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 개정판
크누트 함순 지음, 우종길 옮김 / 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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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누스 함순의 <땅의 혜택>에 이어 읽은 그의 초기 작품 <굶주림>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미국에 다녀온 다음 발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가 직접 체험한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의 상황, 그리고 심리 상태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굶주림>에는 전혀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다고 했습니다. “19세기의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로서 태어난, 신경질적이고 지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라는 점은 크게 부각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끼니를 거르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자신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가진 것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만들어 도와주기도 합니다. 어떻든 주인공은 글을 써서 신문사에 팔아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논어 술이편에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굶주려도 의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인데, <굶주림>의 주인공은 굶주림에 굴복하여 의롭지 않은 일도 저지르기도 합니다. 거짓을 말하고 금전을 훎기고 합니다. 어쩌면 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기라 할 일까지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서문에서 계속되는 굶주림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온갖 도덕적인 변모와 지적인 동요를 다루었다고 했나봅니다.


구직과정에서 수없이 퇴짜를 맞은 것을 보면 글쓰는 일 말고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가 봅니다. 아니면 거친 일은 할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아낸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자리를 찾아낼 때마다 하느님이 간섭하고 모든 것을 망치니, 이건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고 했습니다.


월세를 낼 수가 없어서 노숙을 밥먹듯하고 심지어는 경찰서의 유치장을 제발로 찾아들기도 하는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든 굶주림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도 없이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마도 무언가 화자가 굶주림을 해결할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며 시대적 배경은 저자가 미국에 다녀온 19세기 말임을 생각해보면 사회보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던가 봅니다. 화자는 결국 허드렛일을 할 선원으로 배를 타고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뉴펀들랜드 뱅크로 대구를 잡으러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경험은 <아이슬랜드의 어부들>에 담았다고 합니다.


소개의 글을 쓴 옥타르 미르는 이 작품이 대단하다고 했던 이유가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이나 열렬한 훈계라든지 격렬한 비판이나 요구가 없었다는 것, 몇날 며칠이고 굶고 지내면서도 불평도 증오감도 없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것이었을까요?


미국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와서는 얼마 후에 파리로 피신해서는 가난하고 고독한 가운데 열심히 글을 써갔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프랑스 문학 경향과는 다른 그런 글은 결국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를 비롯하여 <굶주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을 대체로 순박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셋집 주인처럼 빡빡한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활로를 찾아볼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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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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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게 한 작품 <땅의 혜택>을 읽었습니다. “황야를 지나 숲으로 통하는 기나긴 길. 그 길을 낸 것은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땅의 혜택>50대에 들어서 노르웨이의 북극권에 있는 노를란 지방에 농장을 구입하여 직접 경작하게 된 작가적 경험을 바탕으로 동토의 땅을 개척하는 농민들의 생활을 그려낸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 작품입니다.


노를란은 노르웨이 중남부에서 태어난 작가가 3살 때 가족을 따라 이주한 곳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백야가 겨울에는 암흑이 계속되는 그런 곳에서 성장하여 열네 살 때부터는 상점 점원, 제화공의 도제, 사무 보조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여덟에 단편 수수께끼의 남자를 발표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을 다녀왔고, 31살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담은 <굶주림>을 발표하여 대대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땅의 혜택>은 마을에서도 몇 킬로미터 떨어진 황무지를 지나 숲이 시작되는 곳에 정착하여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남자 이사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까지 2대에 걸친 삶을 그렸습니다. 낙엽과 썩은 나뭇가지가 수천 년간 쌓여 영양분을 가득 품은 부식토와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사크는 매일 일을 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일은 자작나무의 껍질을 벗겨 말린 뒤에 몇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가져가 건축자재로 팔아 식량과 일용품 그리고 연장을 구해오다가 암염소 두 마리와 숫염소 한 마리를 사 옵니다.


