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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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동란 발발 직후부터 흥남철수에 이르기까지의 미군의 대응을 기록한 마거리트 히긴스 기자의 <자유를 위한 희생;https://blog.naver.com/neuro412/223449622454>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제가 학생 때 배우기로는 6.25동란은 북이 치밀하게 준비하여 쳐들어왔다는 북침설이 확고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침설이 나오더니,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이번에는 남침유도설이 등장하여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유를 위한 희생>에서도 북한군이 38선을 넘어서자마자 한국군을 궤멸시키며 급하게 동원한 미군마저 밀어붙이면서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는 상황을 현장에서 목격했음을 기록했습니다. 한국군이 북침을 했다면 그렇듯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의 양상은 북한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위한 희생>이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되밀린 흥남철수까지의 상황을 다루었다면 <콜디스트 윈터>는 북한의 전쟁준비와 전쟁 발발 전후의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의 정치현황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의 정체로부터 북한에서 권력을 잡기까지의 과정,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남침을 계획하고 소련의 지원을 요구하던 정황, 오랜 내전 끝에 국민당 정권을 대만으로 몰아낸 마오쩌뚱의 중국공산당이 대내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참전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읽다보면 김일성이 남침이라는 오판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이 1950112일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공표하면서 대한민국을 제외한 것이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에 미군을 철수한 것도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625일 북한이 38선을 넘어서자마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한국의 방위보다는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를 공산당에 내주고 대만으로 밀려나고 보니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방위하는 것이 위태롭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주둔하던 맥아더 사령부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전력을 형편없는 것으로 오판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제외하고는 3년에 걸친 전쟁기간동안 전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응전하려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콜디스트 윈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전쟁과정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전과로 전쟁영웅으로 인식해온 맥아더 장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행기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지형이나 날씨 등 제반사항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의지가 있었나 의심받을 정도였을 뿐 아니라 눈치나 보은 참모를 측근에 두어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고 지적합니다.


<콜디스트 윈터>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군 중심으로 전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하게 된 계기라던가 참전 규모, 한국군의 실태 및 전과,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응 등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낸 것도 미군의 공이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것도 미군의 전과이며 38선을 넘어 북진하게 된 것도 맥아더의 선택이었으며 압록강까지 밀고 간 것은 중국 공산당의 참전을 촉발하게 되었다는 점, 참전 초기에 중공군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미군이 함정에 빠져 지리멸렬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동란이 김일성의 인민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전쟁이라는 점, 소련이 사주하고 중공군이 막판 뒤집기로 지원에 나섰다는 점 등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1000쪽이 넘는 부피가 부담스러워서 상하권으로 나누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6.25동란의 내막에 대하여 그저 막연한 젊은 세대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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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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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길 잃기 안내서>로 이미 만나본 적이 있는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었습니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만, 책을 다 읽고서도 제목이나 부제의 의미를 쉽게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사자성어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편입니다.


작가가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은 멀고도 가까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평생 자신을 못마땅해 했고, 시기했고, 불평만 했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그 옛날 작가를 왜 그렇게 대했는지 직접 들어볼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왜 다른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끌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의 혁명, 아이슬란드의 늑대, 남편과 아이를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작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끝에 어머니와 화해를 하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자신과도 화해했다고 말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뒤에 그때는 왜 그러셨을까요? 하고 물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어머니를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어머니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담겨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의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보이는 증상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지인으로부터 초대받아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금년 겨울에 오로라의 장관을 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 역시 금년 겨울에는 아이슬란드를 방문해보려 생각하고 있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유방암으로 진단받고 치료하는 과정도 나오는데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용어나 설명내용이 정확하지 않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그 과정이 나의 삶이라는 배를 다른 이들이 조종한다.(141)’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는 자신도 이애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실려 있고, 그 수수께끼는 언젠가 나도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 만다는 필연성이 담겨있다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체 게바라가 등장하는 과정이 다소 생뚱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체게바라가 등장하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제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체의 이야기와 작가가 이야기하는 체의 이야기에 다소 차이가 있어서 영화를 찾아 보거나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된 대목을 만났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것이 물리적 거리와 정신적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160)’라고 설명합니다. 앞서 어머니와의 거리를 그렇게 비유했나 싶었던 저의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


