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사 치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진료현장에서 죽음을 만나면서 죽음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 경우는 병리학을 전공하고 주검을 마주하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해서는 모든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무리하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숨결이 바람 될 때>입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가 말기 폐암의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프롤로그와 암진단을 받기 이전까지의 삶을 정리한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암환자가 되어 치료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한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그리고 죽음 이후에 아내가 쓴 에필로그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과정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전공한 신경병리학도 3-4년의 병리학 수련과정을 거친 다음에 2년간의 펠로우십을 거치면서 별도의 수련을 쌓은 다음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만,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7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신경과학을 전공하는 일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예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폴 칼라티니는 조금 색다른 이유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신경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부친과 삼촌 그리고 형까지도 모두 의사였지만,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 진학한 저자는 영문학과 인간 생물학의 학위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저자는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답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칼라티니가 말기 폐암을 확진받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과정의 마지막 해라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살짝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극심한 요통과 함께 체중이 빠르게 줄어 암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저자는 1차 진료의사를 방문해서 ‘MRI를 찍어 확인해봐야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차 진료의사는 ‘엑스레이부터 찍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합니다. 암을 진단하는데 엑스레이검사는 거의 효용가치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요통을 진단하기 위해서 MRI검사를 하는 것은 우도할계(牛刀割鷄), 즉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라고 본 것입니다. 요통의 원인을 밝히고자 MRI를 찍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MRI검사가 미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료비절감운동의 주대상이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비급여대상인 MRI검사를 바로 시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1차 진료의 기본검사인 흉부 엑스선촬영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흉부 엑스선촬영을 했더라면 폐암을 진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올 봄에 제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허리와 폐의 엑스선검사를 시행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떻든 엑스선검사결과는 괜찮아 보였고, 요통과 체중감소 증세도 가라앉았던 것이 칼라티니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몇 주 뒤에 가슴에 심한 통증이 다시 생겼고, 밤에 땀을 많이 흘리며, 체중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필자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이들 가족은 뉴욕 맨하탄 북쪽의 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습니다. 기독교신자인 아버지와 힌두교신자인 어머니는 인도 남부에서 뉴욕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했던 것인데, 자식들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어머니 입장에서는 사막도시로의 이주가 끔찍했을 것입니다. 스탠퍼드로 떠날 때는 절해고도로부터 탈출하는 기분이었다고는 하지만 킹맨의 자연은 성장기의 저자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의 키워주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얻은 커다란 울림은 그에게 작가의 길을 꿈꾸게 했을 것입니다. 대학시절 내 그는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언어가 가지는 힘에 주목하여 영문학의 석사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위논문 주제로 선택한 월터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휘트먼이 추구한 ‘생리적․영적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뒤쫓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휘트먼의 말대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의학의 도덕적 사명이 막중하다고 생각하여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했던 그였지만, 해부학실습이 진행되면서 사체를 하나의 사물로 대상화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묘사한 해부학실습실의 풍경은 제가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그곳에서 강의하던 셔윈 눌랜드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읽었고, 결국 죽음이란 직접 대면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특히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은 신경외과를 전공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신경외과 수련을 시작하면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과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닌 죽음의 전령사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부터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요즈음 제가 맡고 있는 암평가사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문가회의를 잇달아 열고 사례별로 인정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환자거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이해를 시키고 있습니다만, 환자의 선택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시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반면 저는 그런 환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도 담당의사의 몫이 아니겠느냐는 입장입니다.


