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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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도 넘은 옛날에 읽은 책이라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사형을 선고받은 수형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교도관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합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에도 특별한 언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출방하여 사무실로 향하다가 평소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되면 그때서야 형이 집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툴 가완디가 쓴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72224>에서도 사형이 집행될 때 사망을 확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의사들의 윤리를 논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목숨을 거두는 일을 직접해야 하는 업무 담당자들의 정신적 압박은 대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죄질에 따라서는 엄한 벌을 주어야 다시 죄짓지 않도록 하는 예방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귀중한 것인데 인간이 그 생명을 거두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형제 폐지론자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법을 판단하는 일도 인간이 하는 일인지라 사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혹여 실수라도 있어 죄가 없는 사람을 사형시키게 되는 경우도 전혀 없으리란 법도 없을 터인지라 더욱이 형을 집행한 다음에 무죄가 밝혀지게 되는 경우 관련된 사람들의 심리작 갈등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최근에 조직적인 범죄에 희생된 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력반 형사의 집념을 그리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응분의 처벌을 피해나가는 경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과연 법정신이 제대로 살아있는 것인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가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개인적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례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일본의 사법체계와 교정행정의 틀 안에서 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인과관계를 교묘하게 엮어낸 추리소설입니다. 가석방된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해주는 보호사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사카키바라는 사건당시의 기억을 잃어 자신의 혐의를 제대로 반증하지 못하고 항소와 상고 끝에 형이 확정되고 이의신청과 재심을 요청하지만 번번히 기각되어 사형일자만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의 변호를 맡은 스기우라 변호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가 그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달라 의뢰를 받고 은퇴를 앞둔 교정관 난고 쇼지에게 이 사건을 맡기게 되고 난고는 평소 눈여겨 두었던 미키미 준이치를 조수로 기용하여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추적하게 됩니다.

 

<13계단>은 다카노 다즈아키의 처녀작인데,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상이라고 할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추리소설작가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형사사건의 현장과 수사과정은 물론 교정과정에 이르기까지 범죄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세할 뿐 아니라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입부에서 깔아놓은 다양한 소재들이 진행되는 상황에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얼게가 신인답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제목으로 뽑은 <13계단>은 사카키바라가 겨우 기억해낸 사건현장에 있는 계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기안서가 결제를 받아야 하는 과정 또한 13개나 된다는 실무적 의미를 중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추리하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고 더하여 생각지 못한 반전까지 양념으로 더해지면서 사형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신랄하게 파고 들고 있습니다. 사카키바라의 사형집행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진실의 언저리를 맴돌던 난고와 준이치는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사소해 보이는 조언을 바탕으로 진실에 도달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같이 해서 마지막 대결을 벌리는 극적구성을 갖추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에 쉽게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밤을 새고서야 마지막 장면에 이르게 되었으니 흡인력이 참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테르 스리렌부르그의 <살인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07323>를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살인이 일어나면 가족 누군가 복수를 해야 하고, 이 복수는 또 다른 살인을 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는데, 결국은 국가 등이 나서서 이를 중재하며 복수를 위한 살인을 금하면서 사회가 안정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약속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불만을 참아내지 못하고 실행에 옮기게 될 때 사회가 불안정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 같은 분위기가 재심으로 반전을 이루는 대목에서는 과거 우리 역사드라마에서 망나니가 참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칼춤을 추는 장면에 멀리서 사자가 말을 달려 들이닥치면서 “어명이요~~~~!”라면서 형집행을 멈추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장면이 연상되어 속으로 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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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는 홍대 앞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조선일보에서 기획하고 있는 명사들이 추천한 101권의 문학작품을 논하는 파워클래식에서 다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루는 북콘서트를 조선일보와 민음사가 같이 주관한 것입니다.

