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에게는 책과 여행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면 의례히 몇 권의 책을 가방에 넣는데, 비행기나 버스 아니면 숙소 등 자투리 시간을 메우는데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을 전후해서 여행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읽기도 있습니다. 여행전의 책읽기는 여행에 도움이 되고, 여행을 다녀온 뒤의 책읽기는 읽은 내용이 금세 이해되는 듯합니다. 이렇듯 여행과 책읽기가 쌓이다보니 여행과 책읽기를 엮은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작가 박준의 <책여행책>은 독특합니다. 여행과 책을 엮기도 하고, 책읽기를 통하여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즉,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통하여 책 속의 시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책여행’과, 작가의 지난 여행 속에서 책 속의 시공간을 만나기도 하는 ‘여행책’의 경험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작가는 ‘세상은 한 권의 책, 여행하지 않은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을 뿐’이라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여 여행의 중요함을 말하면서도 또한 ‘461,918km를 날아 19개의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집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안락의자와 8.894페이지의 책만 있다면’이라고도 말합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여행과 여행책의 구분은 모호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한 여행에서도 작가의 여행경험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웃사이더 예찬>을 통하여 미국의 프로빈스타운을 이해하는 ‘세상 모든 괴짜들의 고향’에서 언젠가 구글에서 프로빈스타운이 실제함을 발견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허구의 공간이 아닌가 했던 의심을 접었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그후 3년이 지나 오늘 마침내 프로빈스타운에 도착했다. (…) 카페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으면....’ 작가가 정말 가보았다는 이야기인지, 소설 속 등장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는지 모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책여행’에서는 16권의 책에 나오는 여행을 뒤쫓고 있습니다. 그 16개의 여행 가운데 저도 가본 곳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야간열차>, <여행의 기술>, 그리고 <길 위에서> 등 4개 밖에 없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의 책여행을 따라가 보려는 생각에 서지사항을 확인해보았지만, 절판되거나 품절이 책들이 대부분인 점도 아쉽습니다. 그리고 보니 읽고 있는 <책여행책>이 나온지도 벌써 6년이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하나 더 책여행에서 다루고 있는 책여행지에는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지기도 합니다. 에스프레소 향을 이야기하는 <파리 카페>에는 파리의 카페 셀렉트가 무대가 되는데, <네 멋대로 해라>를 감독한 고다르의 <감독노트>,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장콕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 콕토의 데생 129선집>,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거론되는 이유는 이들이 셀렉트 카페의 단골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향에 대한 이야기는 파리에서 삿포로로 날아가 <일본의 커피사>가 거론되는 등, 책을 통한 상상의 여행은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여행책’에 나오는 열 세 곳의 여행지에서도 여러 종류의 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독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때문이었다는 후지산을 만나러 간 여행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의 주제와 영화의 주제를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쿠바의 아바나 여행는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과 도쿄의 농림수산부 공무원 요시다 타로가 썼다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버무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그리고 쿠바 사람들의 낙천적인 삶을 그리기도 합니다. 사실 아바나의 분위기는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책여행책>에 등장하는 여행 혹은 여행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읽다가 그 책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쉬워보이는 책일기를 먼저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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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정수윤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공감과 반대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선정이 파격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시와 소설 등으로 국한되어 있던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마침 [북소리]에서 소개하려고 읽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을 수 있어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 문단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독보적 위치는 아쿠타가와상이 제정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35년부터 매년 2회 시상되는 아쿠타가와상은 문예춘추사가 그를 기념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입니다. 그는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라쇼몽(羅生門)」에서 보는 것처럼 전설과 민담 등 옛 이야기에서 가져온 꼬투리를 바탕으로 독특한 단편들을 써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단편집 <라쇼몽(羅生門; http://blog.joins.com/yang412/13131807>에 실려 있는 단편 「덤불속」에서는 같은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사정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는,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모음집입니다. 이 책에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주고받은 문예론에 대한 수필을 중심으로, 창작철학이 담긴 수필 그리고 당대의 문인들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수필 등 70여 편을 담았습니다.


