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1 로마제국 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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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터키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보았을 때, 제국의 역사를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방대한 분량에 선뜻 집어 들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독후감을 정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괄적인 것이 될 듯해서 한권 한권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한 시점을 시작으로 보지만, 카이사르가 제국의 바탕을 만들었고,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의 틀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의 끝은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혹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등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은 고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했다고 전하지만, 이는 허구적인 전설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살던 여러 부족들이 전쟁과 교류를 통하여 융합하게 되었고, 그 핵심은 라티움에서 테베레 강을 건너 에트루리아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과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로 건너온 그리스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이들을 중심으로 통합된 것이 고대 로마의 시작이었고, 초기에는 도시국가 형태의 왕국이었습니다. 기원전 500년 무렵 왕정이 무너지면서 귀족들과 평민계급에 의한 공화정이 시작되어 계급간의 투쟁과 타협이 이어지면서도 세력을 확장시켜나갔던 것입니다. 기원전 272년에는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있던 도시국가들을 아우르게 되었고, 이어서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여 지중해 전역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80여년의 행복한 시기(서기 98-180년)로부터 시작합니다. 제국 쇠망의 중요한 상황들을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기획의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기번은 로마제국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로부터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동로마제국이 망한 시점까지 대략 1,300년 동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있었던 일련의 변화를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로마의 군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트족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동로마제국이 영광을 구가하던 시기로부터 이슬람세력의 발호로 제국의 위엄이 축소되어가다가 서기 800년 샤를마뉴의 프랑크왕국이 제국을 재건하기까지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이로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까지를 말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1>에서는 서기 98년-180년까지 안토니우스 가의 황제들 시대의 로마제국의 범위와 군사력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퇴위 이후 혼돈에 빠진 제국을 추스르기까지와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대체적으로 혈족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3대 이상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으며, 근위대의 무력에 기대어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위대의 기대치에 따라서 황제가 바뀌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의 특징은 속주 혹은 정복지에서도 차출되는 병력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비천하더라도 군생활을 통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군의 위세에 힘입어 황제위에 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능력위주의 사회였던 모양입니다.


1권의 마지막 2개의 장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책에 따라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로마의 상징인 신들을 경배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의 하나였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신학적 해석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적과 순교 등을 부풀려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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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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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면 커피에 얽힌 이야기임을 알겠는데,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라는 부제가 묘합니다. 커피에 관한 음모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싶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모년 베를린 전망탑에 커피제조업체 드라쿠스가 커피솝을 낸 지 몇 달이 지난 12월 16일에 독극물 중독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날 독일 내 몇 곳의 드라쿠스 커피숍에서 모두 250명이 같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병원에 입원한 것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250명이면 대단한 사건인 셈인데, 전국적인 반응은 약한 듯합니다. 아마도 방송사 수습기자 아가테와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집단 독극물 사건은 용의자를 압축하는 것이 수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업자 브리오니가 경찰제보 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르는 등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시간 늦추기 협회’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통하여 커피박탈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그 효과를 통하여 의회의 정책결정에 개입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그려냈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것 같습니다. 수습기자와 커피로스터라는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합으로 사건을 추적해가는 것도 무리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가는 점은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도입부에 둔 1554년 모월 모일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카페의 일상적인 모습이 생뚱맞아 보입니다. 무슬림과 유대인과 기독교인 등, 종교구분이 없어 빈부와 노소 구분이 없으며 단지 여자만 빠진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천국의 음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인 방송사는 몇 명의 기자를 투입해서 일단 이야기 거리를 뒤쫓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생자 이야기예요. 이 명단을 보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요. 언제나 그렇듯 유명인이나 인기인, 악명 높은 사람일수록 좋습니다.(36쪽)” 방송의 속성이 그런가 봅니다.


사는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쳐들어간 카페에서 브리오니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아가테나 그런 그녀에게 끌려들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브리오니나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16일에 시작한 사건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마무리되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의 함부르크로 숨차게 오가면서 말입니다. 물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그래도 년말이라는 시점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은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커피 전문가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합니다. 발자크의 커피송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커피가 위장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대군의 대대처럼 몰려오고, 기억은 돌격 행보로 달려드누나. 논리의 포병대가 돌진해 오고, 재기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총력전에 끼어들도다. 인문들이 살아 움직이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는 시작되고, 검은 물결 속에서 끝난다. 현실의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막을 내리듯(145쪽)”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빈 시내의 풍경을 그린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바람 때문에 추위가 더 심하게 느껴졌고, 눈이 올 것 같았다. 거리에 은색 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전기 촛불로 장식한 전나무가 바람을 맞고 서 있고, 값비싼 장신구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어떤 쇼윈도 앞으로 떠밀려 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파는 것은 ‘기분’이었다. 돈을 내고 잠시 머물며 온기를 느끼는 곳(198쪽)” 작가는 빈에서 비친 오스만터키의 영향을 섬세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계였는데, 오히려 빈에는 오스만제국의 풍습이 많이 전해졌던가 봅니다. 슈테판성당의 지붕을 오스만식으로 장식할 정도로 말입니다.


