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 읽기 -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자라는
정종민 지음, 이수경 사진 / 이담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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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관심은 많지만 막상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책읽기도 습관이 되면 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책을 드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곤 합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우리네 속담은 습관이 무섭다는 것과 나쁜 습관이 들지 않도록 하라는 경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만, 좋은 습관은 일찍 몸에 배도록 하라는 뜻도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책읽기를 좋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어른들이 책읽기에 동참하여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돋우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집 책읽기>는 자녀의 책읽기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자녀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자녀를 둔 부모, 특히 자녀의 책읽기에 관심이 많은 부모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의 학교생활과 일상에 맞추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로 구분하여 계절에 맞는 책을 골라 책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각각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하기, 글로 정리하기, 말로 표현하기 등, 책을 읽은 결과를 체화하는 과정은 어떻게 하는가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자도 우려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읽기에 빠져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안한다는 속담처럼 강압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반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생각으로 아이에게 책읽기를 권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인데, 책과 함께 자란 아이는 강인하고 현명하며, 세상의 가벼운 즐거움에 깊이 빠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권한 첫 번째 책은 채인선 작가의 <나는 나의 주인>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오랜 세월을 전해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가까이 해오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의 아이는 ‘친구의 씨앗을 심어서 꽃을 피우다’라는 깜찍한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난 친구와 사귀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독서록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는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를 소개합니다. 책읽기는 좋아하지만 따로 요약하지 않던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독후감을 통하여 어떻게 읽었는지, 참고하면 좋을 구절을 모아 남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있는 ‘책지도 만들기’라는 개념은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것인데 참 좋은 생각 같습니다. 저 역시 최근에는 나름대로 정한 방향에 따라서 책을 읽고는 있습니다만, 성장하는 어린이 같은 경우는 각자의 성향이나 관심사를 고려하여 체계적인 책읽기를 위한 설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가진 특징을 들었으니, 저 나름대로 보완되었으면 하는 점을 적어본다면, 먼저 간혹 눈에 띄는 외국어가 밟히더라는 말씀을 남깁니다. 얼마 전부터 글 쓸 때마다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대체할만한 우리말이 없어 굳어진 외국어도 많습니다만, 그런 경우도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북클럽에서 각자 읽은 책을 발표하는 방식이 효과적일까 싶은 점이 있습니다. 같이 읽고 각자의 느낌을 서로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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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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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남미여행을 떠나면서 가지고 갔던 책입니다. 이 책에 담긴 여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여행가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은 한 마디로 ‘여행에 관한 백화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으로부터 여행의 지혜, 규칙, 동반자, 여행방법, 여행기쓰기, 여행장소의 의미, 심지어는 상상여행까지도 저자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주제가 되는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다양한 소주제로 구분하고, 앞선 여행자들이 남긴 좋은 말들을 모아 나열한데 그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 자신이 다른 책에 쓴 글들도 많이 인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인용에 불과한 것이며, 이번 책에서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별도로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여행이 선사하는 행복하고 건전한 망상 중 하나이다(21쪽)’라는 견해는 ‘망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릴 뿐 공감할 수 있겠는데, ‘여행을 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곳을 그대로 구현한 장소를 발견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화된 고향, 다시 말해 완벽한 기억을 찾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20쪽)’라는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성으로 지나치던 여행에 관한 짧은 구절의 끝에서 발견한 “여행의 가장 큰 보상 중 하나는 가족, 오랜 친구들, 친숙한 장소들, 집의 안락한 편의시설, 자신의 침대 등을 재확인하는 고향으로의 귀한이다.(55쪽)”라는 구절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마다 가졌던 느낌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잘못을 들킨 것처럼 뜨끔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6주 안에 다섯 나라를 보기를 원할까?(91쪽)”라는 구절인데, 최근에 제가 다녀온 대부분의 여행은 2주 동안 3~6개국, 심지어는 3주에 8개국을 날아다닌(?)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셈인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조언도 있습니다. “따분한 여행은 일행을 서로 화나게 하기 쉽다. 그러나 여행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의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두 배로 친절하게 대하고, 모욕적인 말을 점잖게 받아들이며, 응수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을 의무하고 여긴다.(202쪽)” 여러 사람과 같이 여행을 하다보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행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라는 의미로 새겼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여행에 대해 쓰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이 훨씬 쉽다(101쪽)’라고 했다는데, 무엇을 쓰는가 하는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지에 대한 정보들을 모아 정리하고,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짧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여행하는 아내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라는 생각도 들어 있습니다.


