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페루 - 신이 숨겨둔 마지막 여행지
이승호 지음 / 리스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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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잉카문명이 꽃을 피웠던 페루는 아즈텍문명의 중심지였던 멕시코와 함께 남미여행에서 빠트려서는 안될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사 상품을 이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데로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몇 가지 이유에서 어느 정도는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여행사의 상품마다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곳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가를 고민한 다음에 여행사 상품을 골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지에서는 물론 가이드가 안내도 하고 설명도 합니다만, 가이다마다 차이가 있어서 설명을 대충하고 건너 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미리 공부를 하고 가면 놓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거나, 다녀와서도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호승 작가의 <언젠가는, 페루>는 참 좋은 페루 여행 안내서입니다. 페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요약하고, 페루에서 빠트리면 섭섭할 볼거리들을 리마, 이카, 쿠스코, 맞추픽추, 푸노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교통편과 숙소, 먹거리 등을 구하는데 있어서 주의할 사항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역사적 배경도 간략하게 요약하였고, 특히 페루 사람들의 특성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페루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단체로 여행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도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사진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단체여행을 하게 되면 교통평과 숙소는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먹는 것은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겠지요. 볼거리에 관한 정보는 아주 중요하죠. 사진이 많으면 금상첨화가 되겠구요.

 

최근에 남미를 다녀오신 분이 계신데, 다녀오셔서 하는 말씀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린 기억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돌아보는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대부분 비행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면 사전에 남미에 대하여 충분하게 공부를 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언젠가는, 페루>의 기획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모두 아홉 꼭지나 준비한 ‘페루, 한뼘 더 들어가기’입니다. 페루의 정치, 사회적 고질병인 부의 불평등, 경제, 나스카 라인, 가톨릭, 기후, 잉카제국이 멸망한 이유, 알파카, 그리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등을 주제로 조금 깊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앎의 깊이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는 늘 고민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적절한 선에서 참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어보려고 준비하였습니다. 방문하는 나라의 문학작품을 골라 읽는 것은 여행준비과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한일관계의 쟁점이 되어온 위안부문제와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페루를 꼽은 이유는 단순하게 잉카문명의 유적에 더하여 스페인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동안 겪은 온갖 어려움, 해방 이후에도 사회적 불안이 지속되는 등 사회적 여건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페루사람들의 특유의 민족성 등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이렇게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리마, 이카, 쿠스코, 맞추픽추, 푸노가 당신을 기다린다. 멀다고 망설이지 말자. 문화가 생소하다고 겁먹을 것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사람들과 경이로운 자연, 그리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곳. 페루를 여행하고 난 뒤에 당신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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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차이나 - 오늘의 중국을 읽는 키워드 33
길호동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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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굴기(崛起)라는 단어가 익숙해졌습니다. 특히 중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듣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영역에서 굴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국을 조망하는 <굴기의 시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78563>도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글만리; http://blog.joins.com/yang412/13651448>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중국의 눈부신 성장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변하는 것처럼 중국인들도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이 달라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가 봅니다. <리얼 차이나>는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베이징에서 박사를 마치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20년이 넘는 세월을 통하여 몸으로 겪은 중국인들의 변화과정을 상세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저자는 중국인들이 우리와의 차이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관찰해왔던 바를 토대로 하여, 중국이 어떻게 해왔고, 한국과 많이 달랐던 점들이 지금은 얼마나 가까워졌으며, 차이가 여전한 점은 무엇인지를 짚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기 이전의 40여년에 걸친 단절의 시기가 있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왔던 것처럼, 현재의 중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인과 한국인은 더 깊고 넓게 얽혀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하여 더 넓고 깊으며, 올바른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잘 살아보세’를 내세우며 피땀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던 것처럼 중국 역시 1978년 출범한 개혁개방이 1992년 덩샤오핑의 독려로 추진력을 얻은 변화가 오늘의 중국이 있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새로운 중국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황금의 매력에 다시 눈을 뜬 중국의 모습, 중국 사회를 견인해나갈 새로운 이념의 부재가 가져오는 사상적 혼란,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코드 등 급변하고 있는 중국에서 주목할 것들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 세계로 향하는 중국의 현주소에 대하여도 짚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에 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국에서 전해진 유교의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국 역시 유교적 전통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유교의 존재감이 퇴색하기 시작하여 심지어는 문화혁명 기간 동안에는 철저하게 파괴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중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유교를 대신할 새로운 도덕 체계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최근의 중국사회는 역사상 가장 극심하게 도덕이 붕괴되었고 염치를 잃어버린 사회라고 잘라 말하기도 한답니다. 경제는 발전해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회는 삭막해지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풍토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붕괴시키고 있지만, 정작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이념이나 종교는 아직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공자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중국은 우리나라를 일컬어 소중화(小中華)라고 했습니다. 규모는 작으나 문화적으로는 상대할만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절의 시기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여전히 괄목상대할 무엇을 가지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전환기에 외세의 침략을 받아 시련(試鍊)을 같이 겪은 동병상련의 감정도 있을 터이며, 빈곤의 늪에서 털고 일어난 자립의 경험을 나눌 수도 있을 터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는 것이니 한 때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해서 얕잡아보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습니다. 중국은 땅의 크기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리얼 차이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변하고 있는 중국 사회현상을 기본으로 새로운 중국과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신중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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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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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훔볼트에 대한 기억 1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모양입니다.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회의 마지막 날 시내구경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그 문을 지나 훔볼트대학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헬름홀츠의 동상이 서 있는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념품매장에서 두 아이들을 위해서 대학 표시가 새겨진 후드티를 사왔는데, 두 아이들이 즐겨 입어서 다행입니다. 훔볼트대학에 들어가면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darauf an, sie zu verandern)”라는 칼 마르크스가 한 말이 새겨있는데, 앞 문장보다는 뒤 문장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1810년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의 칙령에 따라 교육부장관 빌헬름 폰 훔볼트가 세운 대학입니다. 처음 교명은 베를린대학교였는데 1828년 황제의 이름을 따서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설립자의 동생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주도하여 규모를 확대하였습니다.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며 2차 대전 중에는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교원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입어 종전 후에 문을 닫았다가 1946년 소련군정의 주도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1949년에는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이 훔볼트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습니다. 

