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 지음, 김현균 옮김 / 다락방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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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북소리]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http://blog.joins.com/yang412/12878043>을 소개해드린 것을 기억하십니까?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단편 때문에 읽게 되었던 것인데, 이 책에 실린 열여덟 개의 단편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다양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하여 이야기 전개의 기술적 요소로 사용하고 있는 ‘미로’라는 개념을 공간적인 이미지에서 시간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픽션들> 읽기는 <알레프; http://blog.joins.com/yang412/12879477> 읽기로 이어졌는데, 그 무렵 참석했던 민음 아카데미의 ‘보르헤스 강좌’에서 다룬 두 번째 교재였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에 흠뻑 빠졌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한 공부를 더 깊이 하지 않았던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픽션들>이나 <알레프>에 시린 단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의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는 그때 읽었어야 할 책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시려면 <픽션들>과 <알렉스>를 먼저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신 다음에는 <픽션들>과 <알렉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는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데도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만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이며 작가 소개도 소략하다 싶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현균교수님은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야 말로 ‘평생 문학에 헌신한 보르헤스의 삶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정의합니다. ‘보르헤스는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탈개성화하고 복수화하고 종국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춘다. 그러나 이 책은 복잡한 추상과 심오한 형이상학 속에 투영된 보르헤스의 맨 얼굴을 들추어 보여준다(253쪽)’라고 설명합니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떼어낼 수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독서편력은 기호학, 해체주의, 환상적 사실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문학사는 물론 지성사의 핵심을 섭렵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와 같은 풍부한 책읽기가 그의 작품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약관 무렵 시작한 글쓰기는 시, 평론, 수필, 단편소설 등 광범위하였는데 다만 장편소설은 없다고 합니다. 나무위키는 그를 가리켜 ‘20세기 세계 문학의 지배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격인 인물이며, 특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보르헤스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제네바에 묻힐 때까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삶을 18개의 단락으로 구분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저자는 특히 보르헤스의 작품으로 그의 삶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문학이 된 삶이자 삶이 된 문학’을 논하고 있는 셈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을 한 편의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보르헤스를 마치 가공의 인물인 것처럼 느끼며 읽어도 좋을 수 있겠다고 옮긴이는 말합니다. 한편 저자는 보르헤스의 전기를 구성하면서 기억할만한 구절을 <모래의 책>에 있는 「울리카」에서 가져왔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사실에 충실할 것이다. 적어도 사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기억에 충실할 것이다. 사실이나 사실에 대한 나의 기억이나 매 한 가지다(12쪽)”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를 이루는 18개의 주제 가운데 첫 번째와 마지막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가름할 수 있기 때문에 보르헤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16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셈입니다.


18개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게 읽히지만,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해봅니다. 먼저 시간과 영원성에 관한 일련의 에세이를 담은 <영원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보르헤스를 읽는 것은 삶 그리고 문학과의 화해의 몸짓이다. 보르헤스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진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발가벗기고 상상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60쪽)”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보르헤스를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픽션들>에서 읽을 수 있는 「바벨의 도서관」이야말로 문학에 관한 최상의 메타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보르헤스는 미겔 카네 도서관에서 보조사서로 일하던 1941년에 이 단편을 썼다고 합니다. 바벨탑은 노아의 후예들이 하늘에 오르기 위하여 쌓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 무너진 탑입니다. 애시 당초 불가능한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책의 불멸을 의미하는 도서관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은 그런 도서관이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5088>에서 보르헤스와 그의 도서관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랄프 이자우는 <비밀의 도서관; http://blog.joins.com/yang412/13473271>에서 「바벨의 도서관」의 개념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처럼 불에 타서 세상에서 사라진 책은 물론 저자가 기획하는 단계에 있는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까지도 소장되어 있는 환상의 도서관을 구상해낸 것입니다.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 수준까지는 몰라도 보르헤스가 그렸던 「바벨의 도서관」은 전자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조만간 구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올 초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페론과 에비타에 대하여 여전히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산업화와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정책을 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르헤스는 페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포퓰리즘적 정책의 이면에 숨긴 페론의 독재정치에 반발하였기 때문입니다. 