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저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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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탐정이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연작처럼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에 별다른 저항감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만, <명탐정의 규칙>의 주인공인 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탐정놀음의 기본을 책 읽는 이에게 설명하는, 추리소설 작가의 일종의 해설서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명탐정의 저주>는 덴카이치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의 완결편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바치는 헌정소설 같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일단은 주인공인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소설의 자료를 챙겨보려고 도서관에 가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만 책장들 사이를 헤매고 있자니 꼭 묘지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11)’라고 한 점은 도서관이 인류가 쌓은 지식의 보고로 생각했던 보르헤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도서관의 책장들 사이를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보르헤스의 단편에서 자주 보는 미로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어서 현실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보르헤스의 단편 알레프에서 말하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차용한 것 같기고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들어간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는 덴카이치 탐정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곳에서 살게 된 과정이나 이유를 모른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하거나 아니면 선조가 정한 장소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그 장소로 이주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가 되는 셈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들어간 세계에는 역사가 없는 셈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마을의 역사를 암시할만한 사건이 생깁니다. 마을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는 기념관에서 비밀의 공간이 발견되고, 누군가 그곳에 보관되어 왔던 무언가를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을의 시장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인공을 초치한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장이 덴카이치 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는 어쩌면 덴카이치 탐정을 탄생시킨 작가, 즉 히가시노 게이고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타칭 덴카이치 탐정이 사라진 물건이 무엇인지 조사에 착수하자마자 기념관 보존위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형식의 사건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서 보는 모임의 구성원이 다양한 이유로 잇달아 살해되는 사건의 형식을 닮았습니다. 당연히 범인은 그 안에 있는 셈이고, 사건을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셈입니다.


연쇄살인이 일어나는데, 심지어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등장인물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는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당연히 살해방법과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갑니다. 최후의 1인마저도 죽어버린다면 과연 범인은 누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명탐정의 저주>는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미가 담겼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만의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사건 해결에 나서서 탐정놀음을 하고 있는 작가에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라는 저주하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면 추리소설이 막장극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덴카이치 탐정을 사건해결을 위해 초대했다는 설정이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소설을 인용하는 것도 잔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시간여행일 수도, 아니 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일 수도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방법도 흥미로울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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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처음이라 - 평범한 내 이야기도 팔리는 글이 되는 초단기 책 쓰기의 기술
김태윤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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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년 전 지구라는 별에 현생인류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갔을까 궁금해집니다. 그 가운데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어쩌면 기록하는 방법이 개발되기 이전 사람들을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인류사적으로, 작게는 가문 안에서 기억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되는 사람 이야기를 가져온 이유는 <작가는 처음이라>는 책을 읽은 때문입니다.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누군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면, 자신의 삶 혹은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일기 등 개인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길입니다. 개인기록의 경우 후손들이 잘 보관한다는 조건이 붙게 됩니다. 그런데 책을 내는 경우에는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보관해서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쓸 수 있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처음이라>를 세상에 내놓은 김태윤 작가님처럼 책쓰기를 ‘소망목록’에 올려놓은 사람도 실천에 옮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태윤 작가님은 그런 분들을 위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기에서부터 책이 세상에 나온 이후까지의 과정을, 작심-준비-기획-수집-집필-계약-홍보-소명 등에 이르는 8단계로 나누어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책을 쓰신 김태윤 작가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직장생활을 20여 낸 해온 평범하다면 평범하신 분이 세 번째 책을 내셨다는데, 책을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던 분이 불과 2년 만에 6권의 책을 계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 책을 낸 것이 김태윤 작가님처럼 40대 초반이었던 것을 보면, 40대에는 뭔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세상에 내놓았던 책을 재개정판까지 내고, 비슷한 분야의 책을 두 종류를 더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분야가 조금 다른 책을 두 종류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권을 냈는데, 김작가님의 2년 6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원고를 준비해서 출판사 문을 두드린 경우도 있었고, 출판사의 요청으로 집필한 경우, 자비출판 형태 등 다양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단 책을 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작가님 말씀대로 ‘작심’이 중요하겠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쉽지 않지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없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첫 번째 책을 준비하는 과정은 김작가님이 정리해놓은 과정을 그대로 따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작심에서 계약까지는 몇 해가 걸렸습니다.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제목의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책을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라는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책 쓰기도 거듭하다보면 진화를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점점 다듬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하라는 작가님 조언이 아주 적절합니다.

