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로 가는 길 - 한태규의 그리스 문화 기행
한태규 지음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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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테네로 가는 길>은 2001년 그리스 대사를 지낸 한태규대사님이 정리한 그리스의 역사, 신화, 철학, 정치 등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리스 연극과 구전설화를 다루고 있으니 문학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건축과 예술을 따라 구성하지 않고 삽화 등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임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소개하고 있어 그리스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세계경영에 나섰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리스에 통일국가가 성립된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사람들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그리스 주변 국가들의 민족 역시 변화가 있었으므로 도시국가들이 산재해있었기 때문에 고대에는 정확하게 어디까지가 그리스였는지 분명치는 않는 듯합니다. 대체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그리스와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보이는 소아시아지역까지도 그리스 문명의 영향권에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정 국가의 모든 것을 한권의 책에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따라서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다 보면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는 다른 민족에 비하여 신화가 풍성하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화가 인류의 등장 혹은 건국과 관련된 내용인데 반하여 그리스의 경우는 신들 사이의 전쟁, 신과 인간들 사이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 사고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시국가, 혹은 부족국가 시기에 지역을 다스리던 계급과 일반 백성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신과 인간 사이의 일로 미화하여 전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가운데 제우스신은 가장 강력한 집단의 수장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끔은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문화유산이 이스탄불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를 오스만제국이 약탈했다고 보았지만, 사실은 동로마제국 시절에 가져다 놓은 것이 더 많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리스의 신전에서 가져온 석재로 이슬람 사원을 짓기도 했다하니 유적을 파괴한 바가 없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스의 역사를 통하여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곳곳에 적고 있습니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긴 전쟁이 끝난 뒤, 민주주의에 기반한 아테네의 정치구조가 30인의 과두정치체제로 개편되었는데, 당시 새 지도자들은 다수의 민주세력들을 살해하고 탄압했다고 합니다. 결국 8개월만에 민주파의 반격으로 과두지배체제가 무너졌다. 복귀한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과두제 지도자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는 관용을 보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두제 지도자 크리티아스의 묘석에는 “짧은 기간이나마 아테네 군중의 오만을 통제한 탁월한 지도자를 기념하여(158쪽)”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뒤에 과두제 지도자와 친분이 있던 소크라테스를 고소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아니토스는 민주주의 지도자였다고 하니,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보였다는 관용도 경우에 따라 달랐던 모양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전하는 신화를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신화 가운데 비도덕적인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안된다고 했고, 플라톤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지금의 윤리적 관점으로 보아도 황당무계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신의 뜻으로 예정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내용도 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때문인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를 꽃피운 찬란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노예’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라는 나라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곳을 정복한 로마사람들이라고 하니, 이 나라 사람들에게 맞는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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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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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특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이 각각 다른 3가지의 이야기를 옵니버스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장소와 ‘침팬지’가 연결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바탕에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회의가 깔려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3가지 이야기는 각각 시기도 각각 다른데, 첫 번째 이야기는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1939년 높은 산 지역에 가까운 브라간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모두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합니다. 사실 높은 산이라고 하는 지역은 말과는 달리 고산준령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라 드문드문 바위가 흩어져 있는 사바나 지역으로 어중간한 높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세 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각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하여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토마스는 아내와 아들을 급성전염병으로 잃었고,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병리의사 에우제비오 역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상심한 상황인데, 높은 산 지역에 사는 노부인이 모셔온 그녀의 남편을 부검하게 됩니다. 노부인은 토마스의 차에 치여 아들을 잃었고, 이어서 남편까지도 잃어 역시 상심하고 있었는데, 부검으로 연 남편의 몸에 자신의 몸을 가두어 달라고 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높은 산 지역에 살다가 캐나다로 이주한 포르투갈 사람의 후손인 상원의원 피터 토비입니다. 역시 아내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다가 오클라호마에 있는 영장류연구센터를 방문했다가 만난 침팬지에 마음이 끌려 사들인 다음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 지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부에서 등장한 노부인과 가까운 친척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옴니버스형식을 빌은 듯하지만,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며, 일종의 환상적인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옮긴이의 설명에 의하면,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실과 애도 그리고 이에 따른 고독이 주제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종교적 믿음의 실체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전공이 병리학이며 한 때 법의부검을 맡아 한 적도 있어서 2부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모든 시신은 들려줄 사연이 담긴 책이다. 각각의 장기는 소단원, 소단원들은 공통적인 서술로 어우러진다. 외과용 메스로 페이지를 넘기며 사연을 읽고, 마지막에 독후감을 쓰는 게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의 임무다.(165쪽)” 법의관의 소명을 책읽기에 잘 비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에게 글쓰기는 육수를 우리는 일이고 독서는 육수를 마시는 일이며, 입 밖에 낸 말만이 푸짐한 닭구이다.”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서기 1세기부터 이교도 저자들은 수백가지의 문건을 남겼어여. 예수는 어느 문건에서도 언급되지 않아요. 당대의 어느 로마인도-관료, 장군, 행정가, 역사가, 철학가, 시인, 과학자, 상인, 어떤 부류의 작가도-그를 언급하지 않아요. 공적인 비문이다 현존하는 개인 서신들 어디에도 예수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없었어요. 게다가 그는 출생증명서도, 재판기록도, 사망증명서도 남기지 않았죠. 그가 사망하고 1세기 뒤에나-100년이 지나서!-이교도에 의해 단 두 차례 언급되었을 뿐이죠. 한 사람은 로마의 상원의원이자 작가인 소 플리니우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예요. 편지 한통과 몇 페이지-제국의 열정적인 관료들과 자부심 강한 행정가들에게 나온 언급은 그게 전부예요.(…) 인간 예수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전부 네 명의 우화작가에게서 나왔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이야기의 음유시인들이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이에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은 아니었죠.(185-186쪽)” 정말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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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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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여행했던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서 이 지역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많은 문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336525789). 그 중에는 동화 <피터 래빗 이야기>를 쓴 베아트릭스 포터가 있었습니다. 마침 도서관에 갔다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으니 당연히 읽기 위하여 빌어 왔습니다. 이 책을 쓴 수전 데니어는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잉글랜드 북부의 역사 유적 및 건축물을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장을 펼치고 ‘베아트릭스 포터가 사랑했던 시골집의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거주자들에게’라는 헌정사를 읽으면서 그녀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동참하면서 기여한 바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는 좋은 책읽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직물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가문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지만 몸이 약해서 주로 혼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각종 동물을 직접 기르면서 이들의 모습을 그려 나갔는데, 1893년 가정교사의 아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에 토끼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를 써보냈던 것이 <피터 래빗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처음 방문한 것은 1882년이라고 합니다. 가족들이 친척집들을 방문하여 여름을 보내곤 했는데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여러 번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작은 그림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1905년에는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의 물색에 나섰고,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니어 소리(Near Sawrey)의 힐탑에 34에이커의 땅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알고보 니 니어 소리는 우리가 배를 탔던 윈더미어 호숫가에 있는데 배를 타고 앰블사이드로 가면서 줄곧 바라보았던 밋밋한 언덕의 반대편에 있는 지역입니다. 니어 소리에 대한 그녀의 느낌은 “이곳은 내가 지내본 중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은 고장이고, 사람들도 너무나 친절하며 고풍스럽다(23쪽)”라는 것이었습니다. 4년 뒤에는 니어소리에서 호수 건너편의 캐슬 농장을 구입했습니다. 두 농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땅을 늘려갔는데 특히 호수지역의 개발을 둘러싸고 개발업자가 땅을 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나서서 땅을 사들였고, 결국에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헌납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망할 무렵 스무채의 집을 포함하여 4,049에이커의 땅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하였습니다.