당시 일본 문단에 유행하고 있던 ‘내용이 먼저고 형식은 나중이다’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그는 ‘작품의 내용이란 필연적으로 형식과 하나가 된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과 마음으로 파악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했습니다. 즉, 문체의 아름다움과 정확함을 동시에 추구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문체에는 눈에 호소하는 아름다움과 귀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이 둘 다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눈에 보일 듯한 문장’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스승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커다란 말 발자국 속에 비가 가득 고여 있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 문장으로도 비 내리는 시골길 느낌이 잘 살아있다’라고 평했습니다. 마치 비가 내리는 시골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듯이 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글을 쓰게 된 것은 문학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친구의 부추김 덕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토로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쓰고 싶어서일 뿐, 원고료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듯 천하의 민초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어렸을 적부터 옛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분량의 책읽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에서도 보면 읽은 책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서 글쓰기가 자연스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앞서도 내용과 형식은 모두 잡아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21쪽)’라고 말합니다. 완벽이라는 의미는 빈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분되고 발달된 여러 관념들을 완전히 실현하자’라는 것인데, 그 개념이 분명하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완벽한 작품을 쓴 대표적인 문인으로 괴테를 꼽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적은 다음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게으름을 피워서는 그 한계가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다들 괴테가 될 생각으로 정진할 필요가 있다.(22쪽)”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제가 해주었던 이야기와 맥이 통하는 듯합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 무언가 할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힘을 길러야 한다.”


혹시 소설쓰기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그의 수필 ‘열 가지 소설 작법’을 새겨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소설가는 시인이자 역사가 내지는 전기 작가다’라는 대목을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소설가가 그리는 내용 자체가 어떤 사회에 사는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설가의 사명’이라고 보았습니다. ‘문예는 문장을 빌려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소설가라면 문장 수련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라는 대목은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소설가가 되고자 한다면 철학적, 자연과학적, 경제가학적 사상에 반응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대목은 이해가 쉽지 않지만, 소설가는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지 남의 논증을 빌어다가 써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된 어머니의 발광으로 외삼촌의 양자로 자란 그는 복잡한 가정사정과 함께 모친의 병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 35세 때 ‘그저 막연한 불안‘때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창작에 관한 수필의 마지막 ‘암중 문답’은 그가 남긴 유고입니다. 자신과 또 다른 나의 목소리의 문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는데, 죽음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늘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오만한 생각이 죽음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내비치면서 ‘함부로 자살하는 것은 사회에 지는 것’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와일드가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굳세게 버텨라. 너 자신을 위해. 네 아이들을 위해. 우쭐거리지 마라. 비굴해지지도 마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86쪽)“라고 ‘암중 문답’을 마무리하고 있어 죽음의 유혹을 떨쳐버린 것 같지만, 결국은 이겨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창작론에 이어 문예론을 다룬 수필들을 모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이야기를 갖추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 싶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란 단순히 줄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란 시에 가까운 소설로, 산문시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형식으로 쓰인 시를 말합니다. 새로운 개념의 소설에 대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반대의견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문학에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풍부한 것이 소설’이라거나 ‘줄거리가 주는 재미를 없애는 건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다니자키의 주장에 아쿠타가와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다니자키가 주장하는 것들은 소설보다 오히려 희곡에 더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니자키도 시적 정신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친구여,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라고 권합니다. 예술의 가치는 예술 그 자체에 있다는 예술지상주의자 아쿠타가와는 줄거리보다 시적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쿠타가와와 다니자키는 자주 어울리는 친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치열하게 전개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사심 없이 존쟁을 벌일 수 있는 상대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씨는 그런 흔치 않는 사람이다.(159쪽)”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다니자키와의 쟁론에서 보는 것처럼 아쿠타가와는 비평에 대하여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갔습니다. “비평은 문예의 한 형식이다. 우리가 남을 칭찬하거나 폄하하는 일도 결국은 자기표현이다.”라는 말은 비평이 예술을 살찌우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소설이나 희곡이 서양작품에 한참 못 미칠지도 모르며 비평 또한 분명 부족하다’라고 인식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였던 모리 씨가 메이지시대에 자연주의 문예가 부흥하는 발판을 만든 인물이라는 점을 짚기도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사회는 서구사회, 그리고 중국과 비교하여 열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의 구성력이 서구나 중국보다 떨어진다고 슬퍼한 다니자키씨와 논설에 대하여 아쿠타가와는 일본의 구성력이 서구나 중국보다 떨어지지 않으며 단지 방대한 장편을 써내는 육체적 역량에서 뒤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자키씨의 문장은 스탕달보다 훌륭하다고 격려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인이 모방에 뛰어는 일본인을 경멸한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양인 역시 일본인처럼 모방에 뛰어나지 않는가 반문합니다.


