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 - 누군가에겐 또 하나의 꿈이 될 미국 간호사 도전기
김선호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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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담북스의 기획시리즈의 하나입니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를 쓴 김선호교수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국내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하기 전에 미국 간호사 자격증(NCLEX-RN)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2년을 근무하다가 미국 뉴욕에 있는 자코비 메디컬센터의 준중환자실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막연하게 꿈꾸었던 미국 간호사의 꿈을 현실화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태움 문화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에 건너가 취업에 성공하여 병원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하는 엄청난 일을 혼자서 해치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이담북스의 기획의도에 잘 맞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부모 챤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보여서 더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의 따르면 미국의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다고 합니다. 40년쯤 되었을까요?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미국으로 가서 취업하는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외숙모께서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열풍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외삼촌께서도 잘되던 약국을 정리하고 온가족 모두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오셨습니다. 그야말로 ‘컴백홈’이었지요. 미국에서는 약사라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였고, 미국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도 듣던 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또 미국에서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하고 계셨으니 영어라던가 직업관련 업무에도 숙련도를 충분히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저도 젊어서 온가족을 이끌고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가면서 엄청 긴장을 했던 바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먼저 가 계시던 선배들의 도움으로 집도 구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차도 사는 등, 쉽게 정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에 대하여 감사를 드렸더니 다들 그렇게 한다면서 다음에 오는 사람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들 하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점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에게는 대부분 익숙할 족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해서 새로 오시는 분들이 미리 알면 좋을 사항들을 정리하여 두었다가 전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하던 연구실에 일본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미네소타에서 정착하는 방법”이라는 책자가 이미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새로 오는 사람들이 당면할 모든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깨알같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뉴욕에서 간호사로 살아보기>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해볼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일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은 그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임상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굳이 뉴욕이었어야 할까 싶기도 했는데, “나에게 뉴욕은 시계의 중심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시작한 이곳에서의 도전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내 가능성이 국경의 한계를 넘게 했고, 인종을 초월한 확장된 인간관계를 만들어 줬을 뿐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라는 애국심과 함께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류애까지 갖게 해주었다.(17쪽)”라고 적은 소회는 약간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과정에 끝나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계획을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꿈을 꿈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실로 가져오는 용감한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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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오이디푸스 부엉이총서 3
장-조제프 구 지음, 정지은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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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오이디푸스신화는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델포이의 신전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란 신탁을 얻게 된 라이오스 왕은 부하를 시켜 오이디푸스를 죽이도록 합니다. 부하는 어린 오이디푸스를 차마 죽일 수 없어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아놓았고, 지나가는 목동이 그를 발견하여 코린토스의 폴뤼보스 왕에게 바쳐 양자가 됩니다. 하지만 신이 결정해놓은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어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두 딸과 두 아들을 얻게 되고,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인이 두 눈을 찌른 다음 세상을 떠돌다가 아테네에서 숨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라이오스의 패륜적 행동에 노한 신이 태어날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을 지어놓았던 것인데, 오이디푸스마저도 아버지를 죽인 패륜의 죄를 감당해야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려서 쫓겨난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에서 성장한 뒤에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코린토스를 떠났던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메인 운명을 거부하려 한 것입니다. 그 바람에 실부 라이오스를 죽이는 운명의 실을 따라간 셈이 되었을 뿐입니다.