존 러스킨 역시 코니스턴 워터 위쪽에 작고 오래된 농가를 구입했는데, 곧바로 웅장하게 증축하였다고 합니다. 베아트릭스 포터 역시 사들인 집을 끊임없이 개조하는 편이었습니다. 현지의 고용을 창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렵 러스킨도 동참했던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주로 작품활동과 관련하여 찾아 온 사람들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한 힐탑농장과 캐슬농장 모두에서 고가구를 비롯한 다양한 장식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베아트릭스가 남겨 놓은 집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장식물들을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집 내부는 물론 정원도 열심히 가꾸어 놓고, 그것들을 그려 두었다가 나중에 새로운 그림이야기에 사용한 듯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던 집들은 물론 그녀가 남긴 각종 기록과 그림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이 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은 맞습니다만 윌리엄 워즈워스나 존 러스킨과는 다소 다른 입장이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가 한창 필명을 날리던 1920년 무렵에는 힐탑과 케슬 코티지를 찾아오는 독자들 특히 미국인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만 이들은 그녀처럼 옛날의 추억과 시골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 낡은 농가주택, 외딴 언덕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지닌 가치를 높이 샀다는 점이 달랐던가 봅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진정 사랑했던 베아트릭스 포터가 지키려했던 것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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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 침대, 살충제 달걀, 발암 생리대, 미세먼지…