 

작가께서도 <1천권 독서법>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저 역시 책을 읽고 빠짐없이 독후감쓰기를 1천권이 넘어가면서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주제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후감쓰기가 2천개를 넘어가면서 그런 주제를 수도 없이 만들어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생각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집필에 집중할 여유가 없는 탓입니다.

 

현재 두 권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써두었던 원고가 출판사와 계약이 성립되어 초교작업 중인 것과 새로운 기획으로 써가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계약단계는 아닙니다만, 기획된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출판사가 있어서 계약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태윤 작가님의 <작가는 처음이라>를 읽고, 소망목록에 책쓰기를 올려두신 분들이 분명 책쓰기에 나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쓰겠다는 꿈을 가진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책쓰기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 책쓰기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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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그레이 - 나는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주부의 벗 지음, 박햇님 옮김 / 베르단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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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호가 분명한 탓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회색분자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상도 작용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흰머리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젊어서는 까맣던 머리에 흰 머리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하는데, 처음 흰머리를 발견하게 되면 대경실색(?)하는 수준으로 놀라고 당장 흰 머리를 뽑아내고야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여기저기서 비집고 나오는 흰머리를 뽑는 일에 지치기 마련이고, 결국은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입니다. 바로 염색이죠.


흰머리에 대하여 관대하신 분들도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염색과 타협을 하게 되는데, 염색을 시작하는 순간 고난에 발목을 잡히는 셈입니다. 염색을 하면 흰머리가 가릴 수 있지만 흰머리가 자라는 것까지 멈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검게 보이던 머리카락이 시간이 지나면 뿌리에서부터 흰색이 올라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기 싫어지면 염색을 다시 해야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반백을 넘어 백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염색은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 경우는 십대 시절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저도 처음에는 새치를 뽑아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새치는 하나 뽑으면 둘이 나온다고들 하더니 흰머리가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십대에는 관자놀이 부근은 하얀 색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염색을 하면 젊어 보일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굳이 염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결혼한 다음이었던 탓에 흰머리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젊어 보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고잉 그레이>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골랐던 것 같습니다. 일본 잡지 주부의 벗에서 기획한 책으로 머리칼을 염색하던 것을 중단하거나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늘어가도록 한 열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49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가정주부에서 화장이나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머리칼이 흰 정도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염색을 제외한 영역, 의상이나, 치장, 화장 등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세우는 쪽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는 느낌입니다.


흰머리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시는 이분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화장이나 의상은 어떤지 많은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어서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외국 책을 번역해서 소개할 때, 국내 인사들의 이야기를 더하는 책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예수정 배우님과 오금숙 화가님의 기고문을 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염색을 해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만두었는데, 여러 모로 편한 느낌이 들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들의 말씀과 모습을 소개한 뒤에 회색머리칼에 잘 어울리는 의상과 화장법을 별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성 독자라면 관심이 많을 듯합니다만, 아무래도 남성인 저는 그냥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일본의 헤어숍에 가면 헤어디자이너가 흰머리를 마치 질병처럼 취급해요라는 어느 분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에 하버드대학에서 나온 연구에서는 나이 듦을 질병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만, 나이 듦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진 운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노병사는 지구를 건강하게 지키는 원칙이라고나 할까요? 인간만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얼마나 복닥거릴까 상상만 해도 겁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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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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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진정한 등단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에드가 란포상에 응모했던 작품이 수상에 실패하면서 4년 뒤에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가 25살이라는 젊었을 때라서인지 학원을 무대로 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던 시절이었던 듯합니다. 또한 운동과 관련된 주제로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가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교야구대회가 여럿 있어서 도토리 키재기 하듯합니다만, 일본에서는 봄 고시엔대회가 고교야구의 꽃이라고 합니다. 일본고교의 야구부는 4천개가 넘고 선수만 해도 16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 지역예선 등을 거쳐 선발된 32개 야구부가 격돌하는 것이니 고시엔대회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즐기는 야구 수준에 머물던 게이요 고등학교가 봄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도 스다 다케시라는 천재 투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력한 우승후보 오사카의 아세아학원과 맞붙어 1:0으로 이기고 있는 가운데 맞은 9회 말에 3루수와 유격수의 잇다른 실책으로 만루의 위기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2사까지는 잡았지만, 마지막 타자와의 승부에서 통한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투수가 던진 폭투를 포수가 막아내지 못하고 뒷그물까지 굴러가는 사이에 역전주자가 들어와서 경기가 종료된 것입니다. 이때 스다가 던진 공이 마구(魔球)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흘 후, 게이요 야구부의 포수 기타오카가 애견과 함께 등굣길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며칠 뒤에는 투수 스다가 오른팔이 잘린 채 살해된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마구(魔球)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이 죽고 나자 게이요 고교 야구부는 다시 즐기는 야구로 돌아가는 분위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이라서인지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 따로 없이 지역경찰이 나서서 사건을 조사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고교야구부 안에서 일어난 두 건의 죽음에 대하여 서술하는 사이에 도자이 전기주식회사에서 폭발물이 발견되고 이어서 나카조 겐이치 사장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건이 진행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사건이 언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데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사회인 야구부를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개인기업에서 일어난 사건이 고교야구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독자가 머리를 쥐어짜는 사이에 두 사건을 연결할 수 있는 꼬투리를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미리 복선을 좌악 깔아두었더라면 읽어가다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되돌아가는 재미도 있기 마련입니다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꼬투리를 던지듯 내놓는 소설은 감질나듯해서 별로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알고 있는 사실을 수사진에게 제공하지 않는 바람에 사건해결이 터덕거리는 요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해결에 실마리는 제공하는 그런 등장인물도 있기 때문에 종국에는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특히 야구에서 투수는 경기에서 감당할 몫이 큰 위치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직구 중심으로 훈련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변화구를 많이 던지게 되면 팔에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고교야의 경우 선수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대회가 열리면 제일 잘 던지는 투수가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하는 야구단이 많다고 합니다. 당연히 팔을 혹사하는 투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성인야구에서 피어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선수도 많다는 것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고교야구에서도 통하는 진실인 셈입니다.


