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아름다움 - 미술로 보는 한국의 평온미
최광진 지음 / 현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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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미술품을 대상으로 미학적으로 해석한 책들은 적지 않게 읽었습니다만, 최광진교수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저가는 여는 글에서 한국의 미학을 천착해온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민족 마다의 문화적 정체성이 있듯이 우리나라도 역시 나름의 문화적 정체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미학에 대한 그의 천착은 <한국의 미학>에서 시작하여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 신명>,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 해학>,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을 거쳐 <현존의 아름다움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양, 중국, 일본과의 다름을 논하다는 부제가 붙은 <한국의 미학>에서 각각의 문화적 정체성을 문화의지라고 전제하면서, 서양의 문화의지는 근본적으로 분화적이고, 동양은 통합적이라는 사실에 도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통합적인 동양의 경우도 대륙국가인 중국은 자기를 중심으로 확장하며 통합하려는 동화의지가 강하고, 해양 국가인 일본은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조직화하려는 응축의지가 발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반도국가인 한국은 대립적인 것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접화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극처럼 하늘과 땅의 대립을 조화시키는 점화의지는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이라는 4대 미의식으로 발현되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4대 미의식에 대한 설명을 보면, ‘신명은 현실에서 비롯된 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인의 가장 뿌리 깊은 미의식이고, ‘해학은 부조리한 현실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낙천적인 미의식이라 했으며, ‘소박은 한국인 특유의 자연 친화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미의식이며, ‘평온은 세속적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명상적인 미의식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다른 주제에 대한 설명은 아직 미지의 영역입니다만, 저자가 여는글에서 정리해놓은 이 책의 구성을 보면 먼저 서장에서 평온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와 같은 정의에 적용한 방법론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불교조각, 고려의 불교회화, 조헌의 문인화를 거쳐 현대미술에서 평온의 미의식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4가지 주제는 우리나라의 미술품은 물론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각국의 미술품은 물론 유럽의 것까지 아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사한 형식의 조각이나 회화 등 다양한 예술품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불교조각의 평온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비교하면서 뒤러, 미켈란젤로, 다 빈치의 회화작품 로댕의 조각을 비교합니다. 석굴암의 본존불 역시 인도의 간다라 불상, 중국 운강석굴의 대불, 일본 가마쿠라 대불과 비교하고 있어 국가별의 불상들이 가진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현존의 아름다움>에서 인용하고 있는 회화, 조각 작품들은 상당수가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인 까닭에 비교하는 설명들이 금세 와닿는 것 같습니다.


몇 군데 남겨놓고 싶은 대목을 옮겨놓자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의 화제는 두보의 시에서 따온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는구나(老年花似霧中看)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화제에 관한 시조를 남겼다고 합니다. “봄날 물가에 배를 띄워서 가는 대로 놓았더니 /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 . / 이 와중에 늙은 이 눈에 보이는 꽃은 마치 안개 속 같구나.(208)”라는 시조입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반도국가인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고,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접경지역이라는 지정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럴수록 평온이 요구된다고 하겠는데, 과거에 비하여 현대의 한국 예술작품들은 서양예술을 뒤쫓다 보니 한국적인 미학이 실종되어가고 있음을 아쉽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위기라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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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와 수류탄 - 생활사 이론
기시 마사히코 지음, 정세경 옮김 / 두번째테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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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나오는 망고와 수류탄이 어떤 관계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원제목 <망고와 수류탄-생활사 이론(マンゴ と手榴-生活史理論)>을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책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연구하는 기시 마사히코교수가 오키나와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는 방식으로 오키나와 사회의 변천사를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상을 정리하는 연구방법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습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1429년에 3개의 왕국이 통일되어 성립한 류큐왕국이었습니다. 1609년경 사쓰마번의 속국이 되었다가 메이지 시대인 1872년 류큐번으로 강등하여 속령임을 분명히 하더니 1879년에는 강제병합하여 오키나와현을 설치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 본토 상륙을 노리는 미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오키나와에서 벌어졌습니다. 전투는 결국 미군의 승리로 끝났는데,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두 개씩 준 다음 자폭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2015년 저자가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증언에 나선 여성이 연구진에게 대접한 것이 망고였다는 것입니다. 칼집을 낸 망고는 꼭 수류탄처럼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와 일본군이 강요한 자폭이 벌어졌던 그때의 기억이 끔찍할 법도 한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를 두고 일본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일본은 가해자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인 척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일본은 진주만 공습 이전부터 주변국가들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것이므로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은 크게 잘못된 것 맞습니다.