3부 ‘내가 만난 사람들’에서는 아쿠타가와가 교류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하여 적은 수필들을 모았습니다. 이 수필집의 다른 장에서도 자주 이야기된 것처럼 그가 스승으로 모신 소세키에 관한 글이 많아 보입니다.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누구 못지않게 모질고 호된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낀다(130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아쿠타가와는 소세키를 어려워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세키를 스승으로 모셨던 것인데, 소세키가 자신을 제자로 생각했는가에는 의문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소세키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여 접수까지 보았던 그였지만 소세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인에게 절을 하면서도 ‘이것은 선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허둥지둥 고인에게 예를 올리고 물러나면서도 실감하지 못하였다는데, 장례에 참석한 많은 문인들은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고 합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지만, 그 뒤로도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4년뒤 그리고 7년 뒤에 찾은 소세키 산방에서 얻은 느낌을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장례를 치른 뒤에도 아쿠타가와를 비롯한 문인들이 소세키가 거처하던 산방을 가끔 찾아 그를 기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책상 뒤에 두 장이 포개진 방석 위에는, 어딘가 사자를 떠올리게 하는 키 작은 반백의 노인이 때로는 편지를 휘갈겨 쓰며, 때로는 당나라 시집을 뒤적이며, 홀로 단정히 앉아 있었다. …… 소세키 산방의 가을밤은 이와 같이 소슬한 느낌이었다.(213쪽)” 7년 뒤 다시 찾은 산방에서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소세키 선생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회상하기도 하고, 선생과 앞날을 상담하던 순간, 선생이 작고한 뒤에 부인과 함께 선생을 회고하던 순간도 적었습니다. 겨울이면 천장과 마루에 뚫린 구멍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힘들었을 터이나, “교토 근방 풍류인들 집에 비하면 훌륭하지. 천장은 구멍이 뻥뻥 뚫렸어도 아무튼 내 서재는 웅대하니까 말이야(221쪽)”라고 당당한 모습이었다는 등...


말미에 붙인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해설을 통하여 아쿠타가와의 삶과 작품세계를 보다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쿠타가와의 초기 작품들은 <금석이야기집>에서 가지고 온 옛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기 보다는 이야기에 감춰진 인간들의 다양한 심리를 해부해냈을 뿐 아니라 이를 생동감이 넘치는 문체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럿 썼는데, 대부분은 초기 일본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대에 있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자살을 결심한 그가 예수에 대한 사랑을 담은 단편 「서방의 사람」을 남긴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예수 안에 자신을 깊이 새겨 넣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쿠타가와는 한 송이 백합이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낀 예수를 사랑했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늘 주변에 있는 결혼하는 신부, 포도원, 당나귀 등을 이용하던 저널리스트 예수를 사랑했다(315쪽)”는 것인데, 그럼에도 기독교가 금하는 자살을 택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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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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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시카고를 무대로 한 갱스터 소설이라고 듣고 읽게 되었는데, 시카고가 아니라 보스턴과 탬파베이를 무대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보스턴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1926-1929년까지, 탬파의 이보르를 무대로 한 이야기는 1929-1933년,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단계는 1933-1935년입니다. 그러니까 1929년 대공황을 전후한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며, 미국 의회가 비준한 수정헌법 제18조에 따른 금주법이 적용되던 1919-1933년의 후반부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금하면 욕구가 더 동하기 마련입니다. 은밀하게 제조된 술이 법망의 틈새를 타고 유통되고, 특히 폭력조직들은 술의 제조유통망을 장악하여 치부를 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보스턴 경찰의 고위간부이며 미래의 치안책임자로 입지를 굳혀가던 아버지를 둔 주인공 조는 껄렁한 친구들과 어울려 자잘한 범죄나 저지르는 송사리 어깨였는데, 어느 날 마피아조직의 도박장을 털면서 지역보스의 애인과 눈이 맞았던 것이 첫 번째 운명의 갈림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는 법, 조는 애인과 멀리 도망가기 위한 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은행을 털고, 그 과정에서 출동한 경찰과 총격이 오가면서 경찰이 사망하는 바람에 일이 꼬여 결국은 감옥에 가게 됩니다.


