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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ㅣ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1
류정월 지음 / 샘터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웃음을 다룬 책을 고르다 발견한 책입니다. ‘조선시대의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큼 우리의 핏속에 녹아 있는 웃음의 비밀을 붙들어 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물론 <고금소총>과 같은 선조들의 유머감각을 다룬 책이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지만,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단순하게 선조들이 즐기던 우스개를 모아놓은 수준이 아니라, 선조들의 우스개에 녹아 있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심층분석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재담, 농담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전문적으로는 소담, 소화, 패설 등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의 ‘옛날 우스개’들을 통하여 그 옛날에 우스개를 즐긴 사람들이 누구고, 웃긴 사람들은 누구이며, 옛날 우스개에 숨어 있는 웃음의 정체를 파악하여 제대로 웃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우스개에 따라서는 다분히 성적인 내용, 언젠가 EDPS라고 부르던, 이 포함되며 그와 같은 우스개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웃음이 분석적으로 이해되어 웃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 웃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아 하지 싶습니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청중들이 왜 웃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옛날 우스개를 읽다보면 배꼽을 잡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슬그머니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 역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서삼경과 같이 중국고전을 바탕으로 한 우스개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왜 웃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저자는 웃음을 분석하면서 웃음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스개가 성공적으로 소통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든 우스개는 ‘조건적’이라는 테드 코언의 명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웃음의 효과에 관한 이론도 동원하는데, ‘기분 좋은 술꾼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자주 웃고 더 오래 산다(199쪽)’라는 영국의 심리학자 조프 로우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창기에 빠진 선비에게 아내가 그 이유를 묻자 ‘부인으로 말하면 서로 공경하고 서로 별다른 뜻이 있으므로 존귀하여 함부로 욕정을 풀 수 없으나, 창기에 이르러서는 정에 맡겨 욕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탕한 재주에 있어서도 온갖 재미를 다 볼 수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내가 언제 존경해 달랬느냐고 남편을 어지러이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성과 관련된 우스개가 만연했던 것은 일상에 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이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중톈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모임에서도 EDPS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여자선배들이 주도하기도 해서 공연히 시선을 어디 두기가 민망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이런 상황을 별로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성희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어쩌면 성에 대한 제약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옛날 우스개에는 탐욕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진지한 것들도 있고, 한번 듣고는 잊어버릴 만한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우스개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삶을 풍요롭게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