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과 표지를 보면 커피에 얽힌 이야기임을 알겠는데,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라는 부제가 묘합니다. 커피에 관한 음모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싶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모년 베를린 전망탑에 커피제조업체 드라쿠스가 커피솝을 낸 지 몇 달이 지난 12월 16일에 독극물 중독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날 독일 내 몇 곳의 드라쿠스 커피숍에서 모두 250명이 같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병원에 입원한 것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250명이면 대단한 사건인 셈인데, 전국적인 반응은 약한 듯합니다. 아마도 방송사 수습기자 아가테와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집단 독극물 사건은 용의자를 압축하는 것이 수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업자 브리오니가 경찰제보 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르는 등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시간 늦추기 협회’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통하여 커피박탈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그 효과를 통하여 의회의 정책결정에 개입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그려냈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것 같습니다. 수습기자와 커피로스터라는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합으로 사건을 추적해가는 것도 무리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가는 점은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도입부에 둔 1554년 모월 모일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카페의 일상적인 모습이 생뚱맞아 보입니다. 무슬림과 유대인과 기독교인 등, 종교구분이 없어 빈부와 노소 구분이 없으며 단지 여자만 빠진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천국의 음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인 방송사는 몇 명의 기자를 투입해서 일단 이야기 거리를 뒤쫓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생자 이야기예요. 이 명단을 보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요. 언제나 그렇듯 유명인이나 인기인, 악명 높은 사람일수록 좋습니다.(36쪽)” 방송의 속성이 그런가 봅니다.


사는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쳐들어간 카페에서 브리오니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아가테나 그런 그녀에게 끌려들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브리오니나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16일에 시작한 사건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마무리되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의 함부르크로 숨차게 오가면서 말입니다. 물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그래도 년말이라는 시점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은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커피 전문가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합니다. 발자크의 커피송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커피가 위장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대군의 대대처럼 몰려오고, 기억은 돌격 행보로 달려드누나. 논리의 포병대가 돌진해 오고, 재기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총력전에 끼어들도다. 인문들이 살아 움직이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는 시작되고, 검은 물결 속에서 끝난다. 현실의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막을 내리듯(145쪽)”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빈 시내의 풍경을 그린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바람 때문에 추위가 더 심하게 느껴졌고, 눈이 올 것 같았다. 거리에 은색 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전기 촛불로 장식한 전나무가 바람을 맞고 서 있고, 값비싼 장신구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어떤 쇼윈도 앞으로 떠밀려 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파는 것은 ‘기분’이었다. 돈을 내고 잠시 머물며 온기를 느끼는 곳(198쪽)” 작가는 빈에서 비친 오스만터키의 영향을 섬세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계였는데, 오히려 빈에는 오스만제국의 풍습이 많이 전해졌던가 봅니다. 슈테판성당의 지붕을 오스만식으로 장식할 정도로 말입니다.


커피는 인간의 정신에 강력한 촉매제이자 가속장치 구실을 한다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토대로 유럽에 커피가 도입된 이후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커피 향기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가속과 변화와 급격한 발전(231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대대적으로 없애면 저항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민 지원 예산을 축소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입니다. 음모는 성공을 하고 우리의 두 주인공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 튼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마무리가 또 묘합니다. 그래서 리뷰도 묘하게 끝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커피를 마시면 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카페인이 혈액순환을 자극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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