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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평점 :
<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청나라 말에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만주족 출신 작가 라오서가 문학잡지 현대에 발표한 과학환상소설 형식의 정치 우화이자 풍자소설인 <묘성기(猫城記)>를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1932년 8월에 연재를 시작하여 1933년 4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역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 기행을 앞두고 공부삼아 읽어보았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이 조계지를 둔 세계적인 무역도시였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상업중심지였습니다. 그 무렵 청나라는 극도의 혼란과 정치적 불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본은 1931년 류타오후에서 철로를 폭파시키는 자작극을 벌여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탄 중국인이 화성을 대기권에 진입하던 중에 사고를 당해 불시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우주선을 운전하던 친구는 사고로 죽고 화자만 살아남았습니다. 친구는 묻어주기도 전에 몰려든 독수리에 뜯어 먹히고, 그 와중에 몰려온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묘인들은 300년 전에 도입된 미혹 나무의 잎에 의지하게 되면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일은 물론 만사를를 제쳐놓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미혹 나무를 재배하고 관리하는 일은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황제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뒷전이고 정부관리 역시 임무를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고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의 중국의 시대상을 화성에 빗대고 묘인들은 중국사람들을 외국인들은 상하이 조계지에 모여 살던 외국인들을, 묘인국에 쳐들어 온 외국군은 일본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우주선은 소련이 1957년에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며, 역시 소련이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여행에 성공하게 되면서 인류의 우주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라오서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5년에 발표한 <지구에서 달까지>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8년에 발표한 화성인의 침공을 다룬 <우주전쟁>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두 작품이 우주과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라오서 역시 화성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화성에 묘인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나 미혹나무 등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화성에 대기에 대한 설명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회색빛 하늘을 봤다. 흐린 날씨는 아니지만 회색 공기로 가득했다. 햇빛이 강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다. 무척 더웠기 때문이다.(13쪽)”라고 설명했지만, 화성의 대기는 희박한데 그나마 95%가 이산화탄소이며, 질소 3%, 아르곤 1.6%이며 산소는 극소량에 불과합니다. 대기 온도는 평균 영하 63℃입니다. 낮최고는 20℃이지만, 대기가 희박하여 열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빠르게 떨어집니다. 극지방에서는 영하 140℃까지 내려갑니다.
혼탁, 질병, 불결, 혼란, 어둠 등으로 대표되는 묘인들 사회에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묘인들이 존재합니다. 화자가 화성에 처음 도착하여 만났던 따시에의 아들 사오시에 같은 인물입니다. 이들은 미혹나무도 먹지 않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분투를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정부고관들은 물론 대중들까지도 미혹나무에 현혹되어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외국군이 쳐들어오자 황제는 가장 먼저 도망가고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도 외국군에 투항하러 갑니다. 하지만 외국군은 투항한 묘인군사들까지도 모두 죽여버립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의 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라오서는 그렇듯 희망이 없어보이는 당대의 사람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6년 8월 23일 베이징시문학예술계연합회가 주최한 문혁집회에 참가했을 때, 열여섯 살 남짓의 여학생들이 몰려와 작가들을 무릎 꿇리고 ‘주자파’, ‘잡귀사신’, ‘반동문인’이라는 검은 팻말을 목에 걸고 구타를 하는 등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라오서는 집을 나서 자금성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타이핑 호수로 가서 투신하여 67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전하기로는 196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최종 투표에서 후보에 오른 라오서를 1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주중스웨덴대사는 위원회의 위탁을 받고 라오서를 찾았지만 이미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위원회는 수상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중국계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高行健)이 2000년에 수상했고, 중국 국적의 작가로는 모옌(莫言)이 2012년에 받았으니, 문화대혁명이 아니었더라면 중국은 44년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