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털 해골의 비밀 - 마야 문명의 신비
세리 루이스 토머스.크리스 모턴 지음, 유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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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해골의 비밀>이라는 제목보다 ‘마야 문명의 신비’라는 부제가 더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읽게 된 책입니다. 저자들은 마야문명의 실체를 소략하게 소개하고는 있습니다만, 알려진 것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들이 휴가차 찾은 과테말라에 있는 옛도시 티칼에서 가이드를 맡은 카를로스로부터 이 책의 주제가 되는 크리스털해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됩니다. 피라미드의 측면에 새겨진 석조해골을 보면서 카를로스는 고대 마야인들이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죽음아란 완전한 끝이 아니넜어요. 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고 바라는 어떤 것이었죠.(10쪽)” 그리고 이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옛 전설에 따르면 실물 크기의 견고한 크리스털 해골 13개가 존재했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해골처럼 움직이는 턱뼈를 가지고 있어서 말하거나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먼 옛날 인류 최초의 조상들이 남긴 것으로 위대한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었다는 크리스털 해골을 뒤쫓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직업적인 본능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크리스털 해골을 찾아다니면서 유래를 캐는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마야, 아즈텍 등 유카탄반도에 흩어져 있는 고대문명의 유래는 물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면 곧바로 쫓아가 확인하곤 했던가 봅니다. 크리스탈 해골이 과연 고대의 유물인지 아니면 현대에 만들어진 가품인지까지 추적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대륙의 존재는 물론 인류의 조상이 먼 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이론까지 두루 섭렵하는 바람에 이들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점점 엷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의 유적들이 오늘에까지 전해진 이유, 분명치 않은 이유로 무너진 마야문명의 유허가 순식간에 열대우림의 숲에 묻혀 외래인의 발길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아즈텍이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맥없이 무너지게 된 데는 케찰코아틀 신화가 한몫을 했다는 이미 알려진 설명을 인용합니다만, 이는 정복자들이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치첸이사에서 만난 볼 경기장과 촘판틀리에 대한 설명은 참고할 만하였지만, 저자들이 언급한 카라콜은 치첸이사가 아니라 벨리즈의 카요구역에 있는 것을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에 흩어져 있는 유적과 전설의 흔적을 정리하는 한편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하여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 혹은 관련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실여부를 충분히 검증한 흔적보다는 그 주장이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느낌을 풍기면서도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어 그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이 만난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이나 마야인들은 부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눈 지구적인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탈 해골에 담긴 선조들의 영이 남긴 정보를 되살려 지구적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기의 핵심은 지구를 오용하고 남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재해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구 내부로부터 엄청난 균열이 일 것이며 자기장도 이동할 것이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지구는 쪼개져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파편들이 지구 표면과 대기 중에 어지럽게 떠돌아다닐 것이다.(88쪽)” 이런 지구적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까지 지진이 활발해지고 있어서인지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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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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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작가의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서 몇 가지 독특한 느낌이 남습니다. B, D, X, Y, Z으로 약칭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이 교차하는데, 특정 조직에서 활동하는 B, X, Y는 서로 연결이 되지만, 소설을 쓰는 Z는 주로 Y와 관련이 있고, D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느슨한 관계를 맺고, X 는 D와 어느 정도의 접촉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인물은 조직의 스파이로 활동하는 B, X, Y 세 사람입니다. Z는 조직의 관리대상이고, D는 조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46페이지로 나뉜 에피소드 가운데 44페이지는 이들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고, 때로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나 혹은 별도의 주변인물들이 화자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45페이지, ‘패자의 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창작에 몰두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그렸고, 마지막 46페이지는 등장인물 다섯이 등장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단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314쪽)‘라고 적힌 프롤로그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들의 평이 나오고 마지막 47페이지에 적은 작가의 말로서 이 책이 끝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책은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보니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라고 적힌 에필로그를 이야기 앞에 두었습니다.