 

이 대학의 졸업생이나 교수출신 가운데 40명이 노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이 이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와 요한 고틀리브 피히테,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 법학자 헤르만 헬러 등이 교수를 지냈습니다.

 

#훔볼트에 대한 기억 2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서도 훔볼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등 여행에 관한 다섯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행의 품격을 논하였는데, <여행의 기술>의 서술구조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자신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저자가 안내자로 지목한 사람의 여행 이야기가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알렉산더 훔볼트는 호기심이라는 주제를 담은 보통의 마드리드 여행을 안내합니다. 주마간산하듯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라 꼼꼼하게 관찰하고 느끼는 여행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기에 알렉산더 훔볼트가 제일 마땅한 안내자였던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훔볼트의 남미여행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인용하였습니다. “훔볼트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정도 아래서였다. 봉플랑 씨[훔볼트의 동행자]는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볼 수 있었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153쪽, 청미래, 2011년)” 알렉산더 훔볼트는 5년에 걸쳐 남미를 여행하면서 채집한 자료를 토대로 <신대륙의 적도 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30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가 번역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평론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훔볼트를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훔볼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이턴 제독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세상에 나타나서 인간 정신의 가능성, 재능의 힘과 범위를 보여주는 경이로운 인간, 즉 보편적 인간의 한 예이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137쪽, 청미래, 2011년)” 훔볼트만큼 위대한 이름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지명, 동물 및 식물 이름, 기관 등은 헤아릴 수 없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정도가 비교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훔볼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셀 수 없을 정도이며, 미국에서도 훔볼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여덟 곳, 카운티가 아홉 곳이며, 열아홉 종의 동물과 열다섯 종의 식물 역시 훔볼트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페루의 앞바다를 흐르는 훔볼트해류 정도였던 것입니다.

