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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양의 탄생 ㅣ 1881 함께 읽는 교양 3
임승휘 지음 / 함께읽는책 / 2009년 6월
평점 :
파리 소르본느대학에서 프랑스 근대사를 전공한 임승휘 교수의 <식인양의 탄생>은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유럽사에 대해 우리가 배워온 전통적인 시각에 따르면 유럽은 그들 역사의 발전과정 전체가 매우 독특하고 우월한 것으로부터 연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진정 유럽적인 것을 분리시키고자 노력한 결과이다.(12쪽)”라고 전제하고, “고대 그리스가 로마를 낳고, 로마가 유럽의 크리스트교 세계를 낳고, 유럽의 크리스트교 세계가 문예부흥을 낳고, 문예부흥이 계몽운동과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자발적인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손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설정이다(13쪽)”라고 합니다. 일종의 승자의 역사를 기록해서 주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식인양의 탄생>을 통하여 모든 서양의 역사를 다루되 그러한 역사들이 현재의 서양과 동양을 다른 길로 가도록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두 34개의 특징적인 주제를 선정하였습니다. 시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주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중세 봉건제도는 한 꼭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리스의 경우는 세꼭지, 로마시대에는 다섯 꼭지를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는 도시국가들이 난립하면서 경쟁하던 곳으로 지리적으로 협소한 탓에 토지 생산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결국 인근지역을 정벌하여 식민지를 개발하여 인구를 방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귀족정이었고, 참주정이 이어지면서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이어서 민주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정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파르타는 독재정을 펼치고 있었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세력을 얻어 영토를 확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마 역시 비슷한 역사를 밟아갔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 시절에 등장한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뒤 유럽의 중심적 사상으로 자리잡았다고 알고 있는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개혁을 도모한 작은 지파로 시작한 셈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 존속한다는 믿음이 없던 당시에 육체의 통제와 순결을 이상시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기독교가 그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예수 사후에 기독교에 대하여 로마제국이 탄압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합니다. 기원후 64년 네로황제 시절 로마에 방화사건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도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탑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황제 숭배예식과 군복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도들이 지하묘지에 숨어서 예배를 보았다는 카타콤 역시 기독교도들의 독특한 매장문화일 뿐 그곳에서 예배를 본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을 받은 다음에는 박해받던 기독교가 박해하는 종교로 환골탈태했다고도 합니다. 이후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원주의적 측면이 배제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379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강제적인 종교 통일령을 내려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자는 대역죄인으로 단죄했던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이단이라는 말은 기실 이해받지 못ㅎ산 채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억울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113쪽)”라고 한 것을 보면, 이단이라는 죄명은 엄격하던 중세에도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 같습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등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유럽중심의 역사를 냉정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근세말부터 현대에 이르면서 지엽적인 주제가 등장하면서 논지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냉전시대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70년대 한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다고 소개합니다만, 냉전의 주인공 미국과 소련은 직접 대놓고 싸우지 않았던 반면, 우리는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루고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비유럽을 지성인과 야만인으로 양분하던 유럽중심의 세계관을 바꾸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