감옥 역시 범죄조직이 장악하고 있어 잠깐 한눈을 팔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는데, 마피아조직과 충돌한 조는 당연히 조직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인 아버지도 아들의 범죄를 빼줄 수도 없고, 감옥 안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피아의 지역보스 마소 페소카토레가 거래를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조의 아버지가 희생되기도 합니다. 결국 조는 마소와 손을 잡고 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투신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체질적으로 낮의 규칙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쿠바로부터 들어오는 밀주를 동부지역에 공급하는 역할을 떠맡게 됩니다.


템파에 도착한 조는 반대파의 음모를 격파하고 세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경찰서장 피기스와 담판을 지어 상호불가침 영역을 정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쿠바로부터 들여오는 밀주의 공급책과도 협상을 통하여 신뢰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는 밀주유통사업을 빠르게 키워나가게 되지만, 그의 사업영역이 커가면서 마소의 견제가 들어오고, 최후의 일전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조가 성공시대를 열 수 있었던 데는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수하들이 납득할만한 원칙에 따라 조직을 관리한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과의 약속을 중시하여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은 것도 일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쿠바에서 온 그라시엘라와 사랑을 맺고 결국은 밤의 세계에서 낮의 규칙에 따는 생활로 전환하기에 이릅니다. 그라시엘라는 버림받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합니다.


참, 보스턴에서 죽은 줄 알았던 첫사랑 엠마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일도 있군요. 쿠바에서... 그녀는 조가 은행에서 털어냈던 돈을 찾아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엠마는 조와 마피아 중간보스인 앨버트로부터 구애를 받는 동안에도 안전장치를 둘 정도로 치밀한 여자였습니다. 둘 다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소유할 욕망이 앞선 것이었음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조는 그런 엠마에게 자유를 주면서 작별을 고합니다.


조가 그라시엘라와 아들 토머스와 함께 쿠바에서 이보르로 돌아오던 날 딸의 자살에 조의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는 어빙 피기스의 저격을 받습니다. 총격 과정에서 그라시엘라가 죽고, 어빙은 폭주하는 트럭에 치어 죽음을 맞습니다.


