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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옛날이야기 ㅣ 루쉰문고 7
루쉰 지음, 유세종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평점 :
책읽기를 좋아하신 선친 덕분에 일찍부터 열국지, 금병매, 수호지 등 중국의 고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중국 근대소설 읽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0월로 예정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에서 루쉰, 라오스, 마오둔 등 세 명의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비교적 시간여유를 두고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을 두루 읽어보고 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는 아직 독후감을 쓰지 못한 <루쉰, 길 없는 대지>에서 평론가 고미숙이 소개했습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은 192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쓴 8개의 작품을 수록한 <고사신편(古事新編>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고미숙은 일종의 소설집이라고 했습니다. ‘일종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고사, 즉 신화, 전설, 민담 등 여러 문헌에 전해지는 기록들을 모아 새롭게 짜깁기 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사를 재해석하는 접근이 아니라 고사를 가져다가 루쉰이 경험한 일들을 섞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고사의 원형을 읽어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루쉰이 겪을 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기본 틀이 되는 고사는 10여년 전에 읽은 <중국신화전설1>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어서 읽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루쉰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루쉰이 창안한 방식의 글쓰기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복고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린위탕(林語堂)의 소품문 운동, 즉 고전을 시류에 맞춰 변주하는 작업과는 맥을 같이하는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쉰 자신은 린위탕의 소품문 운동과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단호하게 잘라냈다고 합니다. 고미숙에 따르면 ‘고대적 서사 위에 현재적 사건을 촘촘히 박아 넣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미숙은 <고사신편>에서 시간여행의 미학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듦으로써 상식과 통념, 나아가 표상의 근저를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신화전설1>을 읽어 고사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루쉰의 작업이 고사의 본질을 훼손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잘못 알게 만드는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재해석한다는 영화나 연속극에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짜깁기해 넣으면서 역사의 실제를 모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실이 아닌 역사를 믿게 만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에서 입증된 내용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는 1922년에 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중단했던 것을 왕징즈의 <혜초의 바람>에 대한 음험한 비평을 읽고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서 소설을 마무리하고서는 이런 글을 다시 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샤먼에 숨어 살던 1926년에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와 ‘검을 벼린 이야기’를 썼고, 상하이에 정착한 1934년에 1편, 1935년에 4편을 몰아 써 <고사신서>를 출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책과 여행을 묶어 쓴 이야기를 사내잡지에 연재하다가 중단되었던 것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편을 출간했던 것입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중국의 고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루쉰이 살던 당시의 중국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