“온갖 화학물질의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법”

[책 소개]

전 식약청 독성부장이 말하는 유해물질의 모든 것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 일상은 유해물질로 뒤덮여 있다. 최근의 라돈 침대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심지어 잠들어서도 안심할 수 없다. 유해물질 사건이 터지면 국가 전체가 발칵 뒤집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구멍 뚫린 시스템은 재정비되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불안하다.

『우리 일상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의 저자 양기화 박사는 식약청 근무 시절에 국내 최초로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을 출범시킨 뒤 미국 「국가독성프로그램」과 상호 협력 제휴를 맺은 ‘유해물질 전문가’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에 국내 사회 문제가 되었던 라돈 침대, 살충제 달걀, 발암 생리대, 미세먼지, 중금속 화장품부터,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던 치약, 향수, 자외선차단제, 설탕과 소금, 진단방사선 피폭, 항생제 내성균, 그리고 부모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낳은 백신 문제까지 다룬다. 우선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유해물질의 정체를 설명해주며, 언론과 일반에서 제기한 의혹들을 되짚어보고 과학적 타당성을 따진 뒤에, 유해물질의 명과 암을 함께 소개해준다. 마지막에는 유해물질의 위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대처법까지 알려준다. 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콘텐츠 창작자금지원사업 선정작으로,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세부 내용]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유해물질 파동

2011년 4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2014년 2월 미세먼지 예경보제 실시, 2017년 7월 살충제 달걀 파동, 2017년 8월 발암 생리대 파동, 2018년 3월 유명 화장품 중금속 검출, 2018년 5월 라돈 침대와 대구 수돗물 파동, 2018년 7월 발사르탄 고혈압약 파동. 최근 10년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유해물질 사건 리스트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또 무엇이 터질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인들의 SNS 정보와 관계 기관의 발표 사이에 괴리가 큰 것도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특히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 일상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의 저자 양기화 박사는 그동안의 유해물질 파동이 때론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하기도 했고, 때론 예상보다 더 심각한 사태이기도 했다고 진단한다. 사건의 경중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위해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이런 혼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에 근거를 둔 바른 정보다. 바른 정보를 알아야 피할 것은 피하고,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을 줄일 수 있다.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화학물질의 두 얼굴

저자는 우선 과학적 근거에 따라,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유해물질의 정체를 밝혀낸다. 인류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유용한 화학물질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물질들 중 일부는 인간과 자연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그렇다고 화학물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치약, 화장품, 생리대, 매트리스, 식품 속 첨가물, GMO 식품, 대형 어류, 의료용 진단방사선, 항생제, 가전제품, 대기 중 먼지 등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것들을 나열해보면 알 수 있다. 생활용품부터 피부용품, 먹거리, 의약품, 환경까지, 우리의 생활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화학물질을 인간과 자연에 유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조절해서 사용하는 게 현명한 실천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성분과 유해성 여부, 안전한 용량 등을 미리 숙지하는 게 필요하다.

 

라돈 침대, 정말 라돈이 문제인가?