커피는 인간의 정신에 강력한 촉매제이자 가속장치 구실을 한다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토대로 유럽에 커피가 도입된 이후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커피 향기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가속과 변화와 급격한 발전(231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대대적으로 없애면 저항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민 지원 예산을 축소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입니다. 음모는 성공을 하고 우리의 두 주인공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 튼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마무리가 또 묘합니다. 그래서 리뷰도 묘하게 끝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커피를 마시면 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카페인이 혈액순환을 자극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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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5
리카르도 피글리아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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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신문기사나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행간에 숨겨둔 의미를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올 초에 다녀왔던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가 더러운 전쟁기간 동안에 내놓은 소설 <인공호흡>입니다.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소설인지 아니면 아르헨티나 문학사에 관한 책인지 종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작가가 주인공인 작가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행간에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작품해설을 읽으면서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공호흡>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부는 프란스 할스의 그림 제목이기도 한 ‘내가 어둡고 움울한 겨울이라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제2부는 ‘데카르트’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제1부는 <현실의 지루함>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삼촌 마르셀로 마기교수의 삶에 얽힌 비밀을 다룬 소설가 에밀리오 렌시가 외삼촌과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서간문형태의 이야기가 앞부분에 등장합니다. 19세기 애국자 엔리케 오소리오의 삶을 재구성하여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마기교수는 조카에게 역사에 대한 시야를 넓게 가지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렌시가 마기교수의 부탁으로 그의 장인 루시아노 오소리오 상원의원을 찾아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대화내용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그 안에 담겨있는 법칙 같은 것입니다.


1부의 마지막 부분은 정보기관의 검열관으로 보이는 아로세나가 등장해서 가로챈 편지에 숨겨진 메시지를 추적합니다. 이 부분에서 바로 행간에 의미를 담는 글쓰기라는 옛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맥락의 글이 섞여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 점에 관하여 당시 엄격했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읽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제2부는 렌시가 외삼촌 마기교수를 찾아 콩코르디아를 찾아가지만 마기교수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마기교수를 기다리면서 폴란드에서 망명온 타르뎁스키와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통과 잠재력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르헨티나 문학에 미친 유럽문학의 영향으로부터 아르헨티나의 독자적인 행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미래의 소설을 쓰기 위해 나는 과거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현재(이러한 공백이자 미지의 땅) 또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으리라.(116쪽)” 유토피아는 오직 시간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 세상에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설의 제목과 관련하여 군부독재의 탄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문학에 한줄기 숨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읽었습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이야기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엉뚱해보이는 화제를 이끌어다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의 위작에 관한 그루사크의 책으로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단테의 <신곡>, 심지어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히틀러가 1909년 10월부터 1910년 9월까지 거의 1년 동안 빈에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강제징병을 기피하기 위해서 체코의 프라하로 숨어들었더라는 것입니다.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옹호자이며, 군국주의 사회를 건설한 당사자가 사실은 병역기피자였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실제와 허구를 교묘하게 짜넣었다고 하니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문학과 현실/역사,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읽기’와 삶의 세계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제시하였다고 옮긴이는 정리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아르헨티나 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한 책읽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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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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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우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http://blog.joins.com/yang412/12549788>를 읽고서 독서를 통해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객들에게 맞춤한 책을 골라주는 서점주인의 감정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종이약국; http://blog.joins.com/yang412/13794961>을 읽고 커다란 여운이 남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에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를 골라들었던 것 같습니다. 표지그림이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도 말입니다.


카를로 프라베티의 소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제목과는 달리 알쏭달쏭한 책입니다. 20개로 나뉜 이야기들의 작은 제목들이 ‘정원이야, 숲이야?’, ‘늑대야, 개야?’, ‘서점이야, 약국이야?’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답이 모호해지기는 것은 이미 이분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경계가 분명하지 않거나, 혹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이 만나게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빈집털이범의 루크레시오가 경험한 황당사건을 통하여 이분법적 사고가 정답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책읽는 이도 덩달아서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비어있는 줄 알고 들어간 집에서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대머리 칼비노를 만난 루크레시오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할 수 없이 칼비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칼비노는 단순한 루크레시오를 헷갈리게 만드는데....


