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를? 왜? - 요즘 것들을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이형관.문현경 지음 / 한빛비즈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여러 가지 이유로 흥미 있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치를? 왜?>라는 제목부터가 눈길을 끕니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대한민국의 백성 누구나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것인데, 마치 외계어를 대하듯 ‘정치’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것들을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이라는 부제는 마치 정치에 무관심한 집단이 있고 그들을 훈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것들’이라고 한 것은 보면 젊은이들을 위하여 정치가 무엇인지 설명해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의 첫머리가 “대한민국의 청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신분 중 하나는 ‘취업준비생’이다.”라고 시작하는 것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정치에는 관심을 둘 틈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들 역시 취업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어 한이 쌓였던 모양입니다. 어떻든 그 과정 가운데 ‘탈락자에게는 통보조차 하지 않아 발표가 난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지원자도 있었다’라는 대목에서는 동병상련하는 입장이라서인지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가하면 ‘정치에 실망했거나 신뢰하지 않는, 혹은 무관심한 우리 세대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역시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 맞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치에 실망했거나 신뢰하지 않는‘ 세대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장년들이 아닌가 싶은 시절 같습니다. 삽화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그려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본론에 들어가면 정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들을 객관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크게 다섯 개로 나뉜 글을 투표, 국회의원, 대통령,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을 주제로 합니다. 간혹 편향된 시각을 들어내는 듯한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뽑은 제8대 대통령선거가 민주 선거가 아니라는 대목에서 ‘매수된’이라고 잘라 말한 대목이 그렇습니다. 그 또한 당시의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는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우리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는 점과 그들이 ‘매수되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의 분석과 관련해서도 2012년 대선이 ‘계급 배반 투표’의 전형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역대 선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여촌야도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느낌입니다. 일단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크게 뒤흔든 사건의 벌써 세 차례나 생겼다는 점입니다. 정권이 바뀌는 선거혁명이 세 차례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우리나라 백성들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성숙했다고 보이는 대목입니다. 물론 촛불이 정의인 것처럼 예단하는 것은 옳은 시각은 아닙니다. 촛불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는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재평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적어도 2008년의 촛불시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근거에 바탕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투표라는 과정을 통하여 뽑은 정권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점점 커진 왜곡된 행위가 아니었나하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도는 드디어 박근혜정권을 전복하는데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앞으로가 더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우려한 듯, ‘민주주의도 (…) 막역한 정서를 자극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다. 이는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막역한’은 맥락으로 보아서는 ‘막연한’이 옳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세력에 대한 편견의 편린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듯합니다. 박근혜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하였지만, 그보다 더한 경우는 과연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든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전제가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이 있는 옛이야기 1
강대진 지음 / 지식서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용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신화의 맥락 전체를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래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등장인물의 특징을 간략하게 인용하거나, 혹은 짤막하게 비유하는 경우에는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http://blog.joins.com/yang412/13345207>를 비롯하여 단테의 <신곡>, 그밖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간추린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어왔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점이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신화를 전공하시는 강대진교수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게 된 것도 혼란을 정리해보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신화를 가르치는 교재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꾸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리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 남는 것 같습니다.


머리말에서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 꼽으면 그리스 신화가 가장 오래된 저본인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재해석되어 왔는지 비교하고 있다는 점, 신화를 바탕으로 한 미술, 조각, 도기 작품이 삽화로 아주 많이 소개된 점, 성경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다른 문화권의 신화나 전설과 그리스 신화를 비교하고 있는 점 등이 되겠습니다. ‘그림이 있는 옛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로 이 책이 나왔고, <북유럽 신화>가 다음번 기획인 것을 보면, 그림을 많이 넣은 것이 이 책을 기획하면서 주안점으로 삼은 듯합니다. 삽화에서도 신화의 내용을 인용한 설명을 붙여놓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시작부터 로마제국의 건설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로마신화는 대부분이 그리스신화를 로마식으로 바꾸어놓은데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자는 책의 얼개를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트로이아전쟁과 귀향, 그리고 로마인들이 들려준 이야기 등 4개의 범주로 묶은 16개의 이야기로 나누었습니다. 한 학기 16주에 다루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대학교재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이미 다른 책을 읽어 알고 있는지라 읽는데 어려움이라고는 새로운 표기법으로 적은 이름이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든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서술이 평이하다는 점입니다. 