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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는 준비하고 있는 여행과 책읽기에 관한 책의 한 꼭지가 될 알바니아의 티라나에 관한 내용으로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돌의 연대기>, <잘못된 만찬>, <H 파일>, <부서진 4월> 등을 읽었지만, 공산정권 시절의 알바니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보아 이 책을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던 이스마엘 카다레는 공산 독재정권 하의 조국 알바니아의 혼과 집단기억을 문학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마르케스와 비유되며, 전제주의와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의 뒤를 잇는 반(反)유토피아 작가군의 후예로 꼽히기도 합니다. 또한 2천 년간의 외세 지배와 혹독한 스탈린 식 공산독재를 겪으며 유럽에서조차 잊힌 나라 알바니아를 역사의 망각에서 끌어낸 ‘문학대사’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36편의 소설, 수필집, 시집 등을 세상에 내놓았고, 우리나라에도 14종의 소설이 소개되었습니다.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는 1980년대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를 무대로 합니다. 엔베르 호자가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을 이끌던 시절 그의 총애를 받던 후계자 메메트 셰후가 자살한 사건이 주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자살이라고 발표가 되었지만 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알바니아 사람들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관심사였던 모양입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1981년 12월 14일 밤에 일어난 후계자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카다레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후계자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이 사건을 전후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심리상태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사건에 관한 세부사항들이 비밀에 붙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지도자 동지가 있습니다. 화자 역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갑니다. 서두에는 사건의 진행사항을 작가가 소개하며, 사건이 후계자의 딸 수잔나의 약혼과 관련이 있는 만큼 초반에는 수잔나가 화자가 되며, 타살을 의심하게 만드는 후계자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와 사건 당일 후계자의 집을 방문한 내무장관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역할에 대하여 진술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알바니아를 통치하던 지도자 동지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니아의 공포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은 후계자의 부검이 결정되었을 때 부검의의 심리를 묘사한 대목입니다. ”이런 종류의 부검이라면 부검을 실시한 장본인도 그 후로 계속 목숨을 부지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달의 표면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57쪽)“ 그러니까 당시 알바니아에서는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팔고 아버지가 아들을, 아내가 남편을 팔아넘기도록 부추기는 새로운 유전학적 현상이 만연해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구조와 다른 점입니다. 작가는 후계자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개의 가정을 차례로 제시하며, 관련 인물의 심리묘사에 집중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본질을 캐는데 집중하지 않고 알바니아에 내려오는 격언과 민담, 전설들을 인용하여 후계자의 죽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후계자는 혁명의 순교자로 암살당한 것이라고 했다가 뒤에는 지도자 동지를 타도하기 위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발표됩니다.
지도자 동지의 오락가락하는 생각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시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샅샅이 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겠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지고의 경지 아닐까. 그는 최근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서 오랜만에 참 평화를 맛보게 되었다. 이처럼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데 시력 상실이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191쪽)“
중간에 수산나의 애정행각을 다룬 대목이 나오는데 후계자의 죽음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작가는 <아가멤논의 딸>에서 수산나의 약혼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는 <아가멤논의 딸>에 이은 2부작 소설의 완성이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