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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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지구촌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년 초에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지 못하면서 대구를 중심으로 대규모 유행을 보여 강력한 방역정책을 시행하여 3월 말 경에는 일단 불을 끄는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우한폐렴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자제 등의 방역이 강화될 무렵 사람들의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정신적 부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급성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는 특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유로 지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금년 들어 우한폐렴 사태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사정이 생기면서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일의 정신요법의사이자 인기작가인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기자가 쓴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가 눈에 띈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더하여 최근에 정리하고 있는 치매예방과 관련하여 우울증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던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가치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쓴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을 정확하게 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소진증후군(消盡症候群)으로 옮길 수 있는데, 맡은 일에 몰두하던 끝에 피로가 쌓이고 열정이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델비치(Edelwich J.)와 브로드스키(Brodsky A.)는 소진증후군이 발전하는 단계롤 열정-침체-좌절-무관심의 4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베른하르트는 우선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을 정리하여 개념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을 각각 10가지씩 들어 설명하고,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이 생기는데 기여하는 개인적 성향을 분석하여습니다. 또한 우리 뇌가 가지는 특별한 기능을 이용하여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에 대응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위장약, 천식약, 항생제, 코르티솔, 뇌전증 치료제를 비롯하여 식욕억제제, 편두통약, 콜레스테롤 억제제, 간염치료제, 말라리아 치료제, 탈모방지 호르몬제, 금연 치료제, 여드름 치료제 등이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글루텐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조금 헷갈리게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글루텐이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글루텐이 없는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상술이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목표가 문제를 알고 스스로 치료하는 법을 안내하는 것에 두었기 때문에 5가지 치료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목이 조금 어렵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외국어 요법인데, 부정적인 혼잣말을 외국어로 말해보는 것이 정신적 압박감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젊었을 적에 하는 일이 힘들어서 술이라도 한잔하면 사람들이 없는 길을 가면서 영어로 떠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에게 배워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나만의 구급상자 만들기입니다. 오감을 충족시켜주는 무언가를 정해놓는다는 것입니다. 청각적으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해두었다가 듣는다거나, 미각적으로는 좋아하는 초콜릿을 준비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먹는다는 것입니다. 시각적으로는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사진을 준비해두고, 촉각적으로는 기억에 남을 만한 물건을 준비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밖에도 우울증과 관련된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았어 따로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저자는 특히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치료해오면서 쌓은 경험에 더하여 다양한 책들을 인용하여 쉽고 재미있게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에 대한 이해와 자가치료방법을 구축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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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고도 어떻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가와시마 류타.다이라 마사토 지음, 고은진 옮김 / 현문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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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왼쪽 관자놀이를 어디에 부딪쳤는지 부풀어 올랐는데 왼쪽 눈꺼풀이 부풀어 오르면서 시퍼렇게 멍이 든 것입니다. 부기와 멍든 게 빠지는데 보름 가까이 걸렸습니다. 문제는 사고가 술을 마시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상을 당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니 필름이 끊긴 것인데, 숙소도 찾아가지 못한 것이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십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생겨서 금주를 했던 것을 최근에 조심한다면서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 눈에 띈 책 같습니다. 금주를 주장하는 의학박사 가와시마 류타선생과 애주가인 치학박사 다이라 마사도선생이 같이 쓴 책입니다. 두 분은 뇌과학을 전공한 것 같습니다. 사실 뇌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뇌에 관하여 모르는 것이 더 많은 형편입니다. 술과 뇌의 관계도 그 중 하나일 듯합니다.


저자들은 먼저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고도 어떻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는 제목으로 저처럼 과음을 하는 경우에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라든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이유, 뇌가 술에 취하는 기전 등을 설명합니다. 이어서 “‘살짝 취한상태는 뇌를 활성화한다는 제목에서는 술을 조금 마시면 뇌가 활성화되어 깜짝 놀랄만한 생각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이유 등을 비롯하여 술로 인해 생활습관병이 생기는 이유 술에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는 이유, 숙취가 생기는 이유 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뇌가 위축된다에서는 술을 오래 마시면 결국 뇌가 위축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기능이 유지되는 이유, 알코올 의존증이 생기는 이유 등을 설명합니다. “그래도 술을 끊지 못하는 당신에게에서는 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주법을 소개하고, 과음을 한 경우에는 술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방법 등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이 음주 예찬과 금주 예찬을 두고 나눈 대담을 담았습니다.


일단 술에 취한 다음 생긴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뭔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고, 불러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기억이 강화되어 금세 떠오른다거나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중요하지 않거나 일회성 사건의 경우 기억이 만들어지더라도 쉽게 쇠퇴하여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술에 만취하여 기억을 못하는 것은 1차로 기억을 만드는 기능을 하는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능은 술에서 깨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별로 챙기지 않는 사람의 경우 오랫동안 술을 마시다보면 기억장애가 생기기도 합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고 하는 일종의 건망증후군인데, 비타민B1의 결핍으로 생기는 병입니다.