 

이날은 영화평론가 이동진님과 문학평론가 강유정님께서 같이 진행을 하셨는데, 마치 사전에 큐시트를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분은 두 번째 만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보면 타고난 이야기꾼들인 것 같습니다. 300석은 넘어 보이는 객석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시작시간에 겨우 맞추었던 탓에 맨 뒷좌석에 엉덩이를 겨우 얹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금 늦은 분은 계단에 그냥 앉으실 수밖에 없었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바탕으로 한 <프라하의 봄>이란 제목의 영화가 1989년에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두 분이 각각 선정한 영화장면을 소개하기도 하고 작품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을 낭독하기도 하고 작품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을 뽑아서 정리해주셨기 때문에 읽을 때 미쳐 깨닫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오래 전에 읽기는 했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참 지루하다 싶었는데, 이날 북콘서트를 앞두고 새로 읽으면서는 그전과 다른 느낌이 오던 참이었습니다. 출장 때문에 다 읽지 못하고 북콘서트에 참석한 것이 아쉽지만,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콘서트가 끝나고 보니 밤이 깊어 식당들도 문을 닫는 분위기라서 겨우 자리잡은 식당에서 삼겹을 구어가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느낌을 주고받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리뷰를 먼저 적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콘서트에서 얻어들은 내용이 섞일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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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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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소리]에서는 철학분야의 책을 많이 소개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저도 힘이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딱딱해지는 리뷰를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동병상련이셨으면 하는 얼토당토 않은 작은 소망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전혀 다른 방향의 책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소개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분야 역시 제가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를 위한 리뷰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신과를 전공하신 박종호선생님께서 발로(?) 쓰신 아르헨티나 탱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탱고’하니 역시 정열의 춤 아르헨티나 탱고가 퍼뜩 생각납니다. 저와 같이 근무하시는 동료위원님께서 읽으시면 분명  ‘땅고’라고 바로 잡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땅고를 추는 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탱고라고 하고 있으니 음악이나 사교춤으로서의 탱고는 ‘탱고’로 본고향 아르헨티나 탱고는 ‘땅고’라고 적도록 하겠습니다.

 

탱고하면 일본의 국민배우 아쿠쇼 코지가 주연한 1996년작 <쉘 위 댄스>, 혹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장미꽃을 입에 물고 탱고를 추는 장면이 강렬하게 남는 1994년작 <트루 라이즈>가 먼저 생각납니다. 장님퇴역장교로 나오는 알파치노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가브리엘 던이 CF음악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Por Una Cabeza에 맞춰서 탱고를 추는 장면이 인상적인 1992년작 <여인의 향기>도 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인의 향기>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춤추는 장면을 보면 가브리엘 던의 등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모습에서 땅고는 역시 어려운 춤이구나 싶습니다.

 

