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 소돔과 고모라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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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권과 8권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중요한 모임형식이었던 살롱의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7권은 게르망트 대공부인의 살롱을 무대로 파리의 살롱을, 8권에서는 발베크에 있는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을 무대로 합니다.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이 지방에 있다고는 하지만, 살롱에 초대받는 인물들은 파리에서도 생활을 하기도 하므로 파리와 지방이 특별히 달라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르망트 대공부인의 살롱과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이 대비되는 것은 파리와 지방이라는 점보다도 대공부인의 살롱이 주인의 위치처럼 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반하여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은 당시 급부상한 부르주아 출신이 주도하는 살롱이었다는 점입니다. 살롱이 참석자를 만찬에 초대해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살롱은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사건 당시 프랑스 사회를 두 편으로 나누었던 드레퓌스 사건은 살롱에서 나누는 주요 화제였으며, 살롱 역시 친 드레퓌스파와 반 드레퓌스파로 나뉘었던 모양입니다.

살롱의 참석자는 살롱의 주인의 초대가 있어야 참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살롱에 간 마르셀이 대공에게 소개해줄 사람을 찾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프루스트는 살롱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하였습니다. ‘지적 진화를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배우고 싶은 사교계 인사들이 품은 그런 새로운 것에 대한 취향이 그들로 하여금 그 진화를 좇아갈 수 있는 사회 그룹을 드나들거나, 또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탁월한 정신 상태에 대한 희망을 아직 신선한 상태로 지닌 어느 안주인을 향해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다.(255쪽)’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살롱의 주인이 나이가 들면 살롱의 분위기도 조금씩 가라않기 마련이고, 살롱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시들해지거나 다른 살롱을 찾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마르셀이 발베크에 도착해서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사무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지병으로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에 어렸을 적에 기억하는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생각 때문이었으며, 젊은이의 특성상 경박하고 쾌락을 뒤쫓기에 바쁜 것도 이유였던 모양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네 번째 주제인 동성애에 관해서는 예전에 정리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알베르틴이 양성애적 성향을 가졌다는 점을 살짝 비치는데, 이는 위에 다룰 알베르틴과의 이별 장면에 대한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집안일을 돌보아주는 프랑수아즈는 ‘도련님은 그 아가씨를 만나면 안돼요. 전 어떤 종류의 성격을 지닌 아가씨인지 잘 알아요. 도련님에게 슬픔을 안겨줄 사람이에요.(332쪽)’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동안 마르셀이 보여준 여성편력(?)을 보면 한 여성에게 집중하는 편은 아닌 듯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광고문구대로 말입니다. 이전에 연모했던 여성들의 경우는 마르셀의 짝사랑이었던 것과는 달리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는 것도 마르셀이 성인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렸을 적 마르셀이 어머니가 잠자리를 보아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을 보면 소유욕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도 독점욕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젊은 여자가 발베크에 도착하기만 해도 마음이 불안해져서는 알베르틴에게 그 여자와 사귀지 못하게 하고, 가능한 한 새로운 여자의 도착조차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아주 먼 곳으로의 소풍을 제안했다.(421쪽)” 알베르틴 역시 처음에는 마르셀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언젠가는 마르셀의 이런 모습이 오히려 화를 불러온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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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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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 연작의 마지막편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입니다. 제목 그대로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새해 첫날을 알리는 시간으로 예고된 살인사건을 막기 위하여 호텔 직원들과 도쿄 경시청 형사들이 합동작전을 전개합니다.

앞선 두 편의 ‘매스커레이드 호텔’ 연작에서는 숙박 접수 업무를 담당하던 나오미씨가 마지막편에서는 접객담당(concierge)으로 부서를 옮겼습니다. 아마도 손님들의 사소한 부탁을 처리하는 역할이 이야기의 전개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 같습니다. 도쿄 경시청의 닛타형사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맡았던 숙박 접수 업무에 투입이 되었는데, 업무를 배워 직접 처리하던 전편과는 달리 이번에는 지원을 담당한 접수처 직원 우지하라의 고집에 따라 접수 업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어쩌면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여유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12월의 마지막 날 밤에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살인사건을 예고한 것은 호텔에서 마련한 이벤트,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새해 카운트다운 매스커레이드 파티 나이트’ 때문입니다. 새해 첫날이 되는 순간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를 호텔이 준비한 셈인데, 여기에 가면무도회를 곁들였다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가면을 쓰고 나오기 때문에 범인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유리한 점이 있겠습니다.