작가는 한국에도 다녀갔던 모양입니다. ‘한국에는 개고기 이외에도 특별한 요리들이 가득한데, 닭똥집은 기름을 많이 넣어 튀긴 닭의 모래주머니이다. 그리고 횟집에서 먹을 수 있는 산 낙지는 간단히 준비된다. 우선 살아있는 작은 낙지를 칼로 자른다. 그런 뒤 여전히 꿈틀거리는 다리들을 잘게 자르고, 특별한 소스와 함께 생으로 먹는다(329쪽)’ 저자가 세계 각국의 음식문화에 대하여 별도의 논평 없이 기술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이미 세계인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문화만은 따로 언급을 했는데, 개고기를 먹는 나라들과 개고기를 먹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하여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여행에 대하여 생각해볼 거리가 아주 풍부한 책읽기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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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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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본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난개발로 어미새를 쫓아, 버려진 야생 거위알에서 부화한 거위들을 남쪽의 철새 서식지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담아 감동을 주었습니다. 거위들은 부화한 순간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는 인간 뿐 아니라 고양이도 부화한 갈매기를 날도록 돌볼 수 있다는 깜찍한 발상을 통하여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몰지각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새에게는 천적에 가까운 고양이에게 알을 맡기고, 부화된 어린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이동하던 갈매기에게 바다를 뒤엎은 기름에 빠지는 일은 재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로 바다에 쏟아진 원유를 뒤집어쓴 바다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구환경에 인간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예기치 못한 재앙을 만난 갈매기 캥가가 함부르크까지 어렵게 날아 검은고양이 소르바스를 만난 것은 그나마 천운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부두 고양이 한 마리가 한 약속은 항구 고양이 전체와 관계가 있다(64쪽)’라는 자부심 넘치는 함부르크 부두의 고양이들의 일사불란한 지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가 인간보다 나을 수 있다는 환경애호가인 저자의 생각을 담은 것 같습니다.


함부르크가지 비행하느라 남은 에너지를 쏟은 갈매기 켕가는 검은고양이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약속을 받아냅니다. 첫 번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낳은 알을 먹지 않겠다는 것, 두 번째는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보호해줄 것, 마지막으로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르바스는 켕가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소르바스의 노력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인간과의 대화에 나서기까지 합니다. 고양이들의 금기사항이지요.


알에서 태어난 갈매기-뒤에 행운아라는 의미의 아포로뚜나다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처음 만난 소르바스를 엄마로 인식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갈매기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믿기까지 합니다. 잠시 침팬지의 이간질 때문에 소르바스를 비롯한 함부르크의 고양이들이 자신을 돌보는 이유가 키워서 잡아먹으려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만, 아포르뚜나다는 자신이 결국은 갈매기이고 날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날아보지 못한 고양이들이 갈매기를 날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통하여 비행이론은 제대로 이해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일정부분 거리가 있다는 점을 시사힙니다. 하지만 새들은 본능적으로 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동족인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본 아포르뚜나다는 소르바스가 보는 앞에서 멋지게 날아오릅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소르바스의 눈가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 방울들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고 적은 작가는 소르바스에게 ‘고결하고 숭고한 마음씨를 지닌 고양이’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붙여줍니다. 사람보다 나은 고양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의 탄압을 피해 해외를 떠돌면서 망명생활을 하던 세풀베다는 연극활동을 하면서 언론인으로 명성을 떨쳤고, 유네스코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린피스의 일원으로 환경보호와 소수민족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이를 작품에 반영해오고 있습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은 유전이 있는 북해를 배경으로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 갈매기를 통하여 해양오염실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고양이 소르바스를 통하여 지구환경보호를 위하여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같이 읽고 배울 점이 있는 동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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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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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 나는 노래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발표된 노래를 개작하거나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책읽기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전을 읽다보면 생경한 단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걸림돌이 되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현대적 어휘로 번역해서 책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저자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인용하고 있는 사례를 현대적 사례로 바꾸고 원저자의 생각을 최대한 유추하여 해석한 저자의 생각을 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저자의 생각을 직접 물어볼 수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재해석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에 따라 원저자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포털에서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국부론>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고, <도덕감정론>은 제목만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대단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1776년에 발표되어 국부론이라고 생략해서 부르는 그의 저서 <국부(國富)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최초의 경제학 저서로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모든 경제의 주체가 각자의 이해에 따라 경제체제를 이끄는 힘을 표현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경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다음 백과사전, 스미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0245a)


