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아프리카 - 아프리카에 두고 온 서른한 살
정은선 지음 / 이가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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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가물가물하게 먼 초원에서 한 떼의 야생동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지평선으로 태양이 장엄하게 지는 모습 등이 떠오릅니다. 아프리카여행에 다녀오면 어떤 느낌이 남을까하는 생각을 하던 참에 만난 <우먼 인 아프리카>입니다.


서른한 살이 되던 해 자유여행으로 아프리카를 다녀온 직장여성의 여행기입니다. 서른한 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마침 아프리카를 다녀온 나이가 그래서였다고 이해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보고 겪은 다양한 느낌들을, 한국에서 영화 마케터로 일하면서 느끼는 점과 연결하고 있는데, 독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연풍광에 대한 느낌보다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판에서 겪은 일들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독특한 자연을 보고 느낀 저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좋은 사진이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책의 구성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30일 동안의 여정을 3등분으로 나누었는데, 그녀의 아프리카 여행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까지의 트럭을 타고 가는 가이드투어와 빅토리아에서 해산한 다음 탄자니아로 가서 킬리만자로를 구경하는 자유여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트럭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은 국적과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던가 봅니다. 독일인 노부부, 미국인 여자 친구 둘, 영국인 남자 친구 둘, 네덜란드 여자, 프랑스의 이모와 조카, 체코의 약혼자커플 등 22명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에 이들이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다가 저녁에는 2인용 텐트에서 잠을 자는데, 짝을 이루거나 아니면 혼자서 자게 되는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20여일을 같이 움직이다보니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짝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일탈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단체여행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해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아마 저자도 조금은 그런 성향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행하면서 매일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낸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을 것임에도 저자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나태, 질서, 예감, 선입견, 내숭, 짜증, 열등의식, 예민, 옛사랑, 충동, 주정, 착각, 본능, 자만, 집착, 절망, 스트레스, 상실감, 부주의, 외로움, 영웅심, 이기주의 등, 어쩌면 살면서 버리거나 넘어서야 할 것들을 아프리카여행에서 다시 발견하였던 것이고, 그날의 주제를 풀어놓은 끝에는 주제와 관련하여 30대에 버려야 할 것들을 세 가지 정도씩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버려야 할 ‘착각’에 관한 팁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괜찮은 남자가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접근하면 일단 의심부터 해라! 그는 유부남 아니면 게이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읽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다보면 이처럼 뭔가 흐름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구석도 없지는 않습니다.


또한 초행길에서 지나치게 용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보안이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는 조심에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인데 말입니다. 물론 용감한 행동 끝에 피해를 당했다고 적은 것은 읽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그런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옳은 일 같습니다.


예약한 아프리카여행에서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다는 탄자니아의 아루샤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저자의 여행길을 따라가 보니 킬리만자로를 제대로 느끼려면 모시로 가야하지 아루샤는 별 볼일이 없다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니셜을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영화판의 뒷이야기도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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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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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중단편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는 1세기 전 유럽사회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표제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등 8편의 중편과 단편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 작품들을 통하여 ‘예술가와 시민, 예술과 견실한 삶, 정신과 자연의 갈등과 조화라고 하는 토마스 만의 주제 의식이 더욱 깊어져 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라고 출판사에서는 안내합니다.


