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날씨가 덥다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을 읽다보면 더위가 저만치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도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에도 시대 일어난 강력사건을 해결한 탐정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들을 모은 일종의 선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반 활동한 오카모도 기도, 노무라 고도, 히사오 주란 등 세 명의 작가의 추리소설 작품을 각각 세편씩 수록하고 있는데, 작가들마다 주인공으로 내세운 탐정들이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노무라 고도는 오캇피키인 제니가타 헤이지가 주인공으로, 오카모토 기도는 한시치가 주인공으로, 히사오 주란은 아고주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건의 사건기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에도시대에는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마치부교를 정점으로 하는 경찰조직이 있었는데, 마치부교 아래 요리키-도신으로 이어지는 무사 관직이 있고, 그 아래로 오캇피키, 메차카시, 고요키키-데사키-시탓피키로 연결되는 평민탐정을 고용하여 사건을 맡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강력사건을 민간이 맡아 해결하는 묘한 구조였다고 하겠습니다. 의금부라는 행정조직이 전적으로 맡아하선 우리와는 다른 체제였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강력사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기술 역시 같이 발전해왔을 터입니다. 최근 들어 과학적 수사기법들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 한 방울의 피나 체액에서 얻은 정보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을 추리해들어가는 재미가 많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현대의 발전된 수사기법에 익숙해진 시각으로 보면 에도시대의 탐정들이 사건을 뒤쫓아 가는 방식이 왠지 허술해 보이거나, 저래도 되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보면 추리소설의 작법 역시 지금처럼 치밀하지 않았을 터라 다소 허술해 보이고, 사건에 대한 서술이 축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라 고도의 작품 가운데 ‘은비녀의 저주’에서처럼 당시 여성의 장신구였던 은비녀로 눈을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수법이 실재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눈을 찔러 단숨에 절명시키려면 괴력의 소유자여야 가능했을 범죄가 여성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점이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금빛 여인’이나 ‘일곱 명의 신부’ 등을 보더라도 작가가 여성이 간여하는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일곱 명의 신부’에서는 아내가 될 여성을 미끼로 해서 사건을 해결하러드는 탐정을 보면서 굳이 인륜을 거론하지 않더라고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반면 오카모트 기도의 작품들은 충분히 가능한 사건들이며, 사건을 다루는 탐정의 접근방식도 충분히 가능하지 싶습니다. 다만 ‘간페이의 죽음’에서 보는 것처럼 증거를 모아 분석해서 범인을 압축해가는 방식보다는 탐정의 직감을 바탕으로 추정한 범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범행을 실토하게 하는 어찌보면 전근대적 문제해결방식이라서 다소 허탈한 느낌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시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순진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쳐놓은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던 것 아닐까요? 조선 시대에 이미 <무원록>이라고 하는 책자에 정리된 과학적 수사기법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것과 비교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에도라고 하는 이국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읽을거리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