각장의 마지막에 곁들여져 있는 눈물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본문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독립적인 글인 듯한데, 이와 같은 글의 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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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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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작가가 쓴 <지하철 여행자>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만난 어느 분이 지하철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을 읽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란집은 선생님께서 작고하시고 2년이 지났을 때 따님이 유고를 모아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선생님이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에 노란집을 마련하고 나서 쓰신 글들이라고 합니다.


57꼭지의 글들을 모두 6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단편소설집으로 분류를 해놓았습니다만 소설이라 할 만한 글도 있고 수필로 보이는 글도 있습니다. 특히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수필의 범주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글 묶음의 제목과 개별 꼭지들이 연관성이 있는지 아리송한 글들도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이차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글 묶음인 그들만의 사랑법에 나오는 마나님과 영감님의 사랑 이야기는 제가 살아온 날들과 묘하게도 겹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보내온 알배기 영광 굴비를 구워 상에 올렸는데, 마침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왔더니 영감님이 알뜰하게도 모두 발라 먹은 것을 보고 별안간 허방을 밟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제 입 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허망하더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면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마나님이 토라지기도 잘 하지만 풀어지기도 잘 하기 때문에 영감님이 마나님의 토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들일하는 영감님에게 새참으로 내간 막걸리를 내간 마나님은 혹시라도 영감님이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 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마나님의 견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33)”라는 대목은 완전 감동이었습니다. 더하여 부엌 쪽에서 마나님이 설거지 하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마지막 날까지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죽음도 이렇게 달콤하게 왔으면,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활을, 그릇 달그락댄ㄴ 소리에 안타깝게 매달리다가 마침내 스르르 놓아버린다.(55)”는 대목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특히 올해 여름이 무척이나 더웠기 때문에 예전에는 어땠나 싶어 되돌아보면 금년처럼 더운 여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의 옛 속담에 여름엔 첩 팔아 부채 산다는 말이 있다(93)”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 날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선생님께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돈암동에서 종로까지 걸어 다녔다고 했는데, 종로도 1가에서 5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먼 거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매일 걸어 다닌 것은 아닙니다만, 대학시절에 돈암동에서 종로2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오거나 걸어서 집에 간 적도 있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안국동에서 비원과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짤막짤막해서 읽기 시작했는가 싶으면 끝이 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주변의 사물들을 손에 잡히듯 묘사하기 때문에 금세 머릿속에 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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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신화와 전설
찰스 스콰이어 지음, 나영균.전수용 옮김 / 황소자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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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아서왕이 영국 역사적인 인물이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역사를 배우기 전이었던 만큼 동화로 만난 아서왕을 실존했던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아서왕은 사실은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이 연속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역사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리스ㅡ로마 신화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비롯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들을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북유럽의 게르만족 사이에 내려오는 노르드 신화에서 유래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듣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찰스 스파이어가 쓴 켈트 신화와 전설을 읽게된 것은 영국과 아일랜드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58년에 태어난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조국의 뿌리를 찾는 일에 매료되어 고대 아일랜드와 브리튼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집한 것들을 정리하여 1905년에는 연구서로 <브리튼섬의 신화>를 출간했고 1906년에는 <고대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신화>1909년에는 <셀틱 사람들의 신화>라는 대중서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1910년에 나온 브리튼섬의 신화의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다고 합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소감은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화 혹은 전설적인 인물들 가운데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중의 일부만이 알 듯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켈트와 브리튼의 신화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연작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저도 두 작품을 완독했습니다만 분위기가 신화적이라는 생각을 쌨을 뿐 켈트 신화와 브리튼 신화와 연관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브리튼족과 켈트족 사이의 충돌이 역사적 사건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그 또한 마법사가 등장하고 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브리튼족은 붉은 용을 가지고 있고 켈트족은 흰용을 가지고 있어 두 부족이 충돌할 때 두 용도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파묻힌 거인>도 브리튼 신화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켈트 문화가 융성할 당시에 켈트 사람들이 그들의 신화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전무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가 호머에 의하여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과는 천지차이라 할 것입니다. 기록이 없을 뿐더러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 발칸반도 등지에서 성했던 전문적인 음유시인이 존재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시인이나 소설가가 인용하여 작품으로 남기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구전의 경우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녹아들어가 기존의 이야기가 변형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켈트나 브리튼의 신화에 그리스ㅡ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등장인물을 달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난난이 다리를 세 개 가지고 있어 엄청 빠르게 걸을 수 있다는 대목은 시칠리아 섬의 상징이 되고 있는 트리스켈레스가 아일랜드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 점 등입니다.