1954년 페론은 초심을 버리고 대중적 반발을 불러온 파시즘적 협동조합주의를 내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혼법 개정으로 사제단과 갈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정부패, 반복되는 쿠데타기도, 심각해진 경제 상황,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테러행위 등으로 페론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페론의 퇴장과 함께 보르헤스는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되어 그의 천직이라고 할 도서관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으로 돌아와 80만권이나 되는 책들을 탐사할 수 있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무렵의 심정을 담은 시가 시집 <창조자>에 실리게 되는 「축복의 시」입니다. 옮긴이는 “어느 누구도 탄식이나 비난쯤으로 폄하하지 않기를, / 기막힌 아이러니로 내게 /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 신의 오묘함에 대한 나의 소회를.(109쪽)”이라는 첫 번째 연에서 이 책의 제목을 따왔다고 했습니다. 실명도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를 대신해 글을 써줄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레오노르 아세베도 데 보르헤스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보르헤스의 삶에서 가장 능률적이고 가장 성실한 후원자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그녀로 인하여 보르헤스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하여 책을 읽는 사이 그의 마음속에서는 생겨난 빛이 아름다운 시어들을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픽션들>에 수록된 단편들과는 달리 <알레프>에 실린 단편들은 별도의 장으로 구분하여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이해가 미진했던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항상 가장 좋은 작품으로 단편집을 시작하고 끝내기를 좋아했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레프>의 경우는 「죽지 않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표제작 「알레프」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의 주인공, 즉 나는 로마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에 군단 사령관을 지냈는데, 갠지스강 너머에서 온 기병으로부터 서쪽 끝에 가면 인간을 죽음에서 깨끗하게 하는 비밀의 강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습니다. 나는 그 강변에 있다는 원형극장과 사원이 즐비한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찾아 나섰습니다. 결국 그 강을 찾아 물을 마신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세상을 떠돌며 살다가 20세기 초 에리트레아 해안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 샘물을 마시고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는 존재와 죽는 존재로 거듭 살아본 주인공은 두 가지 형태의 삶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데 반하여, ‘죽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각의 행동은 무한히 반복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처럼 말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지겨워서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가면서도 저자는 호메로스를 등장시키고 자신을 호메로스와 동일시하는 느낌을 주면서도 자신은 보르헤스일 뿐으로 율리시스처럼 죽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젊은 시절 썼던 시로 인하여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지만,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 등과 불화를 빚을 정도의 반공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입장은 당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좌파에 철저하게 경도된 많은 젊은 작가 혹은 기성작가들과 달리 정치적 대세에 맞서는 것으로 인신공격과 심지어는 죽이겠다는 협박까지도 받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 썼던 에세이 때문에 매카시 열풍이 일었을 때 미국비자를 받지 못한 적도 있지만, 훗날에는 비교적 친미적 성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훈장과 문학상을 수도 없이 받았고, 많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보르헤스였지만, 노벨문학상만큼은 끝내 그를 외면했습니다. 스웨덴 학술원은 노벨상을 수여하고 50년이 경과되면 선정 과정에서 논의된 기록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수상이 점쳐지던 1970년대 후반부터 그가 죽은 1986년까지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사연을 알게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보르헤스가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던 것이 약점이라고도 하지만, 시인이 수상한 경우도 많다는 점을 보면 딱히 약점이랄 것도 없을 듯합니다. 1976년 칠레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기 위하여 산티아고를 방문하였을 때 독재자 피노체트와 포옹한 것으로 노벨상 수상이 물 건너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어느 작가들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어느 시인이 낭송하는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자신의 느낌을 공표한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훗날 그 시인이 스웨덴 학술원의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문학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호불호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헤밍웨이와 보르헤스 사이에 있었던 사연도 소개합니다. 굳이 그럴 까닭까지는 없었을 터인데, 보르헤스를 혐오했다는 헤밍웨이는 1950년에 다음과 같은 엽서를 보르헤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호르헤스여, 다이키리의 대성당인 이곳 엘 플로리다에서 쿠바 친구 리노 칼보가 나에게 <알레프>를 건네주었네. 분명 지랄같이 좋은 책일세. 여기서는 자네가 스페인어권 최고의 작가라고들 한다네. 그러나 엿 먹으시라. 그대는 평생 운동장 밖으로 공을 차내지 못할 걸세, (…) 엘토레 블랑코 만세. 마음으로부터 아빠가(150-151쪽)” 보르헤스도 그냥 있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자살했을 때 묘비명 형식으로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다소 허세를 부리던 헤밍웨이는 자신이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마침내 자살했다. 어느 정도 자업자득인 셈이다.” 장군에 멍군을 부른 셈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보르헤스의 문학은 포괄적 개념과 영원을 위해 글을 쓰겠다는 바람에서 배태되었기 때문에 그 높이는 엄밀성을 초월한다.’라고 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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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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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덕에 다시 만나는 기욤 뮈소의 작품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뮈소의 작품 <센트럴 파크; http://blog.joins.com/yang412/13681844>도 큰 아이 덕에 읽었습니다. 저도 그 나이쯤에는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를 꾸준하게 읽는다는 것은 좋은 일 같습니다.


