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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평점 :
꽤 오래 전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탓인지 어느 책에서 인용되었던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막사 읽어보니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았던 이유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걷는 망자>는 민속학과 공포 그리고 본격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마쓰다 신조의 작품집입니다. 표제작 ‘걷는 망자’를 비롯하여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집’,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서 있는 쿠치바온나’ 등 다섯 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담았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끔찍한 살인이 전제되는 그런 사건들 같습니다. 그런데 괴기스럽다 할 도시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이와 같은 도시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들었던 괴기담이 일본의 것에서 유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처럼 명탐정 도조 겐야의 수집품과 장서가 보관되어 있는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괴이 민속한 연구실)에 수집된 사건을 도조 겐야를 따라 입학한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걷는 망자>는 민속학자이자 명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는 ‘도조 겐야 연작’의 파생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들 속에 등장하는 도시전설을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걷는 망자’에서는 도리노우라의 해안가에 있는 좁은 길을 ‘망자의 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오는데,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씐다고도 했다. 그런데 망자가 해가 지지 않은 시각에도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 유럽과 미국의 문화가 단숨에 퍼져나가는 가운데 케케묵은 토착적인 인습가운데 일부는 자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진 후에도 밖에서 놀면 망자에게 끌려간다’라는 말로 아이에게 겁을 주는 부모는 여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에서의 도시전설은 괴기한 이야기흘 즐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마쓰다 신조 작가의 경우는 그와 같은 도시 전설을 끌어다가 범행을 은닉하려는 강력사건을 도조 겐야라는 명탐정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반전을 가져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전설을 좋아하고,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의 성향을 잘 이용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걷는 망자>에서는 물론 탐정 도조 겐야가 해결한 사건을 무묘대학교 지하에 있는 괴민연으로 보내지며, 이를 두고 화자인 신입생 도쇼 아이와 연구실을 지키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에 담긴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도쇼 아이는 할머니로부터 격세유전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영매로서의 자질을 바탕으로 도시전설을 해석하고, 덴큐 마이토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쓰루야 슌사쿠가 사건의 비밀을 추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쓰루야 슌사쿠가 훗날 괴기 소설 작가가 되고 도쇼 아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영매가 되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사연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네 번째 이야기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에 등장하는 ‘치킨라면’은 1958년 닛신(日清) 식품에서 춣시된 일본 최초의 즉석 라면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라면을 내놓은 회사는 삼양식품이었습니다. 일본 라면업계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묘조(明星) 식품의 도움을 받아 출시한 삼양라면은 끓인 뒤에 닭기름이 둥둥 뜨고 닭곰탕의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