최근에 터진 라돈 침대 사태를 살펴보자. 라돈은 폐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자연 방사성물질(세계암연구소의 1군 인체발암물질)이다. 색도, 냄새도, 맛도 없는 기체다. 반감기(방사성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는 3.825일로 4일이 채 안 된다. 그런 물질이 매트리스에서 2,000Bq(베크렐) 나왔다면, 4일 전에는 4,000Bq, 8일 전에는 8,000Bq, 12일 전에는 1만 6,000Bq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보자가 매트리스를 구매했다던 7년 전에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쏟아져 나왔어야 하고, 그때 제보자는 이미 치명상을 입었어야 한다.

저자는 어쩌면 라돈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진짜 문제는 매트리스에 숨어 끊임없이 라돈을 만들어냈을지 모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물질이라는 것이다. 라돈을 끊임없이 방출해내는 물질로는 우라늄이나 라듐 등이 있는데, 우라늄의 반감기는 44.7억 년, 라듐의 반감기는 약 1,600년이다. 라돈 침대 사태는 사실 라돈보다 더 큰 문제를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백신 부작용, 피하는 게 답인가?

2018년 7월 중국에서 효과가 전혀 없는 백신이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인터넷 카페 모임인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예방접종에 대한 불신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MMR 백신 접종률이 1996년 92%에서 2003년 61%로 급락했고, 미국 배우 겸 모델인 제니 매카시는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낳는다는 책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2012~2016년 7월 사이에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된 예방접종 부작용은 1,268건으로, 이 가운데 사망 건이 26건이다. 예방접종 부작용에 대한 정보는 여러 언론 기사와 책, 인터넷 공간에 넘쳐 난다. 그렇다면 백신을 기피하는 게 답일까.

1970년 영국에서는 백신 부작용 논쟁이 확산되면서 백신 접종률이 80%에서 30%대로 떨어졌다. 이어서 유행한 백일해로 1978년에만 38명의 아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접종률이 높던 시기에는 발병도 적고 입원이나 사망 사례도 드물었던 것과는 비교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접종률이 높던 시기에는 연간 홍역 발생 건수가 100건 미만이었다가, 백신 기피 현상이 일어났던 2000년에는 32,647건, 2001년에는 20,060건이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저자는 백신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예방접종을 기피하다가는 더 큰 질병의 재앙이 덮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전염병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 백신이라는 것이다.

유해물질에 대처하기 위한 필독서

이 외도 이 책은 생활용품, 피부용품, 먹거리, 의약품, 환경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을 찾아내 그 정체를 밝히고,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지적하고, 유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처법에 대해 소개해준다. 그 대상은 라돈 침대, 살충제 달걀, 발암 생리대, 미세먼지, 중금속 화장품, 치약, 향수, 자외선차단제, 설탕과 소금, 진단방사선 피폭, 항생제 내성균, 백신 등이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부록에서는 해외 기관들의 발암물질 분류 기준표, 임산부와 노약자들을 위한 유해물질 대처법을 알려준다. 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콘텐츠 창작자금지원사업 선정작으로,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필독서다.

[관련 네이버 포스트] http://naver.me/GVYAoDaD

#0. 연재를 시작하며 (2018/9/17 월)

#1. 유해물질에서 안전한 치아 관리법 (9/22 토)

#2. 몸속을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 대처법 (9/24 월)

#3. 유해물질에서 안전한 자외선차단제 사용법 (9/26 수)

#4. 소금, 줄이는 것이 정답? (9/28 금)

#5. 수은 중독된 참치, 먹느냐 마느냐 (9/30 일)

#6. 백신 부작용, 예방접종 거부가 답인가? (10/2 화)

#7. 항생제 남용이 불러온 인류 멸망 시나리오 (10/4 목)

#8. 대기의 불청객, 미세먼지 대응법 (10/6 토)

#9. 라돈 침대, 진짜 문제는 라돈이 아니다? (10/8 월)

[책 속 한 구절]

화학물질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아수라와 같다.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아수라처럼, 제대로 사용하면 유용한 점이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얻은 물질이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화학물질 자체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최근에 와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학물질 공포증(케미컬 포비아chemical phobia)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화학물질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인간과 자연에 유해성이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조절해서 사용하는 게 현명한 실천 방법이다.     [들어가며]

