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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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전주의 미술에서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격변기의 예술사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고전주의 미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인상파 등 다양한 예술사조를 이끌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근대 프랑스 미술을 더 공부하기 위한 책읽기였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사회의 현실과 관련된 문화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문화이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해서는 대학에서 영미문화를 강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문화분석을 통하여 정치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근대화되던 19세기의 프랑스 미술계의 변화를 주도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개별적 삶과 그들이 그런 삶을 택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지금이야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바 있지만, 그들이 작품 활동을 할 때만해도 고전주의 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라서 비판의 대상이었고, 그림을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품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그런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 즉 뒷담화가 주요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저자의 서문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인상파는 시인 보들레르의 생각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화가들이었다(6쪽)’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 예술만을 복제하는 19세기 파리의 예술계를 개탄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성을 담아내는 것도 고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라는 것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화가별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인상파의 탄생, 인상파 화가들, 인상파와 자본주의, 인상파와 파리, 인상파의 종언 등의 제목으로 인상파가 태동하던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인상파가 해체되기까지의 과정을 사람 중심이 아니라 시대상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인상파화가들을 모두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874년 4월 파리 카프신가에 있는 이전의 나다르 사진관에서 열린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등의 작품으로 열린 전시회를 기점으로 인상파가 시작된 셈입니다. 전시회에 온 잡지 <샤리바리>의 비평가 르로아가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거론하며 ‘날로 먹는 장인 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한 악담에서 시작되었는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팔아야 하는 미술상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아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한 미술은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의 변화를 포착하는 미술양식으로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깊이 없는 사물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정의됩니다. 이들에게는 빛의 변화가 중요했기 때문에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고, 따라서 일상에서 그림의 동기와 대상을 찾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인상파가 추구한 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화가에게 남긴 인상, 즉 화가 내부의 정서를 그림에 담아냈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역시 나름대로의 감정에 따라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림에서의 인상주의는 문학의 혁신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가들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소설에 적용한 것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달랐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여건을 같이 겪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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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책마을에서
정진국 지음 / 봄아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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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이란 말이 그리 생소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듯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지난해는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였던 모양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한다면서도 해를 넘겨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행사의 일환으로 책마을을 선정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추진 배경에는 “기존의 ‘책 읽는 도시’사업은 광역 또는 기초 지자체 단위의 행정기구 중심의 독서운동으로 확산중이나, 보다 생활과 밀착된 공간에서 책과 관련된 일상이 영위될 수 있도록 특성화된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필요하며” 특히 ‘책으로 특성화된 마을, 책을 매개로 한 행복한 마을 공동체 조성을 위한 시범사업’이 제안되었던 것입니다.

시범사업의 대상 지역으로는 군포가 선정된 듯합니다.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주민과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책읽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전시행사도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군포는 서울에서도 멀지 않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갈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업은 유럽에서 꽤 오래전부터 해오던 책 마을 사업을 표본으로 삼아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은 마침 <유럽 책마을에서>를 읽게 되면서 든 생각입니다. 구글에서 책마을에 해당하는 ‘book town’을 검색하면, ‘북타운은 중고책이나 희귀본을 파는 책방이 많이 있는 마을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관련 축제도 열고 있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타운들은 국제 책마을 기구(International Organisation of Book Towns)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 많은 책마을이 있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 책마을에서>은 파리에서 미학을 공부한 미술평론가 정진국님이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유럽의 책마을 탐방기를 묶어 2008년에 <유럽의 책마을를 가다>를 증보 개정한 책입니다. 유럽 각국에 흩어져 있는 책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책과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 마을 분위기, 책과 관련된 사업의 내용과 또 여행의 느낌 등을 다양하게 적었습니다.