그토록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 것도 이 책에서 덤으로 얻은 소득입니다. 그 부분을 인용합니다. “만약 내가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예상되는 합병증을 무심하게 떠들어댄다면 그녀는 수술을 거부할 것이 뻔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챠트에 환자가 수술을 거부했다고 기록하고, 내 일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며 다음 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115쪽)” 사실은 ‘하지만’ 이하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압니다만, 저자가 어떻게 했는지는 이 책을 읽어 답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쩌면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답을 이미 눈치 채셨을 것 같습니다. 신경외과의사로서 그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교에서 교수를 제안받는 등 성공이 보장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폐암진단이 내려지면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당장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가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치료를 맡은 종양학 전문의 에마 헤이워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서 외과의라는 그의 직업은 물론 복직의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최적의 치료를 추천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세계적 수준의 종양학 전문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어 치료를 언제 진행하고 보류할 것인가를 잘 파악하고, 환자를 잘 배려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자의 흉부 엑스선사진의 소견으로 보아 선암종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검사결과 PI3K변이가 있고, EGFR양성으로 비소세포성 폐암으로 진단된 것입니다. 표적치료제인 이레사나 타세바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예상되는 기대수명을 딱 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치료 후 찍은 CT검사에서 종양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는 결국 수술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 꿈꾸었던 인생을 살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180쪽)”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폐암을 진단받기 이전의 업무로 복귀하는 것까지는 조금 너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수술하고 병실을 돌보고 밤10시에나 퇴근하는 강행군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암진단을 받고 9개월째 수련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가까워지면서 저자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수백만 달러의 예산이 지원되는 연구소를 비롯한 높은 연봉 등의 조건으로 교수초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의 교수직을 놓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즉 암이 재발하거나 하면 아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스콘신대학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폐암진단을 받기 전의 생활로 복귀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암이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해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라는 에마의 조언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임상의라면 새겨둘만한 내용입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198쪽)”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치료가 마무리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술실로 복귀한 7개월째 추적관찰을 위하여 찍은 CT사진에서 종양덩어리가 뚜렷하게 찍힌 것입니다. 표적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화학요법을 해야 했지만 부작용이 생기는 바람에 그마저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수련과정은 인정을 받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한 셈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진단을 받은 뒤에 시험관시술로 가졌던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향하는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울 수 있었고, 이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칼라티니는 에필로그를 적지 못하였습니다. 딸 케이디가 태어난 8개월 후 죽음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는 그의 아내가 적었습니다. <바람이 숨결이 될 때>는 저자의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였지만, 아내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262쪽)”라고 한 C.S. 루이스의 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SNS가 대세가 되면서 한글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넘어 자칫 한글 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카톡이나 트위터를 조금 하는 편입니다만, 자칫 오타를 낸 상태에서 보내고는 아차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상대가 어려울수록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실수를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젊은 여성작가가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자는 책을 펴낸 것은 크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남성을 겨냥한 듯 ‘오빠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조금 튄다 싶지만, 모로 가면 어떻습니까? 젊은 오빠들이 자각하는 기회가 된다면 크게 문제 삼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맞춤법은 참 어렵습니다. 저도 글을 적지 않게 쓰는 편입니다만, 대체로 글의 맞춤법 기능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빨간 줄이 나오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빨간 줄이 생기기 않아도 맞춤법이 잘못된 경우가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수의 책을 냈다고 하면서도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자신을 낮춘 모습이 그렇습니다만,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전직 간호사라고 해서 일단은 반갑습니다. 글을 쓸 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참고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는 저자와는 달리 제 경우는 완전 편집인에게 떠맡기고 있는 형편없는 저자인 셈입니다.


저자는 흔히 헷갈리기 쉬운 맞춤법 용례 53가지를 모두 5가지의 범주로 구분해놓았습니다. 연애편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사용하더라도 여자를 꼬시려면 최소한의 맞춤법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저자에게 집필을 의뢰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여자들은 맞춤법 틀리는 남자를, 진짜, 정말, 진심으로 싫어한다고 밝혔습니다만, 남자들 역시 맞춤법 틀리는 여자를, 진짜, 정말, 진심으로 싫어하거든요.


