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존재 의미, 특히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얻는다’라는 요약에 끌려 읽기는 했습니다만, 읽는 내내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하였지만, 읽기를 마친 다음에는 막상 손에 남는 것이 없어 당황스러웠던 책읽기였습니다. 역시 철학은 넘사벽인가 봅니다.


인간의 주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현대철학의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라고 옮긴이는 첫 마디에 적었습니다. 레비나스 이전까지의 서양철학은 타자에 대하여 체질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자아중심적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타자를 자아로 환원하거나 동화하고자 했고, 그 결과 전제주의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자와 함께 하는 ‘타자성의 철학’ 또는 평화의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는 평가입니다.


<시간과 타자>는 1946~47년 사이에 파리의 카르티에 라탱에 있는 장 발의 ‘철학학교’에서 행하였던 네 차례의 강의를 묶었던 것을 30년이 지난 1979년에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저자는 시간을 존재자의 존재라는 존재론적 지평이 아니라 존재 저편의 방식으로, 즉 타자에 대한 사유의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타자는 다른 이가 될 수도 있고, 초월자 혹은 무한자로 이해될 수도 있는 듯했습니다.


제1강의 강의주제에 관하여 저자는 ‘시간은 주체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사실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자체임을 보여주고자 한다(29쪽)’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존재의 고독, 존재자 없는 존재, 고독과 홀로서기 등을 말합니다. 신에 이르기 위하여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실제로 이런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같습니다. 불안을 무의 경험으로 본 하이데거를 인용한 저자는 ‘만일 죽음이 무라면 죽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이 아닐까?(45쪽)’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무로 돌아갈 운명을 가진 도깨비가 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한다는 모순을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제2강에서는 홀로서기의 과정에서 부디쳐야 하는 고독의 물질성에 관한 사유가 이어집니다. 고독은 물질로 가득 한 일상적 삶의 동반자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일상적 삶의 물질성을 극복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상들과 거리를 두는 홀로서기를 통하여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지배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제3강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뛰어넘어 객체를 장악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분석 명제를 제시합니다. ‘노동에서, 즉 그의 노력,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 주체는 한 존재자의 자유 속에 함축되어 있는 존재의 무게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74쪽)’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국에 닥쳐올 ‘죽음’에 대하여 고민하게 됩니다. 죽음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미래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공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고독을 더욱 팽팽하게 지탱하고 죽음에 직면해서 설 수 있는 존재만이 타자와의 관계가 가능한 영역에 자신을 세울 수 있다(85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제4강에서는 죽음에 직면해서 자아는 절데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죽음이란 사건의 타자성과 더불어 인격적이어야 할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타자와의 관계가 어떤 형식으로 주어졌는가를 탐구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타인을 나와 맞서있는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타자성을 절대적으로 근원적인 관계인 에로스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통하여 아들의 개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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