유럽에서 책마을이 태동하게 된 배경은 도시에서조차 책방과 출판사가 크게 줄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농촌은 농촌대로 이농으로 인하여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 서로 맞물리면서 상보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멀리 시골까지 책을 찾아갈 것인가에 의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결국 책마을 역시 많지 않은 열혈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정도에 머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연재하던 원고를 묶은 까닭일 것 같습니다만, 담겨진 내용이 단편적이라는 느낌이 남습니다. 대부분의 책마을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이라거나, 유럽이나 영미권에서 나온 희귀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매력을 느낄만한 점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책마을을 조성하는데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참고할 점은 분명 있어 보입니다. 개정판이 2014년에 나온 탓인지 파주출판단지와 관련된 내용이 두어줄 나오는 것 말고는 2018년 시행이전의 책마을 조성에 관한 움직임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학 전공자답게 유려한 문장이 읽는 맛을 더합니다. 다만, 작가의 주관적인 글은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포끼리의 부끄러운 대치야 말할 나위도 없고, 레바논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까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있다고...(289쪽)” 남북대치상황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야 할 것이고, 레바논 등의 파병은 전쟁터가 아니라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파병한 것인데, 마치 총탄이 날아다니는 지상군 전투가 벌어지는 것처럼 적은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저자가 유럽의 책마을에서 조우한 책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들을 한번 찾아 읽어볼만하다는 것도 책읽기의 수확하운데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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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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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정여울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라고 합니다. 처음인데도 녹색 바탕에 금색 펜화로 그린 그림이 중세 유럽풍의 도심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삶을 사랑하는 자의 은밀한 여행법’이라는 부제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걷지 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라는 아프리카 격언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수줍고 두려워서 길 떠나기를 망설이는 독자를 여행으로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내성적이고 길눈도 어두운 작가가 벌써 15년째 배낭여행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 번째 여행기를 내놓게 되었다는 말로 길 떠나기를 망설이는 독자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결코 뻔하고 상투적인 길이 아니라 새롭고 싱그러우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길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나에게 여행이 지닌 멈출 수 없는 힘이었다.(10쪽)‘라고 고백합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해놓고 보니 아무래도 비문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용한 글 이외에도 비문 같은 구절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편집자의 눈으로 읽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도 근거가 분명한가 싶은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리스본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남자의 경우 오브리가두(Obrigado), 여자의 경우는 오브리가다(Obrigada)라고 한다면서 “일본어의 감사인사 ‘아리가토’라는 말이 포르투갈어 오브리가도에서 유래한 것(196쪽)”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고맙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ありがとう’는 조상어인 세소토어에서는 나누다 (to share, divide)의 뜻의 arola와 곤경, 곤란 (pressure, stress)을 의미하는 kgatello에 더하여 제거, 이탈을 뜻하는 전치사(어미)가 결합하여 ‘고통을 벗어 나누는 것’ 즉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즉 도움을 받아 (고맙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포르투갈이 일본에 도착한 것은 1543년입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일본과 교류가 시작되었지만, 에스파냐 역시 1549년에 일본에 도착하여 가톨릭을 전파하였습니다. 즉 일본이 포르투갈과 일찍이 접촉을 해온 만큼 언어에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아리가토가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줄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나 더 짚는다면, “(영국의) 요크 민스터는 북유럽에서 가장 커다란 고딕 대성당(167쪽)”이라는 부분입니다. 먼저 영국을 북유럽에 포함해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통상 북유럽국가하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가 포함되며, 그린란드, 페로제도, 올란드 제도까지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유럽대륙의 북쪽을 이른다면 요크대성당은 쾰른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는 기록도 없지 않습니다. 보통은 ‘북유럽의 커다란 고딕 대성당 가운데 하나’라는 정도로 적는 편이 무난해 보입니다.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 앞에 펼쳐지는 테주강을 바다라고 한 것도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35곳이나 되는 도시들을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과 연결하여 여행의 느낌을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는 점은 느낄 점이 있습니다. 다행이도 절반 이상의 도시들은 저도 가보았던 곳인 까닭인지 쉽게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 도시들은 이 책을 기획하고서 다녀온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15년에 걸쳐 다녀온 도시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적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제 경우도 청탁을 받은 다음에 옛날 기억과 사진들을 되살려 원고를 쓴 적도 있으니 말입니다.

