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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서사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평점 :
‘기억’은 제가 오랫동안 뒤쫓고 있는 화두입니다. 그 기억과 서사를 어떻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도쿄외국어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대아랍문학과 제3세계 페미니즘 사상을 전공하였다고 합니다..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이자 교토대학 명예교수라고 하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수의 자격이 그리 엄격하지 않은가 봅니다.
아랍어를 전공한만큼 ‘탈 자아타르’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랍어로 탈(Tal)은 ‘언덕’ 자아타르(al-Za‘atar)는 향초의 시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옮기면 ’시간의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난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탈 자아타르는 레바논의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대량학살이 벌어진 비극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란 한 사람이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의 정보를 간직하며, 어떠한 계기에 이를 도로 떠올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사란 행동이나 사건의 흐름을 직접 보여주는 표현양식으로, 삶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대표적인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사는 집단기억을 형성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 글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주로 서사의 방식으로 개인이 기억하는 바를 전하였으나,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는 문자가 서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사를 대치하게 된 소설이 서사와 다른 점으로 서사는 모어로 소통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소설은 번역을 통하여 다양한 언어로 전해진다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개인의 기억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상황이 발생하여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기억 자체가 흐려지면서 제대로 회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기억이 주는 부정적인 효과로 인하여 기억자체를 스스로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민족과 생존을 건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는 차별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발자크의 단편소설 「아듀」를 비롯하여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 일본군 위안부 사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등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여 서사의 본질을 논하였습니다. 사실 어떠한 명제를 논함에 있어 절대적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겠습니다만, 저자는 인용한 사례들을 해석함에 있어 명쾌한 입장을 유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과거 일본이 저지를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수정주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모호한 점은 옮긴이의 설명에서 다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서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업시 도래하는 폭력적 사건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왜 과거의 폭력적 사건의 수인이 된 채 사회 밖 ‘타자’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을 고통스러운 기억의 감옥에서 놓여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의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소설, 영화,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서사 비평을 통해 모색해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167쪽)”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타자가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3자가 분유(分有)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제3자가 분유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서 풀어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