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본 자식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병명을 알려드리고 치료방향에 대해서도 같이 의논을 할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제 경우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방향도 직접 결정하시도록 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미국의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예 평론가 그리고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다양한 심경을 정리한 책입니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을 읽으면서 수전 손택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는 점도 많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는 질병. 특히 결핵, 암 그리고 에이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 그녀 역시 나름대로의 해석한 결과를 담아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녀는 마흔 두 살이 되던 해 유방암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을 읽고서는 65새 되던 해에 자궁유종으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고, 생애의 마지막 해에 진단받은 골수이형성증후군에 병발한 급성백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말초혈액에서 적혈구, 호중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면서 감염 혹은 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급성백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구세포의 돌연변이가 축적되거나, 특정 유전질환 혹은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에서 생기는 원발성 골수이형성증후군이나, 암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 이차성 골수이형성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수혈 등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혈액암의 발병을 감시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과 같은 적극적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의 원제목이 <Swimming in a Sea of Death>인 것처럼 질병으로 투병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였던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런 대목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투병 기간 몇 달 동안에, 어머니를 어떻게든 위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암 투병 이야기는 하면서, 죽음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23)” 그 이유는 어머니는 살아온 대로 돌아가셨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어머니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과 화해차지 못한 채로, 그런 고통을 겪었는데도.()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카네티와, 위대한 시 새벽의 노래(Aubade)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 위안, 여타의 정신적 속임수에 대한 경멸을 노래했던 필립 라킨(Philip Larkin)과 한편에 섰다.


심지어는 페루의 위대한 시인 세자르 바예호()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살고 싶어,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더라도. / 왜냐면 전에도 말했고 다시 말하지만 / 삶은 아무리 넘쳐도 모자라니까! 그렇게 많은 세월에도, / 언제까지나, 아주 많이 언제, 언제, 언제까지나!(129)”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데이비드 리프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가끔 차라리 어머니 대신 내가 죽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일까? 그런 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일 뿐이다.(143)”


이야기 막바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뒤라스의 공포보다는 브레히트의 평정심을 얻었기를 빌어 보았자 그것은 기껏해야 사랑의 표현일 뿐, 속 빈 강정보다 나을 것 없는 소리다. 확신하건데 이런 감상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가 그런 감상을 경멸하는 것은 정당했다. 어머니는 그 본질을 꿰뚫어보았을 테니까. 그것은 계속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위안이라는 것을.(153)”


여기서 말하는 뒤라스의 공포와 브레히트의 평정심은 이렇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말년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151)” 그런가하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병실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면서도 놀라운 연작시를 섰다고 합니다. 병실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아무 것도 잘못될 게 없지.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손택은 어느 날 일기에 “‘를 초월하지 않는 한 죽음은 견딜 수 없는 문제다.”(151)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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