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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 되찾은 시간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민음사에서 새롭게 번역하여 내놓아온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이야기 ‘되찾은 시간’의 1권과 2권이 같이 나온 것을 모르고 2권, 그러니까 마지막편만 사다 읽고 나서 보니 1권을 건너뛴 셈이라서 최근에서야 되찾은 시간1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작가가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되찾은 시간은 마르셀이 생루의 초대를 받아 콩브레 근처에 있는 탕송빌성에 체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콩브레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작가의 길을 꿈꾸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지병이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고, 그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파리에 잠시 머물기도 합니다.
특히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는 과정에서 문학에 대한 재능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적었습니다. “마치 문학이 심오한 진리를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듯 덜 유감스럽게 보였고, 동시에 문학이 내가 믿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게 행각되었다. 한편 책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내가 보았던 것들만큼 아름답지 않다면, 이제 곧 요양원에 갇히게 될 내 병약한 몸 상태가 덜 유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41쪽)”
되찾은 시간(1)에서는 제1차 세대대전 기간 중에 파리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선에서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겠습니다만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프랑스군과 싸우고 있는 독일의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당대에 읽히던 많은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인데, 민음사 판에서는 작가가 다른 책에 나온 구절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주석에서 원전의 내용을 밝힌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민음사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구해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이제 전체 분량이 완간되었으니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최대한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독후감도 써보면 좋겠지요?
‘되찾은 시간’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이야기인 만큼 앞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정리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다루었던 주제인 동성애 문제, 살롱에 관한 내용들이 다시 나오고 질베르트, 게르망트 부인, 알베르틴 등 마르셀이 좋아했던 여성들과의 관계도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특히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앞서 동성애적 성향이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서 동성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되찾은 시간(1)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선으로 돌아간 생루가 부하들의 철수를 엄호하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사적인 부탁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은 마르셀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방 안에 칩거하면서 생루와 처음 만나던 장면부터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또한 되찾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생루가 생전에 했다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신뢰할만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생루는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오! 내 삶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마, 난 일찍부터 선고받은 자야.(301쪽)” 이는 ‘꽤 젊은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죽음이 어떤 법칙에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라고 한 듯합니다만, 죽음에 법칙이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