게이요 고교야구부에서 일어난 두 건의 살인사건과 마구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사정이 어떻든 정석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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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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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국흑서라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2083815869>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구세력의 적폐를 청산하자고 앞장섰던 분들이 보이는 행태가 비판의 대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아니 더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면서 좌절했던 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진보의 탈을 쓴 사람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장 진보주의자들을 떠받드는 비이성적인 지지자들의 위세에 눌려 올곧은 소리를 내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진보가 위기를 맞은 순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의 필진으로 참여하신 다섯 분들은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제목소리 내기에 나섰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서민 교수님의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다시 읽었습니다. 2013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꽤 오래된 책입니다. 기생충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갇혀있던 자기들만의 세계의 문을 일반 대중에게 활짝 열어놓은 기념비적인 책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책읽기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봄 가을에는 기생충검사를 하고 기생충약을 먹었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70년대에도 무의촌 봉사를 가면 기생충검사를 하고 약을 나누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기생충 이야기가 시나브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생충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요즈음에는 무엇을 연구하시나 궁금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의 세계에서도 과거의 주연들이 퇴진하고 새로운 주연들이 등장하는 큰 변화가 생겼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기생충들은 여전히 있었던 것입니다. 2020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에서 다룬 인간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기생충의 정체를 설명하고, 우리 몸 곳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기생충들을 소개합니다. 아주 쉽게 말입니다. 최근에 알레르기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이 늘고 있는 것이 기생충감염이 줄어든 탓이라는 것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생충학을 깊이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만, 병리학과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한 저도 기생충을 볼 기회가 꽤 되었습니다. 기생충이 문제를 일으켜 수술을 받은 조직 안에서 기생충이나 충란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가다보니 서민교수님이 경험하신 장모세선충 사례가 저와 연결될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3년에 경험하셨다는 남원에서 확인된 장모세선충의 사례입니다. 제가 남원의료원 병리과에 부임한 1994년에 이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만 일찍 남원의료원에 갔더라면 그때 서민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어느 분이 소설 쓰시네라는 말씀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소설을 쓰는 일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뿐더러, 많은 소설들이 이미 일어난 일을 토대로 써진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도 저자의 소설가적 상상력의 일면을 엿보는 대목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맹장에 사는 요충이 알을 낳으러 항문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맹장에서 항문까지는 서민교수님의 말대로 1.5m인데, 맹장은 우리 몸의 오른쪽 아래에 있고, 이어지는 결장은 간과 위장이 있는 위쪽으로 돌아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맹장에서 오른쪽 결장을 거치는 과정을 사람으로 치면 20m의 암벽을 등반하는 일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생충이라고 해도 장 내용물인 이상 스스로 움직여 올라갔다고 하기 보다는 장운동에 떠밀려가는 내용물, 거칠게 말씀드리면 똥 덩어리와 함께 밀려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암벽등반으로 표현하신 것은 교수님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일반 독자들과의 돈독한 관계가 힘이 되어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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