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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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방에 앉아서 이국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미 다녀온 곳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혹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무엇이 있나 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안정희의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는 좋은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모두 31개국의 75개의 도시에서 느낀 80가지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의 발자국이 찍힌 도시도 22개 정도가 되는 것 같아서 저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 기대도 해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것이 시기라든가 동행이 누군가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여행기도 구어체로 쓰인 것이 쉽게 읽힌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여행기 뿐 아니라 일반 서적들 역시 구어체로 쓰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구어체로 된 글은 쉽게 읽히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주르륵 읽어 내리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아홉 번째에 이야기에 가서 저도 다녀왔던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본 것과 다르게 적고 있는 것은 당연히 눈총을 받기 마련이고 빠트린 것도 지청구를 받기 마련입니다. 블레드 호수의 섬안에 있는 성모마리아의 교회에 달려있는 소원을 비는 종은 저도 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에 얽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 슬픈 이야기 끝에 저자와 동행하신 분이 나눈 이야기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복잡한 교회당 안이었지만 종을 울리면서 비는 소원이 글쎄 배고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니 말입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톱카프 궁전을 비롯하여 며칠을 돌아도 제대로 느껴볼 수 없는 곳을 불과 두어 장으로 압축해놓은 글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더니,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의 서두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매일 특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기차도 버스도 배도 타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매일 새로운 곳을 여행했어요. 주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떠났지만, 때로는 산을 오르고 사막을 걷고 바다 속을 헤엄치기도 했습니다.(312쪽)” 그렇군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뒤져보면서 여행지의 추억을 되살려보신 모양입니다.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하여 기록합니다. 분명치 않은 것들은 메모로 남겨 뒷날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보고 들어서 느낀 점은 문장으로 완성해둡니다. 뒷날 긴글을 쓸 때는 여행지에서의 느낌이 쉽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의미가 모호한 것도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꾸 되새겨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꼭지로 쓴 ‘에메랄드빛 노스탤지어’라는 글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이별하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어쩌면 세상에서 이별하기 좋은 곳은 없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 정든 장소, 살뜰한 물건과 헤어지는 게 좋을 리 없을 테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면 행복했던 일은 가슴에 담고 힘들었던 일은 멀리 떠나보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멕시코에서 보냈다. 멕시코를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칸쿤으로 갔다. (…)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에 누웠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내 몸이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렇게 누워 마음은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높고 거센 파도가 몰려와 나를 물 밖으로 밀어낼 때까지. 우린 그렇게 이별했다. 느리고 고요하게.(308-309쪽)” 누구와 이별했다는건지, 같이 여행을 다니던 준이라는 사람과 이별했다는건지, 멕시코와 이별했다는 것인지 모호합니다. 뿐만 아니라 칸쿤의 파도는 잔잔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물 밖으로 밀어낼 정도까지 거세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다양한 색조로 변화무쌍한 바다가 일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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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08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곳을 갔어도 다르게 기억될 소지가 있지요.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도 다를 수 있구요. 언젠가 처음처럼님의 여행이야기가 세상에 한묶음으로 나올 것 같아요.

처음처럼 2016-03-07 21:17   좋아요 1 | URL
여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낼 수 없어 원고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금년 안에는 하나가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