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산보
다니구치 지로 지음,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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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누군가의 책을 읽다가 읽기희망도서 목록에 올려두었던 것인데 만화인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독후감을 쓰려고 자료를 조사하다가 박미향의 <도쿄 모던 산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사실은 강상중교수의 <도쿄 산책자>의 독후감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구스미 마사유키의 만화 <우연한 산보>의 내용이 <도쿄 산책자>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구회사에 근무하는 중견 영업사원 우에노하라가 근무 중에, 또는 휴일에 나갔던 산보에서 발견한 일상의 다양한 풍경들을 담았습니다. 쿠스미 마사유키가 글을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만화를 그렸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고독한 산책가>에서처럼 우연히 나선 산책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를 그려낸다는 기본적인 틀을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한 산보>에는 모두 8개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이어서 글을 쓴 쿠스미 마사유키가 후기를 대신하여 산책 원작 작업을 진행해온 과정을 사진과 함께 설명했습니다. 만화를 쓰고 그리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마사유키는 <우연한 산보>의 만화작업을 시작하면서 1. 조사하지 않는다, 2. 옆길로 샌다, 3.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등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주인공의 산책이 의미 없이 걷는 즐거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산책 원작 작업에 이어 <우연한 산보>에서 다룬 8가지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거나 실제 인물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제목 그대로 우연한 산책이다 보니 산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1에디슨의 전구에서는 스산할 정도로 조용한 주택가에서 쇼와 시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골목에는 예전에 살 뻔한 집도 있었습니다.


2시나가와의 셋타에서는 “TV나 잡지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산책은 산책이 아니다. 이상적인 산책은 태평한 미아라고나 할까(22)”라는 대목을 발견합니다. 일상적인 산책이라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나 교토에 있는 철학자의 길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경로를 따라 걷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우연한 산책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시가가와에서도 거리풍경이 지방같다는 느낌을 받고, “옛날엔 이 길을 상투 틀고 짚신 끌고 다녔던 거지. 관서지방처럼 번성하기를 꿈꾸면서. 그게 불관 100년 전이라니 참 신기해.(23)”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시나가와의 신발가게에서 세타를 사고 목욕도 하지만 정작 찾아간 가게는 폐점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흐르는 강물 위에 걸린 다리에 선 주인공은 우리는 50년 뒤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27)”라고 말합니다.


7하모니카 요코쵸에서는 이 만화를 그리기 전에 정한 원칙이 이야기됩니다. “이런 골목길은 가이드북 같은 것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걷는게 재미있는 거 아닌가요? 조금 불안할 정도가 재미있는 것 아닌가요? 걷다보면 반드시 재미있는 가게나 물건이 나오는, 자기 스스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골목이거든요. 그리고 산책은 관광과는 다르죠. 목적 같은 거 없이 자기 마음대로 느긋하게 걷는 데서 오는 기쁨이거든요.(76)”


마지막 8메지로의 카키모치에서는 해외에서 구매 상담을 온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외국인은 카와카미 소쿤이 일본어 교과서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공의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암투병기 <죽고 싶지 않아!>였다고 하는데,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 산책이었다고 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와서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병환이 위중하여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것 아닐까요?


그 외국인 구매자를 숙소에 바래다주고는 우연히 종업원 출구로 나오는 바람에 이상한 거리로 나섰는데,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동네 가게들이 이어지는 곳에서 카키모치를 사기도 하고,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칭칭과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오망코에서 한글자씩 따온 칭망(珍萬)이라는 식당에서 쇼유라멘을 사먹기도 합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흔적을 담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연한 산보>를 우연히 읽고 귀중한 생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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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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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누군가의 책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아마도 단절되었던 가족들과 다시 만남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한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제가 간헐적으로 쓰고 있는 생애의 발자취를 정리하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147떨어진 랭스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과는 달리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던 어머니가 일을 해서 지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지만 어머니는 약속한 대로 2학년까지 학비를 지원해주었다고 합니다.


