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 젊은 의사가 수술실에서 만난 기적의 순간들
라이너 융트 지음, 이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평점 :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역시 지난달에 시칠리아와 몰타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책을 쓴 라이터 융트(Rainer Jund)는 독일 뮌헨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로 근무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계속해왔습니다.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는 그 과정에서 느낀 병원과 의료체계의 한계, 환자를 이해하는 일 등 의사라면 누구나 겪었을만한 일들을 솔직담백하게 적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인생은 쉼 없이 계속된다‘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하여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보험사로, 은행으로, 학교로, 혹은 사무실로 일하러 가는데 반하여 자신은 죽음을 만나러 가고 있다는 생각에 집중합니다. 아마도 해부학 실습을 처음 하는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400명이나 되는 뮌헨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을 위하여 기증된 사체를 두고 여덟 명의 의과대학생들이 동시에 해부학 실습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늬 의과대학처럼 첫날은 엄숙한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었고, 그 순간만큼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해부학을 공부할 때는 100명의 학생들이 50명씩으로 나뉘어 네 명인가 여섯 명이서 한 구의 사체로 실습을 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사체를 구하지 못해서 해부학 실습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건이 이런데 의과대학 정원을 2천명을 추가로 늘리겠다고 하는 정부는 과연 어떤 통계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의 병원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넓고 추운 병동에 마취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외상외과, 내과의 여러 분과, 방사선과, 종양학과, 병리학과 등 모든 학과가 있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병동은 대부분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입원 환자들이 대부분 같은과의 진료를 받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취과, 방사선과, 병리학과 등 지원진료과들은 수술실, 촬영실, 검사실 등과 소속되어 업무를 하게 됩니다.
신경외과 수련 기간이 끝나고 두경부 외과 병동으로 옮겼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수련의 시절의 이야기 같은데 병동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불려갔지만 환자를 구하지 못하고 말았던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환자를 수술실로 옮겨 지혈술을 시행했다고 하는데, 수련의가 그와 같은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나 병동 의사가 환자를 다시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지만, 병동환자의 심정지시에 출동하는 응급체계는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응급실 야간당직 근무를 하면서 응급환자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응급실로 뛰어갔다고 하는데, 응급실 야간당직의사는 환자가 없어도 응급실을 지키고 있어야 환자가 들이닥칠 때 바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한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사례에서 빠져 있는 것은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모든 의사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급이 낮은 의사에게는 치료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필요한 검사를 한다거나, 병력을 청취하여 바로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읽다보면 저자가 노르웨이 마법사라고 칭하는 동료는 뮌헨의과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것처럼 이야기가 시작되다가 뒤에서는 오슬로에서 의과대학을 마쳤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