스파이가 세 사람, 아니 전직 스파이까지 포함하면 십여명 가까이 등장하면서 정작 스파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이 잔뜩 품었던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감시사회와 다름없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감시당하며 정체성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사는' 무기력한 존재다“라는 현기영작가의 평가나 ”스파이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과 구원의 길을 <패자의 서> 즉 소설에서 찾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나는 은희경 작가의 평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야기 속의 사회가 감시되거나 조작된 사회라는 설정이 실감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가 던지는 ‘혁명’이라는 화두 역시 지나치게 막연하기 때문에 얼마나 파급력을 가지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인용한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책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제 경우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흔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은 모두에게 허용되는 구역과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구역으로 나뉜다. (…) 도서관 아이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혹여 들어갔다고 해도 길을 잃고 영원히 나올 수도 있다고(223쪽)”라는 부분에서는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미로의 이미지와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D로부터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D가 X를 상담할 때 등장하는 ‘펠림프세스트’ 역시 보르헤스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남아서 어디쯤 진실이 드러날까 기대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D의 언니가 실종된 사건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시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였던 것 같다는 허무한 느낌도 남습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X는 10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왜 그랬는지도 분명치 않고, 20세부터 15년간의 기억이 제한적으로 사라졌다는 설정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취한 특별한 조처 때문이라면 특정인의 특정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피소드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써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책읽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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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 - 알퐁스 반 월덴의 14일
얀 포토츠키 지음, 임왕준 옮김 / 이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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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모두에 프랑스군 장교였던 저자가 스페인의 사라고사를 점령하였을 때 발견한 스페인어로 쓰인 원고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옮긴이는 1739년 알퐁스 반 월덴이라는 스페인출신 젊은 장교가 왕명을 받들어 부임지 마드리드로 가는 66일간의 여정에서 만난 기이한 인물들과 기이하고도 해괴한 사건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것이고, 처음 14일의 여정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2편을 예고해놓고는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미완성으로 끝난 이야기라서 결론을 알 수 없으니 황당하면서도 미진한 점이 많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귀신이 나오고, 마법이 등장하는 등 황당무계한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알림에 있는 프랑스군대의 사라고사 침공 시기를 1779년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안달루시아지방에 나타났던 것은 1808년 2월로 알고 있습니다. 1807년 11월 대륙봉쇄령에 따르지 않은 포르투갈에 출병하여 12월 리스본을 함락한 나폴레옹군은 점령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추가병력을 보내 바스크지방과 바르셀로나지방에 주둔했던 것입니다.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합니다. 화자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도 있지만, 독립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형식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아주 흡사합니다. 무대가 시에라모레나산맥이라서인지 산적도 등장하고, 이슬람교도, 유대인, 스페인 귀족, 집시, 마법을 수련하는 카발라학자 등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체 이야기의 4분의 1도 안되는 도입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인지 잘 달리던 배가 갑자기 동력이 없어져 무력해진 모습입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행적에 따라 무대가 이탈리아, 알제리 등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오기도 해서 장면전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할 듯합니다.


읽다보면 주인공 알퐁스가 군인이라서인지 심지가 굳어 보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만난 쌍둥이 자매가 귀신이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하지만, 비밀을 지켜달라는 자매의 요구를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주인공 알퐁스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서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담긴 이야기처럼 이 책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작가 얀 포토츠키는 폴란드군의 공병장교로 복무한 적도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 각국은 물론 아프리카, 소아시아를 거쳐 몽골과 중국까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1803년부터 1815년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1805년에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초고상태의 원고를 출간했다가 1813년에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바도르, 스페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알퐁스가 66일 동안 겪은 이야기는 포토츠키는 물론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포토츠기의 원작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포토츠키를 연구한 클라프로트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스페인과 모슬렘, 시칠리아 풍습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에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원고가 되었다. (…) 이것은 돈키호테아 질 블라스에 버금가는 불후의 명작(280쪽)’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샤토브리앙의 <그리스도교의 정수>에 대한 비판이며 이성과 관용의 계몽주의적 찬양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만 보더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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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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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라하를 다녀온 탓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이고, 왜 울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열면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라고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에필로그’ 역시 ‘그 여자는 책에서 밖으로 나갔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엄청나게 크고, 심하게 다리를 절며, 거친 천을 아무렇게나 재단한 옷을 걸치고 다니는 그녀는 누구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라하의 곳곳에서 열두 번에 걸쳐 나타나 울고 다닌 ‘그녀의 나타남의 연대기’를 통하여 그녀의 실체에 접근해갑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의 발자국들로만 이루어진 것인데, ‘그녀의 발걸음 속에 부는 잉크의 바람에 불려 낱말들이 허리를 구부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망각의 경계에 이른 기억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이미지들의 뿌리가 뽑힌(17쪽)’ 결과인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작가는 그녀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걸음걸이가 보기 흉하고 어깨가 엄청나게 떡 벌어진 그 여자는 살과 피가 아니라, 눈물로, 오직 눈물만으로 된 존재였다. 그녀는 한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모든 남자 모든 여자의 고통에서 태어났다.(36쪽)’ 그렇다면 그녀가 존재하게 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백주 대낮에 등에 총알을 맞고 죽은 브루노 슐츠라는 사람이 일생 동안 수백통의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데생과 판화를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썼던 것인데, 갑자기 사라진 수백 통의 편지들이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하여 편지를 쓴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편지들을 읽은 모든 남자 여자들이 침묵과 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래된 목소리들, 부서진 말들의 생명을 되살려놓은 것이 바로 그 여자입니다.