 

마침 알렉산더 훔볼트의 남미여행 과정을 살펴본 책이 나왔기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저명한 일간지 벨트(WELT)의 기자로, 세계의 탐험여행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이에 대한 저서를 여러 권 출판한 바 있는 울리 쿨케가 쓴 <훔볼트의 대륙>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소개한 훔볼트의 남미여행이 단편적이었던 아쉬움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쿨케기자는 훔볼트의 성장배경으로부터 남미탐험 그리고 유럽으로 돌아와 저술활동을 통하여 남미에서 발견한 것들을 알리고 죽음을 맞기까지 훔볼트의 일생을 잘 요약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완벽함을 이야기할 때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고 합니다. 훔볼트야말로 재능과 노력 그리고 배경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함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아버지 알렉산더 게오르크 폰 훔볼트는 프로이센의 대령으로 황태자의 근위관을 지내면서 황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어머니는 부유한 위그노파 가문 출신으로 막대한 유산을 남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배경이라면 굳이 험지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의 형 빌헬름 폰 훔볼트처럼 국내에서 명망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을 터이지만, 알렉산더 훔볼트는 어려서부터 적도여행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임스 쿡 선장의 세계일주여행이 소년 알렉산더를 세계여행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훔볼트는 그저 꿈만 꾸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세계여행에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갔던 것입니다.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광산학을 공부하였고, 화산을 연구하기 위하여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으며, 동물학자, 식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다방면의 지식을 쌓았던 것입니다. 공부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드레스덴, 프라하, 빈, 잘츠부르크, 파리 등에 있는 대학, 천문대, 학자들을 찾아다녔으며, 탐험여행에 필요한 최신 장비들, 고도계, 나침반, 온도계, 기압계, 수중계, 크로노미터 등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알파벳, 화살표, 상징 부호 등을 비롯하여 각종 분류에 사용할 약호 등을 정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를 해갔던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다고 감이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 행운은 예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나폴레온의 프랑스군에 합류하여 북아프리카로 가려던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식물학자 에메 봉플랑을 만나게 되었고, 봉플랑은 훔볼트의 남미탐험의 동반자가 되었으니 훔볼트의 파리행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행운은 역시 훔볼트 편이었습니다. 남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시 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작센공사의 도움으로 알현하게 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4세는 훔볼트에게 여행허가증을 내주었던 것입니다. 

 

훔볼트와 봉플랑은 1799년 5월말 스페인의 북서쪽 갈라시아 지방의 라 코루냐의 항구에서 쿠바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기착지 카나리아제도에서 해발 3,718m의 피코 데 테이데산을 등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5년간에 걸쳐 훔볼트가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 걸쳐 탐험한 거리는 대략 25,000km에서 30,000km에 달하였고, 6,200종의 식물을 수집하였으며, 700여 가지의 천문 관측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훔볼트는 자신이 경험한 것과 측정한 것들을 모두 6만여 쪽의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자연과학자이면서도 인문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훔볼트는 남미에서 만난 인디오들이 선하다고 느꼈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노예를 매매하는 모습을 보고서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노예매매를 중지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남미지배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스페인 사람들과는 우호적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훔볼트는 오리노코강을 측량하기 위하여 내륙지방의 정글로 향했는데, 악어와 전기뱀장어가 득실거리는데다가 격류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디오들을 고용하여 노를 젓거나 폭포를 만나면 배를 매고 육로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다. 자연이 문명화된 해안가와 원시의, 그리고 미지의 내륙 사이에 만들어 놓은 빗장 뒤로 왔음을 느낀다(127쪽)”라고 적었습니다. 훔볼트의 탐사는 그때까지 아마존을 나누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잘 못 알고 있던 것들을 바로 잡는 역할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오리노코강과 네그루 강 사이에 엘도라도, 즉 황금의 땅이 있다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말입니다.

