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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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까지 오르한 파묵의 전작 읽기를 마친 것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전작 읽기를 마친 뒤에도 소설과 수필집에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빨강머리 여인>을 읽게 되었습니다.


<빨강머리 여인>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고 내쳐진 오이디푸스가 결국은 신탁이 예언한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선왕 라이오스의 잘못에 대한 징벌에 연좌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혹한 신의 처사에 따른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라이오스의 악행은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 손자와 손녀들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테베의 백성들까지고 고초를 겪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은 <빨강머리 여인>에서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이란의 민족서사시 <왕서>에 등장하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11세기 초 페르도우시(Ferdowsi)에 의하여 완성된 <왕서(Shahnameh)>는 우주의 창조부터 7세기 페르시아가 아랍사람들에게 정복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6만 여구의 시행에 담았습니다. 무려 7권의 분량에 달하는 <왕서>는 페르시아 최고의 서사시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서사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함께 세계 4대 문학작품으로 꼽힙니다. 우리말로는 아직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빨강머리 여인>에서 인용한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이란의 영웅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적국 투란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투란의 왕은 뤼스템을 환대하였고, 타흐미네 공주는 뤼스템에 반하여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하룻밤 사랑으로 타흐미네 공주는 쉬흐랍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쉬흐랍이 장성하여 이란에 쳐들어갑니다. 이란의 폭군 케이카우스 왕을 폐위시키고 아버지 뤼스템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투란으로 돌아와 투란의 폭군 아프라시아브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 뤼스템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나서서 결국 쉬흐랍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왕서>에 나오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는 아들이 아비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다른 얼개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파묵의 <빨간머리 여인>은 뤼스템과 쉬흐랍의 전설보다는 오이디푸스의 신화의 기본 설계에 따릅니다만,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등장인물이나 서사구조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 젬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 우물파기 명장 마흐무트 우스타를 따라 왼괴렌으로 우물을 파러 갑니다.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빨간머리 여인을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누기도합니다. 우물파기 작업을 하면서 마흐무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실수로 흙더미가 담긴 양동이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마흐무트가 죽었다고 생각한 젬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아들이라고 생각한 건설업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운명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빨간머리 여인과 하룻밤 사랑으로 아들이 태어났는데, 사실은 빨간머리 여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애인이었습니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마흐무트는 빨간머리가 나서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오이디푸스 신화와 일치하는 부분은 젬과 빨간머리 여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엔베르의 손에 젬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빨간머리 여인>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주인 셈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는 오이디스푸스 신화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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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북
하워드 엥겔 지음, 박현주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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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화두로 삼고 있어서 고른 책입니다. <메모리 북>은 캐나다의 추리소설 작가 하워드 엥겔의 사립탐정 베니 쿠퍼맨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많습니다만,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사 크리스타의 에르퀼 푸아로 등을 세계 3대 탐정으로 꼽습니다. 드라마로서는 형사 콜롬보의 콜롬보 형사가 생각납니다. 이들 탐정이나 형사들은 현장을 발로 뛰면서 증거를 모으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설명하면서 범인을 지목하여 꼼짝 못하게 하는 서사구조를 가집니다.


그런데 <메모리 북>에 등장하는 탐정 베티 쿠퍼맨은 현장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수임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인에게 머리를 얻어맞아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과적으로는 기억이 손상되었으며, 실서증 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써놓은 글을 읽어 이해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탐정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갑니다. 소위 안락의자 탐정 노릇을 한 셈입니다.