사회학의 질적 조사 방법론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개인의 경험을 듣다보니 때로는 이야기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차별을 들었습니다. 차별은 때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불이익의 상태만이 아니라 그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야기 코스케(八木晃介)의 경우 구술자의 구술을 부정하고 사회문제의 문제성을 이론 안에서 유지하는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했지만, 사쿠라이 아츠시(桜井 厚)대화적 구축주의라는 방법론에서는 조사자가 구술자의 구술내용을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쿄의 피차별부락에서의 해방운동에 대하여 부정적 의견을 말하는 남성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차별 같은 거 이제는 없어요당신들이 차별, 차별하면서 시끄럽게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요.(71)” 차별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별을 받았다는 혹은 받은 적이 없다는 인식은 당사자들에 따른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차별의 일반화에 따른 오류일 가능성이 있겠단 싶었습니다.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책으로 묶어낸 <설국을 가다>에서는 시마자키 도손(島崎 藤村)하카이(破戒, 파계, 1906)를 소개하면서 차별에 대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하여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옳은지 생각할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내와 함께 <망고와 수류탄>을 읽고서는 오키나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일정을 맞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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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책방 이야기 - 모험과 사랑, 그리고 책으로 엮은 삶의 기록
루스 쇼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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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습니다. 뉴질랜드의 비중이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인연으로 읽은 <세상 끝 책방 이야기>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책방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가인 루스 쇼는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에 있는 마나포우리 호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마나포우리에서 자그마한 책방 둘을 경영한다고 합니다.


마나포우리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에 마나포우리에서 북쪽으로 불과 21떨어진 테아나우를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수가의 작은 마을 풍경이 어떤지는 알 듯도 합니다.


<세상 끝 책방 이야기>은 작가의 자서전입니다. 출생에서 마나포우리에서 작은 서점을 경영하기까지의 삶을 28개 꼭지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각각긔 꼭지의 이야기는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 꼭지에는 책방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끝 책방 이야기>은 작가와 작가의 책방의 자서전인 셈입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삶은 범상치 않다고 해서는 부족할 듯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본 사람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녀가 살아온 발자취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내용인데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추지 않고 고해성사 하듯이 적어낸 까닭에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아닐까요?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작가의 삶 가운데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데 있어 정상적인 사고로 정할 수 없는, 즉 설명되지 않은 행보를 보였던 경우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이 없습니다.


책방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다양한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읽지 않는 이상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책방이야기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도 읽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손에 들어온 책은 제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일단 끝까지 읽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서는 이제 일흔이 넘으니 책이 몇 장 안에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옆으로 치워버리지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시간도 없고 또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81)”라고 답합니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 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자왈 삼인행에 필유아사언이니 택기선자 이종지오 기불선자이개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선한 것은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것은 거울로 삼아 고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좋아하는 책은 물론 좋아하지않는 책도 읽어야 배움이 넓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즉 좋아하지 않는 책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이야기 가운데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일랜더호를 타고 항해를 하며 몇 달 동안 일기를 계속 섰다. 하지만 몇 년 후 승선한 다른 요크 크루세이더호가 뱅골만에서 침몰하는 바람에 그만 그 일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승무원이 모두 사망한 대참사였다. 당시 나는 선장이자 선주였던 자의 능력을 믿을 수 없었고 고민 끝에 크루세이더호에서 내렸다. 사고 몇 달 전이었다.(136)” 근무하던 배에서 내리면서 중요한 소지품을 두고 내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죽어가는 어머니의 곁을 지킨 이야기에서도 조금은 생뚱맞은 대목을 곁들입니다. “극심한 통증과 모르핀 주사가 반복되면서 어머니의 몸은 서서히 쇠약해졌다. 그래도 어머니의 정신은 맑은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책을 읽어드리면 편안히 지어 보이던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 그 미소가 내 마음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기억이란 의도하지 않더라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세세한 부분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떤 사실을 더해지기고, 잊히기도 하며, 다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서히 진행되던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증인으로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 어머니의 용기와 내면의 강인함이 선명히 떠오른다.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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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겐지 이야기
일본고전독회 엮음 / 제이앤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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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간하게 될 일본근대문학기행 <설국을 가다>를 쓰면서 1000년 무렵 발표된 일본의 고소설 <겐지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나왔을 때는 천황을 비롯한 황실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몰이가 상당했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일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했습니다.


<겐지 이야기>1931년 육당 최남선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고, 1938년에는 겐지 이야기가 실린 교과서(물론 일본어 교과서)를 들여와 조선의 아동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보다는 일찍 영역본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1975년 처음 번역본이 나온 뒤로 모두 3종의 번역서가 출간되었습니다.