술에 취해서 기억은 하지 못하면서도 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은 해마에서 새로운 기억은 만들어내지 못하면서도 오랫동안 저장되어 사용하고 있는 기억을 작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타는 법이라든가 젓가락 사용법과 같이 한번 배워 사용하기 시작하면 절차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만, 적당량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과음하는 사람에 비하여 심혈관 기능의 장애로 인한 사망률이 낮다고 합니다. 특히 적포도주의 경우는 항산화물질, 혈소판 응축 억제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술이 약한 사람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통계도 있지만, 왜 그런지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몸속에 알코올 탈수소효소와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가 술에 든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그리고 아세트알데히드를 물과 초산으로 변환시키는데,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 2형 가운데 활성형인 N형과 비활성형인 D형 가운데 NN조합인 경우에 아세트알데히드 분해가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술에 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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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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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도 아이돌 가수들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조금 나이가 들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릴 것이고, 제 나이쯤 되면 단군신화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군신화는 우리민족의 건국신화로 단군왕검께서 기원전 2333년에 태어나셨다는 출생기록까지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의 경우는 대부분 출생이 분명치 않은 허구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신화의 성격이 이럴진대 신화의 역사를 정리해보았대서 호기심이 생긴 책읽기였습니다. 원제목은 ‘A Short History of Myth’<간략한 신화의 역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신화의 역사를 기원전 2만년경의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살펴보았습니다. 2만 년경에서 8천 년경의 구석기 시대는 수렵시대로, 기원전 8천 년경부터 기원전 4천 년경까지는 농경시대로, 기원전 4천 년경부터 기원전 8백 년경까지는 초기 문명시대로, 기원전 8백 년경부터 기원전 2백 년경까지는 기축시대로, 기원전 2백 년경부터 기원후 15백 년경까지는 탈기축시대로, 기원후 15백년부터 현재까지는 대변혁의 시기로 구분하여 신화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설명합니다.

심지어는 20만년 전에 출현하여 3만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들 역시 신화가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의 뼈를 보면, 신화에 관한 중요한 다섯 가지를 말해준다고 했습니다. 1. 신화는 대부분 죽음의 경험이나 소멸이 두려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신화와 제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3. 네안데르탈인의 신화는 인간 생애의 한계를 뜻하는 무덤가에서 되풀리되었다, 4. 신화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5. 모든 신화는 이 세상과 더불어 존재하는 다른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등입니다. 오늘날 신화라는 말은 흔히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신화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12)”라고 정의했습니다.

고대의 모든 문화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낙원에서 신을 접하며 가깝게 살았고, 인간은 불사의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불사의 존재이기는커녕 평균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고대사회의 신화는 대부분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들어있는데, 이런 점은 종교와 일맥상통하는 바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그 뿌리를 중동지방에 두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구석기시대의 신화는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농경시대의 신화를 다루면서부터는 중동,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문명이 시작된 지역에 전해지는 신화의 성격을 비교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농경시대의 신화 역시 끊임없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초기문명시대에 인류는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눈부시게 발전해가던 도시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또 급격하게 쇠퇴해갔다고 합니다. 일종의 재난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신화는 문명을 재난으로 나타내기도 했다는 것인데,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사건, 바베탑이 무너진 사건 등이 좋은 예라고 했습니다.

기축시대라는 용어는 칼 야스퍼스가 사용했습니다. 기축시대는 인류의 신앙발전에 중추가 되었던 시기라고 합니다. 신화를 바탕으로 종교가 확립되었던 것인데, 중국에서는 유교와 도교가, 인도에서는 불교와 힌두교가, 중동에서는 일신교(유대교를 이르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의 합리주의가 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탈기축시대에는 신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서 원죄의 개념을 끌어내고, 신화가 될 수 있었던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부활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예수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대변혁의 시기는 신화와 종교가 길을 잃고 헤매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됨에 따라 증명이 되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 셈입니다. 신화는 인간이 만든 허구임을 알게 되었고, 종교 역시 그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변혁 이후의 시기는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자도 따로 생각해둔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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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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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서 동네친구들과 놀았던 것 같습니다. 야간자습도 고3 때 입시준비를 하느라 2학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공부를 하느라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 때는 방과후 특히 밤에는 학교에 들어서는 일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넓고 전등이 많지 않아서 어둡기도 해서인지 금단의 장소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소위 학교괴담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일찍부터 방과후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운동을 비롯하여 과학, 교양 등 다양한 방과후 활동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방과후>는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아서 생긴 사건을 다룬 히가시노 게이고의 등단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전작읽기가 드디어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방과후>는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체는 선생님들입니다. 화자는 수학을 가르치고 양궁반을 지도하는 마에시마 선생님입니다. 근무하는 학교는 여자고등학교입니다. 사실 여성들만 모인 장소에서 서너차례 강연을 해본 적은 있습니다만, 일회성 이었고 커다란 강당에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강연에 오신 분들과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지거나, 강연을 하면서 특별하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만큼 여학생들은 수업 진행자와의 관계에 민감하다는 것이겠지요.

