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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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작가가 쓴 <지하철 여행자>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만난 어느 분이 지하철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을 읽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란집은 선생님께서 작고하시고 2년이 지났을 때 따님이 유고를 모아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선생님이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에 노란집을 마련하고 나서 쓰신 글들이라고 합니다.


57꼭지의 글들을 모두 6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단편소설집으로 분류를 해놓았습니다만 소설이라 할 만한 글도 있고 수필로 보이는 글도 있습니다. 특히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수필의 범주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글 묶음의 제목과 개별 꼭지들이 연관성이 있는지 아리송한 글들도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이차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글 묶음인 그들만의 사랑법에 나오는 마나님과 영감님의 사랑 이야기는 제가 살아온 날들과 묘하게도 겹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보내온 알배기 영광 굴비를 구워 상에 올렸는데, 마침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왔더니 영감님이 알뜰하게도 모두 발라 먹은 것을 보고 별안간 허방을 밟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제 입 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허망하더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면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마나님이 토라지기도 잘 하지만 풀어지기도 잘 하기 때문에 영감님이 마나님의 토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들일하는 영감님에게 새참으로 내간 막걸리를 내간 마나님은 혹시라도 영감님이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 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마나님의 견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33)”라는 대목은 완전 감동이었습니다. 더하여 부엌 쪽에서 마나님이 설거지 하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마지막 날까지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죽음도 이렇게 달콤하게 왔으면,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활을, 그릇 달그락댄ㄴ 소리에 안타깝게 매달리다가 마침내 스르르 놓아버린다.(55)”는 대목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특히 올해 여름이 무척이나 더웠기 때문에 예전에는 어땠나 싶어 되돌아보면 금년처럼 더운 여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의 옛 속담에 여름엔 첩 팔아 부채 산다는 말이 있다(93)”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 날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선생님께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돈암동에서 종로까지 걸어 다녔다고 했는데, 종로도 1가에서 5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먼 거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매일 걸어 다닌 것은 아닙니다만, 대학시절에 돈암동에서 종로2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오거나 걸어서 집에 간 적도 있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안국동에서 비원과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짤막짤막해서 읽기 시작했는가 싶으면 끝이 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주변의 사물들을 손에 잡히듯 묘사하기 때문에 금세 머릿속에 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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