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운우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http://blog.joins.com/yang412/12549788>를 읽고서 독서를 통해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객들에게 맞춤한 책을 골라주는 서점주인의 감정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종이약국; http://blog.joins.com/yang412/13794961>을 읽고 커다란 여운이 남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에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를 골라들었던 것 같습니다. 표지그림이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도 말입니다.


카를로 프라베티의 소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제목과는 달리 알쏭달쏭한 책입니다. 20개로 나뉜 이야기들의 작은 제목들이 ‘정원이야, 숲이야?’, ‘늑대야, 개야?’, ‘서점이야, 약국이야?’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답이 모호해지기는 것은 이미 이분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경계가 분명하지 않거나, 혹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이 만나게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빈집털이범의 루크레시오가 경험한 황당사건을 통하여 이분법적 사고가 정답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책읽는 이도 덩달아서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비어있는 줄 알고 들어간 집에서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대머리 칼비노를 만난 루크레시오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할 수 없이 칼비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칼비노는 단순한 루크레시오를 헷갈리게 만드는데....


도서관에 간다던 칼비노가 루크레시오를 안내한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라고 묻는 루크레시오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결론에 왜 집착하느냐고 되묻는 칼비노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라고 하는데, 그 도서관장은 한 술 더 떠서 “한꺼번에 둘 다 될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을 수도 있으며 모두 틀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가기는 틀릴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에서 답을 고를 수가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장면이 바뀌면서 도서관장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약국, 아니 서점으로 안내합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노부인은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을 읽으라고 합니다. 책을 마치 역처럼 처방하는 것입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한 책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나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일상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책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좀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영화관에도 데려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이 아니라 하얀 스크린에다 각자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이미지를 화면에서 정신적으로 실행하여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은 다 만들어진 완제품 영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영화는 더욱 말초적이라서 그저 보는 순간에만 흥분에 빠질 뿐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장자의 호접몽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사람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헷갈렸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분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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