조사한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기억력 장애로 보고 들은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조사를 진행하거나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하워드 엥겔이 탐정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이유는 작가 자신이 같은 상병으로 투병생활을 통하여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메모리 북>의 서문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올리버 색스가 쓴 이유는 하워드 엥겔이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 생겼을 때, 올리버 색스와 만남을 통하여 재활의 의지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활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집필이 가능한 조건이 되자 엥겔을 <메모리 북>을 완성하여 색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메모리 북은 비망록을 체계적으로 적을 수 있는 작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그저 이름이 뭐와 운이 맞는 간호사로 기억하는 간호사, 캐롤 맥케이는 매번 데이와 운이 맞는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어찌되었던 맥케이 간호사는 쿠퍼맨에세 공책을 하나 건네면서 메모리 북으로 쓰라고 합니다. ‘약속이나 날짜 같은 걸 적어놓는 공책입니다. 기억력에 시동을 걸 수 있도록 도와주죠. 지금 쓰고 있는 종이 쪼가리는 버리고, 앞으로 이걸 쓰세요. 저를 믿으세요. 메모리 북이 훨씬 좋답니다.(85)’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종이 쪼가리에 적어놓은 글은 생각지도 않은 사이 어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공책의 경우는 부피가 있어서 쉽게 눈에 띄는 장점이 있습니다. 쿠퍼맨의 경우도 메모리 북에 수집한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이 써놓은 글을 유추해서 조금씩 이해해 나아갈 수 있었고, 결국에는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잠이 쏟아지는 모양입니다. 그런 잠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밤을 샌 사람들의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잠, 경미한 자동차 사고 같은 악몽들, 선잠, 깊은 망각, 하지만 사람을 유혹하고 끌어당기는 잠에는 병원 잠만 한 것이 엇었다.내가 깨어 있는 시간을 유혹하는 요부 같은 잠은 나를 감시했고, 내 약점을 알았으며, 선정적인 약속들을 내밀었다. 저녁 식사 중이나 손님을 맞을 때, 잠은 따뜻한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난 졸음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잠의 손길에 굴복했고, 그 감미로움에 빠졌다.(209)”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수시로 잠에 빠져드는 바람에 읽는 흐름이 깨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분은 의학용어에 다소 익숙하지 않은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군데 손을 보면 좋을 곳이 있어서 개정판을 낼 때는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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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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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한폐렴 사태가 어디를 향하는지 예측하는 일마저도 포기하고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변명하기에 급급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전 세계에 자랑하던 K-방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지 눈길을 붙든 책이 슬라보예 지젝이 쓴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입니다. 지젝은 우한폐렴이 시작한 직후인 20203월에 <팬데믹 패닉>을 썼다고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지난 1월에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으로 휘청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앞날을 상상하는데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체제의 앞날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팬데믹 패닉>에서 지젝은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에 대하여 개별국가의 노력과 함께 전 지구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서는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에서 드러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인기영합주의의 창궐에 주목하였습니다. 자유주의는 물론 좌파의 정치적 무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우한폐렴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중국이 시행하여 효과를 거두었던 봉쇄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하여 마스크를 쓰자는 주장과 개인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기에 마스크를 쓸 수 없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타인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유가 무의미하듯 자유롭지 못한 개인들의 공동체는 통치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부에서는 우한폐렴의 대유행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다루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지구온난화 그리고 착취 등은 동일한 투쟁을 요구한다는 이야기, 우한폐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각국의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난날의 영웅을 회상시킨다는 이야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성애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잡스러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2부에서는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에 대한 논의입니다. 전시 공산주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이어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등을 짚어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생각에 더하여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우한폐렴 사태로 인한 사회의 붕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내건 국민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의료보장 등의 조치들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는데, 이를 신우파계열의 인기영합주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계열이 주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고 가자면, 시도 때도 없이 내세우던 K-방역의 대단한 성과는 지젝의 눈에 차지도 않았던지 대만이나 뉴질랜드의 성공적 방역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해온 우리나라의 K-방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헌팅턴에서 격리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을 때 새라 메이슨이라는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곧 공산주의다라는 팻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체가 모호한 조치가 끊임없이 지속되어 자영업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마저도 우한폐렴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서 간략하게 소개한 지난날의 영웅을 소환한다는 대목은 자크 라캉이 발표한 강연의 제목 <.... 혹은 그보다 못한(ou pire/or worse)>에 담긴 '아버지 혹은 그보다 못한(le pere ou pire)'이라는 문구는 가부장에 맞선 방항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쫓겨난 가부장보다 더 못한 지도자로 귀결될 수 있는지 엄중하게 경고하는 의미의 문구라고 지젝은 설명합니다. 이 대목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분명하지 싶습니다.


지젝은 현재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생태적 위기, 인종차별주의라는 세 가지 영역의 상관관계와 관련이 있다.(100)”라고 짚었습니다. 별개의 문제인 듯한 세 가지 쟁점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으로 일어난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지젝의 성찰에서 무언가가 손에 잡히는 듯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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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농담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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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라는 주제보다는 ‘술’이라는 주제에 끌려 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술과 엮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술에 관한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적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술과 농담>은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 일곱 번째 책 『술과 농담』은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한유주, 이주란, 이장욱, 이렇게 여섯 작가의 입담을 모은 앤솔러지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앤솔러지가 궁금했습니다. 리브레 위키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합니다. “앤솔리지라는 말은 ‘꽃을 모아놓은 것’, 즉 꽃다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안솔로기아(anthologia)에서 유래했다. 본래는 문학 용어로, 여러 작가의 시를 선별해서 한 책에 모아놓은 시선집 등을 앤솔로지라고 가리켰다. 현대에는 의미가 확장되어서 단편 소설집이나 시집 외에도 앤솔로지 앨범(음반)이나 코믹 앤솔로지(만화) 등도 존재한다. 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 골라낸 걸작선 등도 앤솔로지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앤솔로지라고 부른다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주제에 맞추어 모아놓은 것을 뜻한다. 반면에 공동집필 등을 통해 여러 작가가 같이 제작한 합작은 앤솔로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술과 농담을 주제로 하여 여섯 작가들이 협력하여 제작한 것이 아니라 각자 몫의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면 엔솔로지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가 편애영님은 2007년 2007년 「사육장 쪽으로」로 제40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이효석 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소설가 조해진님은 2014년 작품집 「몬순」으로 제3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젊은 작가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문학평론가 김나영님은 2009년 문학과사회에서 신인문학상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유주님은 2009년 「막」으로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항하였습니다. 소설가 이주란님은 「넌 쉽게 말했지만」으로 2019년 제10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장욱님은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입니다. 2003년 제8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칼로와 유쾌한 악마들>로 2005년 제3회 문학수첩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이장욱 시인만이 청일점인 셈입니다.

