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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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누군가의 책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아마도 단절되었던 가족들과 다시 만남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한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제가 간헐적으로 쓰고 있는 생애의 발자취를 정리하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147떨어진 랭스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과는 달리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던 어머니가 일을 해서 지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지만 어머니는 약속한 대로 2학년까지 학비를 지원해주었다고 합니다.


랭스에는 과거 카페왕조의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치른 노트르담 드 랭스 대성당이 있습니다. 랭스의 인구가 19만 명인 점을 보면 작가가 모두에서 이야기하는 1950년대 주민 수가 50명도 되지 않았다고 적은 것을 보면 랭스의 교외에 있다는 뮈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나 봅니다.


파리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 고향에 발길을 끊었던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고향을 찾아 어머니와 옛날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이야기들을 이 책의 서두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고향을 등진 것은 아버지의 폭력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타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시각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를 덮친 절망과 그의 존재를 변화시킨 넘어설 수 없는 고통에 관해 매일매일 기록했다. 그의 노트를 읽을 때면, 나는 그의 비탄과 고뇌가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느낀 감정과 얼마나 다른지 헤아려본다. ‘나는 애도하고 있지 않다. 나는 고통받고 있다.’ 그는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고 난 후 일어난 일에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썼다. 내게는 그 일이 무엇이었을까?(20)”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어떤 감정이 남았던지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배경과 철학을 공부하고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저자가 좌파를 넘어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다만 그런 행로를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좌편향된 자료들만 찾아 읽었을 뿐 우파와 관련된 자료들은 굳이 외면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질 들뢰즈가 아베세데르(L’abécédaire)에서 좌파라는 것먼저 세계를 내다보는 것” “멀리 내다보는 것이며, 반대로 좌파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좌파 우월주의적인 시각에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좌파들은 그들이 저주하던 우파의 행보보다 더 우파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좌우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좌파나 우파나 아무 차이가 없어. 모두 똑같은 놈들이야. 늘 당하는 사람들만 당하는 거지.(146)”라고 말하던 에리봉의 어머니 생각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니의 지원이 끝나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는 중등교원으로 10년간 근무해야 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임용시험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의무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할 곳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성애적 성향임을 알게 되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그런 공간을 찾곤 했는데, 그렇게 만난 친구의 주선으로 만난 인연이 소개해준 잡지 리베라시옹에 기사를 쓰다가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좌파 성향의 신문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피에르 불디외, 미셸 푸코 등과 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르주 뒤메질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도 쓰게 되었습니다. 에리봉을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게이 문제에 관한 성찰><소수자의 도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서야 고향 랭스로 돌아간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랭스로 되돌아가다>에 담기로 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아닌 이론서를 지향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푸코와 부르디외, 사르트르, 보부아르, 데리다. 바릍, 들뢰즈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물론 아렌트 세즈윅, 버틀러, 천시 등의 외국 이론가, 장 주네, 마르셀 푸르스트, 앙드레 지드, 마르셀 주앙도, 오스카 와일드, 아니 에르노 등 작가들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이론들은 이해가 어렵기는 했습니다만, 저자가 인용한 원서까지 읽어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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