과거에 새로운 기술과 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뒤늦게 확인한 사례가 적지 않다. 결국 해당 기술을 폐기하거나 심지어는 피해를 되돌리기 위하여 막대한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내분비계 장애 물질,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등이 대표적 사례다. … 개발에만 매몰되어 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나노물질판 『침묵의 봄』을 읽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본문 40쪽 / 49쪽]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을 출하한 대형 화장품회사에서는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을 통하여 안티몬이 몸 안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화장품을 한 달간 사용했을 때 제품에 포함된 안티몬이 몸 안으로 모두 흡수된다고 하더라도 “세계보건기구가 허용하는 1일 안티몬 기준치의 1/200 수준”이라는 주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의 허용 기준치는 피부만이 아니라 마시고, 먹고, 호흡하고, 바르는 모든 경로를 포함하여 안전하다고 추정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마시고, 먹고, 호흡에 관계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이 회사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보건기구의 허용 기준치를 넘어서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본문 84쪽]

한국 사람이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김치량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한국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전체 나트륨 중 12%가 김치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김치에는 문제의 나트륨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칼륨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칼륨은 신장에서 나트륨을 배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김치의 칼륨/나트륨 비율은 3:5로, 가공식품의 평균 1:5보다 칼륨 비율이 3배나 높다. 김치의 사례에서 보듯이 … ‘소금의 역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본문 147쪽]

다행히도 2018년 8월 23일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사육환경표시제를 의무 시행하면서 소비자들의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해졌다. … 이제는 사육 환경(1~4번)까지 구분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다. 1번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자유 방목을 한 ‘방사 사육’, 2번은 축산법이 정한 산란계 평사 기준 면적(㎡당 9마리)을 충족한 ‘축사 내 평사’, 3번은 기존보다 넓어진 닭장(마리당 0.075㎡)인 ‘개선된 케이지’, 4번은 기존 닭장(마리당 0.05㎡)을 그대로 유지한 ‘기존 케이지’를 가리킨다. … 2019년 2월 23일부터는 달걀에 산란일자도 표시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달걀 껍데기에 ‘0000XXXXX1’과 같이 표기될 것인데, 앞의 4자리가 산란일자, 다음 5자리가 생산자 고유번호(사업장 명칭과 소재지), 마지막 1자리가 사육 환경을 나타낸다. 식품안전나라(https://www.foodsafetykorea.go.kr, 위해ㆍ예방정보>달걀농장 정보)에 가서 생산자 고유번호를 검색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본문 190~191쪽]

[추천사]

가습기 살균제 집단 피해 사건 이후에 소비자들은 일상 생활 속 유해물질에 대한 조바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 라돈 침대 사건으로 소비자들은 더 ‘멘붕’ 상태다. 양기화 선생의 책은 시기적절하게도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유해물질을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하고도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김자혜(소비자시민모임 회장)

한국이, 지구가 앓고 있다. 물질문명 시대에 살면서 삶은 풍족해졌지만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유해물질 도전에 속수무책이다. 라돈 침대, 발암 생리대, 중금속 화장품, 살충제 달걀, 대구 수돗물 파동.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내 잠잠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반복되는지, 대안은 없는지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설파해줄 전문가가 절실했다. 의사로, 뇌 과학자로 정진해온 저자는 유해물질의 흥미로운 세계를 쉽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간다. 이게 이 책의 존재 이유다

-김동섭(『조선일보』 보건복지전문기자)

이 책은 환경, 생활용품, 피부용품, 음식, 의약품 등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들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을 찾아내어 유해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너무나 쉽게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유해물질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여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정보 서적이므로, 누구나 건강한 삶의 질을 위해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서동철(중앙대 약학대학 교수)

[지은이] 양기화

의학 박사이자 병리학 전문의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조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의과대학 신경병리실험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평가수석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식약청에 근무할 때 국내 최초로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을 출범시킨 뒤 미국 <국가독성프로그램>과 상호 협력 제휴를 맺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서로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동아일보사), 『치매 나도 고칠 수 있다』(중앙생활사) 등이 있다.