제우스가 어머니 레아의 변심으로 살아남아 아버지 크로노스에 반기를 드는 과정의 시작을 구토사건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점, 제우스 형제들과 크로노스 등 아버지 세대의 티탄과의 전쟁을 세대간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점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거나 미처 모르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된 대목도 있습니다. 제우스와 정을 통했다가 헤라의 분노를 사서 고생하던 이오가 도망쳤다는 보스포로스 해협이 이스탄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반도와 그 동쪽의 땅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계에서 가장 큰 목성의 이름이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 주피터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62개나 된다는 목성의 위성 가운데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등 가장 큰 네 개의 이름은 제우스의 애인이라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네 개의 위성은 모두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1610년에 자신이 개량한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했다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래서 이 네 위성을 ‘갈릴레오 위성’이라고 한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네 위성의 이름을 붙인 것은 갈릴레오가 아니라 같은 시기에 이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시몬 마리우스라고 합니다. 갈릴레오는 그저 목성I(이오), 목성II(유로파), 목성III(가니메데), 목성IV(칼리스토)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혼의 물리학 - 죽음을 치유하는 의학
아미트 고스와미 지음, 최경규 옮김 / 북랩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소멸을 의미하는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실은 현세에 최선을 다한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하여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 영혼이 죽음의 세계와 현세를 오가는, 즉 윤회의 매개체로 삼았고, 궁극적으로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낸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은 다양한 형태의 종교로 귀착되어왔던 것 같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천지창조를 비롯해서 종교적 관점에서 설명하던 것들이 하나 둘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적 발견들을 종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 또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혼의 물리학>은 영혼의 존재와 윤회의 개념을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생존과 윤회에 관한 양자 모델에 관해 정확한 경험적인 증거들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실험적 증거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영매가 죽은 사람과 소통하는 기전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지만, 소통과정은 양자물리학적 실험으로 입증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윤회의 사례로 티베트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영적 지도자의 환생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러한 일이 일반화되지 않은 현상이라면 과학적으로 입증가능한 일은 아닐 듯합니다.


물론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개별 원소들이 어떻게 모여 구성되는지 밝혀졌고, 사후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완전히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가 재활용된다는 사실까지도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대로 원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되는 소립자가 생명체의 구성과 전후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밝혀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그야말로 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옳다는 것이 입증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해답을 양자물리학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바로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로 만들어진 <티베트 사자의 서>에 담긴 아이디어를 현대의 양자물리학으로 통합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쓴 <양자의사; http://blog.joins.com/yang412/15233353>를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과 연결하여 보면 아직도 설명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물리학 자체에 미해결된 전제가 남아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재활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윤회’라는 개념의 기본틀은 틀린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윤회의 완성은 한 생명체가 존재하면서 얻은 경험이 다음 생으로 이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생명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전의 경험, 즉 기억이 다음 생으로 이전(移轉)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면 먼저 기억이 형성되는 기전과 그 기억이 누군가 다른 존재, 현생이 되었건 아니면 세대를 뛰어넘은 존재로던 간에 이전(移轉)돌 수 있다는 것이 설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형성 기전마저도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근사체험을 통하여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려는 경험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근사체험을 신경생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실험적 가설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고 하겠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바이나 밝혀진 것이 많지 않아 더욱 호기심을 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현세를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양자물리학이라고 하는 현대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큼은 열어두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의사
아미트 고스와미 지음, 최경규 옮김 / 북랩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하는 일이 점점 분업화되다보니 의사라는 직업도 자꾸 나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부대장 관사에서 키우는 애완견을 돌보아야했다고 푸념하는 군의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옛날에는 의원이 병든 동물을 돌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수의학이 독립했고, 요즈음은 수의사에서 수산동물관리사라는 일종의 어의사가 전문화되는 추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추세는 그렇다고 쳐도 <양자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직업인 듯 싶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저와 같이 근무하시는데, 대학에 계실 때 안식년을 인도에서 요가를 미얀마에서 명상을 수련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에 계실 때 인연으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신 듯합니다. ‘양자물리학자가 설명하는 종합의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학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전한 삶>을 쓴 하버드의대 출신 의사이자 작가인 디펙 초프라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 인도 사상과 현대 물리학의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마음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이론을 세울 필요를 충족시켜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주류의학, 즉 현대의학은 시술과정이 너무 침습적이고 위험한 부작용이 많고, 특히 만성이나 퇴행성 질환에 대한 치료모델이 아직 없으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지적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러 다른 철학에 바탕을 둔 많은 대체의학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체의학이란 인도나 중국의 전통의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현대의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근거중심의 치료를 수행합니다. 