가축이 생기게 되면서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나는 라플란드 사람들에게 하녀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내달라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오두막을 지었지만 힘든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서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었을 때 그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소문을 들은 것인지 우연히 들른 것인지는 모르나 잉에르라고 하는 여자가 이사크를 도와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가 온 뒤로 외로운 남자 이사크의 삶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이사크가 하는 일마다 크게 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그저 이사크의 일손을 도와주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친척에게 맡겨놓은 어미양 두 마리와 새끼양 몇 마리를 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금뿔이라는 이름의 소까지. 가축이 늘어나자 이사크는 집을 늘려 지어야 했고, 겨울을 나기 위해 건초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금뿔이는 송아지를 낳았고, 봄이 되기 전에는 잉에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에서도 하루를 꼬박 가야 하는 황무지를 두 사람이 개척하는 동안 이웃에도 농장을 일구는 사람이 들어왔고, 가까운 곳에 광산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사크와 잉에르의 가족도 아들과 딸이 생겨 성장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잉에르는 자신처럼 토순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감옥에 갇히는 일 말고는, 아니 잉에르가 한때 찾아드는 남자들에게 한눈을 판 적도 있기는 하지만 크게 굴곡이 없는 삶을 살아냅니다.


이사크의 가족들 가운데 작은 아들 시베르트는 아버지를 닮아서 땅을 일구는 삶에 만족을 합니다만, 큰 아들 엘레세우스는 전신주 공사를 하러 온 기사를 따라 도시로 나가면서 뜬구름처럼 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으로 떠납니다. 마치 작가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엘레세우스는 작가의 분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이사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게이슬레르가 이사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지요. “자연은 자네와 자네 가족의 것이야. 인간과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옳다고 인정해주며, 서로 경쟁하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대신 손을 잡고 가지. 자네들 셀란로 사람들은 그 한가운데 있으면서 번창하고 있어. 산과 숲, 늪지와 목초지, 하늘과 별. , 이 모든 것은 아끼면서 찔끔찔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차고 넘친다네.(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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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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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탓인지 어느 책에서 인용되었던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막사 읽어보니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이유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걷는 망자>민속학과 공포 그리고 본격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마쓰다 신조의 작품집입니다. 표제작 걷는 망자를 비롯하여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집’,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서 있는 쿠치바온나등 다섯 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담았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끔찍한 살인이 전제되는 그런 사건들 같습니다. 그런데 괴기스럽다 할 도시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이와 같은 도시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들었던 괴기담이 일본의 것에서 유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처럼 명탐정 도조 겐야의 수집품과 장서가 보관되어 있는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괴이 민속한 연구실)에 수집된 사건을 도조 겐야를 따라 입학한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걷는 망자>는 민속학자이자 명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는 도조 겐야 연작의 파생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들 속에 등장하는 도시전설을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걷는 망자에서는 도리노우라의 해안가에 있는 좁은 길을 망자의 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오는데,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씐다고도 했다. 그런데 망자가 해가 지지 않은 시각에도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 유럽과 미국의 문화가 단숨에 퍼져나가는 가운데 케케묵은 토착적인 인습가운데 일부는 자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진 후에도 밖에서 놀면 망자에게 끌려간다라는 말로 아이에게 겁을 주는 부모는 여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에서의 도시전설은 괴기한 이야기흘 즐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마쓰다 신조 작가의 경우는 그와 같은 도시 전설을 끌어다가 범행을 은닉하려는 강력사건을 도조 겐야라는 명탐정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반전을 가져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전설을 좋아하고,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의 성향을 잘 이용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걷는 망자>에서는 물론 탐정 도조 겐야가 해결한 사건을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으로 보내지며, 이를 두고 화자인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에 담긴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도쇼 아이는 할머니로부터 격세유전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영매로서의 자질을 바탕으로 도시전설을 해석하고, 덴큐 마이토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의 비밀을 추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쓰루야 슌사쿠가 훗날 괴기 소설 작가가 되고 도쇼 아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영매가 되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사연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네 번째 이야기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에 등장하는 치킨라면1958년 닛신(日清) 식품에서 춣시된 일본 최초의 즉석 라면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라면을 내놓은 회사는 삼양식품이었습니다. 일본 라면업계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묘조(明星) 식품의 도움을 받아 출시한 삼양라면은 끓인 뒤에 닭기름이 둥둥 뜨고 닭곰탕의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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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서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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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제가 오랫동안 뒤쫓고 있는 화두입니다. 그 기억과 서사를 어떻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도쿄외국어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대아랍문학과 제3세계 페미니즘 사상을 전공하였다고 합니다..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이자 교토대학 명예교수라고 하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수의 자격이 그리 엄격하지 않은가 봅니다.