사건이 예고된 것은 앞서 일어난 살인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애견미용실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었는데, 범인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의 새해맞이 연회에 등장할테니 체포하라는 익명의 밀고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밀고자나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일단 살인범이 연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연회 참석자들을 예의 주시하는 작전이 전개됩니다. 그 와중에 코르테시아LA 호텔에서 근무할 직원을 검증하기 위해 온 인사담당자까지 사건에 얽혀들어 독자의 추리를 흩트리는 덫을 깔아놓은 셈입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은 성격이나 심리상태 등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살인현장을 보게 되면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목격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익명으로 제보하고 범인이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의 새해맞이 연회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결국은 제보자와 범인 사이에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나오미씨는 접객담당으로서 최선을 넘어서는 대응을 보여줍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고객의 주문을 완벽에 가깝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고객의 주문에 대응하는 과정을 보면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만족할만한 대안을 내는 방식으로 조율을 해간다는 점입니다. 이는 협상의 원칙을 고객응대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협상이라는 것이 팽팽하게 맞선 양측의 요구를 적절한 수준에 이르도록 조율해가는 작업이라고 보면 말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을 여기에서 정리해버리면 저보다 뒤에 책을 읽으실 분들이 재미가 없어지실테니 개요만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일본인은 연말이 닥쳐오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모양이에요. 미국인은 아예 휴가를 떠나거나 집에서 가족과 느긋하게 보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말이에요(165쪽)”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호텔에서 열리는 송년 연회, 그것도 가면무도회가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태에 대한 평가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역시 그런 모습이 눈에 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오미씨가 코르테시아LA 호텔에서 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만, 그렇다면 무대를 LA로 옮겨 네 번째 ‘메스커레이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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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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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에 이어 3부작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역시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 묵기 위하여 수속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처럼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호텔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호텔을 찾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 가면을 벗기려 해서는 안된다’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면을 쓴 손님을 맞는 호텔사람들 역시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텔 장면에 이어 살인사건의 조사에 투입되는 닛타형사가 등장합니다. 이상한 것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과는 관련이 없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보니, 목차에 있는 것처럼, ‘가면도 제각각’, ‘루키 형사의 등장’, ‘가면과 복면’, ‘매스커레이드 이브’ 등 4개의 작은 제목에 담긴 이야기들이 기승전결을 이루면서 마무리되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네 개의 삽화로 구성된 삽화집이 되는 셈입니다. 네 개의 삽화는 각각 나오미를 중심으로 한 ‘가면도 제각각’과 ‘가면과 복면’, 그 사이에 닛타형사가 중심이 되는 ‘루키 형사의 등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매스커레이드 이브’에서는 나오미씨와 닛타형사가 같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읽기 시작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나오미씨가 하는 일은 같은데 수속을 마친 손님에게 ‘부디 안심하고 오사카의 밤을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192쪽)’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전편에서는 도쿄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무슨 일(?)하는 생각은 잠시 뒤에 나오미씨가 오사카에 새로 문을 연 코르테시아오사카 호텔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닛타형사는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편을 통하여 나오미씨와 조우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말미에 나오미씨와 닛타형사가 연결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잡아놓습니다. 심지어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범행 동기라 할 상황을 에필로그에서 풀어놓습니다. 결국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서술한 범행동기를 <매스커레이드 이브>에서 마치 이야기의 장치처럼 반복하는 셈입니다.

이와 같은 서사구조를 파악하고 나시 영화 <스타워즈>가 생각났습니다. 연작으로 제작된 영화 <스타워즈>의 서사구조는 4,5,6,→1,2,3→7,8,9로 되어 있습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연작 역시 같은 시간대의 서사구조를 가졌습니다. 시간대별로는 <매스커레이드 이브>에 이어서, <매스커레이드 호텔>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매스커레이드 이브>로 마무리가 됩니다. 추리소설의 특성 상 삽화에 따라 독립적인 구성입니다만,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는 시간대에 따라서 연결되고 있습니다.

‘매스커레이드 연작’ 추리소설의 연작을 읽다보면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범인은 주로 남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여자의 민낯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119쪽)’라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호텔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호텔 손님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셈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가운데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가 있습니다. <미의 역사>가 미에 대한 시각과 사고의 변천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었다면, <추의 역사>에서는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것, 괴물 같은 것, 불쾌한 것과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정리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속에서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 군상들의 집요한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때로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서술은 치밀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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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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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저도 큰 아이 덕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의 추리소설에서 유가와교수, 가가 형사 등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등장해왔습니다만,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심참 딱지를 뗀 닛타 고스케 형사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이르는 삼부작에서 활약을 하게 됩니다.