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결혼도 상당히 작위적인 듯합니다. 테베에 등장한 스핑스크를 제거하는 영웅과 결혼하여 왕국을 맡긴다는 전제가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테베가 라이오스왕의 죽음을 알고 있었는지는 차치하과, 아무리 왕위가 좋다지만,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나이 차를 고려한다면 과연 그런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던 참에 읽게 된 <철학자 오이디푸스>에서 미끼가 될 만한 해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구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재검토하고 프로이트가 제기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해석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오이디푸스가 이아손,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등 다른 그리스 신화의 젊은 영웅들이 신의 도움으로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달리 신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 해결방식 역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해결하는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에 이르러 인간은 신의 권위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런 오이디푸스에게 신은 패륜의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이 저지르는 온갖 패륜은 모두 신의 이름으로 용서가 되는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신화의 핵심을 잘못 해석하여 세운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병력을 청취하다가 환자의 증상을 이 신화에 꿰어 맞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서양이 오이디푸스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동양적 시각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것이 틀리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펼치는 설명이 상당히 위태로운 기획이라고 전제합니다. 먼저 오이디푸스 신화는 전형적인 신화의 양식에서 벗어난 변칙이며, 단순하게 신화 생성의 기제만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계승이 그리스 신화의 일반적인 양태와 다른 것은 인도유럽어권의 시원적 분할의 틀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그리스 이성을 창설하기에 이른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철학자의 형상, 즉 인간과 나의 원근법을 창시하기 위해 신성한 수수께끼를 거부한 원형적 형상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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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주파수 창비시선 327
김태형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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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초에 책을 편집하는 일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출판사에서 편집을 하시는 대표님께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3차례에 걸쳐 편집에 관한 개요를 설명하고 연습을 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입니다. 제 딴에는 책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시작한 공부였지만, 막상 교육이 끝난 지음은 불끈거리던 용기가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가서 구경하던 서가에서 눈에 띤 시집을 두어 권 사게 되었습니다. <코끼리 주파수>는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코끼리 주파수’는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코끼리 들이 서로 소통을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시입니다. “(…) 말라죽은 아카시아나무숲과 흰구름 너머 수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무리와 / 젊은 수컷들을 찾아서 / 코끼리는 멀리 울음소리를 낸다 / 팽팽한 공기 속으로 더욱 멀리 울려퍼지는 말들 / 너무 낮아 내겐 들리지 않는 / 초저음파 십이 헤르츠 (…)”라는 대목은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코끼리의 생태를 잘 알고 쓴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시인은 삶에 천착하여 얻은 진리를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낮은 주파수로 누군가에게 알려주려는 것인 듯합니다. 그래서 호젓한 산속의 샘가에 앉아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면서 결코 손을 떠 마실 수 없는 이유를 캐묻습니다. 악마의 목젖 같은 깊은 속을 엿보고, 악마의 눈물이 타오르는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일까요?

‘소쩍새는 어디서 우는가’라는 시를 “귀가 밝아진다는 건 그래도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하여 귀만 열어놓았겠습니까? 오감을 열어놓고 주변이 시인에게 건네는 어떤 신호도 놓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을 시시콜콜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적당히 무시하거나 적당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세상을 사는데 훨씬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감을 예민하게 갈고 닦아서 무언가가 전하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시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제로 사용한 대상이 소쩍새, 고양이, 흰 고래, 코끼리, 늑대, 들개, 새, 구렁이와 같은 생물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샘, 구름, 나뭇잎, 냇물, 개여울 등 자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인 친구도 있고, 목수를 비롯하여 시인이 당신이라고 부르는 누군가도 있습니다. 사실 시인이 일하는 영등포 문래동의 좁은 골목길에는 그만그만한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이차 있습니다.

학생 때 그 동네 살던 선배가 있었는데, 어울려 술이 취하다보면 같이 술 마시던 사람들을 몰고 집으로 가곤했습니다. 주무시는 부모님을 깨울 수 없어 대문을 넘어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문래동도 많이 변했더라구요. 그렇게 공장이 늘어서 있는 동네에 생뚱맞게도 너구리가 나타나곤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시인이 보내는 십이 헤르츠의 낮은 주파수의 통신을 감지하고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 같이 근무하는 시인이 낸 시집에서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치악산에 관한 시를 두편이나 쓴 것을 보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치악산에 대한 글을 써보게 되었는데, 김태형 시인의 ‘구름 일가’의 느낌을 이야기해볼 걸 그랬습니다. “창가에 짓널어두었던 속옷을 걷으러 갔다 / 눈썹에 물든 노을은 간데없고 / 낮은 빨랫줄에 흰 구름만 걸려 있다 (…) 잘 마른 구름이 밤마다 질금질금 비를 내릴 줄 몰랐다.”는 대목이 요즘 치악산에 걸려있는 구름을 보다 치면 나름 의미를 알듯 모를 듯해진다.

