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의 자서전 - 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
안드레아 케르베이커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대림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면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새로 나온 책을 가까운 분들에게 드리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드렸던 책이 폐지더미 속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살점이 떼어져나간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읽은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책 가운데는 여러 번 읽어도 늘 새로운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 있는가 하면, 한번 읽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책의 자서전>은 책을 쓴 사람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책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책의 자서전>인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1938년에 세상에 나온 이탈리아 소설로, 여성을 모르는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작가가 누구라고는 밝히지 않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존 스타인벡 급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벨문학상의 후보에도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에 나와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명의 주인을 만났고, 지금은 고서점의 책장에 꽂혀 네 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입니다. 그것도 얼마의 기간 동안에 주인이 결정되지 않으면 폐지로 처분될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책은 세 명의 주인과의 만남에서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새 주인을 기다리는 과정에서의 이야기 등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시점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특히 서점에서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과정에서는 다른 책들과 교류하는 장면 묘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처럼 이탈리아 작가의 책들과는 달리 영국작가의 소설은 소설의 내용처럼 희극적 요소가 많았던지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예로 든 소설이 바로 제롬 K. 제롬이 쓴 <보트 위의 세 남자>였습니다. 세 남자가 배를 타고 템즈강을 따라 흘러내려가 런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는데, 빅토리아시대의 사회사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배꼽을 잡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이 배꼽을 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가 그렇게 웃겼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의 책장에서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주인의 아내가 보여준 변덕은 책의 입장에서 지켜보기에도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낮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네 속담대로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을 쓴 작가에 대한 평가도 나옵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시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책의 작가는 허점한 1920년대의 이탈리아 대중소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는 주장입니다. 비록 노벨상은 받지 못했지만 헤밍웨이나 스타인벡에 버금가는 수준의 작품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정말 다른 것들과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책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놓은 한 구절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작가들이 진짜 작가들에게서 에피소드를 훔쳐내고 있다.(62쪽)”
한 권의 책이 몇 명의 독자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60년 동안 네 명의 독자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물론 20쇄에 달하는 추가 발행이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수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희노애락을 같이 하였겠습니다만, 초판인 이 책은 겨우 4명의 독자를 만난 셈입니다. 그리고 보면 제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은 저 이외에 아내가 읽은 경우라 하더라도 2명의 독자만 만난 셈이니 한권의 책이 만날 수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폐지로 재활용될 위기 상황을 맞았던 이 책은 다행히도 네 번째 주인을 만나게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새 주인에게 줄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정판을 포함하여 여섯 가지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자비를 들인 경우는 없었지만 원고료를 받지 못한 경우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것은 흩어져있는 원고로는 기대할 수 없는, 누군가 읽어줄 사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