사실 오래 전에 사교춤으로 탱고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시던 교수님들께서 해외연수 나가시기 전에 춤을 배워보자 하셨던 모양인데 1년차 전공의였던 저도 따라오라 명을 받은 것입니다. 어느 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남산 아래 회현동 어디쯤에 있는 호젓한 집 거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2주일동안 은밀하게(?) 사사받았습니다. 하지만 임상실습을 제대로, 충분하게 하지 않은 탓에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꾸준히 했더라면 2년 전 유럽학회에서 열린 선상파티에서 솜씨를 제대로 보일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춤 다음으로 탱고하면 당연히 음악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박종호선생님께서는 ‘라쿰파르시타’를 우리도 잘 아는 탱고곡이라 소개해주셨습니다만, 저는 토종 탱고음악이 먼저 생각납니다. 요즘에도 노래방에 가면 가끔 부르곤 하는 <서울야곡>은 현인선생님 곡도 좋지만, 전영씨 노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2절 가사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보신각 근처에 다니던 학교가 있었던 것하며, 전하지 못하고 찢어버린 편지에 대한 추억 등이 아직도 노래를 잊지 못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사설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박종호선생님의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클래식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선생님께서 탱고음악에 관심을 가지신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던 모양입니다. “탱고의 아련한 멜로디와 독특한 리듬은 들을 때마다 늘 내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15쪽)”라는 고백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기획했던 2008년에 우리나라에 탱고에 관한 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사실은 2007년에 탱고 아카데미의 배수경대표가 쓴 <탱고>라는 책이 나와 있었습니다.)을 알고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러 2주간의 일정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여류소설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주일간 머물면서 탱고에 대하여 느낀 점을 녹여낸 소설이 일본에서 커다란 반응을 일으키면서 탱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불러냈다는 이야기에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자는 탱고가 태어나게 된 배경에서부터 발전해 내려온 발자취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면서 잘 알려진 탱고 바와 클럽을 중심으로 탱고공연을 직접 보면서 탱고와 탱고음악을 느끼고 그 느낌을 탱고의 역사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기회가 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탱고음악에 비중을 더 주고 있는 것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반면 탱고는 출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탱고를 출줄 모른다고 고백하면서도 탱고를 춤출 수 없다고 해서 탱고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탱고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 갈수록 그것은 춤이 아니고 음악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시어(詩語)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굳이 춤이 없다고 하더라도 탱고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 장르이며 또한 문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노래라는 뜻이 된다.(15쪽)”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탱고는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하는 예술”이라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탱고가 19세기말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피끓는 젊은 남자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춤추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음악보다 노래보다 춤이 먼저일 것 같고, 아무래도 탱고의 춤사위는 열정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탱고의 춤사위는 그들의 몸부림이며, 탱고의 음악은 그들의 절규다. 섹스가 육체를 위로한다면 탱고는 영혼을 위로한다. 그래서 탱고는 슬프다. 섹스가 육체의 위안이라면, 탱고는 영혼의 섹스다.(37쪽)”

 

탱고곡 <외로움>의 가사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이 방에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그녀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지만....”이라고 쓴 것처럼, 탱고곡은 대체적으로 사랑, 특히 실연을 노래한 것이 많은데 그 실패한 사랑을 오히려 풍자적이고 냉소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실연으로 절망하지 않고 관조하는 입장을 취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탱고곡의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 탱고음악에도 전해진 것 같습니다. 젊어서 즐겨 듣던 전영씨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그렇게 쉽사리 떠날 줄은, 떠날 줄 몰랐는데, 한마디 말없이 말도 없이, 보내긴 싫었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방실이씨의 <서울탱고>에서는 더 완숙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다 모두다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같은 것, 그냥 쉬었다 가세요.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다 잊으시구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고 한 김소월님의 시 <진달래꽃>에서 처럼, 우리나라의 탱고곡의 분위기는 우리네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춤으로서 탱고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느낌도 담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탱고바나 탱고클럽에서 직업 무용수들이 공연으로서의 추는 탱고를 감상하고 느낀 점을 적고 있을 뿐, 춤을 추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무도장, 밀롱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점을 아쉬워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르헨티나 땅고를 즐기시는 분들이 그러실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 땅에서 땅고를 배우고 땅고를 가르치는 라우님께서 땅고의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석달간 머물면서 촌각을 아껴 땅고를 배웠던 경험을 고스란히 풀어놓으신 <길을 잃은 후, 길을 찾다>를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땅고에 관한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일하는 위원님은 “왜 땅고를 추느냐”는 땅고 선생님의 질문에 “땅고를 시작한 것은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취미로 아니면 그냥 여가선용으로 재미있는 삶을 위하여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배우면 배울수록 땅고는 인생인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땅고를 추기 위하여 상대를 안는 것 “즉 ‘안기’란 남녀가 가슴을 붙이고 안는 자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땅고의 에너지를 교류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안기’가 단순히 육체적 접촉이 아닌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더 큰 영감을 파트너에게 줄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탱고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고향을 떠나 먼 이국에서 외로움 속에서 절망하는 이방인의 눈물과 한이 서린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2% 부족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박종호선생님은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에필로그에서 “탱고 추는 남녀를 유심히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나 여자는 거의 한 발이며 그녀의 몸은 내내 남자에게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 인생과 흡사하지 않은가.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인생의 탱고를 춘다면, 두 사람 둥 한 사람은 다리 하나를 들 수 있다.(428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탱고는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다리로 추는 춤”이라고 들어서 일까요? 하지만 저의 동료는 “탱고는 그 음악 속에서 네 개의 다리가 한 개의 심장이 되어 남녀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의지하여 추는 춤”이라고 정의하고 “음악 속에서 네 개의 다리가 한 개의 심장으로 움직이기 위하여 서로의 한과 혼과 희노애락이 철저히 가슴과 머리에 합일이 되지 않으면 출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른 차이일까요?