<방과후>의 주인공 마에시마 선생님은 최근에 미심쩍은 일을 몇 차례 당하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전철 탑승장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선로에 떨어질 뻔했다거나, 수영장에서 감전을 당할 수도 있었다거나, 3층에서 떨어진 화분에 맞을 뻔했다거나 하는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해보니 문틈에 지우개를 걸어놓았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머리에 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장난은 학생들이 선생님께 저지르는 단골 개구쟁이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화분을 일부러 떨어트리는 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정작 생명의 위협을 받던 마에시마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지도부의 무라하시 선생님과 다케이 선생님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에시마 선생님은 밀실에서, 다케이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살해되는 것입니다. 다케이 선생님의 경우는 마에시마 선생님과 역할을 바꾸었기 때문에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두 사건의 범인은 물론이고 살해방법을 추리해내는 것이 <방과후>를 읽는 재미라고 하겠습니다. 사건 수사는 형사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지만, 마에시마 선생님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사건을 뒤쫓아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사실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의 경우 사건을 조사과정을 일일이 밝혀가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리소설에서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추리소설의 중심이 되는 범인과 범행동기를 독후감에 적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직 읽지 않는 분들의 김을 빼는 일기 때문입니다. 다만 <방과후>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고, 일어나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추리소설로 등단하려는 작가답지 않게 책 읽는 이를 고려하여 곳곳에 사건과 관련하여 참고할 사항들을 묻어두었고,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면서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두는 솜씨가 돋보였다는 말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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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호텔의 철학자들
존 캐그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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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들어있는 심연호텔이 철학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해서 골라든 책입니다. 니체가 집필을 위해 스위스의 질스-마리아에 머물던 장소를 니체 하우스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차라투스트라가 탄생한 것입니다. 유명해진 영화나 연속극을 촬영한 장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만, 그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테어도어 아도르노, 프로모 레베, 카를 융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분들도 이곳에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니체가 묵었던 집, 니체가 산책했던 길을 쫓으며 차라투스트라에 버금하는 영감을 얻으려했던 것일까요?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은 메사추세츠 대학교 철학과의 존 캐그교수가 질스-마리아를 찾아 니체가 얻었던 통찰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그런 행태에 배알이 뒤틀렸던지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죄르지 루카치는 질스-마리아에 있는 발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는 발트하우스 호텔을 심연호텔(The Abysmal Hotel)이라고 불렀습니다. 캐그 교수는 루카치의 비유를 받아서,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웅장한 호텔, 실존의 공허를 성찰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장소, 세계의 종말을 안락하게 관람하는 미술관. 더 많은 웃음이 올라왔고, 나는 바로 니체하우스가 그런 심연호텔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몸서리쳤다.(187쪽)”라고 적었습니다.

질스-마리아는 니체가 지적인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곳입니다. 스위스의 동쪽 끝에 있는 생 모리츠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캐그교수는 ‘니체와 함께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도보여행’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니체를 느끼기 위한 홀로 걷기를 위하여 아내와 딸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허락된 시간에 거대한 산의 세계를 걷다가 쉬면서, 니체가 질스-마리아에서 썼던 책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등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내 캐럴이 동행하지 않은 것은 딸 베카를 돌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역시 철학을 공부한 그녀는 칸트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 자신도 여행이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여행은 실패했다. 초인을 탐색하려 했는데 가정생활만 했다. 다정한 순간들, 일상적인 과제들, 놀이 약속들고 가득 찬 가정생활, 자유로워지여는 시도, 파릇한 젊은 날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려는 시도는 가족에 대한 나의 책무로 가로막혔고, 여행은 진정으로 니체적인 무언가가 되는 대신 니체를 기리는 휴가로 서서히 변모했다. 내게 그런 세속적인 삶으로의 점진적 쇠퇴를 막을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음이 증명되었다.(234쪽)” 그럼에도 저자는 니체가 사유의 결과를 담은 저서의 맥을 찾으려 노력했고, 니체의 삶을 정리하여 연관을 맺어보려 노력한 표시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가 질스-마리아를 탐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익숙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무대였습니다. 스위스의 생모리츠에서 이탈리아의 키아벤나(Chiavenna)로 연결되는 도로가 넘어가야 하는 말로야 고개(malojapass)는 해발 1,815m 높이인데, 영화에서는 말로야의 뱀(maloja schlange 혹은 maloja snake)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로야 고개의 서남쪽 브레가글리아(Bregaglia) 계곡의 습한 공기가 말로야 고개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 지상에서 500~700m 높이에서 구름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께 50m 정도의 구름이 말로야고개를 넘는 모습이 마치 뱀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구름은 대개 질스 호수 부근에서 사라지지만 때로는 생 모리츠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1924년 독일의 산악영화감독 아놀드 팬크(Arnold Fanck)가 영상에 담아내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고명섭 기자님의 <니체 극장> 이후로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읽은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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