브루노 슐츠는 노란별을 달지 않고 거리고 나갔기 때문에 총알을 맞았던 것이고, 그 여자는 슐츠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빵덩어리, 아니 빵덩어리의 먼지와 피의 맛을 긁어모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슐츠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 슬로바네흐 수도원의 담장 아래 피어나는 꽃을 노래하던 프란타 바스의 시를 살려낸 것도 그녀입니다.


프라하의 돌틈에서 태어난 그녀는 도시의 기억, 특히 어두운 쪽의 기억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억, 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 남자 여자들의 기억이라고 작가는 정리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시를 떠날 수 없었고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열두 번의 등장을 끝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도시가 아니라 가시적인 것을 떠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다시금 나무껍질 속우로, 나무뿌리 속으로, 포도의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번에 프라하를 찾았을 때 유대교의 교회당 시나고그와 그들을 모아 살게 했던 게토지역을 찾아 나섰던 것인데, 자유시간, 아니 천문시계가 울리는 시간에 쫓겨 광장으로 되돌아와야 했기에 중간에서 포기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핀카소바 시나고그에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손에 죽은 7만7297명의 체코계 유대인들의 이름이 벽면 가득 적혀있고, 클라우소바 시나고그에는 나치의 테레진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던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글들, 장난감,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프라하를 다시 찾게 되면 그녀를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실비 제르맹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고 소개되었는데, 옮긴이는 ‘그의 소설에서는 가족과 마을과 나라의 집단적 기억,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점철된 기억이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으로부터 솟아오르곤 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소리를 내어 시를 읽듯 읽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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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도시 이야기 - 상 -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정도영 옮김 / 한길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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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다녀온 발칸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베네치아였습니다. 오래 전에 이탈리아의 스트레사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 때 베네치아가 아닌 밀라노를 선택해서 구경하면서 베네치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을 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동안 베네치아에 대한 공부를 적지 않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 http://blog.joins.com/yang412/13712775>도 있었고,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의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http://blog.joins.com/yang412/13812136>도 있었습니다. 건축 혹은 예술사적 시각으로 베네치아를 들여다본 책들을 읽다보니 베네치아 사회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한 책읽기입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 나나미가 가쿠슈인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의 역사를 천착하기 시작해서, 1968년에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권씩 발표한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대표작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교양서와 소설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또한 평가가 엇갈리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료를 취사선택하였다거나, 사료가 없는 부분은 별다른 언급 없이 창작으로 채웠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면이 강조되는 역사서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려 접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또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역사상 벌어진 일들에 대한 왜곡은 없으며, 지나치게 자세하지도 않고 생략되지도 않은 적절한 상황 묘사가 바로 그녀의 작품만이 가지는 힘이라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녀가 쓴 <주홍빛 베네치아; http://blog.joins.com/yang412/13813357>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도록 유혹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베네치아공화국이 터를 잡을 때부터 공식적으로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요약하였습니다. 베네치아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초대 국가원수(doge)를 선출한 697년부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항복한 1797년까지 무려 1100년을 이었던 최장수 국가입니다. 베네치아공화국과 견줄만한 나라로는 395년 – 1453년까지 1088년을 이은 비잔틴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新羅)가 기원전 57년 ~ 935년까지 992년을 이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책의 주인공은 대체적으로 왕과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사고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적으로 딱딱할 수밖에 없어 금세 읽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상권이 522쪽, 하권 이 579쪽으로 베네치아의 역사에 버금가는 쪽수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가 싫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지금의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베네치아의 탄생으로부터 동방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베니스의 모습 그리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몰락해가는 베네치아의 모습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침략에 굴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열다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상업, 문화예술, 여성문제 이르기까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끌어낼만한 것들입니다.


