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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평점 :
생각해보니 정여울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라고 합니다. 처음인데도 녹색 바탕에 금색 펜화로 그린 그림이 중세 유럽풍의 도심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삶을 사랑하는 자의 은밀한 여행법’이라는 부제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걷지 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라는 아프리카 격언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수줍고 두려워서 길 떠나기를 망설이는 독자를 여행으로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내성적이고 길눈도 어두운 작가가 벌써 15년째 배낭여행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 번째 여행기를 내놓게 되었다는 말로 길 떠나기를 망설이는 독자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결코 뻔하고 상투적인 길이 아니라 새롭고 싱그러우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길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나에게 여행이 지닌 멈출 수 없는 힘이었다.(10쪽)‘라고 고백합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해놓고 보니 아무래도 비문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용한 글 이외에도 비문 같은 구절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편집자의 눈으로 읽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도 근거가 분명한가 싶은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리스본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남자의 경우 오브리가두(Obrigado), 여자의 경우는 오브리가다(Obrigada)라고 한다면서 “일본어의 감사인사 ‘아리가토’라는 말이 포르투갈어 오브리가도에서 유래한 것(196쪽)”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고맙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ありがとう’는 조상어인 세소토어에서는 나누다 (to share, divide)의 뜻의 arola와 곤경, 곤란 (pressure, stress)을 의미하는 kgatello에 더하여 제거, 이탈을 뜻하는 전치사(어미)가 결합하여 ‘고통을 벗어 나누는 것’ 즉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즉 도움을 받아 (고맙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포르투갈이 일본에 도착한 것은 1543년입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일본과 교류가 시작되었지만, 에스파냐 역시 1549년에 일본에 도착하여 가톨릭을 전파하였습니다. 즉 일본이 포르투갈과 일찍이 접촉을 해온 만큼 언어에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아리가토가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줄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나 더 짚는다면, “(영국의) 요크 민스터는 북유럽에서 가장 커다란 고딕 대성당(167쪽)”이라는 부분입니다. 먼저 영국을 북유럽에 포함해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통상 북유럽국가하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가 포함되며, 그린란드, 페로제도, 올란드 제도까지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유럽대륙의 북쪽을 이른다면 요크대성당은 쾰른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는 기록도 없지 않습니다. 보통은 ‘북유럽의 커다란 고딕 대성당 가운데 하나’라는 정도로 적는 편이 무난해 보입니다.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 앞에 펼쳐지는 테주강을 바다라고 한 것도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35곳이나 되는 도시들을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과 연결하여 여행의 느낌을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는 점은 느낄 점이 있습니다. 다행이도 절반 이상의 도시들은 저도 가보았던 곳인 까닭인지 쉽게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 도시들은 이 책을 기획하고서 다녀온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15년에 걸쳐 다녀온 도시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적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제 경우도 청탁을 받은 다음에 옛날 기억과 사진들을 되살려 원고를 쓴 적도 있으니 말입니다.
일단은 두루 구경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새롭게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