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 - 알퐁스 반 월덴의 14일
얀 포토츠키 지음, 임왕준 옮김 / 이숲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모두에 프랑스군 장교였던 저자가 스페인의 사라고사를 점령하였을 때 발견한 스페인어로 쓰인 원고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옮긴이는 1739년 알퐁스 반 월덴이라는 스페인출신 젊은 장교가 왕명을 받들어 부임지 마드리드로 가는 66일간의 여정에서 만난 기이한 인물들과 기이하고도 해괴한 사건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것이고, 처음 14일의 여정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2편을 예고해놓고는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미완성으로 끝난 이야기라서 결론을 알 수 없으니 황당하면서도 미진한 점이 많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귀신이 나오고, 마법이 등장하는 등 황당무계한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알림에 있는 프랑스군대의 사라고사 침공 시기를 1779년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안달루시아지방에 나타났던 것은 1808년 2월로 알고 있습니다. 1807년 11월 대륙봉쇄령에 따르지 않은 포르투갈에 출병하여 12월 리스본을 함락한 나폴레옹군은 점령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추가병력을 보내 바스크지방과 바르셀로나지방에 주둔했던 것입니다.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합니다. 화자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도 있지만, 독립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형식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아주 흡사합니다. 무대가 시에라모레나산맥이라서인지 산적도 등장하고, 이슬람교도, 유대인, 스페인 귀족, 집시, 마법을 수련하는 카발라학자 등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체 이야기의 4분의 1도 안되는 도입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인지 잘 달리던 배가 갑자기 동력이 없어져 무력해진 모습입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행적에 따라 무대가 이탈리아, 알제리 등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오기도 해서 장면전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할 듯합니다.


읽다보면 주인공 알퐁스가 군인이라서인지 심지가 굳어 보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만난 쌍둥이 자매가 귀신이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하지만, 비밀을 지켜달라는 자매의 요구를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주인공 알퐁스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서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담긴 이야기처럼 이 책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작가 얀 포토츠키는 폴란드군의 공병장교로 복무한 적도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 각국은 물론 아프리카, 소아시아를 거쳐 몽골과 중국까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1803년부터 1815년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1805년에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초고상태의 원고를 출간했다가 1813년에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바도르, 스페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알퐁스가 66일 동안 겪은 이야기는 포토츠키는 물론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포토츠기의 원작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포토츠키를 연구한 클라프로트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스페인과 모슬렘, 시칠리아 풍습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에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원고가 되었다. (…) 이것은 돈키호테아 질 블라스에 버금가는 불후의 명작(280쪽)’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샤토브리앙의 <그리스도교의 정수>에 대한 비판이며 이성과 관용의 계몽주의적 찬양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만 보더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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