경제학 저서로 알려지고 있는 <국부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였던 것으로 오해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1737년 글래스고대학을 졸업한 그는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1751년 글래스고대학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부론>은 경제철학에 관한 책인 것입니다. 오늘의 화제가 되는 <도덕감정론,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1757년에 발표한 저서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다루었습니다. 러셀 로버츠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덕감정론>은 여섯 차례에 걸쳐 개정판이 나왔고, 애덤 스미스가 사망한 다음 1790년에 마지막 개정판이 나왔는데, 마지막 개정판에서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덕감정론>이 다룬 ‘행복’이란 명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숙성되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러셀 로버츠는 짐작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 러셀 로버츠는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이콘토크>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경제학 지식을 쉽게 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로서는 <국부론>은 처음부터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는데, <도덕감정론>의 경우는 처음 읽기 시작해서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3분의 1에 이르렀을 때서야 비로소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문장과 표현 또한 18세기 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다소 건조하다.(23쪽)”라는 점이 걸림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고전이 가진 매력과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그 한계 때문에 로버츠는 번역이 아닌 재해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번역본이 7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대작인 <도덕감정론>을 읽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원본을 전부 읽을 엄두를 못 내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통찰력이 빛나는 훌륭한 원본 문장들을 이 책에서 소개(24쪽)”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북소리]에서는 이미 근대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앙투앙 콩파뇽교수가 <몽테뉴 수상록>을 재해석한 <인생의 맛; http://blog.joins.com/yang412/13695862>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경> 등과 같은 동양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고전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전은 재해석 작업이 그리 활발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방민호작가가 <심청전>을 재해석한 <연인 심청; http://blog.joins.com/yang412/13607900>을 냈을 때 많이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심청전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의 경우는 재해석한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새로운 시각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고전의 경우는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맛>을 읽고 나서 <몽테뉴 수상록>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아직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고 나서 <도덕감정론> 역시 읽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도덕감정론>을 읽다보면 “인생의 의미와 도덕,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18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8세기 독자들의 절찬을 받은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이 25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모두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장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에서는 작가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고, 재해석하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제2장에서부터 제9장까지는 <도덕감정론>에서 저자가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뽑아서 애덤 스미스가 인용한 상황을 현대적 상황으로 바꾸고,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10장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에서는 저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애덤 스미스를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어 궁금한 점을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저자의 궁금증은 “(국부론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위대한 여정에 큰 도움을 준 당신이 어떻게 <도덕감정론>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습니까?(282쪽)”하는 것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남들이 모르게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것 자체가 목적인 물질적인 야심을 매우 경멸했다고 합니다. <국부론>에서는 이타주의나 친절, 동정심, 평정심, 사랑스러움을 다룬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질적 야심이 타인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도덕감정론>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지주들이 주민들에게 땅을 똑 같이 나눠준 것처럼, 생필품도 똑같이 분배한다. 이런 식으로 지주들은 무의식 중에, 부지불식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가 살아갈 수단을 제공해준다.(283쪽)”라는 구절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물론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을 편하게(平天下)하려면 스스로의 몸을 닦아야(修身) 하는 법입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의 깜냥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는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통하여 스스로를 알아볼 것을 권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이와 반대되는 선한 본성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처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37쪽)”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은‘공정한 관찰자’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이다.(46쪽)”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정한 관찰자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려할 때마다 강하게 견제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는 물론 개개인마다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알아보았으면, 다음 순서로는 행복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욕망에 압도당하게 되면 공정한 관찰자의 외침을 외면하는 대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자아도취이자 자기기만입니다.


