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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rowing 바로잉 -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미투 ; me too>전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후발주자가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하여 1등 제품을 모방해서 소비자를 유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미투전략으로는 2인자는 될 수 있지만 결코 선두는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2인자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베끼기만으로는 오히려 역작용을 내기 쉽기 때문에 1등 제품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갖추어야 2인자의 위치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원조의 권리를 보장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끈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피를 말리면서 경쟁하고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쑥~~ 솟아오르는 것일까요? 남들과는 다른 별종 천재만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바로잉>을 쓴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힌트를 얻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픈 창조보다는 완벽한 모방이 낫다!“라는 역설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작동할지 보장이 없는 어설픈 창조물을 가동하려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완벽한 모방을 통해서 바탕을 쌓고 이를 변형하여 보다 실용적인 효과를 얻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설명입니다.
실패한 자만이 더 달콤한 성공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머레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성공한 사업의 과실을 거두기 직전에 상황이 급변하면서 오히려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고, 다시 재기에 나선 경험을 토대로 하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성공으로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 바로 <바로잉>입니다. 그동안 읽어온 상투적인 성공전략과는 분명 차별점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저자가 실패담을 토대로 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적용하여 몸으로 체험한 내용으로 재기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실증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복사와 모방은 바로 창조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37쪽) 그 이유를 시나리오작가 윌슨 마이즈너 한 말 “만일 어떤 한 작가에게서 아이디어를 훔치면 표절이 된다. 하지만 많은 작가에게서 아이디어를 훔치면 그것은 연구조사 행위가 된다.(109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막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한 젊은 과학자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실험을 맡기는 보스는 없습니다. 연구목표를 정하고 관련된 선행연구들을 조사한 다음 새로운 시각에서 그 연구성과를 증명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쪽으로 과제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런 실험훈련을 거쳐서 스스로 연구과제를 정하고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여 결론을 맺는 연습을 부단하게 하다보면 어느새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은 실험도 해보지 않은 운운 하면서 제가 의사라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의학의 특성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의 주류로 커오게 된 바탕에는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의 실험뿐 아니라 통계 등의 다양한 분야의 발전이 결합되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의학은 자연과학의 종합판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점에는 환자가 있는 것이구요. 의학계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됩니다.
각설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나가는 과정을 머레이는 핵심을 잘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과는 접근방식부터 차별점이 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자료들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진화론의 찰스 다윈, 소니 워크맨을 만들어낸 소니사의 이부카 마사루 등을 인용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글에서 머레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지름길을 6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1단계-정의하라, “해결하려는 문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라”, 2단계-빌려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빌려라”, 3단계-결합하라,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결합하라”, 4단계-숙성시켜라, “결합한 내용이 해결책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 숙성시켜라”, 5단계-판단하라, “그 해결책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6단계-끌어올려라,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은 없애라. 그는 앞의 1~3단계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기원’으로 묶고, 뒤의 4~6단계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진화’라는 개념으로 묶었습니다.(43~46쪽)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저자는 자신이 정의한 6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과거경험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각장을 마무리하면서 “길고 낯선 여행”이라는 표제로 자신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온 과정을 짧게 소개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머레이가 데이비드 마이어스와 알래스카의 매킨리산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와 비슷한 경험을 저도 소개해보려 합니다. “데닐리 산 정상에 오르려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폭 60센티미터의 험준한 산등성이를 타고 걷는 길이다. 이 길 양옆으로는 3.9킬로미터의 절벽이 있다.(73쪽)”는 부분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콜로라도 쪽에서 유타주로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국립공원을 연계해서 여행을 하면서 캐피털 리프(Capital Reef) 국립공원에서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국립공원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산비탈을 타고 초봄의 따듯한 햇빛을 즐기면서 운전을 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산등성이에 오르게 되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길어깨도 좁고 추락을 막을 방호벽도 없는 달랑 2차선 도로가 눈앞에 등장한 것입니다. 길 양쪽은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라서 눈길을 주는 것조차 겁이 날 정도라서 악셀레이터를 밟을 엄두가 차마 나지 않아 운전석에 30여분을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차를 뒤로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그야말로 진퇴양란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바람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시속 10km로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얼마동안이나 그렇게 몰았는지 기억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주변경치가 바뀌고 나서야 속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남기지 못했으니 거짓이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1992년의 일입니다.
얼마 전에 쓴 리뷰에서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머레이 역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적고 있습니다.(333쪽) 현대적인 인쇄술의 원형을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만, 금속활자는 분명 직지심결요체를 찍은 고려시대 이미 적용했다는 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기업계뿐만 아니라 창의성이 필요한 모든 분야, 삶의 전 영역으로 확산된다. 이런 점 덕분에 이 책은 그렇고 그런 얄팍한 상술의 짜깁기가 아닌, 그야말로 역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404쪽)”고 적은 역자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조직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개념이 잘 정리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의 제목에 대하여 가끔은 언급을 하곤 합니다만, <바로잉>이란 제목으로 <Borrowing Brilliance(훌륭함을 빌리다)>라는 원제의 의미를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