일단은 두루 구경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새롭게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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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 박인하의 펜 끝 기행 디자인 그림책 2
최호철 그림, 박인하 글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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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본 것들을 묘사하기보다는, 여행지에서 본 것들에 얽힌 이야기들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여행에서 보고 느낀 점을 묘사하는데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본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쪽)”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는 저는 여행의 기술을 완성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행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하여 글이나 그림으로 묘사하는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림보다는 글을 선택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그리는 데는 영 소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과 야유회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조그만 화첩을 꺼내시더니 주변의 풍광을 슥슥 그려내시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선을 몇 개 그은 것으로 눈앞의 풍경이 고스란히 화첩에 옮겨진 듯했기 때문입니다. 존 러스킨은 데생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연습할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최호철, 박인하의 펜 끝 기행>을 읽게 된 것은 러스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의 최호철교수와 박인하교수가 힘을 합쳐 만든 책입니다. 제가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최호철교수는 그리고 박인하교수는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두 분이서 같은 대학에서 일하시고 만화를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이 여행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가까운 일본, 이탈리아와 스위스, 중국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하는 여행을 같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만화로 그리고 글로 풀어내었습니다.

먼저 그림을 이야기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충분히 대상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본 광경을 이처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도 다녀온 친퀘테레를 사진처럼 그려낸 것을 보면 세밀화에 가까울 정도로 공을 들인 듯한 그림의 경우는 과연 현장에서 그려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으 달동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글에 관한 느낌은 보고 들은 것을 일정한 틀에 걸러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참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근대적 체계를 우리나라에 이식했던 것과, 5.16쿠데타을 일으킨 세력이 일본군대에서 교육을 받은 인사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일본은 적지 않게 다녀왔습니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5.16군사혁명세력이 일본식 사회를 베껴 왔다기 보다는 주로 미국의 체계를 주로 도입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데생은 사진보다는 본 것을 붙드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다 보면 빛의 방향에 따라서, 혹은 걸치적 거리는 것을 치울 수 없어서 마음에 흡족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데생의 경우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로 써내는 것 역시 같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겠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결론은 역시 저는 그림으로 승부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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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자서전 - 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
안드레아 케르베이커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대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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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면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새로 나온 책을 가까운 분들에게 드리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드렸던 책이 폐지더미 속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살점이 떼어져나간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읽은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책 가운데는 여러 번 읽어도 늘 새로운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 있는가 하면, 한번 읽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책의 자서전>은 책을 쓴 사람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책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책의 자서전>인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1938년에 세상에 나온 이탈리아 소설로, 여성을 모르는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작가가 누구라고는 밝히지 않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존 스타인벡 급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벨문학상의 후보에도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에 나와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명의 주인을 만났고, 지금은 고서점의 책장에 꽂혀 네 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입니다. 그것도 얼마의 기간 동안에 주인이 결정되지 않으면 폐지로 처분될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책은 세 명의 주인과의 만남에서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새 주인을 기다리는 과정에서의 이야기 등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시점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특히 서점에서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과정에서는 다른 책들과 교류하는 장면 묘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처럼 이탈리아 작가의 책들과는 달리 영국작가의 소설은 소설의 내용처럼 희극적 요소가 많았던지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예로 든 소설이 바로 제롬 K. 제롬이 쓴 <보트 위의 세 남자>였습니다. 세 남자가 배를 타고 템즈강을 따라 흘러내려가 런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는데, 빅토리아시대의 사회사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배꼽을 잡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이 배꼽을 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가 그렇게 웃겼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의 책장에서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주인의 아내가 보여준 변덕은 책의 입장에서 지켜보기에도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낮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네 속담대로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을 쓴 작가에 대한 평가도 나옵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시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책의 작가는 허점한 1920년대의 이탈리아 대중소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는 주장입니다. 비록 노벨상은 받지 못했지만 헤밍웨이나 스타인벡에 버금가는 수준의 작품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정말 다른 것들과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책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놓은 한 구절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작가들이 진짜 작가들에게서 에피소드를 훔쳐내고 있다.(62쪽)”

한 권의 책이 몇 명의 독자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60년 동안 네 명의 독자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물론 20쇄에 달하는 추가 발행이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수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희노애락을 같이 하였겠습니다만, 초판인 이 책은 겨우 4명의 독자를 만난 셈입니다. 그리고 보면 제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은 저 이외에 아내가 읽은 경우라 하더라도 2명의 독자만 만난 셈이니 한권의 책이 만날 수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폐지로 재활용될 위기 상황을 맞았던 이 책은 다행히도 네 번째 주인을 만나게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새 주인에게 줄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정판을 포함하여 여섯 가지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자비를 들인 경우는 없었지만 원고료를 받지 못한 경우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것은 흩어져있는 원고로는 기대할 수 없는, 누군가 읽어줄 사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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