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북
하워드 엥겔 지음, 박현주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기억을 화두로 삼고 있어서 고른 책입니다. <메모리 북>은 캐나다의 추리소설 작가 하워드 엥겔의 사립탐정 베니 쿠퍼맨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많습니다만,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사 크리스타의 에르퀼 푸아로 등을 세계 3대 탐정으로 꼽습니다. 드라마로서는 형사 콜롬보의 콜롬보 형사가 생각납니다. 이들 탐정이나 형사들은 현장을 발로 뛰면서 증거를 모으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설명하면서 범인을 지목하여 꼼짝 못하게 하는 서사구조를 가집니다.


그런데 <메모리 북>에 등장하는 탐정 베티 쿠퍼맨은 현장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수임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인에게 머리를 얻어맞아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과적으로는 기억이 손상되었으며, 실서증 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써놓은 글을 읽어 이해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탐정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갑니다. 소위 안락의자 탐정 노릇을 한 셈입니다.


조사한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기억력 장애로 보고 들은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조사를 진행하거나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하워드 엥겔이 탐정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이유는 작가 자신이 같은 상병으로 투병생활을 통하여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메모리 북>의 서문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올리버 색스가 쓴 이유는 하워드 엥겔이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 생겼을 때, 올리버 색스와 만남을 통하여 재활의 의지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활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집필이 가능한 조건이 되자 엥겔을 <메모리 북>을 완성하여 색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메모리 북은 비망록을 체계적으로 적을 수 있는 작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그저 이름이 뭐와 운이 맞는 간호사로 기억하는 간호사, 캐롤 맥케이는 매번 데이와 운이 맞는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어찌되었던 맥케이 간호사는 쿠퍼맨에세 공책을 하나 건네면서 메모리 북으로 쓰라고 합니다. ‘약속이나 날짜 같은 걸 적어놓는 공책입니다. 기억력에 시동을 걸 수 있도록 도와주죠. 지금 쓰고 있는 종이 쪼가리는 버리고, 앞으로 이걸 쓰세요. 저를 믿으세요. 메모리 북이 훨씬 좋답니다.(85)’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종이 쪼가리에 적어놓은 글은 생각지도 않은 사이 어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공책의 경우는 부피가 있어서 쉽게 눈에 띄는 장점이 있습니다. 쿠퍼맨의 경우도 메모리 북에 수집한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이 써놓은 글을 유추해서 조금씩 이해해 나아갈 수 있었고, 결국에는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잠이 쏟아지는 모양입니다. 그런 잠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밤을 샌 사람들의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잠, 경미한 자동차 사고 같은 악몽들, 선잠, 깊은 망각, 하지만 사람을 유혹하고 끌어당기는 잠에는 병원 잠만 한 것이 엇었다.내가 깨어 있는 시간을 유혹하는 요부 같은 잠은 나를 감시했고, 내 약점을 알았으며, 선정적인 약속들을 내밀었다. 저녁 식사 중이나 손님을 맞을 때, 잠은 따뜻한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난 졸음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잠의 손길에 굴복했고, 그 감미로움에 빠졌다.(209)”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수시로 잠에 빠져드는 바람에 읽는 흐름이 깨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분은 의학용어에 다소 익숙하지 않은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군데 손을 보면 좋을 곳이 있어서 개정판을 낼 때는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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