다음 단계인 제5장에서는 잘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재미있는 고사를 인용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손에 딱 잡히는 결론은 없습니다만 답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 내용입니다. 이어서 제6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면 된다.(167쪽)’라는 어느 정도 손에 잡히는 방법이 제시됩니다. 사랑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두 번째 방법, 즉 지혜와 미덕의 길을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더 훌륭한 방법으로 미덕을 갖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미덕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하여 신중하고 정의롭고 선행을 베푸는 삶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신중함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정의로움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선행은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설명한데 이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장점으로 신뢰를 꼽았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러셀 로버츠는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없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신뢰 역시 무수히 많고 자잘한 사람 관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251쪽)”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할 때 이는 스스로에게 되먹임이 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선순환의 고리를 강화하면서 그 사회는 신뢰가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체제의 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는 몽상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권력을 쥔 사람들 가운데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은 흔히 구성원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별 인간들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약하기 때문에 작기 때문에 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고, 이런 삶들이 모여 더 훌륭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큰 꿈을 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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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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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방에 앉아서 이국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미 다녀온 곳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혹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무엇이 있나 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안정희의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는 좋은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모두 31개국의 75개의 도시에서 느낀 80가지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의 발자국이 찍힌 도시도 22개 정도가 되는 것 같아서 저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 기대도 해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것이 시기라든가 동행이 누군가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여행기도 구어체로 쓰인 것이 쉽게 읽힌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여행기 뿐 아니라 일반 서적들 역시 구어체로 쓰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구어체로 된 글은 쉽게 읽히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주르륵 읽어 내리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아홉 번째에 이야기에 가서 저도 다녀왔던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본 것과 다르게 적고 있는 것은 당연히 눈총을 받기 마련이고 빠트린 것도 지청구를 받기 마련입니다. 블레드 호수의 섬안에 있는 성모마리아의 교회에 달려있는 소원을 비는 종은 저도 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에 얽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 슬픈 이야기 끝에 저자와 동행하신 분이 나눈 이야기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복잡한 교회당 안이었지만 종을 울리면서 비는 소원이 글쎄 배고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니 말입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톱카프 궁전을 비롯하여 며칠을 돌아도 제대로 느껴볼 수 없는 곳을 불과 두어 장으로 압축해놓은 글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더니,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의 서두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매일 특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기차도 버스도 배도 타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매일 새로운 곳을 여행했어요. 주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떠났지만, 때로는 산을 오르고 사막을 걷고 바다 속을 헤엄치기도 했습니다.(312쪽)” 그렇군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뒤져보면서 여행지의 추억을 되살려보신 모양입니다.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하여 기록합니다. 분명치 않은 것들은 메모로 남겨 뒷날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보고 들어서 느낀 점은 문장으로 완성해둡니다. 뒷날 긴글을 쓸 때는 여행지에서의 느낌이 쉽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의미가 모호한 것도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꾸 되새겨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꼭지로 쓴 ‘에메랄드빛 노스탤지어’라는 글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이별하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어쩌면 세상에서 이별하기 좋은 곳은 없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 정든 장소, 살뜰한 물건과 헤어지는 게 좋을 리 없을 테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면 행복했던 일은 가슴에 담고 힘들었던 일은 멀리 떠나보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멕시코에서 보냈다. 멕시코를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칸쿤으로 갔다. (…)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에 누웠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내 몸이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렇게 누워 마음은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높고 거센 파도가 몰려와 나를 물 밖으로 밀어낼 때까지. 우린 그렇게 이별했다. 느리고 고요하게.(308-309쪽)” 누구와 이별했다는건지, 같이 여행을 다니던 준이라는 사람과 이별했다는건지, 멕시코와 이별했다는 것인지 모호합니다. 뿐만 아니라 칸쿤의 파도는 잔잔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물 밖으로 밀어낼 정도까지 거세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다양한 색조로 변화무쌍한 바다가 일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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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08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곳을 갔어도 다르게 기억될 소지가 있지요.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도 다를 수 있구요. 언젠가 처음처럼님의 여행이야기가 세상에 한묶음으로 나올 것 같아요.

처음처럼 2016-03-07 21:17   좋아요 1 | URL
여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낼 수 없어 원고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금년 안에는 하나가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