1980년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국내의 45개 대학에 일본어학과가 신설되면서 <겐지 이야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키워드로 읽는 겐지 이야기>는 일본고전독회에서 그간의 연구성과를 모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25명의 연구진이 각각 맡은 주제를 논하였습니다.


5부로 구성된 <키워드로 읽는 겐지이야기>1부 작품해설에서는 <겐지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와 배경을 소개하고, 작가인 무라사키시키부의 삶과 작품활동 그리고 동 시개에 가나를 사용하여 작품확동을 한 여류작가들과의 관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겐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신앙과 의례, 공간과 생활, 여성과 삶, 비평과 수용 등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원본 <겐지 이야기>에 관한 내용에 우선 관심이 갔습니다. 1000년 무렵 일본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황실에서 만든 작품임에도 필사본을 돌려가며 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필사본은 황실에서 나온 것이라서 천년이 넘게 잘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필사본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크게 청표지본(靑表紙本), 가우치 본(河內本), 별본(別本) 등 세 계통ㅇ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전체 54첩으로 구성되며 200자 원고지로 치면 5천매가 넘는 대하소설인 셈입니다. 등장인물이 무려 500명이나 된다고 하며, 기리쓰보(桐壺) 천황으로부터 4대의 천황에 이르는 70년간의 세월을 통한 등장인물들의 부침을 다루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겐지(源氏)의 여성편력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젊어서 호색하던 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정을 준 여인들과 로쿠조인에 모여 살게 됩니다. 겐지의 여성 편력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심지어는 천황의 정실부인을 강제로 범하여 임신을 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여성편력이 두드러진 것은 카사노바를 닮았지만, 무모한 점은 카사노바와 다른 점입니다. 정부인과 연인들과 로쿠조인이라는 대저택에서 함께 사는 모습은 19세기에 남영록 쓴 우리의 고전소설 <옥루몽>을 연상케 합니다.


<겐지 이야기>에는 사계절과 황실의 의례, 귀족들의 의식주나 심리상태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어 당대의 일본 귀족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키워드로 읽는 겐지이야기>에서는 발해라는 단어가 20회 나온다고 했지만, 제가 읽은 제이앤씨 출판의 번역본에서는 기리쓰보 천황이 겐지의 운명을 발해에서 온 사신에게 물었다는 대목만 있을 뿐 나머지는 고려의 종이, 고려의 비단, 고려의 악기, 고려의 음악 등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발해는 일찍이 일본과 사신이 왕래하는 관계였지만, 고려의 경우는 정식으로 수교를 한 적이 없었고, 원의 일본정벌을 지원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상인들이 오가며 교역을 했다고 합니다.


사가(嵯峨) 천황(재위 809- 823)의 황자 미나모토노 토오루(源融)가 히카루 겐지의 본보기 중 한 명이며, 기리쓰보 천황 역시 가상의 인물로 60대 다이고(醍醐) 천황(재위 897930)을 본보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발해(727926)와 고려(9181392)가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어긋나는 점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무라사키 시키부가 겐지 이야기를 쓴 것이 1000년 무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해 사신문제나 고려의 문물이 등장하는 부분을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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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닷마을 다이어리 1~8 세트 - 전8권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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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여행기를 담은 <설국을 가다>를 쓰면서 가마쿠라 해변을 돌아본 이야기에서 인용하기 위하여 읽게 된 만화책입니다. 처음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요시다 아키미의 원작만화를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9권이나 되는 분량이었지만, 읽어내는 데는 그리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주인공 네 자매의 만남이 그려진다. 15년전 아버지가 애인과 함께 떠난 뒤에, 어머니도 집을 나가자 세 자매는 카마쿠라의 고쿠라쿠지(極樂寺)에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일상을 꾸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집니다. 간호사인 큰언니 사치가 밤근무인 까닭에 둘째 요시노와 셋째 치카는 야마가카 온천마을로 떠납니다.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를 처음 만납니다. 아버지와 함께 가마쿠라를 떠난 둘째 부인 사이에서 난 딸입니다.

그 사이 둘째 부인은 죽고 아버지는 사내아이가 둘 달린 셋째 부인을 얻어 살고 있었습니다. 장례식날 사치가 찾아와 세 자매는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릅니다. 장례를 마치고 가마쿠라로 돌아오는 길에 사치는 배웅나온 스즈에게 가마쿠라에 와서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스즈는 가마쿠라에 오게 되고 학교에서는 축구부에 들어 적응을 시작합니다. 전반부에는 세 자매의 중심이 되는 사치가 화자처럼 보이지만, 후반에서는 스즈가 화자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세 자매의 연인을 비롯하여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소개됩니다.