역시 브리튼의 신화에 등장하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의 뿌리를 캐는데 집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빠져있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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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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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는 준비하고 있는 여행과 책읽기에 관한 책의 한 꼭지가 될 알바니아의 티라나에 관한 내용으로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돌의 연대기>, <잘못된 만찬>, <H 파일>, <부서진 4> 등을 읽었지만, 공산정권 시절의 알바니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보아 이 책을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던 이스마엘 카다레는 공산 독재정권 하의 조국 알바니아의 혼과 집단기억을 문학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마르케스와 비유되며, 전제주의와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의 뒤를 잇는 반()유토피아 작가군의 후예로 꼽히기도 합니다. 또한 2천 년간의 외세 지배와 혹독한 스탈린 식 공산독재를 겪으며 유럽에서조차 잊힌 나라 알바니아를 역사의 망각에서 끌어낸 문학대사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36편의 소설, 수필집, 시집 등을 세상에 내놓았고, 우리나라에도 14종의 소설이 소개되었습니다.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1980년대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를 무대로 합니다. 엔베르 호자가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을 이끌던 시절 그의 총애를 받던 후계자 메메트 셰후가 자살한 사건이 주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자살이라고 발표가 되었지만 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알바니아 사람들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관심사였던 모양입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19811214일 밤에 일어난 후계자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카다레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후계자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이 사건을 전후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심리상태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사건에 관한 세부사항들이 비밀에 붙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지도자 동지가 있습니다. 화자 역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갑니다. 서두에는 사건의 진행사항을 작가가 소개하며, 사건이 후계자의 딸 수잔나의 약혼과 관련이 있는 만큼 초반에는 수잔나가 화자가 되며, 타살을 의심하게 만드는 후계자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와 사건 당일 후계자의 집을 방문한 내무장관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역할에 대하여 진술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알바니아를 통치하던 지도자 동지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니아의 공포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은 후계자의 부검이 결정되었을 때 부검의의 심리를 묘사한 대목입니다. ”이런 종류의 부검이라면 부검을 실시한 장본인도 그 후로 계속 목숨을 부지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달의 표면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57)“ 그러니까 당시 알바니아에서는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팔고 아버지가 아들을, 아내가 남편을 팔아넘기도록 부추기는 새로운 유전학적 현상이 만연해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구조와 다른 점입니다. 작가는 후계자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개의 가정을 차례로 제시하며, 관련 인물의 심리묘사에 집중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본질을 캐는데 집중하지 않고 알바니아에 내려오는 격언과 민담, 전설들을 인용하여 후계자의 죽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후계자는 혁명의 순교자로 암살당한 것이라고 했다가 뒤에는 지도자 동지를 타도하기 위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발표됩니다.


지도자 동지의 오락가락하는 생각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시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샅샅이 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겠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지고의 경지 아닐까. 그는 최근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서 오랜만에 참 평화를 맛보게 되었다. 이처럼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데 시력 상실이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191)“


중간에 수산나의 애정행각을 다룬 대목이 나오는데 후계자의 죽음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작가는 <아가멤논의 딸>에서 수산나의 약혼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아가멤논의 딸>에 이은 2부작 소설의 완성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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