이런 설명은 첫 작품「글라디우스 데이」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뮌헨의 한 화랑에 걸려 대중의 화제가 되고있는 마돈나의 그림이 허접한 것이라고 믿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중세 네덜란드의 화가)를 등장시켜 그 그림을 내치라고 요구합니다.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그는 “예술이란 존재의 깊디깊은 곳까지, 수치스럽고 비탄에 가득 찬 존재의 심연까지 속속들이 자비롭게 불 밝혀 주는 성스러운 횃불입니다. 예술이란 구원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활활 타오르다가 온갖 치욕과 가책과 함께 사르라지기 위해 세상에 지펴지는 성스러운 불입니다!(24쪽)”라고 말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빗거리가 되었던 패러디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신의 검이라는 의미의 ‘글라디우스 데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보탄의 검 노퉁을 말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아인프리트 요양원에 입원한 여자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트리스탄」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바그너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당시 유럽사회에서 유행하던 요양병원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토니오 크뢰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보았습니다만, 당시에도 국가간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덴마크 등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간을 여행하면서도 여권을 소지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그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함부르크에서 덴마크로 가는 뱃길의 분위기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바다는 불꽃 모양의 뽀죡하고 거대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솟아올랐다가, 거품으로 가득한 깊은 골짜기들 옆에 어디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톱니 모양의 형상들을 치솟게 했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두 팔을 휘둘러 미친 듯 날뛰며 물거품을 사방ㅇ로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배는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위아래로 마구 흔들거리고 요동치며 신음소리를 토하면서 배는 광란의 바다를 뚫고 나아갔다.(149쪽)”


토마스 만은 1905년과 1911년 두 차례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베네치아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느낌을 「베네치아의 죽음」에 담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죽음」의 주인공 아센바흐는 건실한 독일계 아버지와 보헤미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느날 베네치아로의 여행, 즉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죽음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곤돌라와 사공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건네주는 뱃사공 카론을 은유합니다. 또한 그가 뒤쫓는 미소년 타치오는 바로 ‘죽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처음 타보거나 오랜만에 다시 타보는 경우 일시적인 전율, 은밀한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담대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담시(譚詩)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하나도 변치 않고 그대로 전해 내려온 이 이상한 배는 다른 물건들하고 있으면 그냥 관처럼 보일 정도로 색깔이 너무도 특이하게 까맣다. 그것은 물이 찰싹거리는 밤에 소리 없어 지질러지는 범죄적인 모험을 생각나게 할뿐더러, 더욱이 죽음 그 자체, 관대(棺臺)와 음울한 장례식, 말없이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생각나게 해준다.(249쪽)”


한편 아센바흐가 느낀 베네치아 골목의 분위기는 작중에서 벌어지는 콜레라의 유행, 즉 죽음의 전조를 시사하는 듯합니다. “골목마다 역겨울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공기가 너무 텁텁해서 가정집이나 가게와 음식점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들과 끈적끈적한 증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향수냄새와 그밖의 많은 다른 냄새들이 자욱하게 떠돌면서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담배 연기도 제자리에 맴돌며 금방 날아가지 않았다.(265쪽)” 만은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모습을 지나치게 괴기하게 그려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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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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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를 종영 후에 묶음으로 된 재방송을 보면서도 본방 때의 느낌이 오롯하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묵직함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완급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보면서 상당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이야기로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철학하시는 분들이 드라마를 재해석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던지 로지 잭슨이 쓴 <환상성>을 보는 순간 선뜻 집어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환상문학의 흐름이나 의미 등을 정신분석학이나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 환상문학을 읽을 때는 가벼운 기분으로 후딱 읽어치운다는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환상문학의 흐름이나 의미 등을 정신분석학이나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 환상문학을 읽을 때는 가벼운 기분으로 후딱 읽어치운다는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환상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토도로프의 환상문학론을 바탕으로 하여 환상문학의 형식과 특징, 기본적인 요소들, 구조 등을 뜯어보면서 환상을 주제로 한 책이 하나의 문학적 양식을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정리하였습니다. 제2부는 일종의 각론이라고 하겠는데, 환상문학작품들을 인용하여 환상문학의 계보와 스펙트럼을 제시하였습니다. 잭슨은 환상문학을 네 개의 범주로 구분하였는데, 19세기의 전형적인 환상담론인 ‘고딕 이야기’, 사실주의 소설 속에 고딕 시퀀스를 배합하여 현실성을 가미한 ‘환상적 리얼리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낸 ‘빅토리아 시대의 환상물’, 카프카의 <변신>으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최근의 환상물’ 등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환상문학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환상문학의 뿌리가 꽤나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읽은 고전 작품들도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작품들의 내용을 인용하여 논지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금세 와닿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모두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서문의 첫구절, ‘문학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환상성은 거대하고 유혹적인 주제이다’라고 적은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환상이 인간의 욕망을 대리만족 시켜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자는 환상이 욕망을 표현하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환상은 욕망에 관하여 말하거나 명시하거나 보여줄 수 있으며, 역망이 문학적 질서와 연속성을 위협하는 하나의 장애요소일 경우에 그 욕망을 추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도로프가 주장하는 환상성의 세 가지 조건을 인용합니다. 첫째, 텍스트는 독자가 인물들의 세계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여기도록 하고, 기술된 사건들에 대해 자연적인 설명과 초자연적인 설명 사이에서 머뭇거리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머뭇거림은 또한 인물에 의해 경험될 수 있다. 그래서 독자의 역할은 한 인물에게 위탁된다. (…) 머뭇거림은 재현되고, 그것은 작품의 주제들 중 하나가 된다. 셋째, 독자는 그 텍스트에 관하여 어떤 특정한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그는 ‘시적인’ 해석뿐만 아니라 알레고리적인 해석도 거부하게 될 것이다.(43쪽)