도서관에 간다던 칼비노가 루크레시오를 안내한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라고 묻는 루크레시오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결론에 왜 집착하느냐고 되묻는 칼비노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라고 하는데, 그 도서관장은 한 술 더 떠서 “한꺼번에 둘 다 될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을 수도 있으며 모두 틀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가기는 틀릴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에서 답을 고를 수가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장면이 바뀌면서 도서관장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약국, 아니 서점으로 안내합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노부인은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을 읽으라고 합니다. 책을 마치 역처럼 처방하는 것입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한 책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나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일상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책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좀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영화관에도 데려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이 아니라 하얀 스크린에다 각자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이미지를 화면에서 정신적으로 실행하여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은 다 만들어진 완제품 영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영화는 더욱 말초적이라서 그저 보는 순간에만 흥분에 빠질 뿐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장자의 호접몽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사람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헷갈렸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분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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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세계사 - 5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파악하는 여섯 번의 공간혁명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오근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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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관심이라는 것이 끈기가 없는 탓인지 쉽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위 ‘먹방’이라고 하는 방송계의 추세는 꽤나 오래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을 대체할만한 소재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방타령으로 [북소리]를 시작하는 이유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역사도 시각에 따라서 전혀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공간의 세계사>는 ‘공간’을 주제어로 5,000년 인류사의 변곡점을 찾아냈습니다. 즉 공간의 변화가 인류의 삶을 바꾸는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사 교사를 역임하면서 20년 넘게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집필과 편집에 참여한 저자의 경력을 보면 역사를 깊이 연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등학생 대상의 세계사를 다루다보니 그의 전작,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등처럼 세계역사의 변화를 쉽게 이해하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서문에는 세계사를 공간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 이유를 적었습니다. 그 첫 단추는 ‘세계사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눈다면 그 분기점은 어디가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저자는 15세기 대항해시대가 바로 그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2세기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작한 세계지도와 157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지도출판업자 오레텔리우스가 제작한 <세계의 무대>를 근거로 내놓았습니다. 지도 제작자가 이해하던 당시 세계의 범위가 담겨있는데, 프톨레마이우스의 지도를 ‘육지의 세계지도’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세계지도와 흡사한 오르텔리우스의 지도는 ‘바다의 세계지도’로 비유했습니다. ‘바다의 세계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대항해시대에 세계를 누빈 탐험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20세기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육지와 바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는 ‘세계사는 육지 나라에 대한 바다 나라의 투쟁, 바다 나라에 대한 육지 나라의 투쟁을 기록한 역사다’라는 관점으로 <육지와 바다>를 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과연 육지나라 독일이 바다 나라 영국을 상대로 잘 싸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고, 결론은 ‘바다 나라 영국이 우위에 서지 않을 수 없다’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일본이 우위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슈미츠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했다는 결과에 매몰되어 역사해석에 있어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의 주제어가 되는 ‘공간혁명’은 슈미트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큰 시대의 시작에는 늘 큰 토지의 취득이 있다”라고 전제하고, “먼저 공간 규모가 크게 변화하고 이어서 그에 걸맞은 공간질서의 형성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공간혁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사의 전환은 공간의 변화와 결부되어 있고, 그것이 광범위하고 핵심적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사카츠는 슈미츠의 공간혁명의 개념을 세계사의 구성개념으로 응용하여 여섯 번의 세계사적 공간혁명으로 7개의 세계사 공간을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건조 지대 큰 강 유역에서 거대한 농업공간 형성(약 5,000년 전), 두 번째, 말을 이용하는 유목민들이 이끈 큰 강 유역과 초원․황무지․사막의 공간적 통합에 의한 여러 지역세계 형성(약 2,500년 전), 세 번째, 이슬람 제국에서 시작되는 기마유목민과 상인에 의한 유라시아 규모의 공간 통합(약 1,400년 전), 네 번째, 대항해시대 이후 대양이 대륙을 잇는 대공간의 성장과 자본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 근대체제의 형성(약 500년 전), 다섯 번째,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철도와 증기선에 의한 지구공간의 통합(약 200년 전), 여섯 번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 규모의 전자공간 형성(약 20년전) 등입니다. 각각의 혁명에는 유발요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말이, 네 번째는 항해가, 다섯 번째는 자본이 그리고 여섯 번째는 전자가 공간형성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견강부회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나름대로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체적으로 ‘혁명’이라는 개념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진대 첫 번째 혁명 거대한 농업공간의 형성이 단 기간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과 굳이 건조지대라는 지역적 제약을 두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류의 4대문명 발상지로 꼽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유역의 인더스 문명, 그리고 중국 황하유역의 황하문명 등은 기원전 4,000부터 ~ 기원전 3000년경 무렵 성립하였습니다. 거리상 가까운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서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인더스문명이나 황허문명은 독자적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4대 고대문명은 큰 강의 유역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관개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며, 청동기, 문자, 도시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조건도 지금과는 달리 대부분 온화하고 강수량도 많았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따라서 큰 강 유역이라는 공간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지형적 요인에 따라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어 이룬 것으로 혁명이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혁명은 기원 전후로 걸쳐 일어난 것으로 4대문명이 일어난 공간을 중심으로 세력이 확장되거나 통합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 시기의 주인공들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1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마우리아왕조의 찬드라 굽타, 진의 시황제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 무렵 공간의 확산과 통합에 말이 기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제국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페니키아 사람들은 배를 만들어 지중해를 통하여 이베리아반도를 지나 대서양으로 진출하기까지 하였으니, 이미 인류의 활동영역은 육지를 떠나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혁명을 주도한 세력을 기마민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배라는 이동수단이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혁명을 통하여 성립한 공간들은 상호 교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혁명은 7~14세기 아랍인, 튀르크인, 몽골인에 의하여 유라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제국이 탄생하던 시기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랍인들이 살던 아라비아반도나 튀르크인들이 살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사막기후로, 몽골인들이 살던 몽골고원 역시 건조지대로 극한의 땅에서 생활하는 유목부족들이 가난을 탈출하기 위하여 품은 강한 의욕이 일련의 공간혁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지나 이베리아반도까지, 남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 동쪽으로는 인도 접경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카스피해 등에 이르는 이슬람의 강역이 극한의 땅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제국의 중심은 시리아 혹은 바그다드 등으로 극한의 기후상황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튀르크인 역시 중국의 북부 초원지역에 살면서 중원을 침략하던 것을 중원의 세력이 커지면서 북부지역에 살던 흉노족이나 돌궐족을 서쪽으로 밀어낸 결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몽공인들은 중국의 지배세력이 약해져 분열되었던 시기에 세력을 키워 중원을 장악하였고 유럽의 접경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루었지만, 강역을 실지 경영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고 분할 지배했던 것입니다.