 

배수경대표의 <탱고>에서 탱고의 역사, 탱고가 대중화되고 세계화되는 과정, 탱고의 구성요소 그리고 탱고가 춤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라우님의 <길을 잃은 후, 길을 찾다>에서는 밀롱가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땅고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춤으로서의 땅고에 대한 이해에 더하여 음악으로서의 탱고에 관한 이야기들과 더하여 보는 탱고를 즐기는 길을 안내하는 박종호선생님의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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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7-03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6488
 
익스트림 머니 - 전 세계 부를 쥐고 흔드는 위험한 괴물
사트야지트 다스 지음, 이진원 옮김 / 알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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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더할 수 없이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유럽발 경제위기로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라서 주목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사태를 만든 당사국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유럽발 경제위기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의 지나친 복지정책이 국민들의 눈높이를 끊임없이 끌어올리다 자초한 측면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있기 전에도 세계는 2007년 시작된 미국발 프라임모기지 부실파동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아 극단적인 처방으로 겨우 회생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서 위기감이 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시로서는 생소하다 싶었던 서브프라임사업이란 “불행한 개인들에게 제공되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이자의 모기지 대출을 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나안게 만든 은행과 모기지 브로커들의 기만적이고 냉소적인 영업관행의 동의어가 바로 서브 프라임(7쪽)”이라고 세계적인 금융 파생상품과 리스크관리 분야의 전문가 사트야지트 다스는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익스트림 머니>는 바로 2008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파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골장터에 나가보면 속칭 야바우라고 하는 돈놓고 돈먹는 게임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사위를 숨긴 종지를 맞추면 건 돈의 몇배를 되받는 게임인데 한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주사위 종지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주머니에 든 돈을 모두 털린 다음에서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자이건 주식투자이건 간에 형태만 달랐지 위험을 안고 하는 머니게임은 현대판 야바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탓에 섯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전설적인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의 말을 읽다보니 더욱 새가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속이는 방법은 항상 똑같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투기가 결코 변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투기가 주는 매력은 똑 같다. 탐욕, 허세 그리고 게으름이 그것이다.(35쪽)”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모기지 브로커의 유혹에 이끌려 평생 소원인 집장만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었고, 다만 운이 나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이 한계를 능력이상으로 부풀리지 않는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책의 제목을 <익스트림 머니>라고 정한 이유를 서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장, 번영, 부 면에서 새로운 인공적 지위를 창조하는, 돈을 수단으로 하는 놀랍고도 위험한 게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 나는 이런 돈을 ‘익스트림 스포츠’에 빗대어 ‘익스트림 머니’라고 부른다. 과거에 평범한 것들의 가치 평가와 교환을 위해 사용되던 돈이 이제는 돈을 버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39쪽)”.이런 제목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담은 우리말 제목이 있을까 싶습니다.

 

크게 4개로 나뉜 글 가운데 ‘제1부 신뢰’에서는 유통을 매개하는 돈이 생겨난게 된 배경으로부터 돈이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2부 시장근본주의’에서는 시장을 움직이는 이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피고, ‘제3부 연금술’에서는 과거 하찮은 쇠붙이를 이용하여 금을 만들어내려는 연금술에 비유하여 파생상품 등과 같이 돈없이 돈을 만들어내는 금융상품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고 이런 금융상품이 결국은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과정을 ‘제4부 금융위기’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면서도 필요한 부분만 추려내는 절차탁마가 돋보일 뿐 아니라 영화, 연극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하고 있는 비유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은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고나 할까요?