옮긴이가 해제에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수주의적 시각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전제하고 있어서 그렇게 쉽게 읽히는 이론서는 아니다(245쪽)”라고 적은 것처럼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할 때는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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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외 옮김 / 북피아(여강)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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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라는 부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에서 원인(原人)이 출현했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대륙을 무대로 활동한 인류역사를 망라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초기 인류의 흔적으로부터 근세 이전까지의 역사는 기록이 풍부하지 못한 까닭에 소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근세 이후의 아프리카대륙의 문제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던 식민지화 과정을 비롯하여 식량생산의 근원과 아프리카의 언어 형성 등 다양한 분야가 주제별로 분석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아프리카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런던 대학 아프리카사학과의 롤랜드 올리버 명예교수입니다. 아프리카대륙의 국가명이나 도시이름들이 40년전에 배웠던 것과 많이 달라졌을 뿐 더러 아프리카어에서 유래한 것들의 경우 읽기도 쉽지 않지만, 주제에 따른 지도와 아프리카대륙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사진자료 역시 풍부하게 곁들이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두 21개의 장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의 제1장 ‘에덴’은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로부터 진화되어 나온 흔적이 있는 곳, 즉 에덴동산을 소개합니다. 지도를 보니 에티오피아에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연결하는 선상에 해발 1000m이상의 고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호미니드(hominids)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고인류는 4백만년 전에서 150만년 전까지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에티오피아와 트란스발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고인류가 사용하던 석기들을 소개합니다. 제2장 ‘에덴으로부터의 탈출’에서는 고고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하여 고인류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확산되었는가를 짚고 있습니다. 제3장 ‘대지의 열매’에서는 현생인류의 출현과 농경, 목축의 시작을 추적하였는데, 남아프리카의 케이프지역에서는 10만년도 훨씬 전에 현생인류가 나타났고, 이는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한 것보다 빠르다고 합니다.


초기 인류는 채집과 사냥에 의존하다가 9천년전 무렵 곡물의 경작과, 돼지, 양, 소들이 사육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나일강의 풍부한 충적대지에서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이집트지역이 빠르게 발전을 시작하여 6천년전 무렵 최초로 농경이 완전히 확립된 지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4장에서는 아프리카부족들의 언어를 분석하여 아프리카언어의 갈래를 구분하였습니다. 이는 언어적 증거를 바탕으로 언어사용 집단의 번성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입니다. 제5에서는 이집트왕국의 형성과 성장과정을 요약하고, 제6장에서는 아프리카 제철기술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청동기문화를 건너뛰어 석기에서 철기문화로 바로 이행하였다고 합니다. 제7장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아프리카대륙에서 어떤 경로로 전파되고 확산되었는가를 정리합니다. 제8장은 도시의 형성과 이에 따른 교역, 전쟁 그리고 노예제도의 등장 등을 다루었습니다. 사실 노예제도는 부족간의 전쟁이 낳은 부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대륙에 등장하면서 노예무역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유럽이나 아시아대륙과는 달리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이집트왕국을 제외하고는 부족들을 통합한 대규모의 왕국이 성립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유목을 주로 하는 부족과 농경을 주로 하는 부족들 사이의 충돌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승리한 부족이 패배한 부족을 통합하여 지배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나 아이들은 붙잡아다 노예로 팔았을까요?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열강들의 아프리카 침략과 식민지배를 거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아프리카대륙이 독립을 이루었지만, 독립 전후의 국내외 정세 때문에 아프리카 제국들은 대체로 독재자들이 들어서면서 악순환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였던 것입니다.