랭스에는 과거 카페왕조의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치른 노트르담 드 랭스 대성당이 있습니다. 랭스의 인구가 19만 명인 점을 보면 작가가 모두에서 이야기하는 1950년대 주민 수가 50명도 되지 않았다고 적은 것을 보면 랭스의 교외에 있다는 뮈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나 봅니다.


파리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 고향에 발길을 끊었던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고향을 찾아 어머니와 옛날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이야기들을 이 책의 서두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고향을 등진 것은 아버지의 폭력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타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시각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를 덮친 절망과 그의 존재를 변화시킨 넘어설 수 없는 고통에 관해 매일매일 기록했다. 그의 노트를 읽을 때면, 나는 그의 비탄과 고뇌가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느낀 감정과 얼마나 다른지 헤아려본다. ‘나는 애도하고 있지 않다. 나는 고통받고 있다.’ 그는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고 난 후 일어난 일에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썼다. 내게는 그 일이 무엇이었을까?(20)”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어떤 감정이 남았던지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배경과 철학을 공부하고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저자가 좌파를 넘어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다만 그런 행로를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좌편향된 자료들만 찾아 읽었을 뿐 우파와 관련된 자료들은 굳이 외면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질 들뢰즈가 아베세데르(L’abécédaire)에서 좌파라는 것먼저 세계를 내다보는 것” “멀리 내다보는 것이며, 반대로 좌파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좌파 우월주의적인 시각에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좌파들은 그들이 저주하던 우파의 행보보다 더 우파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좌우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좌파나 우파나 아무 차이가 없어. 모두 똑같은 놈들이야. 늘 당하는 사람들만 당하는 거지.(146)”라고 말하던 에리봉의 어머니 생각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니의 지원이 끝나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는 중등교원으로 10년간 근무해야 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임용시험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의무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할 곳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성애적 성향임을 알게 되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그런 공간을 찾곤 했는데, 그렇게 만난 친구의 주선으로 만난 인연이 소개해준 잡지 리베라시옹에 기사를 쓰다가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좌파 성향의 신문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피에르 불디외, 미셸 푸코 등과 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르주 뒤메질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도 쓰게 되었습니다. 에리봉을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게이 문제에 관한 성찰><소수자의 도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서야 고향 랭스로 돌아간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랭스로 되돌아가다>에 담기로 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아닌 이론서를 지향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푸코와 부르디외, 사르트르, 보부아르, 데리다. 바릍, 들뢰즈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물론 아렌트 세즈윅, 버틀러, 천시 등의 외국 이론가, 장 주네, 마르셀 푸르스트, 앙드레 지드, 마르셀 주앙도, 오스카 와일드, 아니 에르노 등 작가들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이론들은 이해가 어렵기는 했습니다만, 저자가 인용한 원서까지 읽어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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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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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편의 독후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을 단 <로마인 이야기1>를 읽기 시작한 것이 2023623, 그 독후감을 누리사랑방에 올린 것이 202384일입니다. ‘로마 세계의 종언이라는 제목을 단 <로마인 이야기15>202572일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무려 2년하고도 열흘을 더한 세월이 걸렸습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것도 <로마인 이야기1>40일 걸렸던 것보다는 절반 정도에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로마 세계의 종언 역시 하루 저녁에 끝난 것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세계사에서 배우기로는 서기476년에 서로마제국, 즉 로마제국은 훈족과 스키리아인의 피가 반씩 섞인 게르만의 헤룰리족 출신의 플라비우스 오도아케르가 마지막 황제 호물루스 아루구스툴루스를 쫓아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오도아케르 역시 로마제국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로마황제를 칭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탈리아 왕을 자처하면서 동로마제국의 섭정으로 서로마를 통치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15>의 제1최후의 로마인에서 서기395년부터 410년까지 시기를 다루었고, 2로마제국의 멸망에서는 서기 410년부터 제국이 막을 내린 476년까지를, 3제국 이후에서는 서기 476년 이후의 로마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15>의 시작을 서기 395년으로 한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동로마와 서로마를 혼자서 통치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회의 진흥에 힘쓴 점을 공인하여 콘스탄티누스에 이어 대제로 칭하게 되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함께 로마제국은 장남 아르카디우스에게 물려 준 동로마제국과 차남 호노리우스에게 물려준 서로마제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3세기 말에도 사두제를 운용하여 각지의 국경에서 도발하는 서로 다른 야만족들에 대처하는 분담통치 방식을 유지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만, 두 아들은 황제의 유지를 받들지 않고 등을 돌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던가 봅니다. 