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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평점 :
드디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편의 독후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을 단 <로마인 이야기1>를 읽기 시작한 것이 2023년 6월 23일, 그 독후감을 누리사랑방에 올린 것이 2023년 8월 4일입니다. ‘로마 세계의 종언’이라는 제목을 단 <로마인 이야기15>은 2025년 7월 2일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무려 2년하고도 열흘을 더한 세월이 걸렸습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것도 <로마인 이야기1>이 40일 걸렸던 것보다는 절반 정도에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로마 세계의 종언 역시 하루 저녁에 끝난 것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세계사에서 배우기로는 서기476년에 서로마제국, 즉 로마제국은 훈족과 스키리아인의 피가 반씩 섞인 게르만의 헤룰리족 출신의 플라비우스 오도아케르가 마지막 황제 호물루스 아루구스툴루스를 쫓아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오도아케르 역시 로마제국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로마황제를 칭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탈리아 왕을 자처하면서 동로마제국의 섭정으로 서로마를 통치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15>의 제1부 ‘최후의 로마인’에서 서기395년부터 410년까지 시기를 다루었고, 제2부 ‘로마제국의 멸망’에서는 서기 410년부터 제국이 막을 내린 476년까지를, 제3부 ‘제국 이후’에서는 서기 476년 이후의 로마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15>의 시작을 서기 395년으로 한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동로마와 서로마를 혼자서 통치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회의 진흥에 힘쓴 점을 공인하여 콘스탄티누스에 이어 대제로 칭하게 되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함께 로마제국은 장남 아르카디우스에게 물려 준 동로마제국과 차남 호노리우스에게 물려준 서로마제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3세기 말에도 사두제를 운용하여 각지의 국경에서 도발하는 서로 다른 야만족들에 대처하는 분담통치 방식을 유지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만, 두 아들은 황제의 유지를 받들지 않고 등을 돌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던가 봅니다. 두 아들이 전장에 나서 전투를 지휘한 경험도 없고, 국정에 참여한 경험도 없어 황제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후에 얄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먼저 움직여 동로마제국을 침공하였습니다. 서고트족의 침공을 막는 임무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두 아들을 부탁한 스틸리코였습니다만, 아르카디우스 황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방에서 데려간 병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고 총사령과 스틸리코는 서방병력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서로마제국의 궁정은 환관들이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은 동방에서 이주해온 아타르의 훈족에 밀려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로마와 서로마가 상호 지원을 통하여 야만족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었는데 그와 같은 협력체제가 무너지면서 힘이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총사령관 스틸리코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야만족의 침략에 대응할 만한 장수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로마는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도아케르에게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 황으로서 동로마제국의 섭정에 만족하게 됨에 따라서 동로마제국이 서로마제국을 통치하는 모양새를 가짐에 따라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476년이 아닌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으로 보는 견해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도아케르는 17년간 이탈리아를 통치할 수 있었지만, 동고트 부족의 테오도리크에게 밀려 실각하게 됩니다. 테오도리크로부터 동고트왕국은 33년 동안 이탈리아를 지배하지만 결국은 동로마제국에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어 로마제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