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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 박상우 단막소설
박상우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짬뽕을 자주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왠 짬뽕이냐구요? 조리를 하느라 불을 피우는 것은 불편해도 매운 짬뽕으로 이열치열하는 맛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짬뽕하고 박상우 작가의 <짬뽕>을 읽게 된 것은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반디 펜벗에서 8월에 내건 주제가 ‘웃음’이라서 웃음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골라보았던 것입니다. 일단 ‘짬뽕’하면 무언가 웃음이 담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에 둔감한 편인지, 요즘 잘 나가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어쩌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라서 다른 웃음코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짬뽕>에서 웃음을 발견해낼 수 있을지 미심쩍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가가 서문에 적은 것처럼 <짬뽕>은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을 가지고 원고지 30매 분량의 짧은 분량으로 된 ‘단막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형식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읽히고 공감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소재에 따라서 얼척 없는 이야기, 쓴 웃음이 나는 이야기,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르는 이야기, 설마 이런 일이? 싶은 이야기 등등 다양한 내용들을 늘어놓고 ‘맘에 드는 대로 즐겨보시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청춘남녀가 출연하여 짝을 짓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기억에 남는 영어 문장을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출연자가 ‘Hm, Hm..... She is beautiful.’이라거나 ‘Take me home country road’라고 했을 때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는 지문은 솔직히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장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웃음 코드의 문제일 듯합니다. 다른 출연자가 한 말도 엉뚱하기는 별 차이가 없어보였거든요.
하지만 ‘머리에 검은 봉지를 쓰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화투를 치는 장면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법도 합니다. 다만 ‘훈수 들지 말어. 잘못하면 저승 가는 마차에 함께 실려가는 수가 있어(169쪽)’, ‘(검은 비닐 봉지) 그걸 벗기면 우린 모두 죽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한단 말여(170쪽)’라는 말씀에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미묘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구 차례야?’라는 말씀에 ‘아 잔소리들 하덜 말고 빨랑빨랑 좀 쳐. 기다리다 못해 숨이 넘어가겠어’, ‘장의차 올 때 꺼정 기다려봐. 어차피 황천 가는 길인데 뭘 그리 서두누’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면 무슨 사연인지 가늠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눈 내리는 밤’도 허탈할 수도 있지만 웃음이 절로 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니까 쌍팔년 코미디에 등장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이 담장을 넘어오는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뒤쫓으면서 ‘서지 않으면 쏜다’라고 경고를 하고 권총을 발사했고, 쫓기는 사람은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내달리는 것입니다. ‘탕’ ‘으악’ 도망자는 주택가 계단에서 쓰러졌지만, 정작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 아니라 발목을 접질렸던 것입니다. 결국 김순경은 경찰이 과잉대응했다는 핀잔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찰을 열세 살짜리 소년을 뒤쫓으면서 권총을 뽑아 발사했지만 실탄은커녕 공포탄을 쏜 것은 아니고, 그저 입으로 ‘탕’하는 공갈탄이었던 것인데, 도망하던 소년은 ‘으악’ ‘으악’하고 변죽을 울려주면서 쫓고 쫓기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자잘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짬뽕을 만들듯이 지지고 볶아 먹을 만하게, 다시 말해서 짬뽕의 매운 맛처럼 느낌이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해냈고, 스무 개의 이야기들 가운데는 쓴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빙긋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허탈한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