네 번째 혁명, 대항해시대가 촉발된 원인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포르투갈이 문을 열고 스페인이 뒤를 이었습니다. 두 나라가 대서양으로 나간 것은 중동에 자리한 오스만제국 때문이었습니다. 오스만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는 베네치아공화국을 파트너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동방무역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동방항로를 개척하였고 덤으로 브라질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스페인은 동인도제도와 라틴아메리카를 차지하는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를 차지할 수 없었다면 유럽이 유라시아대륙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떻거나 대항해시대에 유럽제국이 이룩한 세계사적 공간통합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가끔은 작가의 시각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세계사 속의 한국과 일본의 위치에 관한 언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료선택에 있어 중립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한 것이나, 고구려가 낙랑군을 313년에 축출한 뒤로 한반도에 백제, 신라 등 국가형성의 움직임이 있었고, 일본은 야마토 왕조가 탄생하였다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성립한 고구려가 100만 대군을 동원한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16세기 동아시아로 진출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과 접촉한 과정도 소략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콜럼버스의 대서양 개척이 지팡구, 즉 일본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섬을 포함한 지역을 서인도제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남북 아메리카대륙의 문명은 아예 세계사 공간에서 제켜두었다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사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적절치 않은데 그마저도 유럽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최근의 고고학적, 역사학적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유럽 중심이 아닌 원주민 시각의 해석으로 세계사의 공간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항해시대를 통하여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다섯 번째,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것도 유럽사회가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는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철도와 증기선, 비행기에 이르기까지의 운송수단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도 유럽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송수단에 의한 공간의 통합이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전지구적 공간으로 확대된 것도 당연히 유럽이 중심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사회는 축적된 인적, 물적 자산을 탕진하면서 통합된 공간을 지배할 능력을 미국과 소련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구적 공간이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다양한 공간으로 쪼개지면서 공간들 간에 무수한 충돌이 일어났던 것도 빠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혁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 규모의 전자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전자공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자공간의 활용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참여하고 있으니 전자공간 역시 지구적 공간처럼 ‘함께 또 같이’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공간이 성립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이 부분에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포함하는 20세기의 세계사를 포함시킨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전자공간에 대한 개념형성이 논의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축국으로 참여한 군국주의 일본의 오판이었다는 정도로 요약합니다.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6.25동란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1950년에는 무력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노린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남한으로 침공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368쪽)”고 적고 이 전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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