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을 읽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폴란드가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태고[太古, 폴란드어로는 프라비에크(prawiek)라고 합니다.]는 폴란드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작가는 태고가 우주의 중심에 놓인 작은 마을이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태고는 실제 폴란드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는 곳으로, 공간이지만 시간을 대변하는 장소이며, 시공을 초월하는 개념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단어라고도 했습니다.


이야기는 1914년에 시작됩니다. 폴란드는 18세기 후반부터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세 나라가 잠식하기 시작하여 1795년에는 삼국이 폴란드를 분할하여 1918년 독립을 선언하기 까지 분할 통치하였습니다. 폴란드가 독립한 상황은 잠시였을 뿐 1939년 나치 독일과 러시아가 분할했다가 1945년에 다시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태고의 시간들>은 태고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 태고 자체를 비롯하여 사람, 천사, 악령, 게임, , , 버섯균, 과수원, 죽은 자들, 넷으로 이루어진 것들 등, 인간과 유무형의 존재들의 시간들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 84개 꼭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태고는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명, 관념과 실제, 환상과 현실, 변화와 반복 등, 다양한 것들이 대립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곳입니다. 시간과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에 대한 지형학적 설명이 담긴 태고의 시간 다음에는 게노베파의 시간입니다. 1914년 여름 태고를 찾아온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징집명령을 받은 남편 미하우가 전장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태고의 시간들>은 미하우와 게노베파로부터 3대에 걸친 인물들과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19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태고가 독일 군인에게 점령되고 이어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와 전투가 벌어지면서 태고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삶이 파괴됩니다. 독일군이 점령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잡혀가고,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태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개됩니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현재 진행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을 폴란드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심오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크워스카의 삶의 방식에 관한 부분입니다. “크워스카는 외부의 것을 내면으로 동화시키면서 세상을 배웠다.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이 존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19)”


상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물론 기대했던 바가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131)”