<구해줘>는 <센트럴 파크>와 마찬가지로 무대가 뉴욕입니다. <센트럴 파크>에서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고 하면 <구해줘>는 죽음이 화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예시하고 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명처럼 죽음을 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이 그 운명을 피할 수도 있는 것일까요? 그 또한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그 판단을 독자에게 맡겨둔 것 같습니다. 사실 죽은 사람이 죽음의 사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점은 있지만, 그래도 죽음에 대하여 생각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도시이지만, 그 꿈을 무참하게 부수는 냉혹한 도시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통해서 잘나가는 여배우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안고 파리에서 온 줄리에트 보몽에게 뉴욕은 결코 곁을 내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더 이상 노력할 힘이 소진된 줄리에트가 뉴욕생활을 접기로 한 마지막 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갑자기 자살한 뒤로 생긴 허탈감을 일에 빠지는 것으로 메우고 있던 젊은 의사 샘 갤러웨이와 줄리에트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원나이트 스탠드가 아닌 운명이었던 모양입니다. 서로 상대에게 숨긴 진실이 꼬투리가 되어 운명을 바꾸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탔던 줄리에트는 샘에게 진실을 고백하기 위하여 비행기를 내리고, 그 비행기는 파리로 가던 중에 폭발하는 사고로 탑승객이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줄리에트는 폭발사고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고, 샘은 여형사 그레이스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공항으로 쫓아갑니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10년 전에 총격을 받고 사망한 존재, 즉 죽음의 사자라는 것입니다. 비행기사고로 죽었어야 할 줄리에트를 다시 죽음의 세계로 데리러 온 것입니다. 그레이스가 죽음의 사자로 온 것이 이야기를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죽음에 샘이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샘과 줄리에트처럼 사랑에 적극적인 관계와 대조되는 사이가 그레이스와 루텔리형사입니다. 파트너로 일하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 관계 말입니다. 두 쌍의 사랑을 읽다보면 사랑 앞에 망설임이란 긴 후회를 낳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샘과 죽은 아내 페데리가 그리고 신부가 된 셰이크의 성장과정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들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절망 속에서 스러져간다는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그러니까 진흙탕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브루클린에서도 꿈을 지키고 키워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레이스가 줄리에트를 데려가기로 했던 이스트리버에서 맨하탄 상공을 지나 루즈벨트섬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사고는 일어났고, 그 안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스는 과연 줄리에트를 데리고 케이블카에 탔을까요? 아니면 운명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힘겹게 싸워온 샘이 사랑하는 줄리에트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그 케이블카에 탈 수 있었을까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레이스의 말에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난 당신에게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까지 미리 정해져 있다고 말한 적도 없고, 삶이 단지 미리 쓰여 있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도 없어요(381쪽)” 결국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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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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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을 참 묘하게 정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제목 <부끼네(bouquiner)>는 동사인데, 동사를 제목으로 정한 것도 일상적이지 않은데 ‘교미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산토끼(lievre)와 책(livre)의 발음이 비슷한데서 착안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단, 심부름 목록, 편지, 잡지 등 온갖 것들을 다 읽을 수 있지만, ‘부끼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책(bouquin) 뿐”이라고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에 대한 소소한 고찰’이라는 카피가 정말 실감이 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과 바람이 난 저자는 30여년을 오로지 편집 일만 해온 베테랑 편집자라고 합니다. 정말 책에 대한 애정이 없었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편집을 맡고 있으니 당연히 출판 예정인 원고는 수도 없이 읽었을 터이나 원고 말고도 그녀가 읽어온 책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녀가 읽는 책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는데 역시 고수답게 똑 떨어진 답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딱 한 곳에 나옵니다. 그것도 괄호에 넣어서 말입니다. “(그래 지긋지긋해. 너의 그 과장과 허풍이.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도 일주일에 스무 권씩 읽는-게다가 하나하나 또렷이 기억하는-아주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어. 조금 많이 읽는 것 가지고 웬 유세?(239쪽)” 일주일에 스무 권씩 읽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일년이면 1,400권입니다. 