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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H. 프리드먼 지음, 안종희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2008년의 전문가들의 대공방이 있은 뒤로 전문가들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오고 있습니다. 과학 및 기업분야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는 “전문가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말을 언제 믿어야 할까?”라는 극단적인 화두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우리는 따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약속하는 과학자, 경제학자, 의사, 경영의 대가, 심리학자, 그 외 여러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사실, 이런 혼란의 큰 책임은 이런 전문가들에게 있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견해를 조금 달리해서 이런 혼란의 큰 책임은 이렇듯 거짓말을 파는 전문가들의 말에 쉽게 넘어가는 귀가 얇은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전문가들이 전하는 조언을 되새겨 사실여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을 마치 사기꾼으로 몰기보다는 왜 전문가들이 오류에 빠지는 지, 그리고 우리가 더 신뢰할 만한 전문적인 조언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먼저 전문가들이 함정에 빠지는 패턴을 6가지로 구분해놓았습니다.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재, 그리고 자동적인 대응입니다. 이런 분류에 해당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사례가 안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부풀려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짧은 발레용 치마를 입은 쥐가 인간 발레리나와 같지 않은 것처럼 뇌에 프라그가 축적된 쥐는 인간의 알츠하이머 환자와 같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80쪽)”와 같은 표현입니다.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질병을 잘 표현하는 동물모델이 있으면 쉽고 안전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동물모델 역시 인간의 특성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의학자들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의 질병과정을 잘 나타내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붙고 있는 것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인데 이런 과정을 모두 쓸모없는 헛짓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실수로 혹은 일부러 저지르는 잘못의 종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측정, 잘못된 자료의 측정, 잘못된 동물시험 연구, 원하지 않는 자료의 폐기, 골대 이동, 교란변수, 숫자조작,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오류 등 과학자들이 들으면 오금이 저리는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에게 기대하는 조언은 명쾌함, 확실성, 보편성, 낙관성, 실행 가능성, 호감도, 파격적인 주장, 이야기, 숫자, 회고적 관심 등 열가지 특징을 담아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4장의 대중의 어리석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분석에 대한 관심은 다소 인색한 것 아니었는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예시한 “다수의 관점이 옳은 관점을 이긴다(138쪽)”는 부분에는 2008년의 사례를 보았을 때 크게 공감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례들 가운에 우리나라의 사례는 황우석교수 사건이 유일합니다만, 만일 제가 이런 종류의 책을 쓴다면 인용할 우리 사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부정을 방치한 볼티모어사건(166쪽)의 경우와 꼭닮은 생동성시험결과 조작사건 등에서 연구원들이 지도교수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편없는 연구를 보증하는 전문가 리뷰(172쪽)의 경우도 경험이 있습니다. 독성관련 전문잡지로부터 리뷰를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검토한 끝에 게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검토의견을 적어서 보냈는데, 뒤에 들으니 또 다른 리뷰어로부터 의견을 받아서 게재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높은 성과를 달성한 기업에서 배울 경영 경영교훈은 없다(196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도요타와 GM사이의 순위가 최근에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옳은 지적이라 공감합니다. 리콜에 소극적이었던 도요타 자동차가 결국은 하위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 요즘 상황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신뢰하기 어려운 전문가 조언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1. 단순하고, 보편적이고, 확정적인 경우. 2. 단 한 건의 연구 또는 많지만 소규모로 이루어졌거나 부주의한 연구 또는 동물실험 연구에 근거한 경우. 3. 연구 결과가 획기적인 경우. 4. 사람들이나 기관이 어떤 조언을 하면서 받아들이면 유익하다고 설득하는 경우. 5. 최근의 큰 실패나 위기가 장래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둔다는 조언들.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무시해도 좋은 전문가 조언의 특징으로는 1. 그럴듯하고 좋게 들릴 경우. 2. 도발적인 경우. 3. 적극적인 관심을 많이 받을 경우. 4. 다른 전문가들이 조언을 받아들인 경우. 5. 권위있는 저널에 발표된 경우. 6. 대규모의 엄격한 연구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경우. 7. 전문적인 조언을 지지하는 전문가가 자신의 훌륭한 자격을 내세울 경우. 등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뢰도가 더 높은 전문지식의 특징으로 1. 다른 경보기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2.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3. 연구의 제한사항을 많이 제시한다. 4. 연구 결과에 반대되는 증거를 솔직하게 밝힌다. 5. 연구의 배경을 제공한다. 6. 연구결과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솔직하고 직설적인 논평을 싣는다. 등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인용을 통하여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족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만, 제 전공분야이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퀴즈쇼”라는 제목으로 인용하고 있는 사례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례검토회입니다. 국내에서도 이 사례들을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의과대학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례회에서는 해당 사례의 주치의를 비롯하여 토론자로 나서는 유명한 임상의사들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사례토의를 통하여 진단이나 치료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이런 경험이 임상에서 인용되는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인데, 이를 “퀴즈쇼”라고 희화한 저자에게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는 제 리뷰를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