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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죽이기 ㅣ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5
전은강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강우석 감독은 1994년작 영화 <마누라죽이기>에서 결혼 5년차 부부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봉수(박중훈)와 소영(최진실)은 죽고 못할 것 같던 신혼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특히 봉수는 매사에 철저하기만 한 소영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부부는 같은 영화사에서 사장과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만 영화제작에 관한 결정은 소영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더욱 무기력해진 봉수에게 영화배우 혜리(엄정화)가 접근하자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더구나 혜리가 봉수에게 소영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요구하자 이혼에 절대로 응할 리 없는 소영의 성격을 잘 아는 봉수는 고심 끝에 마누라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소영을 죽이기 위하여 온갖 꼼수를 쓰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나자 급기야는 킬러(최종원)를 고용하게 된다는 코믹 영화입니다.
전은강 장편소설 <아내죽이기>를 손에 들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은 고 최진실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마누라죽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봉수는 결국 마누라를 죽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만, <아내죽이기>는 어떨가 궁금해집니다.
소설의 얼개는 남자주인공의 직업이 강력사건을 뒤쫓는 형사라는 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라인은 아내가 자신이 잡아들여 처벌을 받도록 한 성범죄자와 바람이 나서 끈질지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을 하는 것은 범죄자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내는 범죄자와의 전쟁에 몰입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한 아내와 친정의 어려운 사정에 냉담한 남편에게 점점 지쳐가다가 재력도 있고 성적매력도 많은 경수에게 빠져들게 된다는 설정인데, 스토리의 전개를 보면 경수가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형사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님이 “범죄는 늘 일어난다. 사소한 오해와 탐욕과 질투와 집착 때문에. 그 최후의 마지노선을 넘는 순간 살인이 일어난다.”라고 추천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남자주인공은 강력사건의 현장을 오랫동안 누비고 다닌 경험을 결국은 자신을 옭매 들어오는 아내와 경수를 한꺼번에 단죄하는데 사용하고 마는데, 동료 형사들 역시 완전범죄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내죽이기>는 남자주인공 형사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에 매달리는 중간중간에 발생하는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끼워 넣고 있는데, 그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주위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법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슬쩍 비치는 등 간단하지만은 않은 구조를 엮고 있습니다. 형사로서의 직업에 투철한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작가가 스토리를 여는 사건으로 알콜중독자의 사망과 관련하여 아들을 정신질환자로 모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지능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고 자신을 정신질환자로 몰고 있다고 주장하는 아들을 다루고 있고, 결말에 가서는 아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내는 장치를 둔 것은 아주 치밀한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가 살인사건에서 소설 속에 15쪽 분량의 소설을 두고 있는데, 소설을 이해하기 위하여 남자소설가와 섹스를 마다하지 않고 소설을 이해하려드는 양인혜라는 인물을 통하여 소설을 어떻게 해부하여 읽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 또한 작가의 독특한 발상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양인혜의 소설분석을 통하여 소설가를 죽인 범인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린다는 마무리가 됩니다. 사건추적을 통하여 가해자 혹은 피의자의 심리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정리해보면 작가는 형사도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형사로서는 유능하지만 남편으로서는 최악인 남자도, 참을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는 평론가 하응백님의 지적대로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하는 형사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아내의 배신에 대하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다만 그녀를 보내고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녀의 끝없는 배신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114쪽)“는 독백은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한 자기최면에 불과할 것입니다.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다시 인용합니다. “정말 사랑했다면 아무리 싫어하고 아무리 미워해도 죽여서는 안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주길 바라야 했어요.(587쪽)” 그렇습니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다면 아내를 놓아주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경수는 주인공을 떠나온 아내를 결국은 버리고 말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때 가서 다시 안아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집중해서 읽었습니다만, 옥의 티를 한군데 밖에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187쪽 아래에서 4번째 줄, ‘유착배우자’는 ‘유책배우자’일 것 같습니다. 결론은 치명적 사랑을 그린 소설입니다만 주인공이 다루는 사건들이 읽는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아내의 배신에 대한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 흥미진진한 게임을 들여다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