[차례] 

추천의 글

들어가며: 유해물질의 바다를 건너는 법

01 생활용품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

라돈, 침대에서 시작된 공포

치약, 3-3-3법칙을 버려라

나노물질, 몸속을 파고드는 초소형 물질

생리대, 정말 유해한가?

환경호르몬, 몸속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화합물

02 피부용품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

화장품, 허용 범위를 넘은 중금속이 문제

향수, 향기에 가려진 부작용

아로마 치료, 입증되지 않은 보완요법

자외선차단제, 햇볕은 피부의 적인가?

03 먹거리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

GMO, 먹어도 될까?

설탕이냐, 사카린이냐?

소금, 줄이는 것이 정답이다?

참치, 수은 중독에 대한 고민

식품첨가물,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크릴아마이드, 커피와 감자튀김 속 시한폭탄

살충제, 달걀 파동을 일으킨 물질

04 의약품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

수면제, 장기 사용을 피해야 하는 이유

진단방사선 피폭, 어디까지 안전한가?

예방접종, 백신 부작용보다 질병 위험이 더 크다

항생제 내성균, 남용이 불러온 위기

05 환경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

미세먼지, 대기를 습격하는 불청객

전자파, 가전제품에서 송전탑까지

다이옥신, 치명적인 독성물질

나오며: 문제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자

부록1: 해외 기관의 발암물질 분류 기준표

부록2: 임산부와 노약자를 위한 유해물질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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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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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혼밥, 등 혼자 무엇을 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는 묘한 시선을 보냈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혼자 있기 좋은 방>은 혼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화가가 작품활동을 하던 공간을 이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외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조차도 사적인 은신처로 삼았던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어찌되었건 저자는 “화가에게 방은 다양한 의미이다. 그들에게 방은 유일한 도피처였고, 내밀한 은신처였으며, 이상적인 휴식처였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창조의 무대였고, 영광으로 지은 거대한 방주였으며, 인생 전부를 담은 삶의 흔적 그 자체였다.(13쪽)”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방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이 어떠한 형식이 되었건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착안한 듯 저자는 침실, 욕실, 부엌, 거실, 서재, 식당, 화실, 다락방, 발코니, 자동차와 같은 사적인 범주의 공간으로부터 카페, 지하철, 성당, 교실, 세탁소, 시장, 온실, 백화점, 호텔방, 배, 미술관 등 공공의 영역까지, 방이라할만한 다양한 곳들을 잘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어울릴만한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화가이면서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장점을 잘 살린 책입니다.

저자는 찾아낸 다양한 공간을 1부 조용히 숨고 싶은 방, 2부 완벽한 휴식의 방, 3부, 혼자 울기 좋은 방, 4부 오래 머물고 싶은 방 등으로 구분하여 일상에서 얻은 생각으로 출발하여 그런 생각에 잘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결말을 맺는 형식으로 책을 꾸몄습니다. 하나의 생각에는 비슷한 주제로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수한 그림들 가운데 알만한 그림으로는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 알브레히드 뒤러의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리의 「그랑 오달리스크」,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꿈」과 「조용한 시간」, 등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그림들이 소개되고 있어 적어도 그림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톡, 톡, 톡 빗방울이 창문을 때린다.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이따금 크게 흔들리고, 물비린내가 섞인 차고 습한 공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슬쩍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온통 회색빛 세상이다.(32쪽)” 이런 구절을 읽다보니 ‘아하! 작가가 화가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리하고, 주위의 변화에 민감한 직업을 가졌는데, 거기에 더하여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재주도 가졌구나. 부럽다!’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도시의 구경꾼이라는 뜻으로 도시를 활보하며 대로를 산책하던 19세기 후반의 남성 부르주아를 의미한다는 플라뇌르(Flaneur)라는 말이나, ‘가랑비가 졸금대고 있었다’, ‘안개비가 포슬포슬 내리는’ 등의 표현은 생소하다. 이로서 작가의 대단한 책읽기 내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가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저도 요즈음 쓰고 있는 글에 안성맞춤한 그림을 발견하는 덤을 얻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그림을 삶의 궁극적인 발현으로 삶을 배제한 그림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림을 본다는 것은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책은 방과 그림을 매개로 한 삶을 관조한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기록이라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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