연대기에 의하면 베네치아 사람들이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침략을 피해서 지금의 장소보다 육지에 가까운 소택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서기 452년입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쯤 뒤에 롬바르드족이 침입하여 파도바로부터 이스트라반도에 이르는 아드리아해 연안을 파괴하자 이들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지금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개펄 위에 나무를 박아 넣어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요즘 간척사업을 하듯이 개펄을 모두 메운 것이 아니라 도시의 방어를 위하여 개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살렸으니 그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했을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 운하 위에 다리를 만들어 도시를 효율적으로 오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50개가 넘는 섬, 180개에 가까운 운하와 410개나 되는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3요소, 국민, 강역, 주권 가운데 두 가지, 국민과 강역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을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를 개척하여 영토를 넓히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10만 내외의 베네치아 사람들로는 얻은 식민지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외부에서 조달하고, 그러한 상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부를 무역을 통하여 얻었던 것입니다.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바다에 떠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바다와 친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고 배를 부리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바다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승천일에 열리는 베네치아의 축제일에 국가원수는 리도항구로 나가 준비한 금반지를 바다에 떨어뜨리면서 “너와 결혼한다. 바다여. 영원히 내 것 이어라”하고 말할 정도로 베네치아에게 바다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지중해를 장악한 비잔틴제국는 동방의 페르시아와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서쪽 바다를 대신해서 지켜줄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피사, 제노바 등이 지중해를 누비는 해양국가였는데, 비잔틴제국이 선택한 것은 베네치아였습니다. 베네치아제국의 자주성은 인정하되 비잔틴제국에 속하는 것으로 하며, 제국의 영내에서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로서 경쟁국가들보다 상업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강력한 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베네치아가 공화정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견제장치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 장수국가로 갈 수 있던 근원이었습니다. 국가원수와 6인의 원수보좌관, 6인 위원회, 10인 위원회, 원로원, 국회 등이 각자 맡은 일을 하게 되는데, 정치에 관한 업무는 귀족계급이 맡아하였습니다. 베네치아의 귀족들은 전문정치인이었고, 이들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수업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나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를 흘려가며 독립과 자유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장수를 담보했던 정치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은 제5장 ‘정치의 기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에 관한 내용은 앞서 말씀드렸던 역사에 대한 작가적 해석의 차이인지 아니면 창작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난공불락이던 이스탄불(이전에 콘스탄티누폴리스이던 시절을 포함해서)은 꼭 두 차례 외부세력에 의하여 함락된 바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공격에 함락되어 라틴제국이 성립된 경우이며, 두 번째는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비잔틴제국이 멸망한 때입니다. 지난 해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을 베네치아가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바다 도시 이야기>를 보면 반드시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로마교황 인노켄티우스3세의 주창으로 프랑스 제후들을 중심으로 결성을 하고 육로로 가는 것은 너무 멀고 위험하기 때문에 해로를 통하여 원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도 당시 여건으로 십자군의 병력과 병참을 수송할 수 있는 나라는 베네치아가 유일했기 때문에 십자군의 지휘부는 베네치아와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4,500명의 기사와 2만 명의 보병, 4,500마리의 말과 종자 마부 등 9천명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선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원수가 지휘하는 전투승무원 6천명이 출전하는 조건으로 8만5천 마르크를 내기로 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계약에 따라 필요한 함선들을 새로 건조하는 등 약속한 기일에 갤리선 50척, 범선 240척, 평저선 120척 등 480척을 준비했지만, 십자군을 이끌기로 한 상파뉴백작이 사망하면서 겨우 1만 내외의 병력만이 참여하였고 약속했던 수송비용도 2만5천 마르크밖에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원정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곤혹스러운 십자군에게 베네치아에서 수정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헝가리왕국의 선동으로 베네치아에 반기를 든 자라(지금의 자다르입니다.)를 공략하는 것을 거들어준다면 계약을 즉시 이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자라공략에 성공하였을 때,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가 십자군을 찾아왔습니다. 십자군 원정비용과 그리스정교를 로마가톨릭교회 아래로 통합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공격하고 황위를 찬탈한 동생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결국 비잔틴제국의 내분이 화를 불러들인 것이지, 베네치아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트누폴리스 침공을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십자군 입장에서도 원정경비문제도 있고 해서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베네치아의 원수 엔리코 단돌로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친베네치아 성향이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십자군 측이나 베네치아,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 심지어는 교황마저도 동서교회의 통합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십자군의 공격은 황제 알렉시우스 3세가 도주하면서 종결되었고, 알렉시우스황자는 황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비잔틴군과 십자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선제의 사위가 새로 즉위한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2차 콘스탄티누폴리스 공성전이 전개되고 함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승리한 십자군은 당시 전쟁의 관례대로 3일에 걸친 약탈을 허락했고, 비잔틴제국 대신 라틴제국이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비잔틴제국 측에서는 베네치아가 예술품들을 약탈해갔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문화적 안목이 없던 프랑스군이나 플랑드르 군의 파괴를 면한 것도 베네치아 사람들의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 한 몫을 했다고 해석합니다.


인구 10만 내외의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였을 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국가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오스만제국과의 협정을 맺는 등 치밀한 외교전을 전개한 과정을 <바다 도시 이야기> 후반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이나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에스파냐왕국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방으로 가는 신항로의 역할이 확립되면서 그동안 장악해온 지중해무역이 위축되는 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본토를 차지해서 농업의 비중을 높이고 수공업을 발전시키는 등 대안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화하는 내부사정은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대응이 과거처럼 명쾌할 수 없었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천년을 넘게 지나오면서 존립의 위기를 넘겨가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던 베네치아도 근세 유럽사회의 격랑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을 포기함에 따라 도시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서 지금도 그 옛날의 베네치아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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