 

앞서 유럽발 글로벌경제위기를 인용했습니다만,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복지국가에 대한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아기와 같다. 한쪽 끝에서는 식욕이 넘쳐나지만 반대쪽 끝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소화관이다. 복지의 목적은 가능한 한 존재 자체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195쪽)” 짧은 인용문이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건에서부터 유럽발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수준에 걸맞는 정책운용이 중요하고 필요하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나누어 가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 인용했던 백척간두란 말은 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현전신; 백척간두에서 걸어나가면 시방세계가 바로 온 몸이다)이란, 중국 선종의 장사경잠(長沙景岑)의 계송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위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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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과 논박 2 - 과학적 지식의 성장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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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의 추측편을 담은 <추측과 논박1;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5276>에 이은 논박편을 담은 <추측과 논박2>입니다. 추측은 과학철학의 제문제에 대한 포퍼의 견해를 담은 10편의 글을 담고 있으며, 논박은 다른 사람의 이론에 대한 포퍼의 비판적 견해를 담은 10편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글들은 독립되어 있지만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좋습니다만, 몇 개의 주제들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같이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과 형이상학과의 관계, 심신과 언어의 관계, 사회과학, 여론, 유토피아, 역사주의 그리고 휴머니즘 등입니다.

 

과학 영역에서 의학이 어디에 위치하는가 하는 문제로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의술로서의 의학은 과학 영역이라 하기 어렵다는 것이 자연과학자들의 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듯 합니다만, 학문으로서의 의학은 방법론 등을 고려하였을 때 충분히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것이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점에 대한 포퍼의 생각은 “의학은 기예(art)이고 기술이지만, 그것을 자연과학의 대표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결론은 잘 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의학은 순수과학이라기보다는 응용과학이기 때문이다. 순수화학에 대해서 말하면, - 순수수학과는 다른 것으로서의 - 자연과학은 지식(scientia)이나 참된 앎(epitēmē)이 아니라는 데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자연과학이 기술(technē)이기 때문이 아니라, 억축(doxa)의 영역에 속하기-그라시가 제대로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신화오ㅘ 마찬가지로- 때문이다. 저 역시 의학은 순수과학이라기 보다는 응용과학의 범주에 두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여론’의 진실성이 화제가 되고 있는 탓인지 ‘여론과 자연주의자의 원칙’이란 제목의 글을 집중하여 읽었습니다. 포퍼는 “민심은 천심(vox populi vox dei)이라는 고전적인 신화가 있다”라고 전제하면서 민주의 소리 신화에는 몇 가지 진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정된 정보밖에 얻을 수 없으면서도 많은 서민 대중은 자실들의 정부보다도 현명하고,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고매한 뜻에 따른 영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거나 여론은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어 정부를, 심지어는 비민주적인 정부까지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는 어느 정도의 의혹의 마음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익명의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여론은 무책임한 힘의 형태이므로 자유주의적인 견지에서는 특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여론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론은 강력한 자유주의적인 전통에 의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되지 않으면, 자유에 대한 위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론편의 첫 번째 글은 형이상학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에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너무 지성적이지 않다 싶으면 화제가 너무 형이하학이니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하자 농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사전에서 ‘형이상학’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형이상학’은 “①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思惟)나 직관(直觀)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②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형이하 또는 경험적 대상의 학문인 자연 과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③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비변증법적 사고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베이컨 이래로 중요한 철학적 화두임에도 분명하게 정리된 개념은 아직 없으나, “과학은 그것의 관찰적 기초나 또는 귀납적인 방법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데 반해, 사이비 과학과 형이상학은 사변적인 방법이나 또는 베이컨이 말했듯이 <마음의 기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것(24쪽)”이라는 일반적 견해에 포퍼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형이상학의 사변적 방법이 과학의 기준으로 정의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같습니다. ‘형이상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논의를 포함하여 보다 깊이 따져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정도로 줄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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