여기서 그녀가 조금 많이 읽는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겸손한 표현이라고 본다면 도대체 일년에 얼마나 읽는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년에 겨우 300권을 읽어내고서 힘에 부친다고 헉헉댄 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책과 관련된 모든 일을 이야깃거리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화제들이 격하게 공감되는 것들인데, 앞서 독서양에서 이미 질려버린 것처럼 두 손을 든 책읽기는 ‘벌목하듯 책을 읽는다’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책읽기는 전집류 읽어치우기, 혹은 한 작가의 책을 폭식하듯 읽어내기 등이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에 읽어냈던 전집들도 있고, 우연한 인연으로 오르한 파묵, 밀란 쿤데라의 전작 읽기를 마친 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아주 드문 경우였는데, 저자의 경우는 폭식하듯 책읽기가 일상처럼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저자와 책읽는 버릇과 비슷한 점은 웬만하면 책장을 접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젊었을 적에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여백에 적었던 적이 있지만, 요즘은 리뷰를 쓰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책장 끝에 무언가를 적기도 하는 저자와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주변사람들에게 책을 많이 선물하고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서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자제하는 편입니다. 읽고 난 책 가운데 누군가와 공유하면 좋을 책들은 사무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기는 합니다.


빌어간 책을 돌려주지 않는 분을 몇 분 겪고나서는 웬만하면 책을 빌려주지 않는 편입니다. 책이란 것이 조금 지나면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할 때 볼 수 없다면 아쉽기 때문입니다. 글을 많이 쓰고 있는 요즈음 더욱 절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써내려가면서 많은 저자와 그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계 작가, 작품들이 많은데, 제가 읽은 책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처음 들어본 작가도 많아 저의 책읽기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후기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후기도 책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속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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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역사를 만들다 -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 전원경의 예술 3부작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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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의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http://blog.joins.com/yang412/14165443>를 읽으면서 젊었을 때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갈매기의 꿈은> 자유의 참의미를 깨닫기 위한 비행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구도(求道) 과정을 그려 쫓기듯 사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의 주인공 ‘반항아’ 달팽이 역시 오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갈매기 조나단처럼 “달팽이는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라는 관습에 의문을 가지는 특별한 달팽이입니다. 달팽이 마을 떠난 반항아 달팽이는 빠르게 움직였더라면 놓쳤을 인연을 만나고, 덕분에 달팽이 마을에 닥칠 위기를 미리 알게 됩니다.


모두 작가적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동물의 언어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 그들의 세계에 이런 독특한 존재가 정말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이 예나 지금이나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물론 제한적으로 진화된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가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현생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생명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은 사고(思考)의 능력에 있는데, 효율적 사고에 크게 기여한 것은 경험하고 생각하여 축적된 정보들이 후대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口述)로 전하다가, 그림 혹은 기호로 전하다가, 문자를 발명하면서는 정보전달은 혁신적인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인쇄술을 개발하고 이제는 전자신호로 집적하는 방법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후대에 전달되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에서 얻은 경험 혹은 감정을 살고 있는 장소의 주변에 그림으로 혹은 기호로 표현하던 그림이나 특별한 재료를 깍아 눈으로 본 사물을 표현한 조각 등 원시인류의 행위로부터 예술이 발전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술이야말로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을 담은 것이므로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미래지향적인 작품들로 인하여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전원경교수의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독특한 시각으로 예술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제목을 두고 보면 예술이 만들어낸 역사를 논하는 듯합니다. 그런가하면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새겨보면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작품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들어가며’에 적은 이 책의 기획의도는 이렇습니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 작품도 읽고, 이해하고, 감상하고, 감동하는‘ 네 단계를 거쳐 우리의 기억 속에 깊숙하게 각인된다. 이 책은 이 네 단계 중에서 첫 세 단계, 즉 읽고, 이해하고, 감상하는 과정을 설명한다.(9쪽)” 그리하여 예술과 역사 사이의 연관성을, 그리고 그 연결고리에서 탄생한 불멸의 걸작들과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술사를 다루고자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적 배경에 미술과 음악 때로는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버무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63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지만. 