그리고 ‘코끼리 주파수’는 아프리카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 한번쯤을 짚어야 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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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아프리카가 그립다
이지상 지음 / 디자인하우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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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을 정리하기 위하여 읽은 책입니다. 저보다 20여년 가까운 옛날에 다녀온 아프리카인지라 느끼는 점이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은 여행사에서 팔고 있는 상품도 많이 다양해지고 그리 어렵지 않게 아프리카의 신기한 풍물을 볼 수 있습니다만, 그때는 여행사 상품이 많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아서 선뜻 아프리카 여행을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가의 길을 나섰다는 작가이고 보면, 저와 연배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데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은 결코 성공에 있지 않고, 그 길을 가며 부딪치고 헤매는 과정에 있다’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라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적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배워보겠다고 나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도를 헤맨 작가는 무언가에 끌리듯 아프리카로 향했다고 했습니다. 어려서의 꿈이 아프리카에서 타잔이 되는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 옛날 여러 차례 제작된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세대의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초원의 왕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리카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프리카에 다녀와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기저기 아프던 증상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원시적인 기운에 몸에 스며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초원의 육식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사냥을 하고, 그렇게 죽어가는 초식동물들이 안타깝더라는 이야기와 그런 광경을 보면서 세상에 던져진 생명이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는 이야기 등이 새삼스러운 것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나름대로는 준비를 많이 하고 여행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자유여행이라는 것이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완벽한 계획 아래 움직이기보다는 어느 정도 느슨한 일정으로 상황에 맞게 변화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큰 틀에서 여행의 목적은 정하고 가야 하지 싶습니다.

관광산업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행사에서 충분히 검토가 된 상품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여행을 즐기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이 책을 읽고서 더욱 분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해외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바로 안전이라 할 것인데,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점인 듯합니다. 작가 역시 안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듯한 것은 이미 여행을 다녀온 작가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책을 읽은 독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행 전에도 깊은 고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행기를 낼 때도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케냐를 중심으로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등 중앙아프리카를 두루 돌아보았다고 합니다만, 내전상태로 안전이 불분명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어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즐기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풍속에 관한 현지의 관련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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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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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건축을 전공하시는 유현준 교수가 쓴 일련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저술 순서와는 무관하게 가장 최근작인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https://blog.naver.com/neuro412/221571143493>를 시작으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https://blog.naver.com/neuro412/221644321329> 등에 이어 읽게 된 책이 <어디서 살 것인가>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다 말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건축가로서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을 디자인하면서 알게 된 우리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틀에 박힌 듯 지어낸 건물에 사는 아이들, 사람들에게서는 창의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는 충분히 공감하게 됩니다. 문제는 건축보다 더 중요한 우리나라의 교육체계가 여전히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의 학교는 틀에 박힌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틀에 박힌 듯한 모습의 학교들에서 배우는 것들은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교실 밖에서 무언가 배울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일반인들과 소통의 기회를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매체들이 얼마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논의가 이루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방송의 특성상 일정한 틀 안에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고,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틀이 정해지지 않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사실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갈 위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도 있는 듯합니다. 저자가 설정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근거들이 객관적이고 적절하게 비교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도심의 공원의 크기와 간격을 비교하기 위하여 뉴욕의 맨하탄과 서울특별시를 비교한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서울에 공원이 아주 드물기 때문에 그나마 이름이 붙어있는 공원을 이끌어 내려다보니 서울시 전체를 맨하탄과 비교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맨하탄은 그야말로 언덕도 없는 평지이기 때문에 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삭막할 수밖에 없는 장소이지만, 서울의 경우는 동네마다 작은 숲을 이루는 이름 없는 언덕이 흩어져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가끔씩은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 아이들이 엎드려 놀고 숙제하던 골목길 공간은 지금은 뚱뚱한 자동차가 차지하고 앉아 있다.(133쪽)”는 대목을 읽으면서 지금으로부터 50년전 동네 모습이 과연 이랬던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돌을 높이 쌓아 무거운 건축물을 만드는 이유가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함이라면서 우리가 등산을 가면 작은 돌로 탑을 쌓는 것 또한 자기를 과시하기 위함이라는 설명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저도 어쩌다 남들이 쌓은 작은 돌탑 곁에 저만의 작은 돌탑을 쌓은 적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작은 돌탑을 쌓으면서 무언가 이루어졌으면 좋을 작은 소망을 비는 마음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3D 프린터로 만든 재료가 벽돌, 철근콘크리트의 뒤를 이어 세계를 통합할 건축재료의 뒤를 이어 세계를 통합할 건축 재료가 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 3D 프린터는 일정한 재료를 가지고 특정한 물체를 성형해내는 장비이지 재료를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건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안에 담을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인식에 공감합니다. 어디서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정에 따라서 각자에 맞는 곳에서 살면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기보다는 답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사고방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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