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왠 짬뽕이냐구요? 조리를 하느라 불을 피우는 것은 불편해도 매운 짬뽕으로 이열치열하는 맛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짬뽕하고 박상우 작가의 <짬뽕>을 읽게 된 것은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반디 펜벗에서 8월에 내건 주제가 ‘웃음’이라서 웃음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골라보았던 것입니다. 일단 ‘짬뽕’하면 무언가 웃음이 담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에 둔감한 편인지, 요즘 잘 나가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어쩌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라서 다른 웃음코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짬뽕>에서 웃음을 발견해낼 수 있을지 미심쩍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가가 서문에 적은 것처럼 <짬뽕>은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을 가지고 원고지 30매 분량의 짧은 분량으로 된 ‘단막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형식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읽히고 공감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소재에 따라서 얼척 없는 이야기, 쓴 웃음이 나는 이야기,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르는 이야기, 설마 이런 일이? 싶은 이야기 등등 다양한 내용들을 늘어놓고 ‘맘에 드는 대로 즐겨보시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청춘남녀가 출연하여 짝을 짓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기억에 남는 영어 문장을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출연자가 ‘Hm, Hm..... She is beautiful.’이라거나 ‘Take me home country road’라고 했을 때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는 지문은 솔직히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장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웃음 코드의 문제일 듯합니다. 다른 출연자가 한 말도 엉뚱하기는 별 차이가 없어보였거든요.

하지만 ‘머리에 검은 봉지를 쓰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화투를 치는 장면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법도 합니다. 다만 ‘훈수 들지 말어. 잘못하면 저승 가는 마차에 함께 실려가는 수가 있어(169쪽)’, ‘(검은 비닐 봉지) 그걸 벗기면 우린 모두 죽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한단 말여(170쪽)’라는 말씀에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미묘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구 차례야?’라는 말씀에 ‘아 잔소리들 하덜 말고 빨랑빨랑 좀 쳐. 기다리다 못해 숨이 넘어가겠어’, ‘장의차 올 때 꺼정 기다려봐. 어차피 황천 가는 길인데 뭘 그리 서두누’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면 무슨 사연인지 가늠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눈 내리는 밤’도 허탈할 수도 있지만 웃음이 절로 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니까 쌍팔년 코미디에 등장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이 담장을 넘어오는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뒤쫓으면서 ‘서지 않으면 쏜다’라고 경고를 하고 권총을 발사했고, 쫓기는 사람은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내달리는 것입니다. ‘탕’ ‘으악’ 도망자는 주택가 계단에서 쓰러졌지만, 정작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 아니라 발목을 접질렸던 것입니다. 결국 김순경은 경찰이 과잉대응했다는 핀잔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찰을 열세 살짜리 소년을 뒤쫓으면서 권총을 뽑아 발사했지만 실탄은커녕 공포탄을 쏜 것은 아니고, 그저 입으로 ‘탕’하는 공갈탄이었던 것인데, 도망하던 소년은 ‘으악’ ‘으악’하고 변죽을 울려주면서 쫓고 쫓기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자잘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짬뽕을 만들듯이 지지고 볶아 먹을 만하게, 다시 말해서 짬뽕의 매운 맛처럼 느낌이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해냈고, 스무 개의 이야기들 가운데는 쓴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빙긋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허탈한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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