낮의 세계에서 규칙이 있듯이 밤의 세계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조는 믿었고 그 믿음이 지난한 전쟁터에서 조를 지켜준 셈입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지킨채 현역에서 은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법이 넘쳐나던 시절의 시카고를 염두에 둔 책읽기였는데, 무대가 플로리다 탬파였던 것만 빼고는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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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인이다 - 남아프리카의 전사와 연인, 예언가가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막스 두 프레즈 지음, 장시기 옮김 / 당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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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이미 아프리카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근세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아프리카 같습니다. 다행히 세계화 바람의 영향인지 최근에는 아프리카에 관한 책들도 가끔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느라 관심을 가지게 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스 두 프레즈가 쓴 <나는 아프리카인이다>는 남아프리카의 역사라기보다는 영웅담을 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인 만큼 팩트는 분명하게 챙겼을 것이므로 전설이나 민담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위대한 족장이나 근세에 이르러서는 부족들을 통일하여 나라를 세운 영웅이나 대통령은 물론 바람둥이, 히틀러에 경도된 파시스트, 예언자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영웅담이라고 하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희망봉을 발견한 15세기부터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사건 혹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20가지 골랐습니다. 700여년에 걸친 세월의 역사를 꼼꼼하게 적은 것은 아닙니다. 유럽인들이 진출하던 초기의 분위기는 그들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저지른 행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즉 미지의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미개하다고 인식하였을 뿐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대륙의 경우는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지역의 경우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훌륭한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놀랄만한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초원에서 살던 부시맨들이 사자를 겁내지 않은 이유에 관한 ‘부시맨과 사자의 계약’을 읽어보면 부시맨들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을 잘 알고 조화를 이루며 산 놀라운 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 이외의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창을 별는 것보다는 옥수수를 빻는 것이 더 좋다’라는 말을 남긴 몰로미처럼 많은 부족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상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자연으로부터 깨들은 삶의 지혜를 다른 부족들에게까지 전파하여 공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대륙에 있는 국가들의 국경을 보면 반듯반듯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속표지에 담은 아프리카대륙을 보면 마치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작은 부족들이 산재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한 유럽열강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들을 인종구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지도상에서 구획을 정해서 독립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족들 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국경이 다시 조정된 곳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하면 아파르트헤이트와 넬슨 만델라대통령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파르트헤이트의 기저에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백인들이 스스로를 아프리카인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위도 상으로도 유럽대륙과 기후조건들이 비슷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하여 백인들이 많이 몰려갔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초반까지도 남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식인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식인관습이 자리하게 된 배경에는 너무나도 심각한 기아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체력이 떨어져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는 사태를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은 죽은 사람의 고기에 손을 대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극한상황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명사회에서도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영웅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강인한 여성들의 삶은 물론 세기의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의 특성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이나 사람의 이름이 독특해서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한계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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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역사 명저 시리즈 9
피터 A. 클레이턴 외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리우의 코르도바 예수상을 구경하면서 세계 7대 불가사의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터넷투표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하였는데, 코르도바의 예수상이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정방식은 그렇다고 쳐도 일단은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기 때문에 널리 공감대를 얻어 결정했다는 점이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때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자의 대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 솔레움, 로도스의 거상,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으로 꼽고 있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누가 언제 어떻게 선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엮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풀 수 있습니다.


엮은이가 붙인 에필로그를 보면 고대세계의 불가사의 목록은 기원전 1세기부터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 시대에 시칠리아의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쿨루스는 바빌론의 인상적인 기념물, 세미라미스 왕비의 대오벨리스크가 당대 주목할만한 7 가지 기념건조물에 들어가야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 역시 피라미드가 7가지 볼거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목록은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파로스의 등대가 목록에 들어간 것은 6세기에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주교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건물들도 있었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마력을 가지고 있던 불가사의라는 개념 때문에 목록에 남아있게 된 것들도 있지 싶습니다. 지금 알려지고 있는 고대의 7대 불가사의가 굳어진 것은 르네상스시대라고 합니다. 지금은 기자의 피라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옮긴이는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들이 유럽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서양 고대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해야 옳을 것이며, 여기에 들어가지 못한 불가사의들이 세계 도처에 널려있음을 지적합니다. 크메르의 앙코르와트, 중국의 만리장성과 운강 석불, 인도의 타지마할, 이스텍의 피라미드, 쿠스코의 맞추피추, 이스터섬의 모아이, 우리나라의 황룡사구층탑 등도 불가사의하다고 말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밝히고 있는 7대 불가사의의 규모 등을 볼 때 옮긴이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쓴 사람들은 해당 건축물의 연구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입니다. 불가사한 건축물의 역사, 위치, 목적으로부터 해당 건축물의 구체적인 치수, 지은 사람들, 건축학상의 특징, 관련된 전설과 신화 등 세부적인 기록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은 어떻게 남아있는지 등도 밝히고 있습니다. 필자들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그 불가사의들을 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나, 당시에 사용하던 동전 등을 참조하여 진위를 가리고 있으며, 불가사의의 묘사와 함께 고고학자들이 대상물들을 직접 목격한 고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복원한 그림과 남아있는 유구에 대한 사진들도 들을 곁들였습니다.


아무래도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려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면 실감이 나지 않는 것들을 불가사의 목록에 포함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유카탄반도의 치첸이사, 리우의 코르도바 예수상, 로마의 콜로세움,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마추피추,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등, 새로운 세계7대 불가사의 역시 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어떻든 재미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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