아랍어를 전공한만큼 탈 자아타르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랍어로 탈(Tal)언덕자아타르(al-Za‘atar)는 향초의 시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옮기면 시간의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난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탈 자아타르는 레바논의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대량학살이 벌어진 비극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란 한 사람이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의 정보를 간직하며, 어떠한 계기에 이를 도로 떠올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사란 행동이나 사건의 흐름을 직접 보여주는 표현양식으로, 삶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오디세이>가 대표적인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사는 집단기억을 형성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 글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주로 서사의 방식으로 개인이 기억하는 바를 전하였으나,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는 문자가 서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사를 대치하게 된 소설이 서사와 다른 점으로 서사는 모어로 소통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소설은 번역을 통하여 다양한 언어로 전해진다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개인의 기억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상황이 발생하여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기억 자체가 흐려지면서 제대로 회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기억이 주는 부정적인 효과로 인하여 기억자체를 스스로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민족과 생존을 건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는 차별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발자크의 단편소설 아듀를 비롯하여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쉰들러 리스트>, 일본군 위안부 사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등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여 서사의 본질을 논하였습니다. 사실 어떠한 명제를 논함에 있어 절대적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겠습니다만, 저자는 인용한 사례들을 해석함에 있어 명쾌한 입장을 유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과거 일본이 저지를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수정주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모호한 점은 옮긴이의 설명에서 다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서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업시 도래하는 폭력적 사건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왜 과거의 폭력적 사건의 수인이 된 채 사회 밖 타자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을 고통스러운 기억의 감옥에서 놓여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의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소설, 영화,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서사 비평을 통해 모색해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167)”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타자가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3자가 분유(分有)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3자가 분유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서 풀어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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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옛날이야기 루쉰문고 7
루쉰 지음, 유세종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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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신 선친 덕분에 일찍부터 열국지, 금병매, 수호지 등 중국의 고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중국 근대소설 읽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0월로 예정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에서 루쉰, 라오스, 마오둔 등 세 명의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비교적 시간여유를 두고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을 두루 읽어보고 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는 아직 독후감을 쓰지 못한 <루쉰, 길 없는 대지>에서 평론가 고미숙이 소개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192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쓴 8개의 작품을 수록한 <고사신편(古事新編>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고미숙은 일종의 소설집이라고 했습니다. ‘일종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고사, 즉 신화, 전설, 민담 등 여러 문헌에 전해지는 기록들을 모아 새롭게 짜깁기 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사를 재해석하는 접근이 아니라 고사를 가져다가 루쉰이 경험한 일들을 섞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고사의 원형을 읽어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루쉰이 겪을 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기본 틀이 되는 고사는 10여년 전에 읽은 <중국신화전설1>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어서 읽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루쉰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루쉰이 창안한 방식의 글쓰기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복고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린위탕(林語堂)의 소품문 운동, 즉 고전을 시류에 맞춰 변주하는 작업과는 맥을 같이하는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쉰 자신은 린위탕의 소품문 운동과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단호하게 잘라냈다고 합니다. 고미숙에 따르면 고대적 서사 위에 현재적 사건을 촘촘히 박아 넣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미숙은 <고사신편>에서 시간여행의 미학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듦으로써 상식과 통념, 나아가 표상의 근저를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신화전설1>을 읽어 고사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루쉰의 작업이 고사의 본질을 훼손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잘못 알게 만드는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재해석한다는 영화나 연속극에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짜깁기해 넣으면서 역사의 실제를 모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실이 아닌 역사를 믿게 만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에서 입증된 내용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1922년에 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중단했던 것을 왕징즈의 <혜초의 바람>에 대한 음험한 비평을 읽고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서 소설을 마무리하고서는 이런 글을 다시 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샤먼에 숨어 살던 1926년에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검을 벼린 이야기를 썼고, 상하이에 정착한 1934년에 1, 1935년에 4편을 몰아 써 <고사신서>를 출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책과 여행을 묶어 쓴 이야기를 사내잡지에 연재하다가 중단되었던 것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편을 출간했던 것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중국의 고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루쉰이 살던 당시의 중국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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