두 아들이 전장에 나서 전투를 지휘한 경험도 없고, 국정에 참여한 경험도 없어 황제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후에 얄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먼저 움직여 동로마제국을 침공하였습니다. 서고트족의 침공을 막는 임무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두 아들을 부탁한 스틸리코였습니다만, 아르카디우스 황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방에서 데려간 병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고 총사령과 스틸리코는 서방병력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서로마제국의 궁정은 환관들이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은 동방에서 이주해온 아타르의 훈족에 밀려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로마와 서로마가 상호 지원을 통하여 야만족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었는데 그와 같은 협력체제가 무너지면서 힘이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총사령관 스틸리코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야만족의 침략에 대응할 만한 장수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로마는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도아케르에게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 황으로서 동로마제국의 섭정에 만족하게 됨에 따라서 동로마제국이 서로마제국을 통치하는 모양새를 가짐에 따라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476년이 아닌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으로 보는 견해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도아케르는 17년간 이탈리아를 통치할 수 있었지만, 동고트 부족의 테오도리크에게 밀려 실각하게 됩니다. 테오도리크로부터 동고트왕국은 33년 동안 이탈리아를 지배하지만 결국은 동로마제국에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어 로마제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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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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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청나라 말에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만주족 출신 작가 라오서가 문학잡지 현대에 발표한 과학환상소설 형식의 정치 우화이자 풍자소설인 <묘성기(猫城記)>를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19328월에 연재를 시작하여 19334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역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 기행을 앞두고 공부삼아 읽어보았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이 조계지를 둔 세계적인 무역도시였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상업중심지였습니다. 그 무렵 청나라는 극도의 혼란과 정치적 불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본은 1931년 류타오후에서 철로를 폭파시키는 자작극을 벌여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탄 중국인이 화성을 대기권에 진입하던 중에 사고를 당해 불시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우주선을 운전하던 친구는 사고로 죽고 화자만 살아남았습니다. 친구는 묻어주기도 전에 몰려든 독수리에 뜯어 먹히고, 그 와중에 몰려온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묘인들은 300년 전에 도입된 미혹 나무의 잎에 의지하게 되면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일은 물론 만사를를 제쳐놓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미혹 나무를 재배하고 관리하는 일은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황제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뒷전이고 정부관리 역시 임무를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고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의 중국의 시대상을 화성에 빗대고 묘인들은 중국사람들을 외국인들은 상하이 조계지에 모여 살던 외국인들을, 묘인국에 쳐들어 온 외국군은 일본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우주선은 소련이 1957년에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며, 역시 소련이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여행에 성공하게 되면서 인류의 우주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라오서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5년에 발표한 <지구에서 달까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8년에 발표한 화성인의 침공을 다룬 <우주전쟁>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두 작품이 우주과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라오서 역시 화성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화성에 묘인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나 미혹나무 등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화성에 대기에 대한 설명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회색빛 하늘을 봤다. 흐린 날씨는 아니지만 회색 공기로 가득했다. 햇빛이 강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다. 무척 더웠기 때문이다.(13)”라고 설명했지만, 화성의 대기는 희박한데 그나마 95%가 이산화탄소이며, 질소 3%, 아르곤 1.6%이며 산소는 극소량에 불과합니다. 대기 온도는 평균 영하 63입니다. 낮최고는 20이지만, 대기가 희박하여 열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빠르게 떨어집니다. 극지방에서는 영하 140까지 내려갑니다.