의미 있는 대목:

(사치)“사람이 죽으면 참 많은 것들이 드러나거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다 보이는 곳이 장례식장이야. 여태까지 몰랐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 튀어나오기도 하고,(23)”
(사치) “어린애가 아이답지 않은 것만큼 슬픈 게 또 어디 있겠어요.(51)”

(사치)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 나무라는 겉 너무 가혹하잖아.(57)”

 

두 번째 이야기: 한낮에 뜬 달

새로 생긴 세 언니와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스즈는 등굣길에 둘째 언니 요시노의 남자친구 토모아키를 목격하는데,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진 스즈는 토모아키의 뒤를 따라갑니다. 토모아키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한편 주장 유야의 병문안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골키퍼 미호와 마주칩니다. 스즈와 함께 축구부에 있는 유야를 좋아하는 미호는 스즈는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어봅니다. 미호네 집은 잔멸치잡이를 하는데, 카마쿠라에 접한 쇼난 카이는 잔멸치(시라스) 잡이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밥 위에 뿌려 비벼먹더라구요. 수술을 받고 퇴원한 유야는 재활치료를 시작합니다.

삿포로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찾아와서는 네 자매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정리하자고 합니다. 집을 건사하는 일이 힘들었다면서. 사치가 정색을 하고 반박합니다. 언제 집을 손보기라도 했었냐고. 사치는 자매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싫었던 것 같습니다.

 

(스즈) “난 형제자매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아빠 엄마가 죽은 건 분명히 슬펐지만 그래서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처음으로 내가 불쌍한 거구나하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어. () 쉽게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진짜 짜증나!(128)”

(스즈) “난 낮에 뜬 달이 좋아. 밤이 아닌데도 보이다니,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랄까.(140)”

 

세 번째 이야기: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아버지의 1주기가 돌아와 네 자매는 아버지의 1주기 재를 지내기 위해 야마가카 온천마을에 갑니다. 가보니 아버지의 셋째 부인 요코씨는 재가를 하고 없었습니다. 사치와 스즈는 당황합니다. 스즈는 새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보면 사치와 스즈는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네 자매는 온천마을에서 사온 만주를 직장에서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 소소한 일상에서 여러 가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치가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자매들에게 충격을 줍니다. 스즈는 축구부의 후타와 유야 사이에서 혼란스럽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가마쿠라 해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가 등장합니다. 네 자매는 각자의 장소에서 불꽃놀이를 즐깁니다. 시이나 선생은 보스턴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면서 사치와 함께 가자고 청하지만 사치는 결국 시이나 선생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말기환자를 돌보는 완화케어 병동에서 일하기로 합니다. 사치가 시이나 선생의 요청을 거절하는 장소가 가마쿠라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라서 익숙했습니다.

 

(치카) “언닌 회피하는 사람을 진짜 싫어하거든. 아빠한테도 그랬다니까...(30)”

(사치) “한낮인데 달이 보이면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든다고요.(101)”

  

네 번째 이야기: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스즈는 다가오는 후타의 생일선물을 준비하며 후타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함께 간 축제에서 큰 언니 사치가 타다 유야의 주치의인 소아과 시이나 선생과 만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뒤쫓게 됩니다. 덕분에 함께 뒤쫗던 후타는 감기에 걸리고, 스즈는 문병차 후타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유야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두 사람은 유야를 찾아 에노시마로 향합니다. 유야의 행방불명 소동이 끝난 뒤 스즈와 후타는 더욱 가까워져 크리스마스이브에 첫 데이트를 합니다. 사치와 요시노 역시 의외의 상대와 만나게 됩니다.

의미 있는 대목:

(스즈) “우리 엄마는 언니들 아빠였던 아빠를 만나서 카마쿠라를 도망치듯 떠났어. 불륜이었던거지. 그래서 내가 태어났어. 우리 엄마가 언니들한테서 아빠를 빼앗아버렸던거야. 언니들은 그건 어른들끼리의 일이니까 나랑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난 계속 언니들한테 미안해하고 있었다. 부인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 우리 엄마가 나쁜 거라고.(32)”

 

