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작가의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서 몇 가지 독특한 느낌이 남습니다. B, D, X, Y, Z으로 약칭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이 교차하는데, 특정 조직에서 활동하는 B, X, Y는 서로 연결이 되지만, 소설을 쓰는 Z는 주로 Y와 관련이 있고, D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느슨한 관계를 맺고, X 는 D와 어느 정도의 접촉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인물은 조직의 스파이로 활동하는 B, X, Y 세 사람입니다. Z는 조직의 관리대상이고, D는 조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46페이지로 나뉜 에피소드 가운데 44페이지는 이들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고, 때로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나 혹은 별도의 주변인물들이 화자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45페이지, ‘패자의 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창작에 몰두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그렸고, 마지막 46페이지는 등장인물 다섯이 등장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단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314쪽)‘라고 적힌 프롤로그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들의 평이 나오고 마지막 47페이지에 적은 작가의 말로서 이 책이 끝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책은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보니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라고 적힌 에필로그를 이야기 앞에 두었습니다.

스파이가 세 사람, 아니 전직 스파이까지 포함하면 십여명 가까이 등장하면서 정작 스파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이 잔뜩 품었던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감시사회와 다름없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감시당하며 정체성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사는' 무기력한 존재다“라는 현기영작가의 평가나 ”스파이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과 구원의 길을 <패자의 서> 즉 소설에서 찾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나는 은희경 작가의 평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야기 속의 사회가 감시되거나 조작된 사회라는 설정이 실감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가 던지는 ‘혁명’이라는 화두 역시 지나치게 막연하기 때문에 얼마나 파급력을 가지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인용한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책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제 경우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흔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은 모두에게 허용되는 구역과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구역으로 나뉜다. (…) 도서관 아이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혹여 들어갔다고 해도 길을 잃고 영원히 나올 수도 있다고(223쪽)”라는 부분에서는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미로의 이미지와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D로부터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D가 X를 상담할 때 등장하는 ‘펠림프세스트’ 역시 보르헤스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남아서 어디쯤 진실이 드러날까 기대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D의 언니가 실종된 사건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시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였던 것 같다는 허무한 느낌도 남습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X는 10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왜 그랬는지도 분명치 않고, 20세부터 15년간의 기억이 제한적으로 사라졌다는 설정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취한 특별한 조처 때문이라면 특정인의 특정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피소드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써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책읽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