혼탁, 질병, 불결, 혼란, 어둠 등으로 대표되는 묘인들 사회에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묘인들이 존재합니다. 화자가 화성에 처음 도착하여 만났던 따시에의 아들 사오시에 같은 인물입니다. 이들은 미혹나무도 먹지 않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분투를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정부고관들은 물론 대중들까지도 미혹나무에 현혹되어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외국군이 쳐들어오자 황제는 가장 먼저 도망가고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도 외국군에 투항하러 갑니다. 하지만 외국군은 투항한 묘인군사들까지도 모두 죽여버립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의 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라오서는 그렇듯 희망이 없어보이는 당대의 사람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6823일 베이징시문학예술계연합회가 주최한 문혁집회에 참가했을 때, 열여섯 살 남짓의 여학생들이 몰려와 작가들을 무릎 꿇리고 주자파’, ‘잡귀사신’, ‘반동문인이라는 검은 팻말을 목에 걸고 구타를 하는 등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라오서는 집을 나서 자금성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타이핑 호수로 가서 투신하여 67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전하기로는 196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최종 투표에서 후보에 오른 라오서를 1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주중스웨덴대사는 위원회의 위탁을 받고 라오서를 찾았지만 이미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위원회는 수상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중국계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高行健)2000년에 수상했고, 중국 국적의 작가로는 모옌(莫言)2012년에 받았으니, 문화대혁명이 아니었더라면 중국은 44년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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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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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본 자식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병명을 알려드리고 치료방향에 대해서도 같이 의논을 할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제 경우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방향도 직접 결정하시도록 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미국의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예 평론가 그리고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다양한 심경을 정리한 책입니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을 읽으면서 수전 손택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는 점도 많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는 질병. 특히 결핵, 암 그리고 에이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 그녀 역시 나름대로의 해석한 결과를 담아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녀는 마흔 두 살이 되던 해 유방암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을 읽고서는 65새 되던 해에 자궁유종으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고, 생애의 마지막 해에 진단받은 골수이형성증후군에 병발한 급성백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말초혈액에서 적혈구, 호중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면서 감염 혹은 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급성백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구세포의 돌연변이가 축적되거나, 특정 유전질환 혹은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에서 생기는 원발성 골수이형성증후군이나, 암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 이차성 골수이형성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수혈 등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혈액암의 발병을 감시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과 같은 적극적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의 원제목이 <Swimming in a Sea of Death>인 것처럼 질병으로 투병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였던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런 대목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투병 기간 몇 달 동안에, 어머니를 어떻게든 위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암 투병 이야기는 하면서, 죽음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23)” 그 이유는 어머니는 살아온 대로 돌아가셨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어머니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과 화해차지 못한 채로, 그런 고통을 겪었는데도.()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카네티와, 위대한 시 새벽의 노래(Aubade)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 위안, 여타의 정신적 속임수에 대한 경멸을 노래했던 필립 라킨(Philip Larkin)과 한편에 섰다.


심지어는 페루의 위대한 시인 세자르 바예호()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살고 싶어,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더라도. / 왜냐면 전에도 말했고 다시 말하지만 / 삶은 아무리 넘쳐도 모자라니까! 그렇게 많은 세월에도, / 언제까지나, 아주 많이 언제, 언제, 언제까지나!(129)”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데이비드 리프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가끔 차라리 어머니 대신 내가 죽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일까? 그런 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일 뿐이다.(143)”


이야기 막바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뒤라스의 공포보다는 브레히트의 평정심을 얻었기를 빌어 보았자 그것은 기껏해야 사랑의 표현일 뿐, 속 빈 강정보다 나을 것 없는 소리다. 확신하건데 이런 감상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가 그런 감상을 경멸하는 것은 정당했다. 어머니는 그 본질을 꿰뚫어보았을 테니까. 그것은 계속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위안이라는 것을.(153)”


여기서 말하는 뒤라스의 공포와 브레히트의 평정심은 이렇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말년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151)” 그런가하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병실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면서도 놀라운 연작시를 섰다고 합니다. 병실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아무 것도 잘못될 게 없지.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손택은 어느 날 일기에 “‘를 초월하지 않는 한 죽음은 견딜 수 없는 문제다.”(151)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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