 

훔볼트는 남미를 탐험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작성한 보고서를 유럽으로 보냈고, 그 보고서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훔볼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던 셈인데 보고서가 뜸하면 훔볼트가 탐험여행 중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방식이 탐험여행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누에바 바르셀로나에서 쿠마나로 향하는 도중에 영국의 무장선박에 나포된 것입니다. 이미 신문을 통하여 훔볼트의 탐험기를 읽은 바 있던 영국의 선장이 존경하는 훔볼트를 석방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니치 천문대의 관측자료까지 제공하는 후의를 베풀어 훔볼트의 천문관측에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쿠마나에서 쿠바의 아바나로 향한 훔볼트는 오리노코강 탐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유럽으로 보냈고, 지금의 콜롬비아와 볼리비아를 거쳐 페루의 리마에 이르는 경로의 탐험에 나섰습니다. 그 여정에는 당시까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던 볼리비아의 침보라소산 등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178쪽과 179쪽에 침보라소산의 탐험자료를 정리해놓은 것을 보면 훔볼트의 자료정리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훔볼트와 봉풀랑이 등정한 높이는 5,881미터인데 이 기록은 그때까지 인간이 올라간 가장 높은 곳으로 향후 5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침보라소산의 정상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는데, 고산병의 증세가 시작되었고, 인디오들도 5,100미터에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훔볼트는 이때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암석들이 스스로 양극을 다 가져 자기 바늘에 영향을 주는 이 산에서 암석이 안 보이는 평원이나 혹은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산 위로 도구들을 400m 더 높이 가지고 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180쪽)” 화산학에 관심이 많았던 훔볼트는 만년설로 덮여 있는 정상에 분화구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침보라소산에서 페루의 리마에 이르는 동안 훔볼트는 잉카인이 만들어놓은 유적들을 보고 경외감을 가졌으나, 리마를 차지한 유럽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환멸에 가까운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리마의 항구 카야오에서 과야킬과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향하면서 훔볼트는 차가운 바닷물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이 조류가 남극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해류를 오늘날 훔볼트해류 혹은 페루해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37년 프로이센의 지리학자 하인리히 베르크하우스가 훔볼트해류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정작 훔볼트는 ‘이것은 칠레부터 파이타까지, 뱃사람이라면 어린아이까지 누구나 다 아는 해류(202쪽)’라면서 이의를 제기해서 세인을 놀라게 했던 모양입니다. 

 

요즈음 여행을 하면서 SNS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독자를 만나는 여행가들도 많습니다만, 언론을 통하여 탐사여행과정을 중계했던 훔볼트야말로 미디어여행의 효시라고 할 만합니다.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훔볼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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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작게, 깊숙이 - 나를 매혹시킨, 서른 두 개의 유럽 마을을 걷다
권기왕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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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사진작가이면서 여행작가인 권기왕님의 <느리게, 작게, 깊숙이>를 골랐던 이유는 아마도 제가 다녀왔던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등의 지명이 눈을 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같은 작가가 같은 해 내놓은 <유럽 마을 산책>에서 다루고 있는 장소가 동일하고 사진도 같은 듯 한데, 다만 소제목만을 달리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불과 7개월 정도의 차이밖에 없고, 출판사까지도 같은데 말입니다. 

 

저자는 유럽 16개국의 32곳을 방문하여 느낀 점을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수록된 장소들은 유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럽의 진짜 매력은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도시와 마을들, 그 마을이 품고 있는 풍성한 문화와 이야기에 있다(7쪽)” 그래서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 서른 두 곳만을 꼽았다고 합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곳도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도 네 곳은 가보았기 때문에 저자의 느낌이 동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독특한 점은 사진작가답게 아름다운 사진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점과 이들 장소에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곳에서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를 안내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숙소를 정하지 않은 채 여행을 다녔습니다만, 유럽에서는 아직 그럴 엄두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대범하거나 유럽 여행에 도가 트였기 때문인지 현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는 편인가 봅이다.