다섯 번째 이야기: 남빛

스즈가 가마쿠라에 와서 두 번째 봄. 어느날 이모가 연락해왔다. 스즈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스즈에게도 유산을 남겼다고. 스즈의 어머니가 가정이 있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결혼까지 하게 되자, 친정어머니는 한 가정을 깨트리면서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다니 말도 안된다면서(37)” 딸을 내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외손녀 스즈가 태어나자 적지 않은 돈을 건내려 했다는데, 스즈의 어머니는 난 아사노씨 가족한테서 남편과 아버지를 빼앗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라는 보물까지 얻었으니 더 이상 뭔가를 받을 수는 없다.(39)”면서. 그리고 스즈는 진학문제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큰언니는 주임이 되고 둘째 언니도 매니저로 승진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미네코 식당주인 니노미야 아주머니가 암으로 진단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죽음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주변사람들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합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4월이 오면 그녀는

스즈는 유산 상속 절차를 밟기 위해 카나자와로 와달라는 외삼촌의 연락을 받는다. 외할머니의 기일에 맞춰 언니들과 함께 카나자와로 향한 스즈. 외할머니의 형제들이 스즈에게 유산을 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여 남아있는 가족들이 충돌하는 모습은 그러한 외고집이 전통 복장을 지켜온 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즈는 이런 고집스러운 상대의 행동이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이어나가려는 의지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편 코다 가 네 자매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맏이 사치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이노우에 감독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둘째 요시노는 상사인 사카시타 과장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그리고 스즈에게는 시즈오카의 고등학교에서 축구부를 신설하기 위하여 장학생으로 초청한다는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집니다.

(사카시타) “길 끝쪽에 물이 있는 것 같이 보여요. () 아 생각났다! 땅거울이다. 신기루의 일종이라죠?”

(요시노) “사막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 현상 말예요?”

(사카시타)“빛의 굴절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하네요. 오늘처럼 더울 날에 잘 보인다고 해요.”

(해설) “사막처럼 기온이 높은 곳에서 전방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일본으로는 도망가는 물이란 뜻의 니게미즈()’란 용어를 쓴다.”(56-57)

 

일곱 번째 이야기:그날의 파란 하늘

스즈는 시즈오카의 고등학교에서 축구 장학생 제안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가 더이상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후타는 떨어져 있다고 해서 언니들이 스즈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여 용기를 줍니다. 첫째 사치와 둘째 요시노는 각자 새로 만난 옥터푸스의 감독 야스유키와 함께 일하는 사카시타 과장과의 사랑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한편 스즈는 다니는 중학교에서 교토로 가는 수학여행을 다녀옵니다. 교토의 키요미즈데라에서 스즈 일행과 함께 보여준 풍경은 오래 전에 가보았던 그곳이 풍경을 떠오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사랑과 순례

스즈의 축구단 옥토푸스는 첫경기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를 승부차기 끝에 이겼습니다. 스즈의 축구 재능이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즈는 치카가 임신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민합니다. 점장님의 아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치카는 스즈와 함께 카마쿠라 파워스폿으로 알려진 신사들을 순회하면서 치성을 드립니다. 점장님이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순회하던 중에 지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바람에 사치와 요시노, 그리고 하마다 점장도 알게 됩니다.

치카의 일이 일단락 된 뒤 스즈는 맏언니 사치와 함께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 참석을 위해 시즈오카에 다녀옵니다. 가마쿠라처럼 바다는 없지만, 학교 앞으로 펼쳐지는 차밭이 바다를 닮았습니다.

(하마다) “그 친구(세르파 안 파산)가 술만 취하면 항상 이런 말을 했대. ‘에베레스트 여신은 결코 무자비하지 않아. 두루미를 통해서 두 사람한테 기회를 준거냐라고. ‘여신은 두 사람의 답을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은 꼭 여리고 돌아올 거야.’라고(89-90)”

 

아홉 번째 이야기: 다녀올게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치카와 혼인신고를 마친 하마다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떠납니다. 사치와 요시노의 사랑도 저마다 진전을 보이고, 스즈는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매미 울음소리가 그칠 무렵 시작되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 매미울음 소리가 잦아들면서 마무리됩니다. 마무리를 앞두고 에베레스트에 간 하마다의 등산대가 폭퐁에 갇히면서 연락이 두절되는 비상상황을 맞기는 하지만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스즈는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시즈오카로 떠납니다. 배웅을 나온 후타에게 다녀올게라는 인사를 남기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종합해보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남겨놓은 세 자매와 그리고 이복 자매가 각각 부모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는 그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마쿠라는 바닷가 마을이었기에 그리고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설이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가마쿠라의 멋진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보다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던 가마쿠라의 숨어있는 모습이라던가 맛집, 음식이나 명절과 같은 특별한 것들을 알 수 있는 만화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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