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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ㅣ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40년도 넘은 옛날에 읽은 책이라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사형을 선고받은 수형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교도관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합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에도 특별한 언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출방하여 사무실로 향하다가 평소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되면 그때서야 형이 집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툴 가완디가 쓴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72224>에서도 사형이 집행될 때 사망을 확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의사들의 윤리를 논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목숨을 거두는 일을 직접해야 하는 업무 담당자들의 정신적 압박은 대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죄질에 따라서는 엄한 벌을 주어야 다시 죄짓지 않도록 하는 예방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귀중한 것인데 인간이 그 생명을 거두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형제 폐지론자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법을 판단하는 일도 인간이 하는 일인지라 사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혹여 실수라도 있어 죄가 없는 사람을 사형시키게 되는 경우도 전혀 없으리란 법도 없을 터인지라 더욱이 형을 집행한 다음에 무죄가 밝혀지게 되는 경우 관련된 사람들의 심리작 갈등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최근에 조직적인 범죄에 희생된 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력반 형사의 집념을 그리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응분의 처벌을 피해나가는 경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과연 법정신이 제대로 살아있는 것인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가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개인적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례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일본의 사법체계와 교정행정의 틀 안에서 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인과관계를 교묘하게 엮어낸 추리소설입니다. 가석방된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해주는 보호사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사카키바라는 사건당시의 기억을 잃어 자신의 혐의를 제대로 반증하지 못하고 항소와 상고 끝에 형이 확정되고 이의신청과 재심을 요청하지만 번번히 기각되어 사형일자만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의 변호를 맡은 스기우라 변호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가 그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달라 의뢰를 받고 은퇴를 앞둔 교정관 난고 쇼지에게 이 사건을 맡기게 되고 난고는 평소 눈여겨 두었던 미키미 준이치를 조수로 기용하여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추적하게 됩니다.
<13계단>은 다카노 다즈아키의 처녀작인데,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상이라고 할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추리소설작가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형사사건의 현장과 수사과정은 물론 교정과정에 이르기까지 범죄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세할 뿐 아니라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입부에서 깔아놓은 다양한 소재들이 진행되는 상황에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얼게가 신인답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제목으로 뽑은 <13계단>은 사카키바라가 겨우 기억해낸 사건현장에 있는 계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기안서가 결제를 받아야 하는 과정 또한 13개나 된다는 실무적 의미를 중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추리하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고 더하여 생각지 못한 반전까지 양념으로 더해지면서 사형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신랄하게 파고 들고 있습니다. 사카키바라의 사형집행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진실의 언저리를 맴돌던 난고와 준이치는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사소해 보이는 조언을 바탕으로 진실에 도달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같이 해서 마지막 대결을 벌리는 극적구성을 갖추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에 쉽게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밤을 새고서야 마지막 장면에 이르게 되었으니 흡인력이 참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테르 스리렌부르그의 <살인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07323>를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살인이 일어나면 가족 누군가 복수를 해야 하고, 이 복수는 또 다른 살인을 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는데, 결국은 국가 등이 나서서 이를 중재하며 복수를 위한 살인을 금하면서 사회가 안정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약속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불만을 참아내지 못하고 실행에 옮기게 될 때 사회가 불안정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 같은 분위기가 재심으로 반전을 이루는 대목에서는 과거 우리 역사드라마에서 망나니가 참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칼춤을 추는 장면에 멀리서 사자가 말을 달려 들이닥치면서 “어명이요~~~~!”라면서 형집행을 멈추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장면이 연상되어 속으로 웃고 말았습니다.