결국 아프리카의 현실은 다양한 부족들을 포괄하는 정치체계가 일찍 자리 잡지 못했던 내부적 요인과 유럽열강의 식민지배와 국제정세 등 외부적 요인에 열악한 자연환경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비극이지만, 풍부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대륙이라고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과 유종현 옮김

440쪽

2001년 5월 31일

여강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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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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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 의미, 특히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얻는다’라는 요약에 끌려 읽기는 했습니다만, 읽는 내내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하였지만, 읽기를 마친 다음에는 막상 손에 남는 것이 없어 당황스러웠던 책읽기였습니다. 역시 철학은 넘사벽인가 봅니다.


인간의 주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현대철학의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라고 옮긴이는 첫 마디에 적었습니다. 레비나스 이전까지의 서양철학은 타자에 대하여 체질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자아중심적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타자를 자아로 환원하거나 동화하고자 했고, 그 결과 전제주의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자와 함께 하는 ‘타자성의 철학’ 또는 평화의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는 평가입니다.


<시간과 타자>는 1946~47년 사이에 파리의 카르티에 라탱에 있는 장 발의 ‘철학학교’에서 행하였던 네 차례의 강의를 묶었던 것을 30년이 지난 1979년에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저자는 시간을 존재자의 존재라는 존재론적 지평이 아니라 존재 저편의 방식으로, 즉 타자에 대한 사유의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타자는 다른 이가 될 수도 있고, 초월자 혹은 무한자로 이해될 수도 있는 듯했습니다.


제1강의 강의주제에 관하여 저자는 ‘시간은 주체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사실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자체임을 보여주고자 한다(29쪽)’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존재의 고독, 존재자 없는 존재, 고독과 홀로서기 등을 말합니다. 신에 이르기 위하여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실제로 이런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같습니다. 불안을 무의 경험으로 본 하이데거를 인용한 저자는 ‘만일 죽음이 무라면 죽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이 아닐까?(45쪽)’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무로 돌아갈 운명을 가진 도깨비가 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한다는 모순을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제2강에서는 홀로서기의 과정에서 부디쳐야 하는 고독의 물질성에 관한 사유가 이어집니다. 고독은 물질로 가득 한 일상적 삶의 동반자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일상적 삶의 물질성을 극복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상들과 거리를 두는 홀로서기를 통하여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지배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제3강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뛰어넘어 객체를 장악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분석 명제를 제시합니다. ‘노동에서, 즉 그의 노력,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 주체는 한 존재자의 자유 속에 함축되어 있는 존재의 무게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74쪽)’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국에 닥쳐올 ‘죽음’에 대하여 고민하게 됩니다. 죽음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미래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공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고독을 더욱 팽팽하게 지탱하고 죽음에 직면해서 설 수 있는 존재만이 타자와의 관계가 가능한 영역에 자신을 세울 수 있다(85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제4강에서는 죽음에 직면해서 자아는 절데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죽음이란 사건의 타자성과 더불어 인격적이어야 할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타자와의 관계가 어떤 형식으로 주어졌는가를 탐구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타인을 나와 맞서있는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타자성을 절대적으로 근원적인 관계인 에로스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통하여 아들의 개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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