시작은 ‘~라고 표기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라고 점잖게 시작합니다만, 이내 부모님의 강요로 선을 보곤 한다는 둥, 남친을 꼬셔서 여관에 든 것까지도 그렇다고 쳐도 남은 OO을 다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둥, 젊은 여인네가 거론하기에 조금 거시기한 내용까지도 거침없이 다루고 있어 신세대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을 위하여 이 한 몸 희생한다는 갸륵한 뜻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자도 잘못 알고 있어 뺨을 내리쳤다는 ‘얼만큼’은 저도 맞는 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제 뺨을 내리쳐야 하겠습니다. 부사 끝음절의 ‘~이’와 ‘~히’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때 ‘~하다’를 붙여서 무난하면 ‘~히’를 사용한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깊숙이’, ‘수북이’, ‘끔찍이’가 맞는다고 하니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한글이 처음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던 것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영어식 띄어쓰기를 적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배웠던 맞춤법이 시대에 따라서 여러 번 바뀌다 보니 옛날과 달라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글쓰는 사람이라면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맞춤법을 익히는 것에 소홀한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에 적은 저자의 자화자찬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맞춤법을 통달하겠다는 사명을 띠고 책을 펼쳤다. 어떤 페이지는 너무 재미있어서 미소를 띠었고, 어떤 페이지는 너무 야릇해서 홍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변태적 성향을 띤 책이긴 하지만 맞춤범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191쪽)” 누군가의 서평을 인용한 것처럼 세 건의 홍보문을 작성한 저자의 재치가 빛나는 부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고고학은 매우 흥미로운 학문분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옛사람들이 남겨 둔 삶의 흔적 혹은 표시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학문분야가 세분화되고 있듯이 고고학 분야 역시 광범위한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구상에 등장했던 모든 문명에 대하여 정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에서 다루고 있는 고고학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중동과, 인도, 중국,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버트만 교수가 서구문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 가지 흐름, 즉 이스라엘 문명, 그리스문명 그리고 로마문명을 전공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의 선사시대 벽화에서 출발하여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미라, 트로이와 크레타 등 지중해 일대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유적과 같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것들은 물론 덴마크와 영국 등 흔히 대하지 못하는 유적들까지 망라하여 26가지를 다루었습니다. 흔히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학문적이면서도 딱딱한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때 이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서술하는 것이 고고학의 목적”이며, “유령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않은 유령들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맡는 것이 고고학자의 의무”라고 말합니다.(20쪽) 그리고 ”여러분이 과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러분 속에 잠들어 있는 인생무상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눈부신 빛을 내면서 시간의 배경을 가로지른 희미한 모습들을 비록 잠시나마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것이 바로 이 책을 쓰는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즈음 읽고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의 첫머리에서 로마제국의 터를 닦은 사람들 가운데 라티움에서 테베레 강을 건너 에트루리아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는 지금의 터키 중부에 있는 리디아에 살다가 기근이 들자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에는 고고학적 설명이 있는데, 소아시아에 남아있는 고대 금석문 가운데 에트루리아어에서 발견되는 낱말과 어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 문명의 몇 가지 특징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혈액학적 증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혈액형분포가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과는 다르지만 터키 중부의 혈액형 분포와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는 우연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종족들과 피가 섞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탈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은 북부에서 내려온 게르만계나 그리스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함께 로마를 건설했으며, 지금의 터키 중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투르크계 사람들과 피가 섞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리노의 수의나 사해문서에 대한 해석을 일다보면 저자가 이스라엘문명을 전공한 까닭인지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즈텍, 마야 그리고 잉카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럽인들의 시각을 나타내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얀 얼굴의 케찰코아틀이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 때문에 몬테주마의 아즈텍사람들이 코르테스에게 쉽게 무너졌다는 가설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전혀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본색을 알게 된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지만, 운명은 아즈텍 사람들 편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새로운 병력이 들어오고,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활용하여 협력을 얻어냈던 것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두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고고학자 김병모교수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1.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현실로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 2. 현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과의 만남에서 받는 문화충격, 3. 원주민들의 음식을 맛보면서 느끼는 즐거움 등입니다. 아직은 현지의 원주민과의 만남에 무게를 둔 여행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2>는 한국 고대사에 감추어진 의문들과 한민족 구성 과정을 파헤친 30년의 여정을 담고 있는 시리즈의 두 번째 권으로, 남아시아 원주민들의 고인돌과 벼농사 문화와 한반도 남쪽의 한(韓) 문화와의 관계를 고고-인류학적으로 비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부는 인더스문명, 유럽의 거석문화, 이탈리아 여행, 이집트 여행 등, 한반도와의 연관성이 다소 약해보이는 고고학적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적었다는 느낌입니다. 여행하는 물고기, 아마대국과 히미코, 그리고 중국의 고대문화 등 후반부는 한반도 남부에 정착한 사람들의 뿌리를 더듬어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신문 등을 통하여 가야국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왔는지를 설명하는 글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남쪽에서 발견되는 쌍어문이 분포하는 지역들을 찾는 여정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세운 가설이었던 것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48년 7월 27일 가락국에 도착한 붉은 돛배에서 내린 여인이 “저는 아유타국 공주입니다. 성은 허, 이름은 황옥, 나이는 16세입니다”라고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아유타국은 인도의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아요디아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도에서 김해까지 과연 일엽편주에 의지해서 왔을까 하는 문제와 인도와는 분명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을 터인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추적해온 쌍어문의 분포를 보면 미얀마의 살윈강을 거슬러 중국 성도부근의 보주에 이르는데, 이곳이 바로 허황후의 뿌리가 닿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허황옥의 능비에 적힌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능’이라는 비문과 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인도, 미얀마 그리고 중국 등 쌍어문이 발견되는 곳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꿰어 연결하면 허황후 일행이 김해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만, 허황후 일행이 김해로 향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수로왕은 왜 그녀를 받아들였는지 하는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김병모교수님의 거중을 통하여 중국의 보주와 김해시가 연결되어 왕래가 늘고 있으므로 서로의 자료를 연구하여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입니다.


