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눈물 - 조선의 만시 이야기
전송열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눈물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섭렵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네 선조들의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려니 하는 짐작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문학 특히 한문으로 되어 있는 우리의 고시문학은 한문뿐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등의 역사,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시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20여년을 조선시대 시문학에 천착해온 전송열교수님의 자상한 해설을 곁들인 우리 고시조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선의 만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옛사람의 눈물>에는 모두 35편의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잘 알려진 허난설헌과 남씨부인이라는 두 사람의 만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남성들의 작품입니다. 나머지의 대부분이 남성 사대부들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선 사대부들은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교육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던 저로서도 생각지 못한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만시(挽詩)라고 한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추모시가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사대부 정도가 되면 상갓집에 갔을 때 문상은 당연한 것이고 이승을 떠난 고인을 기리는 만시 한편 정도는 남겨야 예의였다고 하니 문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전송열교수님은 책 속에는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외에 스승과 제자, 선배, 심지어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해서 지어진 만시, 나아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를 쓴 분 그리고 그 시의 대상이 된 분의 삶과 죽음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 있어 만시에 담긴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거리에 걸 맞는 서화 혹은 도자기 등의 자료를 인용하여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송열교수님의 죽음에 대한 시각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아마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죽음을 ‘공도(公道)’라고 했습니다. 즉 ‘누구든지 다 똑같이 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온갖 모순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런대로 불평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죽음일 것입니다.(87쪽)” 어찌 보면 죽음에 있어서도 있는 대로 사치를 부리는 풍조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말씀을 새기다 보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경지에 절로 오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시를 통하여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엿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경향을 보이는 자만시(自輓詩)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극한 상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와 자손에 대한 슬픔은 더욱 곡진한 것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인 탓일까 싶습니다만, 전송열교수님이 엄선한 만시들 가운데 부모에 대한 슬픔을 담은 사례가 없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교수님이 고르신 모든 만시에서 극진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만,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유배 가있는 사이에 세상을 하직한 아내를 위한 만시를 소개합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크게 상심한 나머지 건강까지도 잃게 되는 경우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선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셨을 적에 장례를 주관하시는 스님께서는 애도는 하되 곡을 크게 하지는 말라 권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지나치게 슬퍼하면 저승으로 떠나야 하는 영가께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구천을 방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로 슬퍼하는 과정은 통하여 고인에 대한 애닮픔이 점차 희석되고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교수님의 중국의 시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의 시는 크게 송시(宋詩)와 당시(唐詩)로 나뉘는데, 둘은 시적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당시가 ‘보여주는 시’라면 송시는 ‘말하는 시’라고 하고, 또 당시가 ‘가슴으로 쓴 시’라면 송시는 ‘머리로 쓴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 당시는 묘사적이요 서정적인 경향을 띠는 반면에 송시는 사변적이요 설리적이 됩니다.”

전교수께서 유일하게 인용하고 있는 현대시가 한 수 있습니다. 바로 천상병시인의 귀천(歸天)입니다. 바로 ‘막설인간만시비’라는 제목으로 된 절입니다. 여기에는 방상이 죽은 조광조를 위로하고 나무라는 ‘인간 세상 부질없는 시비일랑 논하지 마세나’와 이용휴가 일찍 져버린 유서오의 죽음에 다섯 수의 시를 적은 ‘오십삼년 동안을 빌려 썼구려’라는 제목의 글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와 천명으로 주어진 일을 다하고 나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제 몫이 아닌 일까지 이루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하릴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심노숭이 썼다는 「누원(淚原)」즉, 눈물의 근원이라는 글입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마음에 있는 것인가?”하는 글로 시작하는데 우리 몸에 대하여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서양적 시각과는 달리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35편의 만시를 나누어 담은 21개의 글제목을 별다른 해설없이 원문없이 한글로 차음해놓은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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