 

읽어가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설명이 끝나는 부분에서 무언가 미진한 느낌이 꼭 남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독일의 바하라흐에서 만난 중세 고성에서의 하룻밤에 관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그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와, 눈앞에 끝내주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슈탈레크 성의 아랫부분은 발 아래로 한참이나 내려앉아 있고, 라인강과 마을, 구릉의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 어떤 특급호텔의 비싼 방이라 할지라도 이 작은 방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길을 떠날 여행자인 나는 반더포겔처럼 고성의 탑 꼭대기에 하룻밤 둥지를 튼 것이다.(12쪽)”

 

16개 국가도 산발적이지만 32개의 장소 역시 공통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의 설명을 따라 읽다보면 나름대로 독특한 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장소들을 꼭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의 베로나, 스페인의 론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와 같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들은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다만 책장의 뒷면에 적어 놓은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조금은 공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느리게; 거대한 유럽의 수도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대도시에서는 심호흡 한번 어렵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천천히 걷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잠드는 그런 여행. 조금 작게; 화려한 수도에 비하면 너무나 수수한 마을들, 하루 이틀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이 곳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시간이 나를 따라 흐른다, 그리고 깊숙이; 마티스를 사로잡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방스. 소설 <향수>의 배경이 된 그라스. 파스칼의 산책길이 있는 그의 고향, 클레르몽페랑.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베로나와 시에나. 헤밍웨이가 사랑한 낭만 도시 론다.” 그래도 북적이는 수도조차 보지 못한 상황에서 느린 여행을 사치처럼 느껴지는 것도 해외여행 초짜인 때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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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 - 7박 8일을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 어느 멋진 일주일
이준명 지음 / 봄엔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해에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한 발칸반도를 다녀왔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다녀왔습니다만, 물론 여행사에서 짜놓은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점도 일정 부분 있었지만, 발칸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놓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발칸으로 떠나기 전에 <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를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혹시 발칸여행을 기획하고 계신 분이시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자유여행을 위한 가이드북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내용을 가득 차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부터 플리트 비체, 스플리트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등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관광지 네 곳을 상세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먼저 크로아티아에 대한 역사를 포함하여 개괄적인 설명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 항공권, 숙소, 준비물과 예산, 교통편, 음식, 여행에 필요한 크로아티아어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하게 될 4개 지역에 관한 사항들도 곰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중요한 볼거리, 역사, 지도, 교통 숙소, 식당 그리고 쇼핑 정보에 이르기까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역사에 대하여도 필요한 만큼만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크로아티아를 아내와 함께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어 살아있는 여행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어두워진 다음에 도착한 자그레브의 옐라치치 광장까지 가서 자그레브의 지명이 유래된 만두셰바츠 우물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앞을 몇 차례나 왔다갔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우물이 있는 것을 저도 몰랐고, 가이드 역시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고 꼭 보았어야 할 성 마르크성당의 타일로 만든 지붕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붕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성 마르크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것이나 역시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프리트비체 공원이나 스플리트 그리고 두브로브니크에서는 꼭 보아야 할 것들은 단체관광이라는 제한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보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는 경우와 자유여행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꼭 챙겨야 할 포인트를 중심으로 여행경로가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는 하지만 쇼핑이라든가 선택관광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일정이 빠듯하게 운영되거나 보아야 할 포인트를 건너 뛰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항공, 교통, 숙소, 식당, 카페, 쇼핑 등의 정보는 구성된 내용으로 보아 외국자료에서 인용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에게는 역사, 볼거리 그리고 지도 등은 정말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넉넉하게 들어 있는 사진들도 필요한 사진에는 설명이 붙어 있어 역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 예를 들면 숙소 구하기, 현지 주민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등 역시 자유여행을 즐기는 분들의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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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2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6-01-03 13:49   좋아요 0 | URL
제가 갔던 팀에서는 일정이 잘 조정되지 않아서 놓친 것이 많았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빠트린 것들을 다시 챙겨 볼까 생각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