 

<술과 농담>은 여섯 분의 작가님들의 술에 관한 개인적 취향을 비롯하여, 술과 관련된 일화, 또는 술에 관한 글을 인용한 생각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의 느낌으로는 술에 관한 저자들의 이야기에서 농담이라는 주제가 확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술’과 ‘농담’이라는 기획의도가 충분히 담기지 못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주량이 평균 이하이고, 농담도 잘 못한다는 작가도 참여할 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나름대로는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한 이야기도 나오기는 합니다만, 제가 저지른 실수담과 비교하면 실수하고 할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나영님은 “내가 경험한 술과 농담을 소개하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내가 경험한 술과 농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그친 것 같다(95쪽)”라고 설레발을 쳤습니다만, ‘을’과 ‘관한’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섯 분들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서, 술 마시기 경력이 어언 갑자에 이르는 저의 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다양하고 적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재미있을 그런 이야기도 있겠고, 남들에게 차마 들려주기도 부끄러운 이야기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어가면 부끄러운 것을 모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앞으로 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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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텔카스텐 -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
숀케 아렌스 지음, 김수진 옮김 / 인간희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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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텔카스텐>이라는 생소한 제목보다는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라는 부제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독일어 제텔카스텐(Zettel Kasten)공책이라는 의미의 제텔과 나무상자라는 의미의 카스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공책을 담는 나무상자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하는 제텔은 공책이라는 의미보다는 비망록’, 간략하게 요약해서 적어놓은 글을 의미합니다.


부제에 있는 것처럼 글 쓰는 사람들의 꿈은 글을 쉽게 쓰는 요령을 깨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 원고 청탁을 받으면 적지 않은 시간동안 머리를 쥐어짜야 했습니다. 도입부에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본문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서 마무리로 이어갈까 고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창 때는 나름대로는 논문을 열심히 쓰는 축에 들었는데, 그때 저는 참고문헌을 바인더 노트 한 장 분량으로 요약해서 분야별로 분류해놓았다가 논문을 쓸 때 활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방법을 확대하는 것이 제텔카스텐이라는 방법인 듯합니다. 10여년 전에 누리망 신문에 독후감을 연재할 때도 평소 읽고 정리해놓은 독후감을 많이 활용했는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두는 것도 제텔카스텐의 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여러분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글에서 밝힌 이 책의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우수한 학생, 야심만만한 학자, 호기심 많은 비소설 작가에 해당하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다. 통찰력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유할 가치가 있는 통찰을 성취하기 위한 주요 도구임을 잘 알고 있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라는 말이다.(21)”


<제텔카스텐>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 상자 속으로...’에는 ‘Introduction’,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여러분이 해야 할 모든 것’, ‘여러분이 지녀야 할 모든 것’, ‘명심해야 할 한두 가지등의 글을 통하여 여러분의 글쓰기에 든든한 바탕이 될 제텔카스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두 번째 부분 성공적인 글쓰기에 이르는 여섯 단계에서는 분리하기와 연결하기’, ‘이해를 위한 읽기’, ‘스마트하게 메모하기’, ‘아이디어 발전시키기’, ‘통찰 공유하기’, ‘습관화하기등을 통하여 제텔카스텐을 활용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마지막 네 가지 기본 원칙에서는 유일한 관건은 글쓰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함’, ‘맨땅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는 법’, ‘흐름을 타고 나아가기등에서 제텔카스텐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지켜야 할 원칙을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적어두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요즈음은 똑똑전화기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손 가까이 있는 똑똑전화의 비망록 기능을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비망록에 적어둔 생각을 확장해서 글로 정리해서 누리사랑방에 저장해놓으면 언젠가 책으로 묶어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텔카스텐을 글쓰기에 제대로 활용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입니다. 법학을 전공하고 공무원이 되었던 루만은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눈에 띄는 내용이 발견하거나 의견이 떠오르면 요약해서 적기 시작했는데, 곧 이런 내용을 엽서에 적어 상자에 담아두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메모상자를 활용하여 쓴 글이 그를 빌레필트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로 이끌게 되었고, 30년에 걸쳐 모두 58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제텔카스텐>은 모두 167개의 문헌을 참고하였다고 말미에 붙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텔카스텐>은 제텔카스텐 기법을 적용하여 쓴 것 같습니다.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게 되기 전에 그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비록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나중에 그 답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문헌 91) 정보를 검색하려고 노력을 쏟아 부으면 그 정보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공산이 더 크다. 비록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정보를 찾게 되었더라도 말이다.(문헌 92) 심지어 피드백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기억하려 노력한다면 결과는 더 좋아질 것이다.(문헌 93)(138)”


책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꿈을 가진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다만 장-절 구분이 분명치 않아서 읽은 내용이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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