제가 하는 업무 상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의 대도시로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장을 가게 되면 대체로 무난한 숙소에서 묵게 됩니다. 예전에 정부에서 일할 때는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때도 무난한 수준의 호텔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스커레이드’ 삼부작에 등장하는 동경의 코르테시아도쿄 호텔 정도의 고급 호텔에 묵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메스커레이드’란 ‘가면’ 혹은 ‘가면무도회’를 의미합니다. 속마음을 모두 내비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감추기 마련인데, 특히 가면을 쓰듯 철저하게 속셈을 감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는 그런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그런가 봅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두 가지 독특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일어난 3건의 살인사건을 통하여 네 번째 살인사건이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일어날 것이 예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세 건의 살인현장에 남긴 쪽지에서 발견된 두 개의 숫자에서 추리해낸 것입니다. 10월 4일 일어난 첫 번째 사건 현장에는 45.761871, 143.80303944라는 두 개의 숫자가 남겨졌고, 이런 형식의 숫자가 두 번 더 살인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보려 머리를 쥐어짜 보았습니다만, 아주 오래 전에 추리소설을 졸업한(?) 탓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에 많이 가보지 않아서 현지사정에 어둡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범인이나 범행대상이 오리무중이라는 것입니다. 즉 살인사건이 발생할 장소만 예고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둠 속에서 문고리를 잡는 식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한 것 같습니다. 호텔방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을 슬쩍 집어가는 사람들, 또 그런데 신경을 써야하는 호텔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사람들, 혹은 호텔에서 비싼 것들을 먹고는 달아나는 사람들, 호텔을 불륜 상대를 만나는 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 그런 현장을 덮치려는 사람들...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닛타 고스케 형사를 지원하는 호텔 직원 야마기시 나오미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호텔직원의 전형 같습니다.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응대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모습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고객이 왕이다’라고 생각해왔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 ‘감정노동자의 권리’가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갑과 을의 역할이 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갑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다보면 연쇄살인의 개념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모방범죄가 생긴다고 합니다만,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형태로 사건을 공모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범인이 비슷한 유형으로 사건을 벌여 수사진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인데, 동경 경시청 사람들은 또 그것을 해결해낸다는 것이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렇듯 흡인력이 대단해서 손에 들면 일단 끝장을 보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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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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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외부회의는 대부분 서면으로 대체하고 내부회의마저도 자제하는 형편입니다. 아무래도 책읽기에는 딱 좋은 상황입니다. 우한폐렴이 확산되던 2월 정부가 심각단계로 격상하면서 제가 책을 빌던 동네 도서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빌려온 책도 반납하지 못하고 새로 빌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사두고 읽지 못하던 책들을 읽었다가 그마저도 다 읽었습니다. 읽을거리를 찾다가 큰 아이가 읽은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도 가끔 읽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큰 아이는 기욤 뮈소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체로 보면 읽으면서도 상황의 전개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기욤 뮈소의 2013년 작품입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매개로 하여 과거에 있었던 불행한 사고를 막아보려 노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니 무전기를 매개로 하여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추적하는 드라마 <시그널>이 있었고, 우체통을 매개로 한 영화 <시월애>가 있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처럼 기욤 뮈소의 <내일>에서도 이미 자살한 엠마가 남긴 노트북이 매개체가 됩니다.

우연히 노트북을 얻게 된 매튜가 노트북의 주인과 메일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녀와 자신이 1년의 시차를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년 전의 시점에서 앞으로 일어날 자동차 사고를 막아 사고로 죽은 아내를 구하려 합니다. 시간여행에서 중요한 점은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면 미래의 상황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나비효과’를 말하는데, 나비효과는 미스터리소설 작가인 브래드버리가 1952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천둥소리>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나비효과가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초입니다. 1961년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상변화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세 자리 아래의 미세한 숫자가 더해지는가에 따라서 맑음과 폭우로 전혀 다른 예측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무전기나 우체통을 사용하여 시차를 연결한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던 반면 <내일>에 나오는 노트북의 경우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노트북에 설정된 시간이 과거의 것이라면 동일한 노트북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3차원의 개념에서 보면 현재가 시간이라는 요소를 더한 4차원의 세계에서는 서로 시간대가 다른 동일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하여 작가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짧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상응하는 또 다른 우주, 각기 다른 시간 선상에서 모든 게 실현가능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학자들이 있다(195쪽)”라고 말입니다.

<내일>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에 삶의 의미를 잃고 있는 매튜입니다만, 사랑이란 아무래도 상대적인 것이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엉똥한 일을 불사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되돌리려는 매튜와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1년 전의 에마의 삶이 변하게 된 것은 나비효과가 적용된 까닭일 것입니다. 다만 나비효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려면 두 주인공이 넘어야 할 새로운 장애물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매튜의 아내 케이트는 잘나가는 심장외과 전문의입니다만, 이야기의 반전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하려는 일은 제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면 심장이식수술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헬싱키’라는 아주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경우라면 이식할 심장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사람을 죽여서 이식할 심장을 얻겠다는 생각을, 과연 의사가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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