특히 태고의 지배계급인 상속자 포피엘스키가 시작하는 게임에서는 신화와 성경의 일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예술은 신화적 언어의 수호자이다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 이후의 슬픔 -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삶으로 나아가는 법
호프 에덜먼 지음, 김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년을 넘어서는 코로나 사태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고,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응급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등, 이유도 다양합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확진자를 유가족과 격리하여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삶으로 나아가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슬픔 이후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저자는 열네 살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뒤 상실감과 슬픔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겪어온 자신을 살펴보기 위하여 연구에 착수하였고, 어릴적 어머니를 잃은 여성 92명을 인터뷰하여 엮은 <엄마 없는 딸들>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그리고 39년이 지났지만 그 슬픔을 삭이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할 손쉬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중한 사람과 사별한 아픔이 있는 남성과 여성 8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슬픔 이후의 슬픔>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사별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흔히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집전하신 스님께서는 곡을 하지 말고 마음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라 하셨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애통해하면 돌아가신 분들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좋은 곳으로 가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픔 이후의 슬픔>의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경우에는 평생을 두고 애도하라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자연스럽게 엷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상을 통하여 기억을 강화하면 기억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을 통하여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별을 겪은 이의 단기적인 고통을 완화하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애도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별을 극복한다는 생각을 극복하고 사별은 물론 사별이 수반하는 모든 결과를 함께짊어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20)”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사별한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애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저자의 인터뷰에 응한 81명의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저자의 질문을 받고 사별한 사람과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고, 인터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응답을 만들어내기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저자를 비롯하여 저자와 인터뷰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삶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특별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저자가 미처 착안하지 못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을 하고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저자를 비롯하여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람들로 전문가들의 돌봄이 필요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사례를 일반화하여 잘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생 애도하면서 살아가게 만들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의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책 쓰기에서 피해야 할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구 뒤섞어서 글 읽는 흐름을 휘저어놓기도 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삶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않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딱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더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도 인연을 따라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에서 자신의 책을 찾아 불태우는 작가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인 리처드 오벤든이 쓴 <책을 불태우다>는 이라크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앗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 조성했던 거대한 점토서판의 도서관으로부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파괴와 발굴 과정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박물관과 기록관들이 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저자는 진실이 있었고, 거짓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온 세상과 맞서면서까지 진실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미친 것이 아니다(11)”라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서관과 기록관이야말로 진실을 고수하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고,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책을 불태우다>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관소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자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영국이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정하면서 국내에 산재한 가톨릭 수도원을 폐쇄하면서 소장도서들이 파괴된 사실을 비롯하여 현대에 들어서도 정치적, 이념적인 이유로 도서관들이 파괴된 사례들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건축물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만, <책을 불태우다>에서는 당시 도서관과 기록관이 파괴의 중점 대상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출정한 영국군은 미국 의회 도서관을 파괴하여 소장품을 불태웠습니다. 벨기에 루뱅대학의 도서관은 독일군에 의하여 불탔습니다. 침략군은 도서관이나 기록관을 불태우기도 했지만, 소장품들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도서관 파괴행위의 역사적 사례들을 정리하는 한편 미주대륙과 아프리카, 중동지역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습니다. 약탈과 파괴행위를 막기 위하여 도서관이나 기록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대응했는지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의 한계 때문인지 동아시아 지역은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사건을 비롯하여,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조선왕조의 기록물을 약탈해간 사건도 포함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실록(實錄)을 편찬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분산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의 사관과 해인사에 보관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내사고인 춘추관 실록관과 외사고인 충주, 전주, 성주 등 4대 사고에 보관하였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사고를 비롯하여 충주와 성주사고가 불타 멸실되었지만 전주사고가 살아남아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의 역사기록물을 파괴한 행위와 이를 지키기 위한 조선의 저항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관련부서에서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 저자에게 알려 이 책의 개정판에 반영토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파괴의 역사를 소개한 끝에 이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첫째, 그들은 사회 전체 및 그 안의 특정 공동체의 교육을 지원한다. 둘째, 그들은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셋째, 그들은 시민의 행복과 개방 사회의 원칙을 뒷받침한다. 핵심적인 권리를 보존하고 의사결정의 완전성을 고무한다. 넷째, 그들은 고정된 평가기준을 제공해 진실과 거짓이 투명성검증인용재생력을 통해 판단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그들은 각 사회가 그들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속에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그 사회와 문화의 문자화된 기록을 보존함으로 써다.(3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바람의 그림자 1~2 - 전2권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라는 책에서 소개받은 책읽기였습니다.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훌리안 카락스라는 무명작가가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바람의 그림자>는 주인공 대니얼 샘페레의 성장소설이기도 합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대니얼의 아버지는 대니얼이 열한 살 생일을 앞둔 1945년 초여름의 어느 날 새벽 대니얼을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 데려갑니다. 산타 모니카 데 람블라 거리 어디쯤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가본 람블라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거리입니다. 라발지구에 있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는 세월과 습기에 의해 검게 변해버린 세공된 목조 대문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천사의 모습이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들어찬 회랑과 대리석으로 된 돌계단을 지난 궁전 같은 통로를 따라 도착한 커다란 원형 홀에는 책으로 가득 찬 책장들이 미로처럼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 장소는 중고서적상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만을 위한 일종의 성전(聖殿)입니다. 이곳에 보관된 책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책들로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를 만나게 되기를 기다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대니얼의 아버지는 한권의 책들은 그것을 쓴 사람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묘지의 회원인 중고서적상들은 가게를 물려줄 자식을 이곳에 데려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가족 이외의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는 누구나 책을 한 권 고르는 것이 관습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거라 믿으며 그걸 자기 양자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대니얼의 고른 책이 바로 훌리안 카락스라는 무명작가가 쓴 <바람의 그림자>였습니다.


<바람의 그림자>는 어머니가 임종 때 알려준 친부를 찾아 나선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친부를 찾는 여정은 환상적인 모험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유년기와 소년기를 되찾기 위하여 싸우고,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사랑에 대한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대니얼이 손에 넣은 <바람의 그림자>는 금세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바르셀로라는 중고서적상은 대니얼에게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그 책을 팔라고 합니다.