전통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전통의학은 저자의 논리대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 아직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학의 치료효과는 분명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의 정신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양자물리학자인 저자는 양자의학이야말로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하나로 묶어 통합의학의 이론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을 <양자의학>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현대의학에 대한 이론보다는 전통의학에 주장하는 것들을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양자물리학이 어렵기는 합니다만, 슈뢰딩거, 하이젠베르그 등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 기본 이론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백과에 정리된 양자물리학의 설명을 보면,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으로 ‘프랑크와 보어의 초기 양자역학은 전자의 궤도가 점프하는 현상을 강조한 반면 후기의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전자의 위치가 확률적 분포로 밖에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형식은 성립되었어도, 그 물리적 해석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뉴턴의 고전물리학은 끝났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싶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전통의학을 양자물리학이라는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하려다보니 구체적이지 못하고 역시 추정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노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이 책의 1부는 종합의학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고, 2부는 대체의학에 머물고 있는 인도의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와 차크라, 중국의 전통의학 그리고 동종요법을 다루었습니다. 3부는 심신의학을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4부는 영적치유를 역시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한 때는 걷기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시내 혹은 근교에 있는 걷기 좋은 곳을 찾아 걷고는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걷기와 철학하기를 하나로 묶은 로제 폴 드루아교수의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에 예사롭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프랑스 국제철학학교의 로제 폴 드루아 교수님은 이미 세 번이나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익숙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가 쓴 <처음 시작하는 철학; http://blog.joins.com/yang412/13199292>과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http://blog.joins.com/yang412/13228271>은 특히 저처럼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을 위해서 좋은 안내서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 나온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일상에서 철학하기; http://blog.joins.com/yang412/12905092>와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을 잘 조합한 기획이라는 생각입니다. <일상에서 철학하기>에서처럼 저자는 철학의 걷기라는 일상의 삶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학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말하기와 생각하기를 걷기와 연결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라고 한다면 ‘걷기’는 ‘앞으로 나아가기’라는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은 걷기와 말하기와 생각하기의 관계를 둘러싸고 구성되었다”라고 하면서도 “이 세 가지가 하나의 동일한 활동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21쪽)”라고 한발 물러서기도 합니다.


저자는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걷기와 연결합니다. 산책이라는 큰 틀을 두고 첫 번째는 엠페도클레스, 프로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론, 디오게네스, 세네카, 아폴로니오스 등 여덟명의 서양의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두 번째는 붓다, 노자, 공자, 힐렐, 샹카라, 밀라레파 등 고대 중국과 유대, 흰두, 티베트의 현인들의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특히 저자가 철학을 공부할 무렵까지만 해도 유럽사회는 철학이 서양만이 가지는 고유한 활동으로 믿었다는 고백을 곁들이면서 이를 체계화하기 위하여 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3H를 동원하여 철학은 ‘오로지 그리스인들에게서만’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럽인들의 편견이었고, 동양에서의 철학은 분명 독특한 점이 있어 배울만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오컴의 윌리엄, 몽테뉴, 데카르트, 디드로, 루소, 칸트, 헤겔 등 근대 유럽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쾨로시 초머 샨도르, 마르크스, 소로, 키에르케고르,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 현대의 철학자들을 꼽았습니다.


물론 모든 철학자들이 걷기를 즐겨한 것은 아닙니다. 저자 역시 노자는 걷기보다는 소나 당나귀를 타곤했다면서 ‘노자는 걷는 것이 아니라 노자와 함께 세상이 걷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프로타고라스의 걷기는 그저 왕복운동에 불과할 뿐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역시 철학은 진리를 향한 걷기이기 때문에 실재적이고, 결연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걷기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세네카의 걷기에서 걷기와 생각하기의 관계를 짚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듯이 걷고, 걷듯이 생각한다’라는 알쏭달쏭한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그 점이 못내 걸렸던지 두 번째 산책이 끝난 뒤에 쉬어갈 겸해서 끼워넣은 간주곡에서 생각하기와 걷기와의 관계를 다시 짚었습니다. 저자 역시 걷기와 생각하기 사이에 인과관계 같은 즉각적인 관계,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하고 하였습니다. 즉 ‘나는 걷는다. 고로 생각한다’와 같은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의 차원을 떠나 철학적 생각과 고유의 방식으로 바라보면, 걷기와 생각하기의 닮은 점이 분명해진다고 합니다. 즉, ‘서서하는 사유, 뭄을 일으킨 사유로서 철학은 미미한 사물들, 비천하고 경멸할 만한 사물들에 몰두해 거기서 절대와 지속적인 진리의 단편을 찾을 수도 있다.(105쪽)’는 것입니다. 그의 전작 <일상에서 철학하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점입니다. ‘잘 생각한다는 건 철학적 사유를 걷게 하는 것이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걷기는 사실 나아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철학자로 걸으면서 누군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을 철학자는 생각하며 말한다’고 합니다. 결국 걷기, 생각하기, 말하기, 등 세가지 요소는 철학하기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