해당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제한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세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유럽예술에 영향을 미친 고대 이집트 예술부터 시작해서 그리스와 로마, 초대 기독교, 비잔틴,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바로크, 로코코를 지나 18세기의 유럽에 이를 뿐 아니라 근대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유럽예술의 변방에 이르기까지 담았고, 이어서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예술까지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예술 작품에 깃든 역사성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작품에 담긴 역사성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10쪽)’라고 저자가 적은 것처럼 근대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현대까지도 논의의 대상으로 한 것은 저자의 욕심이 아니었을까하고 나름대로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최근에 읽은 <식인양의 탄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습니다. 근세에 발흥하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 중심의 역사관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비판해보겠다는 의도로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로마를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초심이 잘 지켜지는 듯하더니 근대를 넘어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논점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를 쓴 전원경교수 역시 <식인양의 탄생; http://blog.yes24.com/document/8824808, 임승휘교수처럼, 그리스 예술부터 시작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지만, 종교적 영향 등으로 인하여 유럽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 이후에 유럽 사회에서 주목하게 되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있으나, 고대 이집트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에 더하여 근세에 유럽미술과 음악 가운데 이집트를 주제로 한 작품까지 포함한 것은 저자의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근세의 예술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이집트라는 장소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시대를 넘나들면서 예술작품을 인용하는 기조는 이집트예술에 이어 그리스와 로마, 초대기독교시기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사적 접근이 아니라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배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지는 대목입니다.


기독교에 대하여 제가 잘 알지 못한 탓에 초기 기독교에 관하여 의문이 많은 편입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구약성서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음에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저자 역시 기독교미술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성경의 내용을 ‘고난을 뚫고 온 한 민족의 영웅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언은 유대인들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에서 세계인의 종교로 환골탈태한 셈이니 말입니다.


특히 임승휘교수는 <식인양의 탄생>에서 로마제국 시절 기독교도들이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고 있기도 합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탄압할 이유란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로마황제에 대한 숭배예식을 거부한 기독교도들의 행태가 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일종의 정치적 징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전원경교수 역시 성경에 담겨진 신의 죽음과 부활, 근친 살해, 대홍 수 등의 일화들은 예수 탄생 이전에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역의 고대 설화에도 등장한 것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담긴 일화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 것은 기독교의 교리로 정립되어 신도들에게 고정관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을 뿐 아니라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가들이 만든 미술작품,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 예술은 문자를 깨치지 못한 대중을 위한 ‘종교교육’의 수단이었을 뿐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의미는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세 이슬람세력의 분화과정이 모호하게 정리된 것 같습니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창시된 이슬람을 중심으로 결집된 아랍민족들은 중동지방을 통일하고 영역을 확대하였는데, 무함마드 사후에 우마이야왕조가 들어섰고, 뒤이어 압바스왕조가 이를 전복시켰습니다. 712년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이슬람세력은 압바스 왕조에 무너진 우마이야왕조의 잔존세력입니다. 이들은 도읍이던 다마스커스에서 겨우 도망쳐 톨레도에 도착한 다음 후 우마이야왕조를 세웠던 것입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가 유럽의 예술을 유럽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로부터 시작하였고, 18세기 유럽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오스만제국을 다루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베리아의 이슬람문화도 다루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그리스문화를 유럽사회에 건네주는 역할뿐 아니라 기독교문명과 접촉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축, 예술작품 등을 남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오스만제국이 발칸반도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이 물러난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오스만제국은 압바스왕조에서 끌어들인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로서 우마이야왕조가 씨앗을 뿌리고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이 뒤를 이은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왕국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을 듯합니다.