쌍어문이 발견되는 장소는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일본의 규슈지역에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쌍어문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남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는 탓에 학문적으로 뒷받침되는 내용이라는 느낌이 다소 덜하다는 느낌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학문적 여정은 방송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일반에도 알려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연구 결과인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연구의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방송매체 등을 통하여 자신의 앎을 널리 알리는데도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역시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는 것을 꼼꼼하게 정리할 필요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명의 기억, 지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
KBS <문명의 기억, 지도>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을 떠나면 제일 먼저 지도를 챙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즈음처럼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지도를 통해서 여행지에 대한 개략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가면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지도’하면 길을 안내하는 자료로 생각하게 됩니다만, 어떤 일을 하는 절차를 안내하는 것도 일종의 지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좁은 의미의 지도, 즉 세상의 길을 안내하는 자료로서의 지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정리한 책을 만났습니다.


KBS가 특집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를 책으로 정리해서 펴낸 <문명의 기억, 지도>입니다. 지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밖에 대하여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만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구술로 전해지던 지리정보가 형태를 갖추어 지도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 흔적이 스페인 나바라의 아리세르떼 산에 있는 아바운츠동굴에서 1993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kg 가까운 사암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1만4천년 가까운 옛날에 그려진 것으로 일종의 지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제작진은 지도의 역사를 1402년 조선에서 제작한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시작합니다. 현존하는 지도 가운데 아프리카 대륙을 제대로의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는 최고(最古)의 지도로 자리매김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작진은 먼저 아시아대륙의 맨 귀퉁이에 있는 조선이 대륙의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대륙의 모습을 상세히 적어 넣을 수 있었는지 추적합니다. 지도에는 아프리카대륙의 남단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를 기록하였는데, 기원전 279년에 세운 이 등대는 1326년 지진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달의 산’에 시원을 두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랍사람들이 7-8세기에 이미 신라까지 진출하였다는 설이나, 앙코르제국의 수도 시엠립이 동서무역의 중계지였다는 설명도 새로우면서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가하면 1418년에 제작된 <천하제번식공도>를 1763년에 필사했다는 <천하전여총도>에는 아메리카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그리고 남극과 북극까지 모두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컬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것이 1492년,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이 발견된 것은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灣)에 내항(來航)한 것이 최초입니다. 물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인도양의 남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극대륙이 발견된 것도 1820년인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서지학이 어려운 점은 아무래 재질이 옛것이라고 해도 거기에 기록된 내용까지도 그 옛날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이 방대한 기초자료를 검토하고, 그 자료들을 취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잘 알겠지만, 다큐의 제작방향에 맞추어 자료를 해석하려했던 점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의 개척에 나선 이유를 미지의 동방에 있다는 프레스터 존을 만나, 이슬람으로부터 몰리고 있는 유럽 기독교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강력한 군사력지원을 요청하려던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물론 바스코 다 가마가 리스본을 출항할 때 프레스터 존에게 건넬 소개장을 가지고 있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포르투갈의 동방항로 개척의 목표는 지중해 항로를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세력을 우회하여 무역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표가 더 컸을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설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지도가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317쪽)’라는 제작진의 설명을 읽으면서 최근 구글이 우리나라 지도데이터의 국외반출을 요구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꾼 2016-12-1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매우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처음처럼 2016-12-16 00: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