대니얼은 <바람의 그림자>를 쓴 저자 훌리오 카락스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파리의 그저 그런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여 생계를 이어가면서 소설을 써내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시원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꾸준하게 내주는 출판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니얼이 <바람의 그림자>를 얻은 1945년 이후 시작한 카락스의 삶에 대한 추적은 10여년에 걸쳐 진행이 됩니다. <바람의 그림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뒤쫓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문들이 등장합니다. 교사, 수공업자, 졸부, 정 많은 보모, 창녀, 학자, 내전과 독재정권 속에서도 출세한 경찰 등입니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출판사에서 카락스를 담당하던 누리아 몽포르트도 희생자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그녀가 남긴 글에서 카락스를 둘러싼 비밀들이 드러납니다. 스페인 내전을 거쳐 들어선 프랑코 독재 정권 아래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 어떤 파국을 초래하였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정치적 상황에서 빚어진 끔찍한 범죄행위들이 대니얼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묘사됩니다.


사건은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젊은 남녀의 사랑이 결국은 배다른 형제의 비극을 잉태하고 결국은 파국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바람의 주인공>의 저자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보이는데 반하여 그들을 추적하던 대니얼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훈훈한 마무리가 대조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트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48
알베르 카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히 우한 폐렴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진즉 읽었어야 하는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읽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공감가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14세기 초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하여 서진한 페스트는 유럽 전역을 강타하여 7,500만 명에서 2억 명이 희생된 사상 최악의 대유행전염병입니다. 14세기 대유행 이후에도 산발적인 유행을 보였고, 지금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발병 양상에 따라서 림프절 폐스트, 폐 페스트, 패혈성 페스트로 구분합니다. 항생제가 개발된 이후로는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과거에는 폐 페스트로 발전하는 경우에는 8일 이내에 80%의 환자가 사망하였습니다.


까뮈는 <페스트>에서는 프랑스령 알제리 북부 해변에 있는 작은 도시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생하여 수습되기까지의 1년여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유럽사회가 뒤숭숭하던 194X년입니다. 페니실린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설파제는 막 상용화되어있던 시기라서 페스트에 혈청요법으로 페스트를 치료하던 시기입니다.


오랑시를 혼란에 빠트린 페스트는 416일 층계참에 죽어있는 쥐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치워버렸지만, 거리에 쏟아진 쥐의 사체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예고합니다. 가래톹이 붓고 고열이 나는 환자가 속출하면서 의료진은 페스트의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페스트 환자를 직접 경험한 의사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서에 의거하여 페스트의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시당국은 애써 이를 부인하려합니다. 심각한 유행병도 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면 범유행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만, 당국의 미적지근한 대책은 페스트 환자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루어집니다. 림프절 페스트가 폐 페스트로 발전하면서 쥐벼룩에 물려 림프절 페스트에 걸리던 것이 폐 페스트로 발전하면서 호흡기 전염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뒤늦게 시 전체를 봉쇄하여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페스트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갇혀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경비병을 매수하여 탈출을 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봉쇄된 상황에서 외부와의 밀거래를 통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페스트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자발적인 형태의 보건대가 발족하여 방역과 환자구호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역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초기 대응에 미적거리는 모습이라거나 격리된 사람들의 관리, 출입통제의 허술함 등등, <페스트>에서 그려지는 당국의 모습들은 3년째 겪고 있는 우한폐렴의 사태에서 우리 당국이 보이는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힘없는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 모습도 닮았습니다. 하지만 <페스트>에서는 혼란 속에서 개인이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폭리를 취하는 한편, 우한폐렴 사태에서는 권력의 배려로 특혜를 얻어 폭리를 취하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를 맞아 <페스트>를 읽어보기나 했을까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볼 때 정세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민들이 보여준 냉철과 침착의 감동적인 실례였다. 하지만 그 자체 속에서 갇혀진 한 도시에서, 그리고 거기에서는 무엇이고 비밀이 될 수 없는 그 도시에서는 아무도 당국이 제시하는 실례따위에 속는 사람은 없었다.(256)”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유행에 관련된 모든 사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응방안 역시 의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수립하고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당국의 그런 모습을 보았던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