사실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사조는 공부할 기회가 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사조가 어떤 배경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는지 가늠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의 혼이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 예술이 힘을 잃게 된 배경에는 종교개혁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과 신교의 충돌로 신구교 간의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등 유럽사회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고, 가톨릭은 신도의 이탈을 막기 위하여 검열과 종교재판을 강화하였다고 합니다. 그 영향으로 등장한 사조가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양식입니다. 중세풍의 신비주의가 부활하여 뒤틀린 육체와 환상의 묘사가 필수요소였던 것입니다. 르네상스시대를 꽃피웠던 미켈란젤로 역시 말년 작품에서는 이런 경향을 보였고, 틴토레토, 엘 그레코 등의 작품들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교측에서는 지나친 미술장식이 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르네상스시기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미술 간의 밀월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특히 신교가 강세를 보이던 독일과 프랑드르 화가들은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등의 영역을 개척하였습니다. 당시 부상하던 신흥 상인계층들이 이런 양식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이 바로크예술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어 등장한 절대왕정의 영향으로 로코코예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로코코예술도 같이 발전하였고, 이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시민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중문학이 활성화되고, 귀족들만의 것이었던 음악을 시민계급들이 즐기게 된 것입니다.


예술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야 만들어 낸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뛰어난 예술작품들은 예외 없이 시대의 정신과 감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잘 알아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창조한 예술이라는 설명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예술이 변화시킨 역사 이야기’라는 부분은 조금 모호한 점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기에 미술, 음악, 문학,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일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이나, 그 시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잘 정리해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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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양의 탄생 1881 함께 읽는 교양 3
임승휘 지음 / 함께읽는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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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소르본느대학에서 프랑스 근대사를 전공한 임승휘 교수의 <식인양의 탄생>은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유럽사에 대해 우리가 배워온 전통적인 시각에 따르면 유럽은 그들 역사의 발전과정 전체가 매우 독특하고 우월한 것으로부터 연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진정 유럽적인 것을 분리시키고자 노력한 결과이다.(12쪽)”라고 전제하고, “고대 그리스가 로마를 낳고, 로마가 유럽의 크리스트교 세계를 낳고, 유럽의 크리스트교 세계가 문예부흥을 낳고, 문예부흥이 계몽운동과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자발적인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손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설정이다(13쪽)”라고 합니다. 일종의 승자의 역사를 기록해서 주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식인양의 탄생>을 통하여 모든 서양의 역사를 다루되 그러한 역사들이 현재의 서양과 동양을 다른 길로 가도록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두 34개의 특징적인 주제를 선정하였습니다. 시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주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중세 봉건제도는 한 꼭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리스의 경우는 세꼭지, 로마시대에는 다섯 꼭지를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는 도시국가들이 난립하면서 경쟁하던 곳으로 지리적으로 협소한 탓에 토지 생산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결국 인근지역을 정벌하여 식민지를 개발하여 인구를 방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귀족정이었고, 참주정이 이어지면서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이어서 민주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정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파르타는 독재정을 펼치고 있었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세력을 얻어 영토를 확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마 역시 비슷한 역사를 밟아갔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 시절에 등장한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뒤 유럽의 중심적 사상으로 자리잡았다고 알고 있는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개혁을 도모한 작은 지파로 시작한 셈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 존속한다는 믿음이 없던 당시에 육체의 통제와 순결을 이상시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기독교가 그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예수 사후에 기독교에 대하여 로마제국이 탄압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합니다. 기원후 64년 네로황제 시절 로마에 방화사건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도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탑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황제 숭배예식과 군복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도들이 지하묘지에 숨어서 예배를 보았다는 카타콤 역시 기독교도들의 독특한 매장문화일 뿐 그곳에서 예배를 본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을 받은 다음에는 박해받던 기독교가 박해하는 종교로 환골탈태했다고도 합니다. 이후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원주의적 측면이 배제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379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강제적인 종교 통일령을 내려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자는 대역죄인으로 단죄했던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이단이라는 말은 기실 이해받지 못ㅎ산 채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억울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113쪽)”라고 한 것을 보면, 이단이라는 죄명은 엄격하던 중세에도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 같습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등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유럽중심의 역사를 냉정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근세말부터 현대에 이르면서 지엽적인 주제가 등장하면서 논지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냉전시대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70년대 한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다고 소개합니다만, 냉전의 주인공 미국과 소련은 직접 대놓고 싸우지 않았던 반면, 우리는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루고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비유럽을 지성인과 야만인으로 양분하던 유럽중심의 세계관을 바꾸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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